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8.08.06 [베트남] 하노이 ③ (2)
  2. 2016.06.23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①
  3. 2015.04.23 중국 산둥성 취푸, 공부/공림 (2)
  4. 2015.04.21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 (2)
  5. 2015.04.20 중국 산둥성 취푸 (2)



이제 하노이 지리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것인지 어디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노이 역을 지나 문묘(文廟)로 향했다. 입장료로 3만동을 지불했다. 문묘는 1070년에 지어진 사당으로 공자를 모시는 곳이었다. 과거에 유생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대학, 국자감(國子監)도 문묘 안에 있었다. 공자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쳤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얼마나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는 오래된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중국풍 건물에 여기저기 한자로 적어 놓은 문구가 있어 마치 중국의 어느 곳을 걷는 것 같았다. 한자어를 통해 대충이나마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의 상이 가운데 있었고, 그 좌우엔 안자와 자사, 증자와 맹자의 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국자감 건물에는 베트남의 대유학자 주문안(周文安; Chu Van An)의 상이, 그리고 2층엔 세 명의 왕 조각상이 있었다.

 

문묘를 빠져나오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비를 피해 엉겁결에 들어간 길거리 카페가 콩 카페(Cong Caphe)였다. 카페란 단어를 베트남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베트남에선 체인점이 많은 유명한 카페라 그런지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다. 베트콩을 컨셉으로 잡아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비슷한 장식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으로 이름난 나라인만큼 베트남 특유의 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에 연유를 넣은 커피였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커피를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잘 모르겠다. 입맛만 버린 셈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 건널목을 지났다. 기찻길을 따라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있었고 사람들도 철로를 따라 지나다니고 있었다. 기찻길 풍경이 군산에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철길을 따라 걸었다.


 



문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더니 오래된 나무가 있는 정원과 과거급제자들의 명단을 적은 비석이 나타났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 안을 둘러보았다.





 

대성전 뒤로는 예전에 유생들을 가르치던 국자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1층엔 주문안의 상이 있었다.





콩 카페에서 베트남이 자랑하는 커피를 한 잔 주문했으나 연유를 넣은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도시 빈민촌을 지나는 기찻길 풍경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비슷했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하노이 ⑤  (2) 2018.08.13
[베트남] 하노이 ④  (2) 2018.08.10
[베트남] 하노이 ③  (2) 2018.08.06
[베트남] 하노이 ②  (4) 2018.08.02
[베트남] 하노이 ①  (6) 2018.07.30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 - 캄퐁플럭  (6) 2016.05.27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8.08.22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시아에서 공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네요~ 그나저나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의 쓴맛을 싫어하는걸까요? 어떻게 연유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요? 맛이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 보리올 2018.08.22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양 사상에서 공자의 위상이야 막강 아니냐. 우리 나라와 베트남은 더 하고. 커피에 연유를 넣어 마시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난 모르겠더라.

 

남도에 근무하는 후배들 얼굴을 본다고 가는 길에 하룻밤을 전주에서 묵었다. 호젓하게 홀로 나선 길이기에 여유를 부리기가 좋았다. KTX는 비싸기도 했지만 차창 밖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일부러 무궁화호를 끊었다. 내 어릴 적에 탔던 완행열차가 그리웠지만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무궁화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옥 스타일로 번듯하게 지어 놓은 전주역을 빠져 나와 한옥마을로 향했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번에는 지도 상에 표시된 사적이나 한옥을 위주로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동행이 없으니 발걸음에 자유가 넘쳤다. 하지만 한옥마을의 전체적인 느낌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한옥 형태를 취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지만 상업 시설이 대부분이라 전통 한옥이 지닌 품격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경기전이나 풍남문 같은 사적도 있지만 사람들 관심은 문어꼬치 같은 먹자판이나 기념품 가게에 쏠려 있는 듯 했다. 전통 체험이라는 것도 너무 형식적이고 일회성으로 그쳤다. 유흥지로 변모한 한옥마을에선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밖에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이 유명하다고 찾아오는 푸른 눈의 이방인들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내심 궁금했다.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전주역사가 외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옥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서 만난 오목대(梧木臺).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기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여기서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했다고 전해진다.

 

소리문화관의 전시실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놀이마당에선 아이들이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명인명장으로부터 전통공예를 배우고 체험하는 전주공예명인관은

인적이 없어 적막이 감돌았다.

 

 

한옥민박집이 들어선 뒷골목이 오히려 내겐 정겹게 보였다.

  

 

 

 

장현식 고택과 풍락헌이라 불렸던 동헌이 한옥의 전통미를 뽐내고 있었다. 새로 지은 한옥에 비해선 품격이 남달랐다.

 

 

 

오랜 시간 유학을 가르쳤던 전주향교에는 공자 초상을 모신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걸맞게 남천교 위에 청연루(晴煙樓)라는 누각을 새로 지었다.

 

보물 308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한옥마을 옆에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풍남문 광장에는 <발목 잡지마!>라는 특이한 제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는 전동 성당은 그 우아한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공부(孔府)는 공묘 오른쪽에 바로 붙어 있었다. 출입문이 달라 공묘를 빠져나와서 5분을 걸어야 했다. 공부는 공자의 직계 자손이 대대로 살았던 저택으로 성부(聖府)라고도 불렸다. 실제 대문에 성부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공자 후손들이 얼마나 오랫 동안 귀족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재까지도 공부에는 152채의 건물에 480개나 되는 방이 있다고 한다.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힘이 들었다. 공자 가문의 종손은 송나라 때부터 연성공(衍聖公)이란 관직을 받아 집안에서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이 있었고, 뒷채로 갈수록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공부를 나와 공림(孔林)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걷기엔 좀 먼 거리라 셔틀버스가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만고장춘(萬古長春)이라 적힌 문을 지나 공림 입구에 닿았다. 공림은 지성림(至聖林)이라고 불린다. 공자묘부터 찾아갔다. 공자 묘소 앞에는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왕자를 함부로 쓸 수 없어 길게 늘여쓴 트릭도 보였다. 공자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의 무덤이 있었고, 손자 공급(孔伋)의 묘는 좀 떨어져 있었다. 공급은 자사(子思)라고도 불리는데 공자의 학맥을 이어받아 중용(中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공씨 후손들도 죽으면 공림에 묻혔다. 공자나 공리, 공지의 묘소와는 달리 야산에 초라하게 쓴 무덤들이 엄청 많았다.

 

 

 

 

 

 

 

 

 

(사진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를 성부라 부르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림은 노목들 사이로 공자와 그 후손들 묘소가 산재해 있다. 2천 년의 세월에 걸쳐 10만 명의

공자 자손들이 여기에 묻혔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저장성 항저우  (2) 2015.04.28
중국 저장성 이우  (2) 2015.04.27
중국 산둥성 취푸, 공부/공림  (2) 2015.04.23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  (2) 2015.04.21
중국 산둥성 취푸  (2) 2015.04.20
중국 산둥성 타이안, 타이산 ②  (2) 2015.04.16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5.04.23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자 공부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취푸(曲阜)는 인구 65만 명을 가진 조그만 도시지만 도시 전체가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노나라의 수도였고 중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도 여기라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공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취푸에는 소위 삼공(三孔)이라 불리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모여 있는데, 이 삼공 또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다. 삼공 모두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한 사람에 150위안을 받았다. 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시 한번 중국의 비싼 문화재 입장료에 놀랬다. 15,000자로 이루어진 논어를 모두 외우면 공짜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에 대해 황제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곳이 바로 공묘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니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만인궁장(萬仞宮墻)이라 적힌 둥근 성벽 아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연이어 나타났다. 공묘의 압권은 아무래도 대성전(大成殿)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했다고 하는데, 처마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쓴 푸른 편액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이 대성전은 베이징의 태화전, 타이안 다이먀오(岱廟)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묘 구경을 마치고 공부로 이동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5.04.2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처음에 공묘가 공자의 묘인줄 알았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유교 사상이 이 세상 많은 나라에 퍼진걸 아실까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공자(孔子)가 누구인가? 공자의 사상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를 방문한 것도 공자의 발자취를 되집어보기 위함이다. 저녁 7시가 지나 취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취푸 시내를 먼저 일견할 수 있었다. 짐을 부리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취푸가 한때 노()나라의 수도여서 그런지 우리 남대문과 비슷한 성문과 성곽이 보였다. 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장 골목을 발견했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 음식을 파는 식당을 골랐다. 회교권 음식임에도 맛은 대체적으로 훌륭했으나 술은 일체 팔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도 하지 않고 공묘(孔廟) 입구로 향했다. 아직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모처럼 조용한 아침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공묘 입구에선 매일 아침 8시면 공연이 펼쳐진다고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걸어오더니 관원 차림의 남자가 공연 시작을 알린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한 바탕 춤을 추고 난 후에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깃발을 휘두르며 힘을 과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출연해 공연을 펼치는데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향했다. 어떤 식당은 공자의 76대 손이 운영한다는 것을 광고하듯 버젓이 적어놓았다.

 

 

 

 

 

 

(사진취푸에 도착해 시장 골목에서 란저우식 요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시안(西安) 서쪽에 자리잡은 란저우는 오래 전부터 실크로드 상의 교역 도시로 발전했다.

 

 

 

 

 

 

 

(사진숙소에서 공묘 입구로 걸어가면서 마주친 취푸의 아침 풍경

 

 

 

 

 

 

 (사진공묘 입구에서 매일 아침 8시면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5.04.26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 동작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