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의 케플러 트랙을 상징하는 키워드라 하면 럭스모어 산을 오르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산악 풍경과 두 개의 커다란 호수, 그리고 터석(Tussock)과 비치(Beech)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테아나우 호수를 내려다 보는 풍경과 능선을 뒤덮은 터석은 처음 이틀 동안 많이 보였고, 그 뒤론 마나포우리 호수(Lake Manapouri)를 보며 비치가 무성한 숲길을 걸어야 했다. 우리 말로 풀숲이라 불린다는 터석은 뉴질랜드에서만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뉴질랜드 남섬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식생이다. 특히 케플러 트랙에선 산악 풍경을 결정짓는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각종 조류들이 그 안에서 서식하며 새끼를 부화한다고 한다.

 

아이리스 번 산장은 계곡으로 내려선 위치에 있어 장쾌한 산악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비치가 우거진 숲길을 걸어 마나포우리 호숫가에 있는 모투라우 산장(Moturau Hut)까지 16.2km를 걸어야 했다. 난 산장에서 하루 더 묵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다 길을 나섰다. 오늘 전구간을 끝내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을 한 뒤였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폭우가 만든 산사태 지역이 나왔다. 여기선 빅 슬립(Big Slip)라 부르는 곳이다. 로키 포인트에서 오르막이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길은 평탄했다. 걷는 속도 또한 빨랐다. 로빈(Robin)이라 불리는 새 한 마리가 길에 내려앉아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이 녀석은 사람을 도통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사람이 반가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접근에 놀라 달아나는 곤충을 사냥하기 위한 것이다. 자연에선 먹이를 구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네 시간을 걸어 마나포우리 호수를 처음으로 만났다. 산길 옆으로 거대한 호수가 나타난 것이다. 호수가 워낙 커서 파도 소리 또한 대단했다. 거기서 30분을 더 걸어 모투라우 산장에 도착했다. 길이 좋은 편이라 거리에 비해선 일찍 닿은 것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낮잠도 한숨 잤다. 오후는 무척 여유롭게 보냈다. 카메라를 들고 몇 번인가 호숫가로 나가 홀로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흘러갔다. 원래 이 호수 이름이 모투라우였는데 백인들이 잘 못 표기하는 바람에 마나포우리라 불린다고 한다. 한때 여기에 댐을 건설하려던 움직임을 무산시키곤 대신 200m 낙차를 이용해 호숫물로 발전을 하고는 지하 터널을 통해 바다로 내보낸다 한다. 모두 헛톡 시간에 레인저에게 들은 이야기다. 대낮부터 낮잠을 잔 탓인지 밤에 잠을 이루지 못 하고 꽤 오래 뒤척거려야 했다.


이정표엔 모투라우 산장까지 6시간 걸린다 적혀 있지만 실제는 4시간 반에 닿을 수 있었다.



너도밤나무라 불리는 비치가 많았던 산길엔 고사리도 많이 보였다.




빅 슬립이라 불리는 넓은 계곡을 지났다.



로빈 한 마리가 나타나 지나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는다.



고즈넉한 숲길을 홀로 걷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길 옆으로 고사리가 많이 보이던 구간도 지났다. 오늘날 고사리는 뉴질랜드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숲길에서 벗어나 마나포우리 호수를 처음 만났다.


마나포우리 호숫가를 따라 다시 숲길을 걸었다.


모투라우 산장





여유롭게 마나포우리 호수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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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절인연 2017.08.28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올 초 1월 내내 남섬에서 있었습니다.날씨가 생각보다 추웠고 비도 많이 왔습니다. 사진 보니 비온 날짜가 적은듯한데 언제부터 언제 까지 체류 하신건가요? 여기 댓글 다시 들어오는 방법도 자신없으니 010 9060 5582 폰으로 몇글자 부탁드립니다

    • 보리올 2017.08.28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 살지 않는지라 저도 전화로 문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올해 2월 23일 퀸스타운으로 들어가 3월 13일 오클랜드에서 나왔습니다. 케플러 트랙에서 딱 하루 비를 맞았지만, 북섬에 있는 통가리로에선 며칠 계속해 비를 맞았습니다.

  2. Seattle 2017.08.29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댓글을 남겼섰는데 시애틀에 살고있는 저를 기억 하실런지 모르겠군요..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여전히 걷고 계시는군요. 정말 하이킹을 좋아하시는것 같습니다.
    하이킹을 왜? 좋아하시는지도 궁금하군요. 저도 하이킹을 좋아하는데 산장이나 텐트에서 자가면서
    계속 몇일씩 걷는건 힘들어서 마음먹었다가도 주저하게 되더군요. 2014년부터 여름방학 시작되면 식구모두
    유럽에가서 한달씩 걷고 오는데 2015년에는 텐트를 가지고 인스부르크에서 인터라켄까지 걸었습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는 캠핑장이 좋아서 쉬는데 불편한점은 없었지만 무거운 가방과 했빛이 힘들더군요.
    거친자연 속에서 자가며 걷는 보리올님은 진짜 하이커란 생각이 드는군요.^^
    올여름은 가족이 이탈리아 친퀘 테레,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돌로미테를 걷고 왔습니다. 보리올님은 전에 벌써
    걸으셨을것 같군요. 주변에 요즘 JMT도 많이 걷던데 보리올님도 걸어 보셨는지요?
    지금도 어딘가를 걷거나 계획이 있으실듯 하군요.ㅎㅎ 항상 건강하시길요.^^

    • 보리올 2017.08.29 0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기억하고 말구요. 오랜만입니다. 전 하이킹이 좋다는 것보단 자연에 안겨 보내는 시간을 무척 좋아합니다. 다행히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 어디라도 갈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죠. 올해 유럽을 걷고 오셨군요. 저도 뚜르드 몽블랑과 돌로미테 지역에서 두 달을 보내고 며칠 전애 밴쿠버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캐나다 로키를 가려고요. JMT는 그리 어렵게 생각하진 않지만 아직입니다. 절 피해 도망가진 않을테니 언젠가 가겠죠.

  3. justin 2017.09.20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아버지께서는 하루 더 산장에서 묵으셨어요? 마나포우리 호수가 있는 곳은 높이가 꽤 있을텐데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네요!

    • 보리올 2017.09.24 0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국립공원측에서 3박 4일 일정을 권하는 편이고 밀포드간 사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 그와 가능하면 동일하게 일정을 짰지.



뉴질랜드에는 그레이트 워크(Great Walk)라 불리는 아홉 개의 트레일이 있다. 우리 나라 환경부 같은 부처에서 뉴질랜드 전역에서 뛰어난 풍광을 지닌 곳을 아홉 개 골라 놓은 것이다. 각각 나름대로의 특징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에 있는 케플러 트랙(Kepler Track)도 그 중 하나다. 총 거리는 60km로 한 바퀴 도는 루프 트레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 시발점으로 아는 테아나우(Te Anau)에서 걸어서 접근할 수 있다. 여기도 공원 당국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퍼밋도 받아 들어가야 한다. 케플러 트랙 안에 세 개의 산장이 있어 보통 3 4일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 걸어보니 2 3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에서 퍼밋을 수령하곤 테아나우 호숫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스윙 게이트라는 곳까지 50분이 걸렸다. 여기까지 차로 오는 사람이 많았다. 본격적인 케플러 트랙은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숲길을 한 시간 반 가량 걸어 브로드 베이(Brod Bay)에 도착했다.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키가 큰 비치 고목 사이로 이끼와 라이킨, 고사리가 많이 보였고 키가 작은 관목도 많아 숲 속에 푸르름이 가득했다. 우리의 고사리와는 달리 키가 엄청 큰 트리 펀(Tree Fern)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시 두 시간을 넘게 숲길을 걸어 절벽 아래에 있는 쉼터에 도착해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했다.

 

쉼터를 조금 지나 숲을 벗어나니 능선이 나타났다. 터석(Tussock)이 초원을 독차지한 듯한 넓은 초원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야가 탁 트이며 사방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 아래로 테아나우 호수도, 테아나우 마을도 보였다. 그 자리에 멈춰 맘껏 풍경을 즐겼다. 부산에서 왔다는 남녀 산꾼 다섯 명을 능선에서 만났다. 이 세상의 유명 트레일을 손수 찾아 다니는 풍류객들로 보였다. 13.8km 산길을 걸어 럭스모어 산장(Luxmore Hut)에 도착했다. 먼저 침상을 확보하고 짐을 풀었다. 럭스모어 동굴에도 잠시 다녀왔다. 헤드랜턴을 가져가지 않아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침상에서 한 시간 낮잠도 즐겼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데, 부산분들이 라면을 권해 좀 얻어 먹었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에서 퍼밋을 수령했다.



테아나우 호숫가를 따라 스윙 게이트로 걸었다.


스윙 게이트를 건너면 만나는 표지판. 본격적인 케플러 트랙이 시작된다.



비치 고목과 고사리류가 많은 숲길을 걸었다.


브로드 베이








능선으로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며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럭스모어 산장


럭스모어 동굴로 가면서 만난 하이커들. 어디서나 여유만만이다.


럭스모어 동굴


레인저가 주관하는 헛톡(Hut Talk)은 무려 40분이나 걸렸다. 스토우트 죽은 사체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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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9.14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케플러 트랙은 지도와 먼 발치서 바라본 풍경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요~! 능선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막혀있던 마음이 뻥 뚫리듯이 시원시원합니다!

 

지난 번에 케이프 조지 트레일을 걷고 한 달이 지나 다시 케이프 조지를 찾았다. 그 사이에 산이나 들판에 쌓였던 눈이 모두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등대가 있는 케이프 조지 포인트(Cape George Point)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산행에 나섰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그런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가 힘이 들면 내 옆으로 와선 쭈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한다. 이런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산에 오르니 발렌타인 코브(Ballantynes Cove)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움푹 파여 들락날락거리는 해안선도 볼 수 있었다. 나무가 병이 든 것인지 줄기에 엄청난 혹을 달고 있었다. 이건 나무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잠시 착찹했던 마음이 나무 줄기에 싹이 돋아나고 지천으로 자라는 고사리를 보곤 좀 풀렸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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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이 화산 국립공원에서 가볍게 산행할 수 있는 트레일을 찾다가 이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Klauea Iki Trail)을 발견했다. 한 바퀴 돌 수 있는 루프(Loop) 트레일로 그 거리가 4마일, 6.4km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은 두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우리는 촬영팀과 보조를 맞추느라 세 시간 이상 걸었던 것 같다. 킬라우에아 이키는 킬라우에아 화산의 주분화구인 할레마우마우(Halemaumau) 바로 옆에 있는 새끼 화산을 일컫는다. 그 크기가 할레마우마우에 비해선 아주 작은 편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은 사화산이라 해도 한때 뜨거운 용암을 분출했던 분화구 위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말이다.

 

산행 기점을 출발해 바로 숲속으로 들어섰다. 제법 나무가 울창해 정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얼마를 걸었더니 122m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1959년에 용암을 내뿜었던 분화구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눈 앞에 검은색 일색인 화산암이 넓게 펼쳐졌다. 아스팔트 포장길이 지진으로 너덜너덜해진 모양과 유사했다. 여기저기 쩍쩍 갈라진 바위들이 마치 거북의 등짝을 보는 듯 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자국만 그 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 것도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함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헬로 베리(Ohelo Berry)와 오히아 레후아(Ohia Lehua)라는 식물이 화산암 위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었다.

 

용암이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바위 틈새에선 끊임없이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굴에 닿는 순간 그 열기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세 안경이 뿌옇게 되어 시야를 가린다. 수증기 안에는 유황 냄새가 배어 있었다. 분화구에서 올라오면서 이상하게 생긴 고사리도 보았다. 땅에서 얕게 자라는 우리네 고사리와는 달랐다. 하푸우 풀루(Hapuu Pulu)라는 고사리과 식물이라는데, 이것은 사람보다 훨씬 큰 고사리 나무였다. 이것도 설마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써스톤 라바 튜브(Thurston Lava Tube)에도 들렀다. 시뻘건 용암이 흘러갔던 곳이 이제는 동굴로 남은 것이다. 화산 지대에 이렇게 다양한 지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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