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은 멕시코 남동부와 유카탄 반도, 과테말라 등에서 꽃 피웠던 고대 문명을 말한다. 2,000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하며, 8~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곤 10세기 들어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야 문명과 톨텍(Toltec) 문명이 혼합된 치첸이샤 유적은 그보다 조금 늦은 10세기 이후에 번성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빽빽한 밀림 속에 독창적인 고대 문명을 이루고도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마야인들은 돌을 조각하는 기술이 무척 뛰어났다.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상형문자와 20진법, 숫자 0(zero)를 발명하였고,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을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치첸이샤의 엘 카스티요, 즉 쿠쿨칸 신전(Temple of KuKulkan)은 이런 목적도 지니고 있다 한다. 마야인들이 사라진 까닭을 혹자는 도시 간의 전쟁 또는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발생 등을 이야기하고, 혹자는 지배층이 늘어나면서 신전 건설 붐이 일어 노역에 동원된 피지배층이 급격히 감소한 탓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아마 이 모두가 원인일런지도 모른다.

 

칸쿤에서 치첸이샤까지는 200km 거리였지만 도중에 세노테를 들르고 점심 식사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 다섯 시간만에 도착을 했다. 오후 2시에 버스를 내리는데 4 30분까진 돌아오라고 한다. 치첸이샤의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영어로 설명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피라미드 구경에 나서기 전에 조그만 사고가 발생했다. 길가 노점상에서 창문을 올려 열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오른쪽 눈썹 부위가 찍혀 1cm 정도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가이드가 응급 차량으로 날 데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눈썹에 반창고를 붙였다.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혼자 맘대로 돌아다니다 나중에 가이드와 일행들을 다시 만났다.

 

 

 

치첸이샤 마야 유적은 몇 개의 피라미드 신전와 궁전, 공놀이 경기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법 규모가 컸다.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이뤄진 유적이라 했다. 2007 7 7,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New 7 Wonders)를 발표하면서 이 치첸이샤 유적을 그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중국 만리장성과 인도 타지마할, 이탈리아 콜로세움, 페루 마추픽추 등과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이 유적은 유네스코에서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엘 카스티요(El Castillo)라 불리는 치첸이샤의 중심 피라미드는 이집트 가자 지구의 피라미드에 비해선 작은 편이지만, 과학적인 정밀함에선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4면체로 구성된 높이 23m의 이 피라미드는 네 면에 91개씩의 계단이 있고 여기에 중앙 계단까지 합하면 모두 365개가 된단다. 우리 1년의 365일과 똑같지 않은가.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에는 기우는 해가 계단에 비추면 그들이 숭배하는 뱀신, 즉 쿠쿨칸의 형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피라미드가 정방위에서 17도 틀어져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이 어렵다 한다. 그런 까닭으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뽑혔다 하고.

 

엄청 가파른 급경사 계단이 꼭대기로 향하는데 아쉽게도 오를 수는 없었다. 몇 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이 45도 경사를 내려오다 추락사해서 출입을 막은 것이다. 꼭대기에는 신관이 인신공양을 했던 현장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을 숭배하며 영생을 꿈꾸던 마야인들은 사람의 심장을 바쳐 여기서 제를 올린 것이다. 피라미드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손벽을 치면 공명이 생겨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힘차게 박수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1,000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전사의 궁전도 둘러 보았다. 출입금지 구역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돌을 쌓아 기둥을 만들어 놓았는데 둥근 모양도 있었고 사각 기둥도 볼 수 있었다. 기둥에는 전사의 모습이나 동물을 조각해 놓았다. 재규어와 독수리 제단도 돌아보았다. 재규어가 사람 심장을 먹는 모습, 독수리가 심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재규어와 독수리가 숭배의 대상이었다니촘판틀리(Tzompantli)의 해골 조각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을 이렇게 기리는 제단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병주고 약주는 처사가 아닌가.

 

 

 

 

 

 

 

 

   

공놀이 경기장도 박수를 치면 공명이 생겼다. 이 경기장도 치첸이샤의 주요 볼거리 중의 하나다. 가로 70m, 세로 168m인 경기장에서 팔꿈치와 무릎, 엉덩이만 써서 공을 벽 가운데 높이 매달린 골대에 넣는 경기란다. 골대를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을 제물로 심장을 도려내 신에게 바친다니 누가 경기를 이기려 하겠는가? 다음 세상에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난다고 믿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단 말인데 나로선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경기장 벽에는 잘려진 머리에서 일곱 갈래의 피가 솟구쳐 뱀이 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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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26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0여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거대한 돌건축물을 짓자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들었을까요...무너지지 않고 아직 버티도 있는 것도 신기하고~~유물이 남아있어 후대인들이 마야족을 연구하고 기억하는거네요... 안경 쓰신 분으로 사고가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2. 보리올 2013.07.26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건축물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대에 이런 건축물을 짓는다면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을까 한숨이 나오지만 후대는 그런 희생을 모르고 경탄할 수 있으니까요. 새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대부분의 문화재 또한 옛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보유할 수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