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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0일차(폰페라다~베가 데 발카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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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오더니 새벽에서야 그쳤다. 어느 새 비가 일상이 되었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영호 선생이 다리에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두열 선생에게 먼저 간다고 작별을 고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어제 구경했던 도심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폰페라다를 빠져 나왔다. 폰페라다 외곽으로 나왔을 때 일출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구름과 묵중한 산세에 가려 일출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도로를 지나고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마을을 빠져 나오니 한적한 시골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르키는 표식도 새로워졌다. 지자체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택하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들어섰다. 길가에 알록달록한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무엇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비냐스 델 비에르쏘(Vinas del Bierzo)라는 와이너리였다. 테이스팅 룸이 마련되어 있어 와인 한잔을 시켰다. 핀초(Pincho)라는 타파스를 곁들여서 1.50유로를 받는다. 아침부터 술기운으로 걷게 되었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이르는 길 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했다. 리오하(Rioja) 지역과 비슷하게 여기도 들판 대부분을 포도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는 스스로를 유럽 와인의 중심지라 칭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꿀밤을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 품종은 멘시아(Mencia)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와인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를 증명하는 관청도 있었다. 조그만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곳도 있어 1유로를 기부하고 들어가 보았다.

 

피에로스(Pierros)를 지나서 발투일레 데 아리바(Valtuille de Arriba)로 우회하는 길 역시 포도밭 사이를 누비며 한없이 이어졌다.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단풍이 포도밭을 뒤덮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포도나무를 사람 무릎 높이로 길러 놓은 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지지대와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 키만한 높이로 기르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포도밭을 만났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집과 나무 몇 그루가 포도밭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쏘(Villafranca del Bierzo)는 크진 않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을 가진 산티아고 성당과 성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가 벤치에서 빵과 과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로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은 여기서 하루를 묵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좀더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발카르세(Valcarce) 강을 따라 놓여진 도로를 걸어 페레헤(Pereje), 트라바델로(Trabadelo) 등 몇 개 마을을 지났다. 대부분 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마을마다 조그만 성당이 있었지만 대개 문을 잠가 놓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었다. 하루도 봐주는 날이 없다고 연신 투덜대면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려는 시각에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어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었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비가 그치질 않아 마을 구경도 생략했다. 부식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박인자 선생을 만났다. 혼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주부였다. 간단하게 수프를 준비할테니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엌이 워낙 작고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루과이에 온 젊은이 셋이 자기들이 마련한 저녁이 많다고 우리에게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기소라 한다는 우루과이 볶음밥이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거기에 박인자 선생이 준비한 수프를 더하고 내가 산 와인을 곁들이니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나중엔 보스턴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만든 요리도 한 접시 빼앗아 먹었다. 시금치에 떡볶이 떡 같은 것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는데 그것도 맛은 괜찮았다.

 

파스타 면을 삶아 그 위에 통조림으로 파는 콩을 얹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아침에 자주 먹었다.

 

 

폰페라다를 벗어날 즈음 구름이 가득한 동녘 하늘로 해가 솟았다.

 

폰페라다 외곽에서 가로수 터널을 만났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콤포스티야(Compostilla) 성당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마을로 들어서는데 포도밭 가운데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이 다른 곳과는 달라 눈에 띄었으나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구 4,200명을 가진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의 비냐스 델 비에르쏘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마련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비에르쏘 지역의 중심지 카카벨로스

 

 

카카벨로스에 있는 조그만 성당 하나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 외곽으로 대규모 포도밭이 펼쳐져 특유의 풍경을 만들었다.

 

주택 벽면에 과감한 색깔을 칠해 마을 분위기가 밝아 보였던 발투일레 마을

 

발투일레 마을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맞이했다.

 

 

 

 

산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비야프랑카 마을. 마르케스(Marqueses) 후작의 궁전도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 N-6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순례길을 알리는 이정표에 누가 등산화를 걸어 놓았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직전에 있는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를 지났다.

 

 

암바스메스타스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성당엔 한 커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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