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9.07.08 [포르투갈] 코임브라 ② (2)
  2. 2019.06.17 [포르투갈] 신트라 페냐 궁전 (4)
  3. 2019.05.23 [포르투갈] 리스본 ⑤ (4)
  4. 2018.08.24 [베트남] 후에 ② (4)
  5. 2016.05.25 [캄보디아] 시엠립 - 앙코르 와트 (2)

 

 

코임브라 대학교를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성당으로 향했다. 코임브라에는 대성당이라 불리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서로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먼저 찾아간 곳은 신 대성당(Se Nova de Coimbra)이었다. 예수회에서 1598년부터 근 100년에 걸쳐 완공한 성당이다. 외관에선 바로크 양식이, 실내에선 중앙 제단과 제단 양쪽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두 개가 눈에 띄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리 요란하지 않아서 좋았다. 성당으로 연결된 복도엔 성물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예수회 성자로 유명한 성 프랜시스 제이비어(St. Francis Xavier)의 나무 조각상도 볼 수 있었다. 신 대성당 옆에 있는 성 주앙 데 알메디나(São João de Almedina)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옆에 있는 마차도 데 카스트로 국립박물관(Museo Nacional de Machado de Castro)은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전망대에서 코임브라 도심을 조망하기만 했다.

 

골목길을 따라 구 대성당(Se Vehla de Coimbra)으로 내려섰다. 코임브라 대학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포르투갈을 건국한 아폰수 1(Afonso I)가 코임브라를 수도로 정하고 구 대성당을 건축한 것이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13세기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꽤 깊다.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가 벌어졌던 시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하겠다. 그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외관은 당시 유행했던 아랍 풍의 건축양식이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투박한 외관은 성당이라기보단 무슨 요새처럼 생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대왕조개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성수대로 쓰고 있었는데 인도양에서 가져왔다는 설명이 있었다. 중앙 제단과 성 사크레멘투 예배당을 둘러보곤 옆문을 통해 회랑으로 나왔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회랑이라 했다. 곳곳에 묘석이 있는 것을 봐선 무덤도 있는 듯했다.

 

 

 

새로 지은 도서관 건물이 있는 대학 입구 곳곳에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코임브라 신 대성당(Se Nova de Coimbra)의 정면 모습

 

 

신 대성당 내부의 중앙 제단과 파이프 오르간

 

 

신 대성당 한 켠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18세기에 목각한 성 프랜시스 제이비어의 흉상도 있었다.

 

  

 

마차도 데 카스트로 국립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전망대에서 코임브라 도심을 바라보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구 대성당의 동쪽 모습

 

 

로마네스크 양식에 아랍 풍이 일부 섞여 있는 서쪽 정문이 구 대성당의 출입구 역할을 했다.

 

대성당으로 들어서니 성수대로 쓰고 있는 커다란 조개 껍질이 눈에 띄었다.

 

 

 

대성당의 중앙 제단과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예수와 사도들 상을 조각한 사크레멘투 예배당

 

18세기에 제작한 묵주의 성모 마리아상. 이슬람 영향을 받은 벽면 타일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고딕 양식의 회랑엔 의외로 묘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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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에이 2019.07.08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멋진 사진들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신트라(Sintra) 숙소에서 서둘러 길을 나섰지만 페냐 궁전(Palacio Nacional de Pena)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포르투갈의 유명 관광지에선 이제 한적함이나 여유로움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도 줄을 서서 입장시각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트라의 페냐 궁전은 아이들이 꼭 가야할 곳으로 미리 점찍어 놓은 곳이다. 전에 다녀간 곳이라고 난 좀 시들한 느낌이었다. 입구에서 궁전까지 걸어 올랐다. 우리 눈 앞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랑색과 고동색, 회색을 많이 사용해 꽤나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원래 이곳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하지만, 19세기 페르난두 2(Fernando II)에 의해 왕의 여름 별장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건물 앞을 먼저 둘러보고 건물 뒤쪽에 있는 아치스 야드(Arches Yard)로 갔다. 아치를 사용해 만든 노란 벽을 통해 시원한 조망이 펼쳐졌다. 벽면을 따라 월 워크(Wall Walk)라 부르는 회랑을 돌면서도 바깥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에겐 이런 배려가 고마울 뿐이다. 바로 아래엔 무어 성(Castelo dos Mouros)이 자리잡고 있었고, 서쪽으론 멀리 대서양까지 눈에 들어왔다.

 

입장시각이 되기 전인데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길었다.

 

 

 

 

 

15분 숲길을 걸어 오르면 파스텔로 그린 듯한 페냐 궁전의 아름다운 자태를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파란색 타일을 많이 사용한 정문을 통해 건물 뒷면에 있는 아치스 야드로 들어섰다.

 

페냐 궁전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선 또 다른 줄을 서야 해서 생략하기로 했다.

 

 

 

 

 

건물 뒤쪽에 있는 아치스 야드는 건물 앞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고 무척 아름다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무어 풍의 아치로 만들어진 벽면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사진 포인트로 유명하다.

 

 

 

궁전 외벽에 월 워크라 불리는 회랑을 만들어 놓아 시원한 조망을 감상할 수 있었다.

 

 

 

페냐 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어 성, 그리고 멀리 대서양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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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식의 흐름 2019.06.17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외 여행중 포르투갈을 못가본게 너무 한이되네요ㅜㅜ
    유럽 다니면서 포르투갈 한번 가볼껄 그랬어요 ㅋㅋ
    기회가 되면 꼭 가볼게요
    좋은 포스팅 잘 봤어요 :)

    • 보리올 2019.06.17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운 댓글에 힘이 많이 납니다. 유럽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포르투갈은 물가도 싸고 볼거리도 많습니다. 스페인과는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점도 많고요. 언제 시간내서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2. 인에이 2019.06.18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아름다운 곳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D

    • 보리올 2019.06.18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페냐 궁전은 포르투갈에서 꽤나 유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독일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으면 포르투갈엔 페냐 궁전이 있다고 하더군요.

 

 

15번 트램을 타고 벨렝(Belem)으로 이동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과 벨렝탑을 보러가는 길이다. 이 두 명소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포르투갈의 문화유산이라 보면 된다. 트램에서 내려 제로니무스 수도원 입구로 갔더니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200m는 되지 않나 싶었다. 리스본은 이제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도시가 되어 어느 곳을 가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서 하는 곳으로 변했다. 사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줄이 너무 길어 성당만 보고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딸아이가 휴대폰으로 열심히 정보 검색을 하더니 지척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rqueologia)으로 가자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도 수도원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Manuel I)에 의해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산타마리아 성당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대항해시대에 유행했던 마누엘 건축양식을 따랐다. 1501년에 공사를 시작해 완공까지는 100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입구에서 왼쪽은 수도원, 오른쪽은 성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린 수도원으로 들어섰다. 한 면의 길이가 55m인 정방형 회랑이 나타났다. 회랑을 따라 한 바퀴 돌곤 2층에도 올라가보았다. 가운데 정원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벽면이나 아치를 상당히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던 공간은 아줄레주 타일을 써서 우아한 면모를 뽐내고 있었고, 포르투갈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실에 이어 여성 중창단의 공연이 열리고 있던 공간도 둘러보았다.

 

임페리오(Imperio) 광장 정원에 있는 분수대 뒤로 보이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밝고 화려한 외양이 눈에 들어왔다. 입장권을 사려는 인파가 너무 많았다.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을 보여주는 수도원 회랑과 정원쪽으로 설치된 정교한 아치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수도사를 위한 식당이었던 공간은 벽면을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로서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에르쿨라노(Alexandre Herculano)의 무덤이 있는 방에선

여성 중창단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역사를 연대기 형태로 세계 역사와 비교해 놓은 전시실에선 역대군주들의 초상화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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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여우. 2019.05.23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가요
    이웃신청해요 ^^

  2. J's_Identity 2019.05.23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리스본에 4일 있으면서 저 맑은 햇빛속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기억이 많이나네요!!
    잘보고 갑니다!!
    구독하고 가요~
    자주소통해요:)




누가 뭐래도 후에의 자랑거리는 단연 응우옌 왕조가 사용했던 왕궁이다. 그래서 후에를 임페리얼 시티(Imperial City)라 부르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 왕궁까지 걸어서 갔다. 입장료로 15만동을 지불했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왕궁 입구인 오문(午門)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라 남문에 해당하는 오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동문으로 나와야 한다. 연못도 지나고 중국 풍의 문도 여러 개 지났다. 문짝이 없는 삼문 형태인 패방(牌坊)는 중국 전통 양식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정직탕평(正直蕩平), 고명유구(高明悠久)와 같은 사자성어가 적혀 있어 베트남 같지 않았다. 왕궁 면적은 생각보다 꽤 컸다. 가로, 세로가 각각 2km에 이르고, 왕궁을 둘러싼 해자의 길이가 10km라고 한다.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왕궁은 대부분 노란색을 칠해 놓아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거나 황제가 업무를 보았다는 태화전(太和殿)은 온통 금빛으로 칠해 놓았다. 중국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자금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았다. 태화전 안에선 사진을 찍지 못 하게 했다. 왕궁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화재로 사라진 근정전은 일부 회랑이 복원되어 있었다. 붉은색과 금빛으로 화려하게 만든 회랑을 따라 걸었다. 마침 어느 사진 모임에서 모델을 고용해 사진 촬영에 열중이었다. 좀 더 들어가니 황제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는 태평루(太平樓)가 나왔고, 복원 공사중인 전각도 보였다. 건중루가 있던 자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부분은 그렇다 해도 왕궁 자체는 꽤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자로 둘러싸인 왕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이 오문이다.


모두 같은 색깔의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이 단체로 소풍을 온 듯했다.



후에 왕궁의 남문에 해당하는 오문은 왕궁 입구로 쓰였다.



온통 금빛으로 칠한 태화전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라 제법 화려함을 자랑했다.


멀리 오문과 패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왕궁이 워낙 넓고 더운 날씨다 보니 전각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았다.


근정전의 일부 회랑을 복원해 놓았다. 사진 모임에서 모델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끼가 잔뜩 낀 문에는 잡초까지 자라고 있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 허물어진 왕궁내 전각을 보수하고 있다.


건중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멋진 정자 하나가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호수와 전각이 어우러진 모습이 나름 운치가 있었다.



건중루가 있던 곳은 폐허로 변해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전각에서 미술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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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런투 2018.09.18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에를 가고 싶었는데 아기와 같이가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아기가 크면 같이 가볼까해요 ^^

  2. justin 2018.09.20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은 정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봐요~ 예전에 문화의 교류가 상당했나봅니다~! 기질도 비슷한건지 대기업들의 중국 공장들이 이제 대부분 베트남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보리올 2018.09.21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거의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옛 문화재를 보면서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하겠더라.

 

지난 번에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툭툭이를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와트를 찾았다. 앙코르 톰에서 앙코르 와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 나무 그늘에서 앙코르 와트를 싸고 있는 해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앙코르 와트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Suryavarman II)에 의해 창건된 사원이다. 처음엔 힌두교 사원으로 지었다가 나중에 불교사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옛 크메르 왕국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1992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엄청난 일출 인파로 붐볐던 호수는 한산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안으로 들어섰다. 대낮에 보는 앙코르 와트는 새벽보다 신비함이 좀 덜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중앙 성소부터 가기로 했다. 경사가 무척 급한 계단을 올라야 했다. 중앙탑과 그것을 둘러싼 네 개의 탑, 그리고 회랑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라 게단을 오르기 전에 모자를 벗으라 하고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은 천으로 다리를 감싸도록 한다. 회랑을 따라 걸으며 탁 트인 앙코르 와트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겼다. 그 아래 2층엔 목이 잘린 불상들이 많았다. 한켠에는 불상을 모아 간단하게 불전을 만들어 놓았다. 오렌지색 가사를 입은 스님 한 분이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다가 손님이 시줏돈을 내놓으면 얼른 축문을 읽는다. 너무 세속적인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 공명이 생긴다는 방을 거쳐 맨 아래에 있는 1층 회랑으로 내려섰다. 아래 회랑엔 엄청난 양의 부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부조의 섬세함, 정교함이 돋보였다. 힌두 신화나 크메르 왕국의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등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본다면 하루도 부족할 것 같았다. 오래 전에 무슨 기술이 있어서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을 했을까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한 번 보고 지나간 곳이기에 시간을 줄여 구경을 마쳤다. 어쩌면 날씨가 너무 더워 대충 건너뛰었는 지도 모른다. 3층에 걸쳐 있는 회랑만 모두 둘러보아도 엄청난 운동량이 될 것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앙코로 와트 입구로 나왔다. 정자나무 아래서 30여 분을 쉬면서 새로 구입한 1.5리터 생수를 전부 마셔 버렸다.

 

 

앙코르 와트로 들어가는 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서쪽은 사후세계 또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다 보는 앙코르 와트. 수미산을 의미하는 중앙의 높은 탑을 네 개의 탑이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와트 상층부를 장식하고 있는 건축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상층부 성소로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의 건축물과 바깥 풍경. 열기구가 한가롭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상층부 성소에서 만난 와불. 곳곳에 불상이 비치되어 있었고, 압살라 조각도 많이 눈에 띄었다.

 

 

2층엔 회랑 외에도 불상을 모아 만든 불전이 있어 참배객들을 받았다.

 

 

 

 

1층 회랑엔 섬세한 부조가 끝없이 새겨져 있었다. 힌두 신화의 내용이나 전투 장면, 전쟁에 나가는 모습 등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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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19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를 직접 보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런데 왜 예전부터 이나라 저나라 머리가 잘린 불상이 많은걸까요?

    • 보리올 2016.06.1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는 청춘이고 나는 노년에 들었는데 젊은 네가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 영원하지는 않지만 이제 시간은 네 것인데 말이다. 불상의 목이 잘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타 종교의 배타적 신념이나 다산 등을 노린 미신이 아닐까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