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차를 몰아 진주로 내려갔다. 요즘 말로 하면 절친인 이 친구는 언제 가도 늘 반갑게 맞아준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열해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생선회로 거하게 저녁 대접을 받았다. 광어회가 주종이었는데 뭔가 끊임없이 나오더니 마지막은 랍스터 회로 마감을 한다. 노바 스코샤에 있을 때는 랍스터야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해산물이었는데, 여기선 꽤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 먼저 살을 날로 먹고 남은 것은 매운탕에 넣어 끓여왔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더 하곤 그 친구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친구가 출근하는 길에 따라나섰다. 재첩국으로 아침을 먹고 그 친구 회사까지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이 지역에선 재첩국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친구가 안내한 곳은 사천에 있는 앞들식당. 재첩국이 나오기 전에 고등어구이와 계란말이가 먼저 나왔다.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 반찬이 이 식당을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정말 오랜만에 시원하고 깔끔한 맛의 재첩국을 먹을 수 있었다. 밥 한 공기가 금방 바닥이 났다. 이 식당의 낙지볶음도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던데 아침부터 매운 요리를 먹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사천에 있는 그 친구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했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항공우주박물관이나 보고 가란다. 이 박물관은 회사 부속 시설로 2002년 8월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항공산업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해서 그러마 했다. 어차피 오전 시간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둘이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다. 그 친구가 박물관 책임자를 불러 인사를 시킨다. 그 사람이 직접 나를 안내해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을 뺏은 것 같다. 곧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온다고 하던데 이렇게 시간을 뺏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실내도 볼 것이 너무 많았고 벽에 붙은 패널을 일일이 읽으려면 하루는 족히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건너 뛰면서 중요한 내용만 설명을 들었다. 비행 원리와 항공기 구조에 관심이 많아 그것을 중심으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 박물관에선 항공기에 어떤 수학 원리와 과학 원리들이 적용되는지를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학교에서 단순히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을 여기서 직접 비행기에 접목해보는 것이다. 덕분에 학생들이 쉽게 그 기본 원리를 이해한다고 한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인 베르누이 법칙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지만, 피타고라스 정리와 뉴튼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이 비행기에 적용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요즘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실내에서 항공기 모형만 보다가 밖으로 나오면 실제 비행기가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엔 6.25 전쟁 때 한국군이 운용했던 퇴역 항공기 13대와 미국이 제공한 퇴역 항공기 5대가 전시되고 있었다. 헬리콥터와 미사일, 전차도 보였다. B29 전폭기와 T-50 고등훈련기는 기체에 적어놓은 표식을 보고 금방 알아 보았다. 1960년대 대통령 전용기로 쓰였다는 항공기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 세트장으로 쓰였던 항공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항공기를 한 자리에 모아 놓다니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짐작이 갔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항공산업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전략산업으로 국가 안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항공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 나라는 기술력도 딸리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내수시장이 크지 않아 기술 개발이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우리는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자국내 항공기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성능을 입증한 후에야 해외시장 개척이 가능한데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듯 해외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KT-1 기본훈련기를 거쳐 T-50 고등훈련기까지 독자 생산할 수 있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언제 미국이나 러시아같은 항공산업 선진국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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