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간다키 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1.16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 <12>
  2. 2013.01.06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 <2>

 

또 다시 새벽 5시 기상, 6시 공항 집결.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없었다. 이런 날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우리 일행을 두 개 비행기로 나누더니 먼저 출발하는 1진은 보딩 패스를 받고 청사로 들어갔다. 우린 그 사이에 건너편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왔더니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1진이 먼저 비행기에 탑승해 포카라로 떠났다.   

 

2진도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조그만 소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카트만두로 가져가겠다고 했던 쓰레기가 중량 초과로 거부된 것이다. 몇 차례 설득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어렵게 가지고 온 쓰레기를 좀솜에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쓰레기를 직접 보고 싶어 했던 네팔 언론의 기자들이 많았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칼리간다키 강 주변의 평화로운 정경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깊은 히말라야 산 속까지 굽이굽이 좁은 길들이 이어져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산기슭을 깎아 계단식 논과 밭을 만들었다. 하늘과 맞닿은 이 높은 고지까지 한 뼘 땅을 일군 이네들의 고단함을 누가 알겠는가? 하늘에서 보는 그 굴곡의 현란함이 오히려 가슴 아프기만 하다.

 

포카라 공항에서 또 하나의 해프닝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을 다시 두 개 비행기로 나눈 항공사에서 보딩 패스를 발급 받았다. 6명인가는 1진으로 먼저 출발을 했다. 근데 우리가 탈 비행기는 출발 시각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대행사 장정모 사장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알아본 바로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오던 비행기가 다른 곳으로 항로를 바꿔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람? 그럼 우리는 언제 가는데? 아무도 모른단다.

 

, 저는 여기서 여행사를 하는 사람이라 눈치가 보여 그러니 형이 대신 카운터에 가서 큰 소리를 쳐주면 안 되겠습니까?” 장 사장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 왜 하필이면 나야? 속으로 툴툴 거리며 덩치 좋은 후배 둘을 좌우에 거느리고 카운터에 가서 다짜고짜 탁자를 치며 매니저를 불렀다. 의도적으로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큰 소리를 냈다. 얼굴이 파래져 매니저가 나왔다. 그는 우리를 2층 라운지로 데려가 과자 몇 개와 음료수를 주며 우리를 달랜다. 빨리 비행기를 부르겠단 약속을 받고 라운지에서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카트만두에 도착해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트레킹 요약>

2005925일부터 10 6일까지 펼친 안나푸르나 클린 원정대의 기록이다. 이 일정은 카트만두를 출발해 카드만두에 도착한 날까지만이다. 난 개별적으로 카트만두에서 합류를 했기 때문에 본대와는 달리 이동을 하였다. 산악인 한왕용 대장이 펼치는 <클린 마운틴 캠페인>의 일환으로 참가한 이 활동에 대해선 <월간 山> 2005. 11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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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플량에서 레테까지 이틀 구간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에 속해 있기 때문에 길도 넓직하고 숙박시설도 꽤 좋은 편이다. 칼리간다키(Kaligandaki) 강을 따라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천천히 걸어 오른다. 전형적인 네팔 산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이 길은 옛날부터 티벳과 네팔을 오가며 장사하던 상인들이 다니던 길이라 오늘도 여전히 등짐을 진 말떼와 몰이꾼이 지나간다. 말똥을 피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지만 말똥 냄새를 피할 방법은 없다.

 

말떼와 몰이꾼들의 쇳소리에 더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들, ‘나마스떼를 외치며 손을 벌리는 개구쟁이들까지 모두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들이다. 고소 적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모두가 마음 편하게 이 풍경을 즐기진 못한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들이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은 법. 그러나 여기서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은 없다. 일단은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서 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티플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앞에 마오이스트 한 명이 나타났다. 소총 대신 영수증 철을 들고 통행료를 요구한다. 네팔 반군들과 정부군 사이에 수시로 교전이 벌어진다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행료만 제대로 내면 반군들이 외국인 트레커를 노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통행료 수입이 그들 자금줄에 큰 몫을 차지한다는 반증이리라. 한 대장이 겁도 없이 통행료가 비싸다며 협상에 들어가 일인당 10달러 선으로 합의를 보았다.

 

타토파니(Tatopani)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얀은 우리 걱정과는 달리 수제비도 맛있게 먹는다. 타토파니는 뜨거운 물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고소 적응을 걱정할 높이는 아닌지라 일부는 온천욕을 하러 갔다. 실외에 크지 않은 노천탕이 있었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허름한 시설도 있었는데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3시 조금 넘어 다나(Dana)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한 대장이 요리사 치링에게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치링은 작은 키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인데, 한국 음식은 꽤 잘 한다. 치링이 만든 음식치고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먼 고지로 닭을 팔러 가던 닭장수가 졸지에 홍재를 했다. 한 마리에 300루피씩 열 마리를 졸지에 팔게 되었으니 말이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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