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리오 워털루(Waterloo)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메노나이트(Mennonite) 마을이 있다고 해서 세인트 제이콥스(St. Jacobs)로 방향을 틀었다. 오래 전부터 펜실바니아의 아미쉬(Amish)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어 그와 뿌리가 비슷한 메노나이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과는 좀 거리를 두고 생활하며 독특한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호기심도 일었다. 검정옷 차림의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우리가 찾아간 주말엔 그런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차 여행도 운행하지 않았고 파머스 마켓마저 열리지 않아 완벽하게 허탕을 치고 말았다. 대신 세인트 제이콥스 마을만 오르내리며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메노나이트 또는 아미쉬라 부르는 기독교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세례를 받던 구습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본인의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재세례파(Anabaptist)란 이름으로 불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카톨릭과 기독교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함에 따라 정부로부터도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런 박해와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스위스, 남부 독일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지만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다시 미국과 캐나다, 남미로 이동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선 매니토바와 사스캐춰원, 알버타 등지에 흩어져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곳 온타리오에 정착한 메노나이트는 본래 펜실바니아로 이주했다가 미국 독립에 불안을 느껴 온타리오 키치너(Kitchener) 주변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밴쿠버로 돌아가기 위해 본격적인 북상을 시작했다. 인구 16만 명의 서드베리(Sudbury)에 잠시 들렀다. 빅 니켈(Big Nickel)이란 서드베리 랜드마크를 보러온 것이다. 1951년에 나온 5센트짜리 동전을 9미터 크기로 재현한 것인데, 그다지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휴런 호수에 면한 스패니시(Spanish)에서 잠시 쉬었다.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이 왜 스패니시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수생마리를 지나 와와(Wawa)로 가는 길에 아가와 베이(Agawa Bay)에서 수페리어 호수를 만났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 비치로 걸어갔다. 오대호에서 가장 큰 수페리어 호수는 말 그대로 엄청 컸다.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바다를 보는 듯 했다. 바람은 차고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도 만만치 않았다. 방문자 센터나 캠핑장도 시즌이 끝나 황량함만 물씬 풍겼다.










온타리오 대표적인 메노나이트 마을인 세인트 제이콥스를 돌아보았다.

검정옷과 마차는 보지 못 했지만 크지 않은 마을은 나름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전으로 불리는 서드베리의 빅 니켈은 한때 이곳에서 호황을 누렸던 니켈 광산을 기념해 만들었다.




미국 땅에 살던 스페인어를 하는 여인이 붙잡혀와 오지브웨이(Ojibway) 부족 추장과 결혼해 생겨난 것이란 설이 유력한

스패니시 마을의 마리나를 찾았다.





아가와 베이는 수페리어 호수 주립공원(Lake Superior Provincial Park) 안에 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단풍으로 유명한 아가와 캐니언이 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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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11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노나이트 같은 마을이 지어진 나름 구구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네요~ 저는 재세례파 같은 방식이 더 이성적이고 타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7.12.12 0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털루에서 공부할 때 길거리에서 메노나이트를 만나지 않았나?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와 탄압을 받으며 떠돌던 사람들이라 안 되었기도 하더라.

 

호텔 방으로 전달된 청구서를 보고 눈이 동그레졌다. 전혀 발길도 하지 않은 레스토랑과 라운지에서 식사비와 술값으로 220불이 청구된 것이다. 프런트에 항의하니 금방 수정을 해준다. 누가 내 방 번호를 대고 먹은 것인지, 호텔의 단순 실수인지가 궁금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뒤에 이 220불이 내 카드에서 따로 결제된 것을 확인하고 호텔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실수를 인정하고 환불해 주겠다 한다. 며칠 뒤에 13불이 모자란 금액이 돌아왔다. 아마 그 사이에 발생한 환차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 따질까 하다가 전화비가 더 나올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저지 시티의 뉴포트에서 차량을 렌트했는데 거기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쇼핑몰 안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에서 수속을 마쳤다. 중국계 직원이 너무 불친절해 은근히 열을 받았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키를 주며 혼자 주차장에 가서 차를 끌고 가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차량 손상 등에 대한 쌍방 확인 절차도 없다. 근데 그 주차구역엔 차가 없었고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세차도 안 되어 있었다. 세차야 그렇다 쳐도 좌석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는 좀 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시동을 걸었더니 연료 게이지는 ¾ 지점을 가르키고 있었다. 직원을 호출해 계약서에 연료 75%라 적고 사인을 하라 했다. 이래저래 출발이 1시간이나 지연되었다. 와, 진짜 열받네!

 

저지 시티를 빠져 나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롱우드 가든. 산에서 인연을 맺은 젊은 가드너 한 명이 여기서 연수를 받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는 길이다. 이 친구완 캐나다 로키를 함께 걸었던 추억이 있다. 자연 사랑, 나무 사랑이 대단했고 산길에서 마주치는 나무나 야생화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앞으로 우리 나라 식물원을 이끌 장래가 촉망되는 가드너라 인상이 아주 깊었다. 그 친구를 만날 기대에 호텔과 렌트카 사무실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은 점차 잊혀졌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어 롱우드 가든 주차장에서 김장훈씨를 만났다. 롱우드 로고가 찍힌 작업복 차림이었다. 까맣게 탄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초대권을 가지고 나와 무료 입장을 했다.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무척 바쁜 시기인데, 우리 방문 때문에 오후 시간 근무를 뺐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 식물원을 두루 돌아보았다. 우리끼리 다녔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곳도 그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많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더구나 영어가 아닌 우리 말로 설명을 들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 롱우드 가든은 1700년대 퍼스(Peirce) 가문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듀퐁이란 회사를 세운 피에르 듀퐁(Pierre DuPont)이 1906년 이 땅을 사들여 세계적인 정원으로 만들었다.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에서 분수쇼와 불꽃놀이, 콘서트와 공연을 열고 품격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이런 정원에서 감상하면 그 감동이 훨씬 클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매년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 가든을 찾는다. 특히,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그들 정책이 이채로웠다. 

 

바깥 정원은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겼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 했다. 식물원 전체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나무에 전구를 다는 등 행사 준비에 바빠 보였다.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세 그루의 산딸나무. 단풍과 꽃이 아름답다는 이 산딸나무가 우리 나라 고유의 수종이라는 설명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 식물원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나라 수종을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4 에이커에 이른다는 실내 온실에서는 마침 국화 페스티벌(Chrysanthemum Festival)이 열리고 있었다. 연중 테마를 바꿔 전시를 계속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가 늦가을이라 국화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2만 점이 넘는 국화가 전시되어 있어 종류별로, 형태별로 국화는 원없이 볼 수 있었다. 공간 활용도 뛰어났고 색상 배치에도 전문가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온실에는 국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200종의 난을 전시한 오키드 하우스(Orchid House), 은은한 초록색 식물로 분위기를 띄운 아카시아 패시지(Acacia Passage), 은빛 식물로만 꾸민 실버 가든(Silver Garden), 그 외에도 고사리 통로(Fern Passage), 분재관(Bonsai), 팜 하우스(Palm House)도 둘러 보았다. 비슷한 색상의 식물을 배치해 은은한 느낌을 주는 가드닝 기법이 이채로웠고 그런 공간에서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온실에서 본 거미국화(Spider Mum)와 극락조화(Bird of Paradise Flower), 식충식물(Insect-Catching Plants)도 신기했지만, 내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바로 천 송이 국화(Thousand Bloom Mum)였다. 한 뿌리에서 천 송이가 넘는 꽃을 피워낸 특이한 국화였는데, 올해는 자그마치 1,339 송이의 꽃을 피웠다 한다. 이 천 송이 국화를 키워내는데 18개월이 걸렸다 하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정성이 들어 갔으리라. 이 원예기술은 중국과 일본에선 200년 전부터 전해 오던 것인데, 롱우드에서 20년을 근무한 일본계 가드너 요코 아라카와(Yoko Arakawa)가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이라 한다. 

 

 

 

 

내 눈길을 끄는 요코의 작품이 또 하나 있었다. 다른 품종의 국화 100여 가지를 한 그루의 국화에 접목시킨 분화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너무나 신기한 작품이었다. 천 송이 국화는 하얀 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국화는 모양도 각기 다르고 색깔도 달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가드닝을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이런 다양한 국화 전시를 통해 가드닝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 보고 그를 통해 개안을 한 기분이었다.

 

 

온실에서 나와 분수대를 거쳐 퍼스-듀퐁 하우스를 들렀다. 롱우드 가든과 관련된 역사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많은 사진 자료가 벽에 걸려 있었다. 김장훈씨가 쓰고 있는 기숙사도 들어가 보았다. 1920년 대에 지어진 고풍스런 가옥 한 채에 네 명이 사는 구조였는데, 아래층은 부엌, 거실 등 공동 생활 공간이고 위층에는 침실 네 개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와 개봉도 하지 않았다는 황차를 대접 받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케네트 스퀘어(Kennette Square)로 나갔다. 인구 6,000명이 사는 소읍으로 롱우드에서 가장 가까운 타운이었다. 그나마 괜찮다고 추천을 받은 식당이 하프 문(Half Moon)이란 식당. 버팔로 고기를 쓴 버거가 유명하다고 해서 나와 김장훈씨는 풀 문(Full Moon)을, 집사람은 하프 문을 시켰다. 맛을 글쎄… 솔직히 좀 별로였다. 로컬 비어 ‘야드스(Yards)’의 진한 맛이 그나마 입에 맞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김장훈씨와 헤어져 웨스트 체스터(West Chester)에 예약해 놓은 호텔에 투숙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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