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데이인 10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한 꿈을 두 개나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 의미 파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해서 솔직히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치닥거리다가 530분에 부엌으로 나왔다. 파스타에 렌틸콩을 얹어 아침으로 먹고 7시도 되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보였는데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허무하게 일출이 끝났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산 훌리안(San Julian) 성당은 전설에 비해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어느 가게엔 마을 이름을 산 쑬리안(San Xulain)이라 적어놓아 좀 헤깔렸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훌리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을 가서 사슴을 잡았다. 그 사슴이 죽기 전에 언젠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 훌리안에게 경고를 했다. 그 예언을 들은 훌리안은 고향을 떠났다. 몇 년 후에 그의 소재를 알아낸 부모가 그를 찾아 갔는데, 훌리안은 외출중이었고 훌리안의 아내는 피곤해 하는 두 노인을 자신의 침대에 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훌리안은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칼로 두 사람을 죽인다. 나중에 전모를 알게된 훌리안은 로마로 순례를 떠나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천사가 내려와 훌리안의 죄를 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사노바(Casanova)를 지나 갈리시아 자치주의 루고 주에서 코루냐(Coruna) 주로 들어섰다. 어제 본 가옥들은 검은 슬레이트 석판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여긴 가옥들이 모두 둥근 모양의 붉은 기와를 썼다. 레보레이로(Leboreiro)의 성당도 작고 초라했다. 이곳도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당 자리에 원래 샘이 있었는데 낮에는 신비로운 향기가, 밤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러 나왔단다. 그 주변을 파보니 성모상이 나와 성당으로 모셨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터가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 바쳤더니 다시는 성모상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내 앞으로 추월해가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짐이 없어 그런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 둘, 여자 둘로 봐서는 두 부부로 보였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푸레로스(Furelos)로 들어섰다. 산 후안 성당이 있었으나 문은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턴 행정구역상 멜리데(Melide)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공장지대를 지나 멜리데로 들어섰다. 도시 규모가 꽤 컸다. 풀포라 불리는 문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원조격에 해당하는 풀페리아 에쎄키엘(Pulperia Ezequiel)을 찾아갔다. 큰 길에 접해 있어 쉽게 찾았다. 둥근 나무판에 문어를 이층으로 쌓아 그 위에 파프리카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나오는데 가격은 14유로를 받았다. 문어가 연하기도 했지만 맛도 뛰어났다. 와인은 한 병에 4유로를 받는데 난 반병만 먹겠다 해서 2유로만 냈다. 사기 그릇을 와인잔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누렸다. 멜리데 도심을 잠깐 둘러 보았다. 교구 성당과 그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Terra de Melide)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무료였는데 1유로를 도네이션하니 직원이 활짝 웃어줬다.

 

아르쑤아(Arzua)도 제법 컸지만 현대식 건물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이다. 아르쑤아를 벗어나 작은 계곡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르쑤아에서 살세사(Salcesa)까지 10km를 더 걸어 오늘 걸은 거리도 40km를 넘겼다. 다음 날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이었다. 살세다에 있는 투어리스트 알베르게에 들었다. 일종의 여행자 호텔인데 한 구석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침대 8개가 전부였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 두 명은 알베르게 비용으로 트윈룸을 배정받았다고 자랑하던데 나에겐 알베르게 침대를 준다. 이 방으로 한국인 젊은이 3명이 더 들어왔다. 점심으로 준비했다가 먹지 못한 빵과 계란, 과일로 혼자 저녁을 때웠다.

 

어둠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산티아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산 훌리안의 전설이 서려있는 12세기 로마네스크 방식의 산 훌리안 성당

 

폰테 캄파냐(Ponte Campana)의 카사 도밍고(Casa Domingo)엔 커다란 조가비 장식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코루냐 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레보레이로 마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설치된 카베세이로(Cabeceiro).

가난한 사람들의 오레오(Horreo)라 불리기도 하는데 버드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그 위에 짚을 얹었다.

 

레보레이로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모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멜리데의 도심 풍경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유명한 식당인 풀페리아 에쎄키엘

 

 

멜리데 중심에 있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교구 성당

 

 

 

교구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 박물관은 이 지역 민속 박물관이었다.

 

 

 

멜리데에서 1km 외곽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안에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올 때 도네이션을 받아 1유로를 주고 나왔다.

 

 

보엔테(Boente) 마을 중앙에 외관을 하얗게 칠한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엔테의 N-547 도로변에서 아이들이 소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건너니 리오(Rio) 마을이 나타났다.

 

 

 

팔레스 데 레이와 더불어 치즈로 유명한 아르쑤아 마을.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마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갈리시아 지역 특유의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가 자주 눈에 띄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도 아버지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알베르게에서 2.50유로를 주고 아침을 먹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테이블에 차려놓은 음식이 형편 없었다. 가게에서 파는 조그만 빵 두 개에 주스팩 하나, 그리고 식은 커피 한잔이 전부였는데 성의가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을 먹자마자 바로 배고프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어둠이 깔린 순례길로 먼저 나섰다. 도랑을 사이에 두고 도로와 평행하게 순례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쭉 뻗은 길엔 커브도 거의 없었다. 30여 분을 걸으니 사위가 밝아왔다. 하늘을 가린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올라 시시한 일출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바람은 의외로 강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저절로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던 포브라시온(Poblacion)을 지나 비야르멘테로(Villarmentero)도 지났다. 마땅히 구경할 것이 없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는데도 마을엔 사람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내가 부지런한 것인지, 여기 사람들이 게으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비얄카싸르(Villalcazar)에는 블랑카 성모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당이 있었다. 장님 순례자의 눈을 뜨게 하고 이탈리아 순례자를 바다 폭풍에서 구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Santa Maria de Blanca) 성당으로 들어갔다. 제단 장식 한 가운데 블랑카 성모가 모셔져 있었고 그 옆 예배당에는 산티아고, 즉 성 야고보의 일생을 그려놓은 제단 장식도 있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다. 중세부터 번성했던 도시로 팔렌시아(Palencia)에선 꽤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의 중간에 위치한 까닭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산타 클라라(Santa Clara) 수도원은 알베르게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켠에 성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수녀님 한 분이 기도를 하고 있어 바로 나왔다. 도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도 들어가 보았다. 카리온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에서 발견한 문어 요리, 즉 풀포(Pulpo)와 와인 한 잔을 시켰다. 문어 요리에서 회색 머리카락이 두 개나 나와 주인을 불렀더니 그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문어를 솔로 수선하는 과정에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여기 사람들은 음식에서 그런 것이 나와도 개의치 않는지 좀 궁금해졌다.

 

카리온을 벗어나 일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올라섰다. 갓길도 없는 아스팔트를 4km 넘게 걸어야 했다. 지나는 차량이 많진 않았으나 차가 오면 한 옆으로 내려서 길을 비켜줘야 했다. 오전에 걸은 거리가 20km고 오후에 16km를 더 걷는데 오늘따라 오후 시간이 무척 지루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변화도 없는 심심한 풍경에 카메라를 꺼낼 일도 없었다. 산행을 하면서 종종 써먹었던 발걸음 세기를 여기서도 해보기로 했다. 1km 간격으로 있는 표지판 하나를 지나는데 몇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1km1,230 걸음이 나왔다. 덕분에 지루한 구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지나쳤다.

 

거센 바람이 구름까지 몰고 가 오후엔 푸른 하늘이 많이 보였다. 그늘조차 없는 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자전거 세 대가 추월해 가더니 바로 뒤이어 모터바이크 세 대가 나를 앞질러간다. 여기 사람들은 모터바이크로도 순례를 하나 싶었다. 평편한 길이 갑자기 푹 꺼지는 내리막에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Calzadilla de la Cueza)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전에는 마을의 존재를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마을 초입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사립 알베르게에서 어서 오라 인사를 건넸지만 그 옆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들었다. 부엌이 없는 것을 빼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저녁으로 순례자 메뉴를 시켰더니 오후 7시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바에 준비된 토르티야 등으로 대충 때웠다. 시골 식당이라 그런지 파리가 엄청 많았다. 음식에 앉으려는 파리에게 연신 손부채를 날려야 했는데, 손님 어느 누구도 파리에 개의치 않는 게 너무 신기했다.

 

 

강풍을 타고 구름이 요동치는 가운데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P-980 도로 옆으로 순례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쭉 뻗은 길에는 햇볕을 피할 그늘도 없었다.

 

 

순례자 벽화를 그려놓은 레벤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마을를 지났다.

 

어느 과수원의 죽은 나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조가비 표식을 달아 놓았다.

 

비야르멘테로에 있는 산 마틴 성당의 붉은 지붕이 푸른 하늘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비얄카싸르의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은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킨 블랑카 성모를 모시고 있었다.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 앞 광장에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풍경을 지닌 메세타 특유의 드넓은 평원을 하루 종일 걸어야 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들어섰다.

모자이크를 설치한 건물 벽면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집어 넣은 문패가 눈에 띄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초입에서 만난 산타 클라라 수도원은 현재 알베르게로 쓰이고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도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있는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맛보았다.

 

 

중세 시대엔 순례자에게 빵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는 산 쏘일로(San Zoilo) 수도원은 호텔로 변해 있었다.

그 앞에는 스페인 자치주의 문장을 새긴 표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심심한 풍경 속에서 해바라기과 풀이 자라는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걷는데 자전거 순례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추월해 갔다.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에 도착해 순례자 메뉴 대신 저녁으로 먹은 메뉴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reya 2015.12.03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자의 길 걸을 계획이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_+

    • 보리올 2015.12.03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소용이 되었으면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생 한번은 꼭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 잘 세우셔서 즐겁고 의미있는 순례가 되기를 빕니다.

  2. 2015.12.0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먹는 거라든가 잠자리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좀 불편해도 그것이 매력이죠. 저것이 호밀였나요? 전 몰랐습니다. 늦가을 들판엔 작물이 거의 없더군요. 목장 풍경은 좀 있으면 나올 겁니다.

  3. justin 2016.01.18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베르게에서 준비해주는 순례자 메뉴는 많이 다른가요? 가격은 더 저렴하지요? 걷다보면 배고파서 어떤 음식이라도 감사히 먹을것 같습니다. WCT 때 처럼요.

    • 보리올 2016.01.18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자 메뉴를 알베르게에서 준비하는 경우는 한 군데를 빼곤 없었다. 밖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취급하고 있지. 정상적인 메뉴에서 조금 싸게 내놓는 것 같더구나. 배고픈 탓도 있겠지만 스페인 음식은 대체적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