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솜까지 가는 오늘 구간이 우리가 직접 걷는 마지막 구간이다. 내리막 길이라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최정숙 회장이 자꾸 숨이 차다고 한다. 고소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다른 데 있었단 말인가. 껄빌에게 최 회장을 모시고 짚으로 먼저 가라고 했다. 가능하면 고급 호텔을 잡아 편히 쉬시게 하라고 일렀다. 나머지 일행들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로 갔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이 구간은 반드시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간이라 차로 휙 지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차량들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제 묵티나트까지 차가 올라오니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도 반으로 줄은 셈이다.
묵티나트와 좀솜 사이엔 묘한 매력을 가진 마을들이 많다. 토롱 라를 오르기 전에 지나친 산골 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묵티나트 바로 아래에 있는 자르코트(Jharkot)도 황량한 산악 지형에 자리잡은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지저분한 건물 외벽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마을이다. 계곡 건너편에 흙으로 된 절벽이 나타나고 거기엔 수많은 동굴들이 뚫려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인지, 아니면 스님들이 수도했던 곳인지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 어떻게 저 가파른 곳을 드나들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동굴에 이르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설마 암벽 등반하면서 들락거리진 않았겠지?
무스탕(Mustang) 초입에 있는 카그베니(Kagbeni)에 도착했다. 무스탕은 아직까지도 작은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는 신비의 세계다. 지금에야 언론들이 앞다투어 소개를 해서 많은 사실들이 알려져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다. 무스탕 왕국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고 그 신청 비용도 만만치 않다. 높은 지점에서 카그베니를 내려다 보니 마을 풍경이 그리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쌓인 곳을 일일이 손으로 개간해 논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과 논, 하천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행여 내가 네팔에 살아야 한다면 서슴없이 이곳을 택하리라 마음 먹었다.
에클리바티(Eklebhati)의 한 로지 마당을 빌려 점심을 준비했다. 로지에서 매식을 하지 않고 버너와 코펠을 써서 우리가 직접 준비하는 마지막 식사다. 남은 식량을 모두 처분한다고 짜파게티를 끓이고 후식으로 누룽지와 커피도 준비했다. 나름 격식을 갖춘 점심에 다들 흡족해 하는 모습이다. 지나가는 트레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우리의 성찬이 궁금했는지 자꾸만 흘낏흘낏 쳐다보고 간다. 에클리바티부터는 강변으로 내려서 하천 바닥을 걸었다. 멀리 좀솜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다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좀솜에 도착했을 때에는 물에 빠진 생쥐마냥 모두가 젖어 있었다.
공항과 은행이 있는 좀솜은 제법 번화한 마을이다. 지난 번에는 트랙터가 대중 교통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산골 마을로서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공항 바로 앞에 있는 스노랜드(Snowland)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좀솜에선 고급호텔에 속한다 했다. 숙박료도 지금까지 지불했던 금액의 세 배가 넘었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을 할 수 있는지 주방에 알아보라고 했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으나 닭 한 마리에 3,500루피, 즉 50불 넘게 달라고 한다. 이건 완전 바가지 요금이다. 50불이면 염소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금액인데. 우리가 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닭백숙은 취소하고 통상 먹던 메뉴를 골랐다.
그 동안 고생한 포터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 따로 음식을 시켜 먹고 현지인 가격으로 계산해서 청구하라 했는데, 로지 주인은 그것도 외국인 가격으로 청구를 했다. 로지 주인을 불러 따졌다. 주인과 실강이 끝에 반반씩 양보하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이런 경우가 다반사라지만 뻔히 알면서 당하는 것이 더 억울하다.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 주인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많다. 내 경험으론 로지 주인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대신 여자는 통통하고 기름기가 흐른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호텔의 노인네 남자 주인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욕심도 많아 보였다. 다음엔 절대 이 집으로 발길도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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