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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호놀룰루 ⑨ ; 진주만

여행을 떠나다 - 미국

by 보리올 2016. 12. 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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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 메모리얼에 가기가 쉽지 않아 그 옆에 있는 보우핀 잠수함(Bowfin Submarine)과 포드 섬(Ford Island)에 있는 미주리 함(USS Missouri)을 찾았다. 이 두 곳은 입장료를 내야 했다. 보우핀 잠수함은 진주만이 공격을 받은지 정확히 1년이 지난 1942 12 7일 진수된 재래식 잠수함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활약한 잠수함 중 해체되지 않고 살아남은 15척 잠수함 가운데 하나로 현재는 진주만에서 잠수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잠수함은 2차 대전 중에 태평양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44척의 적선을 격침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려 진주만의 복수자(Pearl Harbor Avenger)’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퇴역했다가 한국전이 발발하면서 1951년 다시 취역했으나 한국전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 1971년 공식 퇴역을 한 후에 진주만으로 옮겨졌다.

 

잠수함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미주리 함으로 향했다. 미주리 함에 오르기 전부터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배수량 45,000톤의 이 전함은 길이가 270m, 폭이 33m였고 승조원도 2,700명에 이르렀다. 1944 6월에 취역해 2차 대전에 투입된 미주리 함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난 후인 194592일 이 함정에 올라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유명하다.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입회 하에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과 일본 외무상이 문서에 서명하였다. 진주만 공습 당시엔 건조중이라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 했지만 나중에 여기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으니 단단히 복수를 한 셈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후 1955년 퇴역했다가 다시 취역해 1991년 걸프 전쟁에 참가하고는 그 다음 해 공식 퇴역하였다. 1998년 진주만으로 옮겨왔다.

 

 

보우핀 잠수함은 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디젤-전기 추진식 잠수함으로 그 길이가 무려 95m에 이르렀다.

 

 

잠수함인데도 꽤 넓은 갑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위에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함수에 6, 함미에 4개의 어뢰발사관이 있었다. 모두 24개의 어뢰를 적재할 수 있었다.

 

 

 

잠수함 내부의 각종 통제실과 기관실, 승조원 거주구를 두루 살펴 보았다.

여기서 하와이로 순양훈련을 왔다는 대한민국 해군 수병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일본이 항복하자 뉴욕 타임 스퀘어로 쏟아져 나온 인파 가운데 한 수병과 간호사가 격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흑백사진이

라이프 잡지에 실렸는데, 그것을 본딴 빅토리 키스(Victory Kiss) 동상이 미주리 함 앞에 놓여 있었다.

 

미주리 함을 오른 첫인상으로 거대, 웅장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미주리 함 갑판에서 바라본 진주만과 그 배경을 이루는 오아후 산악 지형.

 

갑판에 설치된 함포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무장을 갖추고 있어 절로 입이 벌어졌다.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유명한 미주리 함 상갑판에는 그것을 기념하는 원형 명판이 놓여 있었고

맥아더 장군이 서명하는 사진도 붙어 있었다.

 

항해 브리지 안에는 철갑으로 두른 전망탑이 있었는데 그 철판의 두께가 400mm가 넘는다고 해서 놀랐다.

 

갑판 한쪽 벽에는 승조원들의 스포츠 활동을 위해 농구 골대를 만들어 놓았다.

 

미주리 함이 참전한 전쟁 가운데 하나가 한국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을 눈치채지 못 하게 속초로 상륙하는 것처럼 기만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전을 설명하는 자료와 사진이 승조원 휴식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짜를 1950 7 25일로

적어놓은 것이 옥의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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