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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 – 9

산에 들다 - 히말라야

by 보리올 2013. 7. 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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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기상을 했지만 출발은 10시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페리체를 지날 때 일행 몇 명이 능선에 올라 돌을 쌓아 화정이 추모탑을 조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페리체를 떠나기 전에 거길 오르자 의견이 모아졌다. 화정이는 한국여성산악회의 아콩카구아 원정을 대비해 훈련을 받던 중 얼마 전에 북한산에서 세상을 떴다. 우리 <침낭과 막걸리> 식구들에겐 한 가족을 잃는 엄청난 슬픔이었다. 추모탑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다블람과 타부체, 로부체가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평생을 산사람으로 살았던 친구니 좋아하겠다 싶었다. 돌탑 속 화정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좋은 경치 벗삼아 편히 쉬게나.

 

페리체를 벗어나 전원이 기념 사진을 한 장 박았다. 하산에서 오는 여유 때문일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다 정신이 없다. 산을 오를 때의 긴장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그만큼 힘들게 올랐기에 하산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쇼마레를 지나 팡보체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 수제비가 일품이었다. 팡보체 고개를 내려오면서 희준, 현조의 추모탑을 다시 찾았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 지나간 길이라지만 방향이,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생소한 느낌을 준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색다른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길에서 피어나는 먼지만 없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커다란 티벳 사원이 있는 텡보체에 도착했다. 산 아래에서 가스가 밀려온다. 우리 시야에서 사원도, 로지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기후가 전형적인 쿰부의 겨울 날씨라고 한다. 여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가?       

 

트레킹을 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설산 풍경보다는 오고가는 마을에서 순진무구한 악동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카메라를 거부하는 녀석들도 나왔다. 히말라야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야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도 좋았다. 남체 위에 있는 지역에선 이 야크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인다. 야크 숫놈과 일반소를 교배해 좁교라는 종자를 얻는데, 이 좁교는 남체 아래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전국구라고나 할까.

 

호준이와 핀조를 텡보체 사원에 보내 예불 시간에 특별히 화정이 추모제를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라 했다. 예불 중에 링포체 큰스님이 간단하게 화정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단다. 시주는 알아서 내라고 해서 내 주머니에서 100불이란 꽤 큰 돈이 나갔다. 대원들도 십 여명 넘게 예불에 참석을 했다. 예불은 우리처럼 그렇게 엄숙하지 않아 좋았다. 긴 나팔같이 생긴 악기와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엄숙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염불 소리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링포체 큰스님이 화정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식당에선 카드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돈을 딴 사람이 하산해서 저녁 한 끼를 쏘겠다 약조를 하고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거금을 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필수가 그래도 돈을 좀 딴 모양이었다. 따기는 땄는데 거금을 따지는 않아 한 턱 쏘지 않아도 되니 그것 참 실속있는 친구로군. 제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야 그런 재주가 없어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였다. 대신 문경 형님이 맥주를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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