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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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

 

알베르게에서 2.50유로를 주고 아침을 먹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테이블에 차려놓은 음식이 형편 없었다. 가게에서 파는 조그만 빵 두 개에 주스팩 하나, 그리고 식은 커피 한잔이 전부였는데 성의가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을 먹자마자 바로 배고프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어둠이 깔린 순례길로 먼저 나섰다. 도랑을 사이에 두고 도로와 평행하게 순례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쭉 뻗은 길엔 커브도 거의 없었다. 30여 분을 걸으니 사위가 밝아왔다. 하늘을 가린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올라 시시한 일출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바람은 의외로 강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저절로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던 포브라시온(Poblacion)을 지나 비야르멘테로(Villarmentero)도 지났다. 마땅히 구경할 것이 없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는데도 마을엔 사람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내가 부지런한 것인지, 여기 사람들이 게으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비얄카싸르(Villalcazar)에는 블랑카 성모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당이 있었다. 장님 순례자의 눈을 뜨게 하고 이탈리아 순례자를 바다 폭풍에서 구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Santa Maria de Blanca) 성당으로 들어갔다. 제단 장식 한 가운데 블랑카 성모가 모셔져 있었고 그 옆 예배당에는 산티아고, 즉 성 야고보의 일생을 그려놓은 제단 장식도 있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다. 중세부터 번성했던 도시로 팔렌시아(Palencia)에선 꽤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의 중간에 위치한 까닭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산타 클라라(Santa Clara) 수도원은 알베르게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켠에 성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수녀님 한 분이 기도를 하고 있어 바로 나왔다. 도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도 들어가 보았다. 카리온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에서 발견한 문어 요리, 즉 풀포(Pulpo)와 와인 한 잔을 시켰다. 문어 요리에서 회색 머리카락이 두 개나 나와 주인을 불렀더니 그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문어를 솔로 수선하는 과정에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여기 사람들은 음식에서 그런 것이 나와도 개의치 않는지 좀 궁금해졌다.

 

카리온을 벗어나 일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올라섰다. 갓길도 없는 아스팔트를 4km 넘게 걸어야 했다. 지나는 차량이 많진 않았으나 차가 오면 한 옆으로 내려서 길을 비켜줘야 했다. 오전에 걸은 거리가 20km고 오후에 16km를 더 걷는데 오늘따라 오후 시간이 무척 지루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변화도 없는 심심한 풍경에 카메라를 꺼낼 일도 없었다. 산행을 하면서 종종 써먹었던 발걸음 세기를 여기서도 해보기로 했다. 1km 간격으로 있는 표지판 하나를 지나는데 몇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1km1,230 걸음이 나왔다. 덕분에 지루한 구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지나쳤다.

 

거센 바람이 구름까지 몰고 가 오후엔 푸른 하늘이 많이 보였다. 그늘조차 없는 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자전거 세 대가 추월해 가더니 바로 뒤이어 모터바이크 세 대가 나를 앞질러간다. 여기 사람들은 모터바이크로도 순례를 하나 싶었다. 평편한 길이 갑자기 푹 꺼지는 내리막에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Calzadilla de la Cueza)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전에는 마을의 존재를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마을 초입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사립 알베르게에서 어서 오라 인사를 건넸지만 그 옆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들었다. 부엌이 없는 것을 빼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저녁으로 순례자 메뉴를 시켰더니 오후 7시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바에 준비된 토르티야 등으로 대충 때웠다. 시골 식당이라 그런지 파리가 엄청 많았다. 음식에 앉으려는 파리에게 연신 손부채를 날려야 했는데, 손님 어느 누구도 파리에 개의치 않는 게 너무 신기했다.

 

 

강풍을 타고 구름이 요동치는 가운데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P-980 도로 옆으로 순례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쭉 뻗은 길에는 햇볕을 피할 그늘도 없었다.

 

 

순례자 벽화를 그려놓은 레벤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마을를 지났다.

 

어느 과수원의 죽은 나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조가비 표식을 달아 놓았다.

 

비야르멘테로에 있는 산 마틴 성당의 붉은 지붕이 푸른 하늘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비얄카싸르의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은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킨 블랑카 성모를 모시고 있었다.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 앞 광장에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풍경을 지닌 메세타 특유의 드넓은 평원을 하루 종일 걸어야 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들어섰다.

모자이크를 설치한 건물 벽면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집어 넣은 문패가 눈에 띄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초입에서 만난 산타 클라라 수도원은 현재 알베르게로 쓰이고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도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있는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맛보았다.

 

 

중세 시대엔 순례자에게 빵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는 산 쏘일로(San Zoilo) 수도원은 호텔로 변해 있었다.

그 앞에는 스페인 자치주의 문장을 새긴 표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심심한 풍경 속에서 해바라기과 풀이 자라는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걷는데 자전거 순례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추월해 갔다.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에 도착해 순례자 메뉴 대신 저녁으로 먹은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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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eya 2015.12.03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자의 길 걸을 계획이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_+

    • 보리올 2015.12.03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소용이 되었으면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생 한번은 꼭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 잘 세우셔서 즐겁고 의미있는 순례가 되기를 빕니다.

  2. 2015.12.0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먹는 거라든가 잠자리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좀 불편해도 그것이 매력이죠. 저것이 호밀였나요? 전 몰랐습니다. 늦가을 들판엔 작물이 거의 없더군요. 목장 풍경은 좀 있으면 나올 겁니다.

  3. justin 2016.01.18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베르게에서 준비해주는 순례자 메뉴는 많이 다른가요? 가격은 더 저렴하지요? 걷다보면 배고파서 어떤 음식이라도 감사히 먹을것 같습니다. WCT 때 처럼요.

    • 보리올 2016.01.18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자 메뉴를 알베르게에서 준비하는 경우는 한 군데를 빼곤 없었다. 밖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취급하고 있지. 정상적인 메뉴에서 조금 싸게 내놓는 것 같더구나. 배고픈 탓도 있겠지만 스페인 음식은 대체적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