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닝 주립공원(Manning Provincial Park)은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져 있다. 호프(Hope)에서 3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나서도 한 시간을 더 달렸던 것 같다. 밴쿠버에서 세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라 낮이 짧은 겨울철이면 당일로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눈 위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공원 내에서 스노슈잉(Snowshoeing)을 하기로 했다. 매닝 주립공원은 사시사철 각종 아웃도어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그만 스키장도 하나 있다.
이 공원 안에 있는 산악 지형은 케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에 속하는 관계로 2,000m가 넘는 고봉도 꽤 있다. 또 하나 매닝 주립공원의 특징이라 하면, 북미의 장거리 트레일 가운데 하나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의 북쪽 기점이 바로 여기라는 점이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있는 남쪽 기점을 출발해 PCT를 종주하는 장거리 하이커들은 이곳 매닝 주립공원에서 종주를 마무리한다. 대부분 하이커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기념비에서 대장정을 마치지만, 이 매닝 주립공원에도 13km 길이의 PCT 구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론덕(Lone Duck)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베이스를 차렸다. 눈을 발로 밟아 충분히 다진 후에 텐트 두 동을 쳐놓으니 훌륭한 잠자리가 준비된 것이다. 라이트닝 호수(Lightning Lake)로 나갔다. 배낭도 메지 않고 간편한 복장으로 스노슈잉에 나선 것이다. 라이트닝 호수를 한 바퀴 돌면 9km를 걸어야 하지만 우리는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겨울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호수 위를 마음껏 걸을 수 있겠는가. 밤에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쉘터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 후에는 난로에 장작을 때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체험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으리라. 아침이 밝자, 시밀카민(Similkameen) 트레일을 경유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었다.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신설 위에 우리 발자국을 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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