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날이 밝았다. 달링 리버를 출발해 뱀필드에 있는 파체나 베이(Pachena Bay)까지 걷는다. 거리는 14km로 5~6시간 걸린다 들었다. 어제 느꼈던 시원섭섭함이 오늘은 조금씩 섭섭함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빨리 나갈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식량도 동이 나고 포트 렌프류로 돌아가는 버스편도 이미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라 예정대로 나가기로 했다. 그 대신 출발 시각을 좀 늦췄다. 해가 떠오르는 시각부터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쏘다녔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싱그러웠다. 바다에서 떠밀려온 다시마 줄기에도 부드러운 빛이 내려앉았다. 공처럼 생긴 모양새에 머리카락 같은 뿌리가 달려있어 신기하단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캠핑한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바닷가에 간이 의자를 놓고는 거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이 친구들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늘 우리보다 한 수 앞선다. 제대로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트레일 상태는 좋았지만 오르내림은 제법 심했다. 달링 리버에서 미시간 크릭(Michigan Creek)까진 해안길을, 미시간 크릭부터 파체나 베이까지는 숲길을 걸었다. 11km 지점에 자리잡은 파체나 포인트 등대에도 잠시 들렀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등대에 거푸집을 설치해 놓았다. 부속 건물 옆에는 몇몇 도시 이름과 거리를 표시하는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등대에서부터 트레일은 거의 오솔길 수준이었다. 과거에 등대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길이었다.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꾸준히 걸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조망도 없어 시간을 지체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파체나 포인트를 조금 지나 바다로 나가는 사이드 트레일이 나왔는데,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사자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주저 없이 그 트레일로 들어섰다. 꽤 많은 바다사자가 무리를 지어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끔 덩치 큰 녀석이 무리에서 나온 한두 마리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녀석들은 싸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블랙 리버(Black River)를 지나고 8km를 더 걸어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국립공원 인포 센터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출발점에서 받은 퍼밋을 반납했다. 이는 우리가 무사히 트레일을 벗어난다는 일종의 신고였다. 이제 공식적으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하이킹을 모두 마친 것이다. 인포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축하 인사도 받았다. 하이킹 첫날의 고단함과 하루 종일 비를 맞았던 날의 축축함도 이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원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다른 트레일에 비해 어려움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난관을 모두 이겨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거기에 이런 멋진 곳을 아들과 단둘이 걸었다는 점 또한 평생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되리라 본다.
모처럼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일출 시각에 맞춰 밖으로 나가 해변을 거닐었는데 일출 자체는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간이 의자를 가지고 바닷가에 모여 앉아 여유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내심 부러웠다.
해변으로 밀려온 다시마 줄기가 눈에 띄었다. 뿌리가 마치 머리처럼 보였다.
텐트 정리를 마치고 달링 리버를 출발하며 해변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처음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등산화를 벗고 물을 건너야 했고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도 지났다.
달링 리버의 캠핑장을 피해 따로 호젓하게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었다.
파체나 포인트에 있는 등대에 들렀다. 화살표로 몇몇 나라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이드 트레일로 들어서 바다사자가 서식하는 곳을 방문했다.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트레일에 오토바이 한 대가 버려져 있는 현장도 지났다.
트레일 종료 지점에 도착했다. 뭔가 그럴 듯한 기념비라도 세울 법한데 눈을 씻고 찾아도 그런 건 없었다.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퍼시픽 림 국립공원의 인포 센터. 여기에 퍼밋을 반납해야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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