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시티를 출발해 몬트리올 남쪽 세인트 로렌스 강 건너편에 위치한 카나웨이크(Kahnawake)의 카톨릭 성당을 찾았다. 원주민 부족이 거주하는 마을이지만, 여기에 북미 원주민 출신의 카톨릭 성녀 카테리 테카퀴타(Kateri Tekakwitha)가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지난 번에 다녀간 적이 있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일행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모호크의 백합이라 불렸던 카테리 성녀는 1656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나 1680년 선종을 했다. 1676년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에 부족의 협박을 피해 몬트리올 인근에 있는 카톨릭 원주민 마을인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봉헌해 혹독한 고행을 하다가 건강을 해쳐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1980년에 시복된 후 2012년에 시성되었다. 북미 원주민으로서는 최초로 성인이 탄생한 것이다.

 

오타와로 올라가며 리고(Rigaud)에 있는 명소를 한 곳 방문했다. 슈크르리 드 라 몽타뉴(Sucrerie de la Montagne)라는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를 들른 것이다. 퀘벡에선 꽤 이름난 곳이었다.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농가는 대개 당단풍나무가 많은 숲에 위치하기 때문에 슈가쉑(Sugarshack)이라고 불린다. 50 헥터에 이르는 숲 속에 허름한 건물 20여 채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자연을 해친다는 느낌은 없었다. 슈가 메이플(Sugar Maple)이라 부르는 당단풍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한 후 열로 수액을 졸여서 메이플 시럽을 만든다. 원주민들이 만들던 방식대로 유럽 정착민들이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 특산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중에서 퀘벡이 가장 많이 생산한다. 수액을 졸이는 시설과 5백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는 식당을 둘러 보았다.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린 팬케익을 맛보고 싶었으나 주방이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그냥 돌아서야 했다.

 

오타와에서 강 하나 건너면 되는 이웃도시, 가티노(Gatineau)로 돌아왔다. 딸아이가 다음 날 수업이 있어 거처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딸아이와는 여기서 작별을 했다. 가티노를 떠나기 앞서 자크 카르티에 공원(Parc Jacques Cartier)을 좀 거닐었다. 넓게 조성된 푸른 잔디밭 위에선 캐나다 구스와 청설모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여긴 오타와 강가를 따라 산책하기가 아주 좋았다. 강을 가로지르는 알렌산드라 브리지(Alexandra Bridge)1901년에 완공된 다리라 하는데, 그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빤히 보였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퀘벡이고, 강 건너 오타와는 온타리오에 속한 땅이니 이 강이 주 경계선인 것이다. 이제 곧 저 다리를 건너면 퀘벡과는 작별이다.


 



카나웨이크 원주민 마을에 있는 카톨릭 성당은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뭔가 숙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성당 한 귀퉁이에 카테리 테카퀴타 성녀의 무덤과 걸개 그림이 있었다.



기념품 판매점 옆에는 조그만 전시실을 마련해 놓고 몇 가지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숲 속에 자리잡은 슈가쉑은 눈으로 보기에도 시원해 보였다.






외관은 허름해 보였지만 실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시설도 둘러보았다.



오타와 강가에 위치한 자크 카르티에 공원은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오타와 강 너머로 국회의사당과 알렌산드라 브리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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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1.22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캐나다 역사 인물, 관광 명소, 특산품 등 아주 알찬 내용들로 가득차있네요!

 

인스턴트 미역국에 가는 면을 넣어 따끈한 수프를 끓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사치스럽단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보단 속이 든든했고 돈도 적게 들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산티아고 성당 앞을 지나는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어놓은 것이 아닌가.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제단 장식이 다른 성당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 제단에 있는 산티아고 상은 그렇다 쳐도 그 아래에 대문 모양의 장식은 무엇이고, 왼쪽 제단에 있는 저 신기한 문양은 또 뭐란 말인가. 외계인이 만든 디자인이 이럴까 싶었다.

 

로그로뇨는 대도시답게 도심을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외곽에 있는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동녘에서 해가 떠오른다. 붉은 햇살이 공장 건물을 비추는 가운데 서서히 도시를 벗어났다. 커다란 저수지를 만났고 거기서 먹이를 찾아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나온 청설모와 인사를 나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 순례길 주변엔 온통 포도밭 천지였다. 와인 산지에 들어섰음을 진즉에 알 수 있었다. 고가다리를 건너 나바레테(Navarrete)에 닿았다. 고대부터 도기를 만든 도시답게 아순시온(Asuncion) 성당 옆에는 도공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성당에서 11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성당 안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화려한 제단 장식이 먼저 눈에 띄었다.

 

벤토사(Ventosa)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페에 들러 보카딜료스(Bocadillos)를 시켰는데 엄청 큰 바게트 안에 하몽과 치즈가 들어 있었다. 너무 뻑뻑해 맥주가 없었더라면 먹는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포도밭은 계속되었다. 수확이 끝난 곳도 있었고 아직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곳도 있었다. 와인을 담그려면 이미 수확을 마쳤어야 할텐데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여기서 아이스 와인을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배고픈 순례자들이 포도밭에 손을 대는 것 같았다. 내 앞을 걷던 부부도 수시로 포도밭을 드나들었고, 어떤 사람은 비닐 봉지에 한 가득 포도를 따서는 손에 들고 가기도 했다. 달콤한 포도 과즙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였지만 주인 허락이 없는 이상 포도밭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후라 그런지 몸이 나른했다. 나헤라(Najera)까지 기껏 10km 남짓한 거린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햇볕은 따가운데 바람은 의외로 차다. 하루 종일 자켓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나헤라로 내려서기 전에 멀리 데만다(Demanda)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해발 2,262m의 산 로렌쏘(San Lorenzo)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헤라는 꽤 현대화된 도시로 보였다. 산 밀란(San Millan)에 있는 수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있나 알아봤지만 버스편은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로 다녀오기엔 부담이 컸다. 나헤라에서 하룻밤 묵을 계획을 바꿔 좀더 가기로 했다.

 

나헤리야(Najerilla) 강을 건너 절벽 아래 있는 마을로 향했다. 고풍스런 골목을 지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에 도착했다. 4유로의 입장료를 받는 것까진 좋은데 여기도 시에스타를 하는지 오후 4시에 다시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다. 절벽에 있는 동굴과 연결된 수도원은 가르시아 3세를 비롯한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했지만 오후 4시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거기서 6km를 더 가면 나온다는 아쏘프라(Azofra)까지도 꽤나 지루하게 걸었다. 오후 5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아쏘프라에 들어섰다.

 

아쏘프라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알베르게는 아주 훌륭했다. 2인실로 되어 있는 방도 좋았고, 깨끗한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스페인 친구 호르헤(Jorge)와 인사를 나눴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침낭 안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와인을 반주 삼아 밥과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당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부가 모두 대전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큰 마음 먹고 휴가를 맞춰 함께 순례를 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병원을 하는 친구 이름을 댔더니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세상 참 좁다 했다. 셋이 와인을 나눠 마시다가 식당으로 나온 호르헤와 일본인 요코까지 가세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로그로뇨의 산티아고 성당이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로그로뇨 외곽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수지 주변의 나무숲으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바레테로 들어섰다.

 

나바레테 초입에서 만난 돈 하코보(Don Jacobo) 와이너리 광고판에 산티아고가 576km 남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바레테의 아순시온 성당. 제단 장식이 아주 훌륭했다.

 

 

나바레테를 벗어난 곳에 세워진 공동묘지.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문은 나바레테 초입에 있던 순례자 병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벤토사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벤토사를 빠져나오는데 순례자 석상을 올려놓은 특이한 이정표를 만났다.

 

지자체마다 이정표 관리가 제멋대로라 이정표 상의 거리 표시 또한 혼란스러웠다. 나바레테를 들어서면서 산티아고가

576km가 남았다는 표식을 보았는데 10km를 더 걸은 지점에서 이번엔 592km 남았다는 표식이 나왔다.

 

 

포도밭이 연이어 나타났고 가끔은 와이너리도 보였다.

 

포요 데 롤단(Poyo de Roldan)은 롤랑이 던진 돌이란 의미다.

이 지역에 살던 골리앗의 후손 페라구트(Ferragut)를 물리치기 위해 샤를마뉴 대제가 기사들을 보냈지만

번번히 실패한 끝에 롤랑(Roland)을 보내 페라구트를 죽였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나헤리야 강을 건너 절벽 아래에 형성된 나헤라 구시가로 들어섰다.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은 문을 닫아 바깥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포도밭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쏘프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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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6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독일 지나는데 포도밭이 노랗게 물들었더니,,, 가을입니다
    여긴 첫눈이 폭설로 왔습니다
    엄지발그락 저녁에 많이 주물르면 피로회복이 빠릅니다
    할 수 있으면 물 따끈하게 데워서 복숭아뼈까기 채우고 알콜 조금 넣고 족탕?
    건승을 빕니다

    • 보리올 2015.11.26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 오늘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접했습니다. 폭설이 아니길 빕니다. 오래 걸은 발의 피로를 푸는 쉬운 요법이 있었군요. 다음에 꼭 시도를 해봐야겠네요.

  2. 스페니 2015.11.27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기다리며 잘 읽고있습니다
    여러분야에 해박하신것같아 부럽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블로그를 찾아와 주시기만 해도 고마운데 말입니다. 해박한 것은 아니고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3. Justin 2015.12.31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인에도 큰 산들이 많은가봅니다. 유럽에 알프스산맥 빼고는 아는 산들이 거의 전무해서 스페인에 그런 큰 산들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 보리올 2015.12.31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 산맥엔 제법 높은 산이 많지. 최고봉은 3,400m가 넘고.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내가 걸은 프랑스 길은 산을 세 개 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1,500m 정도 되더구나.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