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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3일차(페레이로스~팔라스 데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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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에 고히 모셔둔 마지막 신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은 매운맛에 코에 땀이 났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명이 제법 아름다웠다. 비만 그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주웠다. 이따가 간식으로 먹자고 배낭에 넣었다. 뉴욕 주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케빈과 함께 걸었다.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뉴욕 주에서 낙농업 NGO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단다. 그는 돌로 지은 이 지역 주택이나 돌담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케빈과 함께 카사 수사나(Casa Susana)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수사나는 호주에서 온 수잔나의 스페인 이름이었는데, 이 집을 빌려 도네이션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내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축사가 집안에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섰다. 1960년대 미뇨(Mino) 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 도시가 물에 잠기자 역사가 어린 건물들을 현재의 위치로 옯겼다고 한다. 성채처럼 생긴 산 후안(San Juan) 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뇨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했다. 마을을 들르지 않고 왼쪽으로 빠져도 되지만 수잔나가 알려준대로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에서 시작해 중심가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산 후안 성당이 단연 돋보였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엔 시청사와 순례자상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로를 따라 상가가 마주보고 있는데 1층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회랑 끝에 Km 88이란 바가 있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8km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88km가 아니라 9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마린을 벗어난 오솔길에서 체코에서 왔다는 루시를 만났다. 배낭이 엄청 커서 무게가 얼마나 되냐 물었더니 15kg은 될 것이라 했다. 이 아가씬 길가에서 자라는 버섯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것저것 가르키며 이 모두가 식용 버섯인데 여기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했다. 이름도 모른 채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풍경이 그만그만 해서 별 미련은 없었다. 소똥 냄새는 여전했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져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겨우 비 하나 그쳤다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탁 트인 순례길에서 한 젊은 남녀가 길에 누워 포옹을 한 채로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대낮부터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마지 못해 떨어진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

 

곤싸르(Gonzar)에서 빵과 아침에 주운 사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 것에 비해 열량 소모가 많은 때문인지 뱃살이 홀쭉해졌다.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쓰(Hospital da Cruz)로 들어서기 전에 아스팔트에 쭈구리고 앉아 송충이를 지켜보던 제이미를 만났다. 처음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K77 표지석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하곤 아까 아스팔트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송충이가 행여 지나가는 차량에 깔릴까 걱정이 되어 나뭇잎을 이용해 숲으로 유도하는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 아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씨 착한 아가씨였다. 유타 주에서 왔다는 그녀는 평소에도 나비와 곤충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팔라스 데 레이는 왕의 궁전이란 의미라던데, 여기가 예전에 어떤 왕국의 수도였던 모양이었다. 팔라스 데 레이는 인구 4,200명을 가진 제법 큰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최신식으로 깨끗하게 꾸민 공립 알베르게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 큰 시설을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까진 1km를 더 가야 했고 도심에도 알베르게가 여러 개 있었다. 부식을 사러 도심으로 가는데 일몰이 시작되었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혼자서 부엌을 독차지하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고등어 통조림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찍어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페레이로스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만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공동묘지를 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찻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좀 낯설게 다가왔다.

 

 

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둥글게 휘어도는 담장 처리도 뛰어났다.

 

회색 돌집에 빨간 대문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화분을 놓아 구색을 맞춘 것도 보기 좋았다.

 

 

 

카사 수사나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카페 주인인 수잔나가 집안도 구경시켜 주었다.

 

 

미뇨 강을 건너 포르토마린으로 들어섰다.

 

포르토마린의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었다.

 

산 페드로 성당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무슨 까닭인지 커다란 증류기가 세워져 있었다.

 

댐 공사로 수몰된 옛 마을에서 하나하나씩 해체해 현위치에 다시 조립한 산 후안 성당

 

 

포르토마린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상가와 주택

 

아스팔트에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송충이를 다시 숲으로 되돌려보낸 제이미

 

벤타스 데 나론(Ventas de Naron) 마을에서 본 자판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벤타스 데 나론의 막달레나(Magdalena) 예배당.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위해 지은 병원이 19세기에 무너지자, 그 돌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리곤데 마을. 건물 외벽을 장식한 절묘한 감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고, 둥근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판을 얹은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여자아이 둘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순례에 나선 것일까?

 

소들이 풀을 뜯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다.

 

 

아이레쎄(Airexe)와 아 칼싸다(A Calzada)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공동묘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 마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도심에 있는 수퍼마켓을 가다가 맞은 석양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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