아침에 로지를 나서며 계산을 하는데 분명 맥주 두 캔을 마셨건만 계산서에는 네 캔이 청구되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동생이 밤늦게 다시 나와 포터와 두 캔을 더 마셨단다. 동생은 기억을 못하겠다 하고. 어제 시누와에서 사온 양주 한 병을 둘이 나눠 마셨더니 둘다 술에 취했던 모양이다.

 

타그룽(Taglung)에서 길을 잃어 잠시 헤맸다. 중간에 왼쪽으로 빠졌어야 했는데 무심코 직진을 한 것이다. 간드룩이나 고레파니로 가는 길이 워낙 넓다 보니 지누단다로 가는 샛길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길을 물어 다시 되돌아 온다고 30분을 허비했다. 지누단다 로지 주인이 우릴 반갑게 맞는다. 동생에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막내라 부른다. 내가 동생을 부르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기로 했던 샤우리 바자르까지는 꽤 거리가 멀었다. 뜨거운 햇빛에 점점 발걸음이 느려진다. 날씨는 왜 이리 더워지는지 모르겠다. 뉴 브리지와 큐미를 지났다. 마을이 나타날 때마다 엉덩이를 붙이고 맥주나 콜라를 시켰다. 더위에 대항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학교 운동장과 논에서 무리를 지어 놀이를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어딜 가나 학생들은 천진난만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탁아소와 학교 앞에는 모금함을 놓고 트레커들에게 기부를 하라 유혹한다.

 

샤우리 바자르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다.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한다. 배낭에서 꺼낸 조그만 버너와 한국 라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졸지에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다. 나야풀에 이르러 트레킹을 종료했다. 이제 더 이상 산길을 걷지는 않는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누리가 친구 한 명을 데려와 포카라까지 태워줬으면 좋겠다 한다. 비좁은 불편만 참으면 추가 비용은 발생하지 않으니 그러자 했다.

 

시골길을 달리는 택시의 속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 운전 솜씨는 환상적이라 할만하다. 빵빵거리는 경음기 소리를 적당히 섞어가면서 말이다. 포카라에서 누리와 헤어졌다. 어디로 가서 숙소를 찾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택시 기사가 아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 주었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는 의외로 호주인 여성 주디(Judy). 하룻밤에 400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리 비싸지 않아 좋았다. 시설은 산속 로지보다 훨씬 좋았다. 적당히 피곤한 육신을 쉬기엔 딱이었다.

 

 

 

 

 

 

 

 

 

 

 

 

 

 

 

 

 

 

 

<트레킹 요약>

개인 사업을 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동생과 단 둘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에 나섰다. 워낙 바쁜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라 1주 이상의 일정을 짤 수가 없었다. 2007 11 15일에 트레킹을 시작해 11 21일 트레킹을 마쳤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07.16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보아도 힘들어 보이는 자갈돌길을 배낭과 카메라까지 메고 걸어가셨네요.. 풍경이 대단하다..일련의 과정이 신기하다..얕은 표현력으로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사진에 구멍이 생겼나 잘 살펴보세요..ㅎㅎ 제가 뚫어지게 보았거든요..^^

  2. 보리올 2013.07.16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올린 글과 사진을 다시 보는 기회를 주시는군요. 여기 올린 사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진 마세요. 사진에 구멍 뚫리면 나중에 책임지셔야 합니다. ㅎㅎㅎ

 

프랑스 친구들이 새벽부터 ABC를 오른다고 부산을 떠는 바람에 새벽 5시도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그냥 침낭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안나푸르나 쪽으로 부드러운 햇살을 받은 봉우리들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턴 하산이 남았다. 고도를 낮춰 산을 내려서는 일은 부담이 없어 좋았다. 올라올 때 이틀 걸렸던 거리를 하루에 걷는다. MBC를 출발해 점심은 밤부에서 먹고 촘롱까지 하루에 뺐다.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트레킹에 나섰던 대산련 경북연맹 산꾼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걸었다. 주로 포항분들이 많았다. 이 인씨를 포함한 두 명은 이름있는 전문 산악인이었다. 32명의 대규모 그룹 때문에 MBC에서 로지를 구하지 못하고 텐트에서 묵게된 것 같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런 대규모 산행 그룹에 익숙하지만 사실 외국에서 이런 규모는 보기 힘들다. 우리도 이제부턴 규모를 좀 줄여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밤부에서 시누와로 올라서는 일, 그리고 시누와에서 계곡을 건넌 후 촘롱으로 올라서는 일이 무척 고단했다. 끝없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하산길에 이런 구간이 나타나면 짜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촘롱 로지를 올라서기 전에 가게 하나가 있는데, 다른 가게에 비해 물건도 많았고 가격도 쌌다. 우리에게 가격이 싸다는 것을 한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냐고 물어 아예 종이에 적어 주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만큼 한국어로 표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촘롱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는 한국 트레커들에게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왜냐 하면 간판에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한다고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길 올라올 때 지누단다에서 묵었던 로지 주인의 여동생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 로지의 주인은 숙부인 가지란 사람. 한국에서 6년을 체류하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한국말이 유창하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이 로지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일품이었다. 석양에 붉게 물든 봉우리를 쳐다보는 일도 너무 좋았다. 산을 오를 때 여기에 묵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지가 담갔다는 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김치는 좀 별로였고 그것을 넣어 만든 찌개와 볶음밥도 그저 그랬다. 그래도 깍두기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곳 히말라야에서 김치와 깍두기를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며 동생과 위스키 한 잔씩 했다. 이번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동생이 어느 정도 머릿속 고민거리를 날려 보낸 것 같아 다행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본격적으로 고소로 진입하는 날이다. 나야 그런대로 버틸 것이라 생각하지만 히말라야가 초행인 동생에게는 긴장되는 순간이리라.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시라고 동생에게 당부를 했다. 촘롱(Chomrong)까지는 급경사 오르막이었다. 숨이 턱까지 찬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걸었다. 길가에 있는 조그만 가게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음료수를 가져다 우리 앞에 놓고는 한국인이냐 묻는다. 병따개를 들고 우리 앞에서 배시시 웃는 아주머니. 별 수 없이 콜라 두 병을 팔아 주었다. 이런 상술을 가진 귀재가 이 깊은 산중에 은거하고 있었구만.  

 

촘롱까지 2시간 30분 걸린다고 표지판에 쓰여 있었지만 우린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빨리 걸었다는 의미인가? 우리보다 더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었나? 아무래도 소요 시간을 너무 길게 잡은 모양이다. 촘롱에서 시누와(Sinuwa)까지도 오르막 길이 만만치 않았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데, 이런 산길이 히말라야에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구간이다. 오늘도 햇볕은 쨍쨍하다. 지도상으로 보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절반 정도 오지 않았나 싶다.

 

치누와에 있는 매점에서 동생이 제법 가격 흥정을 잘 한다. 이 친구는 히말라야가 처음인데도 나보다 한 수 위다. 1리터에 45루피 달라는 것을 흥정을 해서 30루피에 사왔다. 라면 끓일 물까지 공짜로 얻어온 솜씨에 내심 감탄을 했다. 손보사 지점장을 거쳐 보험으로 자수성가한 친구라 흥정이라면 한 가닥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제 지누단다에서는 병맥주와 생수를 팔지 않았다. 환경보전지구(ADAC)라는 핑계로 캔맥주를 병맥주 가격에 팔았고 생수 대신 끓인 물을 1리터에 40루피씩 받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곳 상인들의 담합이 아닌가 싶었다. 다른 지역은 그런 유치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속은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지만 이미 지나쳤으니 어쩌랴.

 

밤부(Bamboo)가 가까워오면서 대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염소에게 대나무 잎을 먹이는 목동도 만났다. 밤부에서 포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가려는 도반(Dovan)이나 히말라야(Himalaya)에는 빈 방이 없다니 여기서 묵자고 한다. 어찌 방이 없는 것을 알았냐 물었더니 밤부 로지 주인이 그런다고 했다. 그래서 로지 주인을 불렀다. 얼굴이 반반한 여주인이 나타나 그냥 “Many many people”이라 한다. 어이가 없어 포터에게 방은 내가 구할테니 히말라야까지 가자고 했다. 도반부터는 포터의 발걸음이 빨라져 우리도 덩달아 속도를 냈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한 봉우리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가 전부였으나, 오늘은 마차푸차레 왼쪽으로 강가푸르나와 안나푸르나 3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나푸르나 주봉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도반을 출발할 즈음, 계곡을 따라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우리를 추월해 버린다. 이러다가 비를 맞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비를 맞지 않은 채 히말라야(2,920m)에 도착했다. 9시간 40분의 긴 여정이었다.

 

히말라야엔 사람들로 북적거리긴 했지만 처음 찾아간 로지에서 구석진 방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전기불이 없어 좀 불편하긴 했지만 여긴 히말라야 아닌가. 옆방에 묵고 있던 한국인 대학생 셋이 인사를 해온다. 배낭 여행 중이라는 남학생 하나에 여학생 둘. 젊음과 자유, 배낭 여행이 부러웠다.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우리 테이블로 초대를 했다. 볶음밥과 맥주로 저녁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음식값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이제부턴 고도를 높일수록 음식은 점점 비싸질 것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