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여기서 멀지 않은 거제도였다. 그 덕분에 이런저런 이유로 통영을 자주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통영이란 이름 대신 충무라 불렸다. 그 이름에서 나온 것이 바로 충무김밥 아니던가. 그 당시와 비교하면 통영은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하지만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대도시에 비하면 아직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동피랑 마을은 처음 가는 것이다. 예전엔 그런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최근에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예전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이 있다고 해서 내 관심을 확 잡아 끈 것이다. 통영을 지나다 자연스레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동피랑이란 말은 동쪽에 있는 비탈이란 의미다. 원래 이 산비탈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다. 통영시에선 여기 자리잡은 낡은 마을을 철거해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2007년 한 시민단체에서 이 마을을 보전하기 위해 동피랑 색칠하기캠페인을 벌였다. 벽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19개 미대팀이 이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린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통영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동피랑 마을의 변신이 성공하자, 그 반대편에 있는 서피랑 마을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오후에 누굴 만나기로 되어 있어 거기까지 들르지는 못했다.

 

통영 강구항에서 제법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야 동피랑 마을의 언덕배기로 오른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이 집과 집을 연결하며 마을을 에둘러 간다. 골목마다 담장과 집 벽면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캐나다에도 이렇게 마을 건물에 벽화을 그려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마을에 활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모든 것을 깔아뭉개고 그 위에 회색빛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에서 벗어났다는 것만 해도 난 좋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가 궁금했다. 가게야 손님들이 늘어나 수지를 보겠지만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주민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이 몹시 귀찮을텐데 말이다.

 

낡고 퇴락한 마을에 알록달록한 새옷을 입혀 마을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벽에 그린 그림은 아이들 취향에 맞춘 것인지 좀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더 스케일이 큰 대작을 그려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영이나 충무공과 같은 이 지역의 자랑스런 역사를 그림에 담아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만화나 동화에서 따온 그림으로 가볍게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솔직히 나에겐 그림의 내용보다 이런 생동감 넘치는 골목길이 살아있다는 자체가 더 큰 기쁨이었다. 특히, 빨강, 파랑의 대조적인 색깔을 칠한 두 집 지붕이 골목을 반으로 나누는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동피랑 마을이 규모가 좀 더 컸더라면 우리 나라에도 외국에 자랑할만한 크레파스 마을이 하나 생기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강구항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꼭대기에 닿았다. 앙증맞은 카페 몇 군데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몽마르다 언덕이란 표현도, 스타벅스 로고를 본따 만든 굿럭 커피 로고도 마음에 들었다. 옛 마을을 잘 가꾸면 이렇게 멋진 마음의 고향을 얻는데, 우린 그 동안 옛것이라면 모두 때려부수는 재개발에 너무 심취해 있었다. 재개발이 좀더 신중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피랑 마을이 획일적인 재개발을 막고 새로운 공존 전략을 모색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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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12.0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영이라고 불러야 하는데요~~ㅎㅎㅎ

  2. 보리올 2013.12.07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지인들은 토영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토영이야~길도 있다 하더군요. 근데 저한테는 충무란 지명이 더 친숙합니다.

 

골목길 탐방이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부실한 아침에 배도 고프고 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달고(Hidalgo) 시장부터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안에 있는 먹자 골목에 대해선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 흘렀다.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들은 예외없이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오늘이 무슨 축제일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갑갑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을 구해 본격적으로 과나후아토 구경에 나섰다. 우선 눈에 보이는 성당이란 성당은 모두 들어가 보았다. 카톨릭 국가답게 성당의 문턱이 높지 않아 좋았다. 유럽에서 보았던 성당보다 화려하다 말하긴 어려웠지만 멕시코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노랗게 칠을 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그래도 볼만 했다. 여기에 안치된 성모상은 155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은을 생산해 공급해준 보답으로 과나후아토에 선물한 것이란다.

 

 

 

 

지도에 적힌 번호를 따라 관광지를 두루 돌아 보았다. 많은 길거리 동상과 조각품, 광장을 지나쳤다. 돈키호테 동상 외에는 딱히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났다는 박물관(Casa Diego Rivera)은 꼭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발길 닿는대로 후아레스 극장(Thatro Juarez)과 우니온 정원(Jardin de la Union)도 지났다. 시민과 관광객이 엉켜 한가롭게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라 파스 광장(Plaza de la Paz)은 시내 중심에 있다 보니 몇 번을 지나친다.

 

 

 

 

 

 

 

과나후아토 대학(Universidad de Guanajuato) 앞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침에 길을 잘못 들어 이미 지나갔던 곳이 아닌가. 아침에 본 것은 새벽 시장이 아니라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길가에 상인들이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곳도 많았다.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는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에는 신에게 바칠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계란을 넣어 오기도 했다. 성당 안으로 향하는 인파를 따라 갔다. 줄이 너무 길고 사람이 많아 한 발짝 앞으로 가는데 몇 분이 걸렸다. 순례에 동참해 성당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과나후아토에서 키스의 골목은 꼭 보라 했건만 난 그리 흥미가 없었다. 가난한 젊은 광부와 딸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연인들은 빨간 칠을 한 세 번째 계단에서 키스를 하지 않으면 불행한 일을 당한다고 한다. 오후 3시가 넘자 시내 구경을 서둘러 마감했다. 멕시코 시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터미널 가는 낡은 버스를 탔다. 요금은 5페소. 여기선 보안 검색을 하지 않는다. 5시간을 달려 멕시코 시티에 닿았다. 소칼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미고(Amigo)란 호스텔에 묵었다. 3인실을 이용했는데 하룻밤에 1인당 210페소를 주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이 가격에 아침, 저녁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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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3.08.03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베니스의 부라노섬이 연상되는 마을이에요! 형형색색 칼라풀한 집들이 시선을 확 끄는군요!!!!!! 오늘 밤 베니스에서의 여정을 추억하며 잠들어야 할 듯 해요..

  2. 보리올 2013.08.03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니스는 몇 번 다녀왔지만 부라노 섬은 갔던 기억이 없구나. 예전에 베니스 앞바다의 무슨 유리 공예품 만드는 섬에 갔었는데 거기가 부라노 섬인가???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아주 특이한 풍경만을 모아 놓은 웹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을 지니고 있는 도시 열 곳을 선정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멕시코의 과나후아토(Guanajuato)였다. 알록달록 크레파스로 칠한 듯한 마을 사진을 보고 여기는 꼭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멕시코 시티를 가는 김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과나후아토였다. 행여 시간이 부족하면 다른 곳은 생략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시티에서 북서쪽으로 420km 떨어져 있다. 해발 2,000m 높이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이다. 1548년에 설립되었다니 역사는 꽤 깊은 편이다. 이 도시는 한때 전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생산할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그 이야긴 광산에 일할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고,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가파른 산자락에 빼곡하게 집을 지었다는 말이 아닌가. 산자락에 겹겹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아름다운 집들이 자리잡고, 그 사이를 아기자기한 골목이 산 날망까지 이어진다. 첫눈에 이런 별세계가 아직도 있나 싶었다. 그런 까닭에 이 과나후아토는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으리라.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날은 밝았지만 아직 가로등은 꺼지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 성당을 기점으로 삼았다. 가장 먼저 피필라 기념탑(Monumento a del Pipila) 올라 일출을 보고 싶었다. 분명 동상 위치를 파악했고 그 방향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올랐건만 엉뚱하게도 그 반대편 기슭으로 올랐다. 거긴 새벽 시장이 들어선 것인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성당으로 돌아와 다시 방향을 잡고는 30여분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궤도열차가 운행을 한다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이용할 수는 없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오르다 다리가 팍팍해질 무렵, 기념탑이 있는 전망대에 닿았다. 해는 이미 산등성이로 떠오르고 말았다.

 

 

 

 

피필라 기념탑은 과나후아토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멕시코 독립 전쟁 당시에 햇불을 등에 지고 용감하게 선봉에 서서 요새를 향해 돌격했던 광부 피필라의 모습을 26m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높이 26m라지만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어 밑에서 보면 굉장히 높아 보인다. 마침 아침 햇살을 받아 동상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동상을 보기 위해 여기를 찾는다기보다는 과나후아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 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한 쌍의 일본 젊은이만 보였을 뿐 개미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한참을 계단에 앉아 우두커니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저 앞에 펼쳐진 마을 풍경이 정녕 과나후아토란 말인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화려한 색깔을 택했을까? 이들 유전자에는 이렇게 요란한 색채감을 수용할 수 있는 감성이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난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요즘에는 건물 외관을 다채로운 색깔로 유지하기 위해 시에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주민이 색깔을 정하면 시에서 무료도 칠을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골목을 누비며 산자락을 걸어 내려왔다. 지하 차도부터 먼저 찾았다. 예전에는 수로로 쓰였던 것이 지금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되었다. 그 덕분에 지상에 있는 건축물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지하 차도에서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젠 본격적으로 골목길 탐방을 나설 차례다. 난 원래 이런 골목길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특이 체질이다. 화려한 색상만 뺀다면 우리나라 골목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실제로도 우리나라 골목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중세 시대의 골목길을 아직까지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과나후아토가 점점 좋아졌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투박한 질감의 벽돌이나 시멘트 위에 이렇게 과감한 원색을 쓰다니 그들의 미적 감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크레파스 마을이란 표현이 정말 잘 어울렸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마냥 행복감에 젖어 있었는데, 그것을 깨운 것은 사나운 강아지 한 마리.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내가 수상했던지 열심히 짖으며 쫓아오는데 이 녀석 정말 막무가내였다. 그 소리에 놀라 장닭 한 마리도 덩달아 울어댄다. 이제 그만 도심으로 내려가라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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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8.02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화에 나옴직한 마을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셨군요...(성당 지붕울 교회 십자가로 바꾼다면) 부산 초량 산복도로 주변 마을의 풍경이 비슷한데요...과나후아토를 모델로 삼았는지 최근에 컬러풀한 페인트를 칠했더군요... (사진에서 보았읍니다)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고 맑은 날엔 오륙도가 보이는 초량 경치도 근사합니다.....^*^

  2. 보리올 2013.08.02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 자갈치 시장은 종종 가는 편이었지만 초량 산복도로쪽은 거의 간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부산 가게 되면 일부러라도 한 번 들러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