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구간도 대부분 숲길을 걷기 때문에 까다롭기는 하지만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침에 일부러 늦장을 부리며 텐트를 말린 후에야 트레일로 들어섰다. 쓰나미가 발생하는 경우 대피로를 알리는 화살표와 집결 장소를 알리는 표식이 가끔 눈에 띄었다. 불의 고리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까닭에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들어왔단 의미였다. 나무를 길게 반으로 잘라 길을 만들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그 위에 철망을 씌워 놓았다. 물웅덩이가 많은 구간은 사람들이 대개 옆으로 우회하면서 식생을 짓밟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오늘 구간도 속도가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은 대부분 진흙탕이었고 사다리도 계속해 나왔다. 컬라이트 크릭(Cullite Creek)에선 케이블 카로 계곡을 건너고, 로간 크릭(Logan Creek)은 서스펜션 브리지로 건넜다. 바다로 흘러 드는 계곡 하나를 건너기 위해 사다리 몇 개를 내려섰다가 계곡을 지나면 다시 사다리로 한참을 올라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게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로간 크릭에서 월브랜 크릭(Walbran Creek)까지도 진흙탕이 많았지만 그리 힘들진 않았다. 어떤 구간은 보드워크를 새로 정비해 놓아 걷기가 편했다. 세월이 오래된 보드워크는 그 위에 살짝 이끼가 끼거나 한쪽이 허물어져 경사가 진 경우가 많다. 행여 이슬이 맺히거나 비가 내리면 여기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가장 사고가 많아 악명이 높다. 발목을 다치거나 골절상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사람도 나온다. 우리 발걸음도 더욱 신중해졌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사고가 나면 일단 무전이 가능한 곳으로 가야 한다. 먹통이 되는 휴대폰은 아무 소용이 없다. 등대나 원주민 부락, 트레일 정비요원을 찾아 가거나 사람을 보내 국립공원 측에 연락을 해야 구조를 기다릴 수 있다. 53km 지점 표식을 지나고 케이블 카로 계곡을 건넌 뒤에야 월브랜 크릭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모두 9km를 걷는데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제 까다로운 구간도 끝이 났으니 마음의 여유를 찾아 웨스트 코스트의 비경을 감상할 차례다.

 

캠프 사이트를 둘러싼 나무엔 형형색색의 부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일종의 장식이었다. 부표에 글씨까지 새긴 것을 봐선 여길 다녀간 하이커들이 기념으로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일단 하룻밤 묵을 집을 만들어놓곤 나머지 오후 시간은 빈둥빈둥 망중한을 즐겼다. 일반적으로 여기 사람들은 하루 일정을 우리보다 짧게 잡고 이런 여유 시간을 많이 갖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빈둥거리며 여유를 부려보려고 해도 실상 쉽지는 않다. 부목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지켜 보았다. 아들은 부목 위에 누워 낮잠을 청한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이라 갈매기들이 강 하구에 자리를 잡곤 물고기 사냥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다에선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수면 위로 물줄기를 뿜는다.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또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다.

 

캠퍼 베이를 출발해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연이어 나타나는 사다리가 좀 성가셨다.

 

쓰나미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해 대피로 방향과 집결 장소를 알리는 표식이 가끔 눈에 들어왔다.

 

공처럼 둥근 모양의 나무 혹병은 자주 보았지만 이처럼 생긴 혹병은 처음 접한다.

 

속이 텅빈 나무 등걸에 들어가 간식을 먹고 있는 아들을 찍어 보았다.

 

 

 

긴 나무를 반으로 잘라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사다리의 길이도 족히 20미터는 되어 보였다.

 

 

컬라이트 크릭에 도착하기 직전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비치가 있었다.

 

케이블 카를 당겨 컬라이트 크릭을 건넜다. 강폭이 넓은 경우는 줄을 당기는데 꽤나 힘이 들었다.

 

 

상태가 좋은 보드워크와 서스펜션 브리지를 만나는 것은 우리에겐 일종의 행운이었다.

 

진흙탕 구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인 판단과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나무에 부표가 주렁주렁 매달린 월브란 크릭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곤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와 고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또 하루가 저물었다. 초저녁부터 잠을 청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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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2.09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하루 일정을 마치고 햇볕을 이불 삼아 시원한 바닷 바람을 솔솔 맞으며 통나무에 기대어 낮잠을 청하는 기분이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 떠나자 고래 잡으러~ 예전에 송창식이 불렀던 노래 가사가 떠오르던 하루였다. 사실 우린 고래를 잡으러 간 것이 아니라 고래를 알현하러 바다로 나갔다. 빅토리아 동남쪽 바다로 나가면 고래 세 가족 10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사는 곳이 있다. 먹이가 풍부한 때문인지 여기에 터전을 잡고 대대로 살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고래 가운데서 가장 영리하면서도 포악하기로 소문난 범고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어로는 킬러 웨일(Killer Whale)또는 오카(Orca)라고 부른다. 검정색 바탕에 하얀 점이 박혀 있어 쉽게 구분이 간다. 조그만 유람선에 올라 빅토리아 내항을 빠져 나왔다. 하얀 등대가 세워진 방파제를 지나니 바로 큰 바다다. 선장은 고래가 출몰하는 곳을 잘 아는지 거침없이 수면을 갈랐다. 해설을 맡은 아가씨는 고래 사진을 꺼내 들곤 고래의 이름과 나이, 신체적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 사는 고래들은 각자 이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우리 배 옆으로 고래 몇 마리가 나타났다. 먹이를 찾아 나섰는지 같은 방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다이내믹한 다이빙은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수면을 박차고 올라 물을 뿜어대는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어디서 솟아 오를지 몰라 카메라를 제대로 고정할 수 없는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런 것이 고래구경의 묘미 아닌가. 고래가 점점 멀어지자, 선장은 등대가 있는 바위섬으로 배를 몰았다. 하얀색과 검정색 띠가 반씩 섞인 등대였다. 거긴 바다사자의 쉼터였다.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고개 한 번 들어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는 여유를 부린다. 자기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경계도 느슨한 것이다. 바다사자를 마지막으로 빅토리아로 돌아왔다. 고래와 바다사자를 보러 나간 서너 시간의 항해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내항을 빠져나가며 눈에 들어온 바닷가 풍경.

 

이 방파제와 등대를 지나 큰 바다를 만났지만 파도가 그리 거세진 않았다.

 

큰 바다로 나가면 바다에 배를 세우고 고래의 움직임을 쫓는 유람선들을 만난다.

 

 

 

우리도 배 위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고래를 기다렸다. 선장은 고래를 찾느라 바빠 보였다.

 

 

 

 

드디어 고래 몇 마리가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살며시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며 고래를 지켜 보았다.

 

바다 건너편으로 미국 워싱턴 주의 올림픽 국립공원이 펼쳐져 있다.

 

 

 

 

바다사자가 떼를 이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바위섬도 둘러 보았다.

 

 

점점 멀어지는 바위섬을 뒤로 하고 빅토리아 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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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10.10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인간, 자연, 동물 전부 조화를 이루며 지킬 것 지키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카디안 트레일(Acadian Trail)도 케이프 브레튼 하이랜즈(Cape Breton Highlands) 국립공원 안에 있는 트레일이다. 세티캠프(Cheticamp)를 지나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왕복 거리는 8.4km 3~4시간이 소요된다. 바닷가 해발 제로에서 해발 365m 높이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제법 산행하는 느낌이 든다.

 

아들과 둘이 산을 오르는데 하산을 하던 사람이 우리 앞길에 흑곰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를 준다. 어느 지점에 있는지 다시 한 번 묻고는 둘이서 달리듯 걸음을 재촉해 올라갔지만 끝내 곰은 보지를 못했다. 우리와 상면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캐나다 서부에서는 곰을 볼 기회가 제법 많았는데, 노바 스코샤에 와서는 아직까지 곰을 보지 못했다.  

 

산에 오르면 세티캠프와 망망대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바다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장관이 우릴 기다리진 않았다. 바다도 너무 멀어 고래같은 것은 찾아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산을 내려와 계곡물로 아들 등목을 시켜 주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단둘이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가끔 계곡물에 등목을 시켜주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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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동부 지역에서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노바 스코샤(Nova Scotia)의 케이프 브레튼 하이랜즈(Cape Breton Highlands) 국립공원. 바닷가를 따라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도는 캐보트 트레일(Cabot Trail) 또한 아름다운 절경 코스로 유명하다. 300km에 이르는 캐보트 트레일이 처음엔 장거리 산행 코스인줄 알고 내심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포장이 된 드라이브 코스였다.

 

케이프 브레튼 하이랜즈 국립공원은 높은 산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바닷가에서 바로 솟은 해발 400~500m되는 산들이 모여 있어 제법 옹골찬 산세를 자랑한다. 푸른 바다와 해안 절벽에 이런 산세가 함께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연출한다고나 할까. 이런 풍경을 한 자리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스카이라인(Skyline) 트레일이 아닐까 싶다. 캐보트 트레일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국립공원 안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프(Loop)로 된 트레일을 한 바퀴 도는데 거리로는 9.2km. 소요 시간은 대략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오르막이 거의 없어 산행하는 느낌은 별로 없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판자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식생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캐보트 트레일과 대서양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바다는 세인트 로렌스 만에 속한다.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또한 무스(Moose)를 볼 기회가 많은 곳이라 산행하면서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아들과 둘이서 산행에 나섰다가 우리도 엄청난 크기의 무스를 불과 3m 떨어진 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척에서 무스를 바라본 행운 때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판자길 끝에 서면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수면으로 솟구치는 고래도 볼 수가 있다. 눈으론 고래를 보았지만 거리가 멀어 카메라로 잡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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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ini 2013.05.02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랑 꼭 가봐야 겠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