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역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8.29 [노바 스코샤] 소도시 탐방 ③ (2)
  2. 2020.07.09 [노바 스코샤] 아카디아 마을 순례 ① (2)

 

핼리팩스(Halifax)에서 야머스(Yarmouth)까지 노바 스코샤의 남해안을 따라 굽이치는 585km 시닉 드라이브 코스를 등대 루트(Lighthouse Route)라 부른다. 여러 개의 도로를 연결했지만 가장 주된 도로는 3번 도로(Trunk 3)라 보면 된다. 등대 루트 끝자락에 있는 배링턴(Barrington)에 닿았다. 꽤 넓은 지역에 어촌 마을 몇 개가 들어서 있는 도시로 인구는 7,000명이나 되어 규모가 제법 컸다. 해안선이 복잡해 바다가 무시로 육지를 드나든다. 이 지역에서 랍스터가 많이 잡히는지 그들 스스로 배링턴을 캐나다 랍스터 수도(Lobster Capital of Canada)라 부른다.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랍스터가 정말 많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마을을 벗어난 바닷가에 하얀 몸통과 빨간 지붕을 한 등대 하나가 홀로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야머스(Yarmouth)를 들르지 않고 케이프 포추 등대(Cape Forchu Lightstation)로 바로 갔다. 304번 도로를 타고 끝까지 가면 된다. 노바 스코샤에선 페기스 코브 등대(Peggy’s Cove Lighthouse)와 더불어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특히 등대 사진 촬영지로 알려져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다. 바닷가 바위 위에 가늘고 길게 솟은 등대는 다른 지역의 등대와는 그 형태가 사뭇 다르다. 케이프 포추 등대는 1840년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지만, 원래 등대는 1961년 허물고 1962년에 이 등대를 새로 세웠다고 한다. 야머스로 돌아오면서 작은 어촌 마을인 야머스 바(Yarmouth Bar)를 잠시 들렀다. 크지 않은 어항엔 어선 몇 척과 랍스터 통발이 쌓여 있었다.

 

야머스는 1604년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다녀간 역사적 도시다. 샹플렝은 캐나다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캐나다를 초기에 탐사한 사람으로 유럽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이프 포추도 그가 지은 이름이다. 야머스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엔 프랑스계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1759년 매사추세츠의 야머스에서 로얄리스트(Loyalist)들이 건너와 1761년에 도시를 설립했다. 2011년에 도시 설립 250주년을 맞이했으니 캐나다에선 역사가 꽤 긴 편이다. 야머스란 이름도 그들이 살던 매사추세츠에서 가져왔다. 아카디아인과 로얄리스트가 섞여 살게 된 것이다. 인구는 6,700명으로 노바 스코샤에선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니다. 한때는 미국 메인 주로 연결되는 페리가 있었으나 이용객이 적어 운항이 중지되었다. 도심으로 들어가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오래된 건물들을 구경하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겼다.

 

 

노바 스코샤 등대 루트를 달리다 보면 아직도 바닷가엔 많은 등대가 남아 바다를 지키고 있다.

 

 

 

 

 

랍스터가 많이 잡히는 배링턴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인구는 꽤 많은 편이었다.

 

 

 

 

특이한 형상을 지닌 등대로 유명한 케이프 포추는 페기스 코브와 더불어 노바 스코샤 등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야머스와 케이프 포추 사이에 있는 야머스 바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야머스는 프랑스계 아카디아인과 미국에서 건너온 로얄리스트가 공존하며 살아온 도시였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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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29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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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스코샤를 여행하다 보면 아카디아(Acadia)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캐나다 역사에서도 꽤 의미 있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울프빌(Wolfeville)엔 아카디아 대학교도 있다. 북미로 진출한 프랑스는 세인트 로렌스 강 유역의 퀘벡과 뉴 브런스윅, 노바 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뉴 펀들랜드 등에 프랑스 정착촌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 때문에 북미 북동부의 옛 프랑스 식민지를 흔히 뉴 프랑스(New France)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카디아란 용어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 노바 스코샤 본토뿐만 아니라 당시 로얄 섬이라 불리던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에도 아카디아인들이 제법 많았다. 아카디아에 거주하던 프랑스계가 75,000명이었다니 당시 인구론 그리 작은 숫자가 아니다. 북미 동부 지역을 차지했던 영국은 점차 프랑스와 세력다툼이 격화되면서 7년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여기서 승리한 영국은 북미에서 프랑스를 압도하며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게 된 것이다.

 

노바 스코샤 바닷가에 정착해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잇던 아카디아인은 7년 전쟁의 와중에 영국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다. 영국은 1755년 아카디아인에게 영국에 충성할 것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아카디아인 16,000명을 강제 추방(Great Expulsion) 시킨 것이다. 미국 루이지애나로 옮겨간 대부분의 사람들 외에도 아카디아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프랑스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7년 전쟁이 끝난 1763년 이후 추방지에서 다시 아카디아로 꽤 많은 사람이 돌아왔다. 아직도 영국계 이웃과 친하지 않은 까닭이다. 아카디아인은 주로 대구를 잡아 가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늪지를 개간하고 수로, 즉 다이크(Dyke)를 만들어 안정적인 농지를 확보해 삶을 영위했다. 노바 스코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의 정착촌을 둘러보고, 그들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아카디아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순례에 나섰다.

 

먼저 노바 스코샤 북서부 아나폴리스 카운티(Annapolis County)에 있는 포트 로얄(Port Royal)부터 찾았다. 포트 로얄은 예전에 프랑스식 농장 형태로 지었던 정착촌을 고증에 의해 복원한 캐나다 역사 유적지다. 프랑스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정착촌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진 않는다. 역사가 길지 않은 캐나다에서 16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정착촌이라면 상당한 역사를 지닌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로 건너온 초기 인물로는 프랑스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와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유명하다. 카르티에는 1534년 처음으로 캐나다에 도착했고, 샹플렝은 1603년에 도착했다. 이 포트 로얄은 샹플렝이 1605년에 모피 교역을 위한 정착촌으로 세운 곳이다. 플로리다 이북의 북미 지역에 최초로 생긴 유럽 정착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착은 순조롭지 못 했다. 그 뒤 샹플렝은 퀘벡에 정착촌을 세우고 그것이 뉴 프랑스란 식민지로 발전해 가면서 그는 1612년 뉴 프랑스의 수반이 되었다.

 

1613년 버지니아의 영국인들에 의해 포트 로얄이 파괴된 후, 거기서 8km 떨어진 곳에 다시 정착촌을 세웠지만 이 역시 1710년 영국군에 점령당하면서 아나폴리스 로얄(Annapolis Royal)이란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 역시 한때는 노바 스코샤의 주도 역할을 했지만, 1749년 그 역할이 핼리팩스(Halifax)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여기에 사는 주민은 5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로 화가나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이제는 어엿한 문화도시로 탈바꿈을 하였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도시 다섯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골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저기 세월을 머금은 건축물이나 가옥이 눈에 띄고 예술촌답게 마을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꾸며 놓아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통나무를 사용해 옛 농장 형태로 지어 놓은 포트 로얄 정착촌은 한 눈에도 고풍스럽게 보였다.

 

마당 한 가운데에선 해설사가 목재를 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생활상을 설명한다.

 

 

 

정착 초기에 사용하던 집기 비품이나 그 당시 식탁을 세팅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벽면에 걸어 보관 중인 말린 풀과 동물 모피

 

 

 

 

 

아나폴리스 로얄은 예술촌답게 고풍스러운 건물을 지니고 있었고 마을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여름철이면 주민을 위한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린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에 세워진 정착촌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포트 앤(Fort Anne)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0년 캐나다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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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휘게라이프 Gwho 2020.07.09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가요오! :-)
    오랜만에 출첵할겸 글 잘보고가요~ ㅎㅎ
    날씨가 급 덥덥인 오늘이네요 T T ..
    에어컨 선풍기 빵빵! 시원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