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3.17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2)
  2. 2015.05.21 [네팔] 달마스타리 (2)
  3. 2015.05.20 [네팔] 박타푸르 ③ (2)
  4. 2015.05.18 [네팔] 박타푸르 ①
  5.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③

 

오클랜드로 입국해 크라이스트처치에 닿았다. 입국 절차도 까다로웠고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통과 후에 다시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 짐을 부치는 것도 번거로웠다. 음식이나 과일 반입에 유별나게 신경 쓰는 것이야 뭐라 하긴 어렵지만 등산화 반입까지 조사를 하니 좀 의아하긴 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캔터베리 주의 주도로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 한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가 심하게 피해를 입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진 설계를 반영해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그리 늦은 것인지, 아니면 도시 재건에 소요되는 자원이 한정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19세기 영국 사회를 모델로 건설해 영국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는 아름다운 도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방치된 반파 건물이나 비계로 둘러싸여 복구 중인 건물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섰다. 바로 커시드럴 스퀘어(Cathedral Square)가 나왔다. 63m의 첨탑은 무너지고 대성당도 반쯤 허물어져 철조망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1901년에 완공되었다는 신의 공간도 자연 재해는 이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트램에 올랐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을 타고 도심을 먼저 일견한 것이다.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은 일본 건축가의 설계로 2013년에 지어졌다. 98개의 카드보드 튜브를 사용해 임시로 지은 대성당은 뾰족한 삼각형 형상에 창문 또한 삼각형으로 낸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트램에서 내려 발길 닿는 대로 도심을 걸었다. 리스타트 몰(Re:Start Mall)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옆에 컨테이너를 사용해 쇼핑몰을 만든 발상 자체가 신기했다. 가게뿐만 아니라 카페나 푸드 트럭도 들어와 있었다. 식물원(Botanic Gardens)도 한 바퀴 돌았다. 한가롭게 걸을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도심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클랜드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해 크라이스트처치 행 항공편으로 갈아탔다. 에어 뉴질랜드 항공기만 눈에 들어왔다.

 

 

커시드럴 스퀘어는 반쯤 무너진 대성당 옆에 자리잡고 있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에 올랐다.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는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대신해 임시로 지은 카드보드 대성당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도심 전체가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처에 콘테이너를 가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리스타트 몰도 콘테이너를 사용한 상가였는데 밝은 색상으로 외관을 칠해 분위기가 좋았다.

 

 

 

에이번 강(Avon River)으로 둘러싸인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을 한가롭게 걸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하늘엔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현지인이 주저 없이 최고로 꼽은 스트로베리 페어(Strawberry Fare) 레스토랑. 무심코 양고기를 시켰는데 푹 삶아 잘게 찢어 나온 양고기가 파파르델레라 부르는 넓고 납작한 파스타 면 위에 얹어 나왔다.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리 입에 맞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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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5.25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질랜드에 저리 심한 지진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적응해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 보리올 2016.05.27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도 뉴질랜드란 나라에 인프라가 없으니 대책이 없는 듯 했다. 건설 장비나 인력도 부족하고 사람들 성격도 느긋한 편이니 그저 시간이 해결하는 수밖에.

 

네팔 지진 피해 현장을 제대로 본 것은 카트만두 북서쪽에 위치한 농촌마을, 달마스타리(Dharmasthali)에서였다. 이 마을을 찾게된 것은 우리 나라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새삶교육센터가 여기 설치된 인연도 작용했지만, 지진 피해가 제법 큰 마을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달마스타리로 접근하는 도중에도 길거리에 무너진 집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달마스타리에 비해선 약과였다.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가 무너졌다고 했다. 성한 집보다 무너진 집이 더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 달마스타리 이웃에 있는 파담살이란 마을은 60여 채의 가옥 전량이 파손됐다고도 했다.

 

달마스타리 마을에서 직접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원불교 교무로부터 피해 현황을 설명듣고는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정말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널부르져 있었다. 성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뭐라 할말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잔해에서 살림살이를 꺼내고 있었고, 어느 노부부는 허물어진 잔재 위에서 보리를 타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살아난 사람은 질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노란 캡모자에 검정 선글래스를 쓰고 나락을 까부르는 아낙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이것도 슬픔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편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말레이지아와 타이완에서 왔다는 모 불교단체가 마을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는 현장도 둘러보았다.

 

(사진) 달마스타리로 가는 길에 도로 중앙에 앉아 쉬고 있는 소들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번잡한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카트만두를 벗어나 달마스타리로 가면서 본 지진 피해 현장들.

 

 

 

 

 

 

 

 

 

 

(사진)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 이상이 손상을 입어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사진) 지진 피해 현장에서 보리를 까부르는 아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사진) 말레이지아와 타이완 불교 단체에서 현지 구호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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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 2018.09.15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진은 끔찍하죠.. 그런데 네팔같은 경우는 피해가 덜한 것 깉아요.. 산업이 발달했다면 훨씬 컸을 것입니다. 빨리 복구되기를 바랍니다

    • 보리올 2018.09.15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는 많이 복구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긴 3년 전에 쓴 것입니다. 워낙 흙집이 많았던 지역이라 피해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피부로 느끼지 못 했던 지진의 위력을 보고 저도 솔직히 겁이 나더군요.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보다도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건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터나 밭에는 천막이나 텐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주민들, 특히 노인들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한 가구가 들어있으면 최소한 프라이버시는 지켜지련만 보통은 세 가구가 천막 하나를 함께 쓴다고 했다. 천막은 대부분 중국 적십자에서 제공된 것이었다. 중국에선 적십자를 홍십자(紅十字)라 부른다는 것도 네팔에서 알았다. 발빠르게 지원에 나선 중국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만 네팔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건물 벽면에 붙어있는 공고문의 내용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피해를 입은 가구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행여 구호품이 도착하면 여기에 있는 가구들만 받아야 하는데, 피해 가구를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없어 대상자가 아닌 사람도 구호 물품을 받아가는 모양이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구호품을 받으면 나중에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섬뜩한 경고 문구도 따로 붙어 있었다. 머리를 삭발한 남자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네팔에선 직계가족이 죽으면 상주들이 대부분 삭발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들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삭발한 머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피해 가족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다른 지역의 천막촌도 둘러 보았다. 다들 궁색한 형편이었지만 표정만은 그리 어둡지 않아 네팔 사람들의 낙천적 기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피해 가구를 적어놓은 공고문이 벽면에 붙어 있었다.

 

 

(사진) 머리를 삭발하면 직계가족이 죽었다는 의미인데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사진) 공터에 마련한 임시 천막촌. 몇 가구가 천막 하나에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사진) 다른 지역에 설치된 천막촌을 찾았더니 여기는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물을 여과하는 장치가 있어 그래도 한 시름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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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수 2015.05.22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에서는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부르는것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붉은색을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붉을적(赤)보다는 붉을홍(红)으로 표기를 합니다,
    그래서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하는 것이구요. 중국홍십자회는 한국으로 말씀드리자면 대한적십자사와 비슷한 곳이며. 현재 국제적십자.적신월연맹의 일원이기도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국제 홍십자. 홍신월연맹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적십자는 한국. 북한.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표기이며. 중국을 비롯해서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홍십자로 표기를 하구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헌혈버스와 헌혈의 집도 모두 홍십자회에서 운영을 한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적십자사를 적신월사라고 하는데요. 이는 십자가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상징이라서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이용해서 적신월이라고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홍신월이라고 부른답니다,

    • 보리올 2015.05.22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너무나 고맙습니다, 김영수 선생님. 제가 그 분야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요. 하긴 Red Cross를 각 나라에 맞게 우리는 적십자, 중국은 홍십자 하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표현한 것일텐데 제가 적십자와 달라 좀 이상하다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박타푸르(Bhaktapur)는 지진 피해가 상당히 심하다고 들었다. 네와르 족이 지은 고풍스런 목조 건축물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오래된 문화재가 꽤 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문화재 외에도 박타푸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가옥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박타푸르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네팔 교구청에서 내준 차를 타고 박타푸르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문 옆에 주차를 하곤 걸어서 박타푸르로 접근했다. 왼쪽에 위치한 인공 연못에선 그물로 잉어를 잡고 있었다. 지나가던 구경꾼도 많았다. 팔짝팔짝 뛰는 팔뚝만한 잉어가 저울 위에 놓이는 즉시 팔려 나갔다. 식량이 부족한 비상 상황이라 잉어잡이를 특별히 허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덜발 광장(Durbar Square) 쪽으로 걸었다. 양쪽으로 더 좁은 골목들이 가지를 치고 있었지만 그저 눈으로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야채 몇 단을 내어놓은 상인이나 면도에 열중하고 있는 이발사도 지나쳤다. 지진으로 내려앉은 전깃줄은 대충 끈으로 묶어 놓았다. 지나는 행인들을 위해 종이에 그려 넣은 해골 표식이 일종의 경고 표시이었고 그 외엔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 행인이 알아서 피해가라는 의미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으로 기운 건물을 막대로 받혀놓은 현장을 지나며 조금씩 지진 피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피해보다는 훨씬 적다는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 일본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2011년 건설한 카트만두-박타푸르간 4차선 도로.

지진의 영향으로 한쪽 2차선 도로가 1m 이상 주저앉았다

 

 

 

 

 

 

(사진) 박타푸르 초입에 있는 인공 연못에서 그물로 잉어를 잡아 팔고 있었다.

 

 

 

 

 

 

 

 

 

 

 

 

 (사진) 덜발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걸었다. 여긴 지진 피해를 많이 받지 않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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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멜을 벗어나 아싼(Asan)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사는 냄새를 맡기엔 재래시장보다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쪽으로 가면서도 이번 지진으로 시장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으면 어쩌나 싶었다. 예상대로 시장 규모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상인 숫자도 많이 줄었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의 활력은 여전했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물건값을 두고 흥정하는 소리로 시끄럽기까지 했다. 예기치 못한 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라 해도 어차피 산 사람은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런 민초들의 치열한 삶이 시장엔 있었다.

 

길거리 좌판에 몇 가지 물건을 올려놓곤 마냥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많았다. 야채 몇 단이 전부인 상인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만한 이이들 넷이 꽃송이 몇 개를 올려놓곤 매대를 차렸다.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들 표정은 진지했다. 누가 저것을 사러 올까 궁금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차분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론 두세 평에 불과한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판매하는 품목도 노점상보단 다양했다. 약재가게를 비롯해 생선가게, 야채가게, 튀김가게, 옷가게도 있었고 고기를 썰고 있는 푸줏간도 있었다. 두 팔이 잘린 마네킹이 쓰레기로 버려진 장면을 보곤 절로 미소가 나왔다. 네팔을 찾을 당시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사진)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에 여념이 없는 시장 상인들. 꼬마 상인들의 심각한 표정이 재미있었다.

 

 

 

 

 

 

(사진) 가게를 가지고 있는 상인들은 노점상에 비해선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진) 한가로운 릭샤꾼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쓰레기장에는 팔이 잘린 마네킹이 버려져 있었다.

 

 

(사진) 어둠이 내려 앉아도 가게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사진) 최근에 문을 열었다는 한식당 궁.

식당도 깨끗하고 음식도 정갈했지만 음식값이 다른 식당에 비해선 좀 비싸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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