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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1.04 [프랑스] 루르드 ③ (2)
  3. 2016.01.02 [프랑스] 루르드 ②

 

 

토마르(Tomar)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하다. 성전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는 템플 기사단은 1119년 프랑스에서 9명의 기사가 예루살렘 및 순례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세운 수도회에서 시작한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망토를 입었다고 한다. 1128년 교황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고 십자군으로 하느님을 위해 싸울 것을 서원했다. 그 이름과 활약이 알려지면서 기사단에 입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십자군 원정이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와 회원들의 기부금이나 유산을 활용해 금융업에 손을 대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템플 기사단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고 그들의 부를 탐낸 프랑스 국왕 필리프 4(Philippe IV)1307년 수많은 회원들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당시 아비뇽에 유수된 교황 클레멘트 5(Clement V)에게 요구해 1312년 수도회를 폐쇠하기에 이르렀다.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그랜드 마스터였던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도 결국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템플 기사단의 포르투갈 지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이슬람 세력과 대치하면서 국토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던 중이라 템플 기사단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디니스(Dinis) 왕은 1344년 교황을 설득해 템플 기사단의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곤 계속 활동을 하게 하였다. 대항해시대를 연 항해왕 엔리케 왕자가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였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같은 탐험가도 기사단에 속했다. 탐험에 나선 포르투갈 선박에도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사용하였다. 현재도 포르투갈에선 그리스도 기사단이 건재하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을 맡는 것이 관례다. 토마르에 있는 성은 1160년 템플 기사단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이란 이름을 지녔다. 성과 수도원이 함께 있는 구조로 포르투갈의 템플 기사단과 그 뒤를 이은 그리스도 기사단의 본거지로 쓰였다. 1983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성문을 하나 지나 자갈이 깔린 오르막을 올랐다. 명색이 그리스도 수도원이라 했는데 성벽은 무어 성처럼 아랍 풍으로 지어져 있어 좀 의아했다. 이 성벽을 통과하면 정원이 나오고 그 뒤로 수도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눈에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실내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지만 오랜 세월 개축이 되면서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가미되어 꽤 화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곳곳에 마누엘 양식이 많이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회랑과 정원이 나타났다. 아줄레주 타일을 사용해 우아함이 돋보였다. 몇 개 회랑을 거쳐 성당으로 들어섰다. 템플 기사단에 의해 초기에 지어진 원형 성전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외형은 16각형으로 각을 잡았지만 내부는 원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동안 많은 성당을 방문했지만 이 성전은 어느 것보다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장식도 무척 화려했고 그림도 많았다.

 

 

 

시청사와 광장이 있는 토마르 도심 뒤로 토마르 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이 깔린 길을 5분 정도 걸어 오르면 수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1515년에 만들어졌다는 마누엘 양식의 문은 꽤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랑과 정원이 나타나 방문객을 맞는다.

 

 

 

성물 안치소로 쓰였던 공간은 텅 비어있었지만 천장 장식은 꽤 섬세하고 화려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루살렘의 성전을 본따 지었다는 템플 기사단의 원형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원 안에 있다는 8개 회랑 가운데 하나

 

성당의 서쪽 창문은 마누엘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16세기 초에 건축되었다.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혼천의와 밧줄,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밖으로 나오다 만난 회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던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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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더니 성당 앞 광장에 이미 상당한 인파가 몰려들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포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계속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은 분명했는데 무슨 행사인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성지 순례를 온 사람 외에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나 병실용 침대에 누워 간병인과 함께 나온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니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려드는 인파를 안내하고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더니 오늘이 107일이라 곧 로사리오 축일 행사가 열릴 것이라 한다. 처음엔 로사리오 축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온 신부님에게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로사리오는 한 마디로 묵주 또는 묵주의 기도를 의미한다. 이 로사리오 축일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성 비오 5세가 교황으로 있던 1571년에 벌어진 레판토 해전에서 카톨릭 동맹군이 상대적으로 전력이 막강했던 오스만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축일을 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황도 묵주 기도를 올렸지만 유럽 전역에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권하기도 했으며, 이 전쟁의 승리가 묵주 기도에 대한 성모의 화답이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성모에게 로사리오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로사리오 회원들은 그 이전인 15세기 말부터 107일에 로사리오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한다. 한데 내가 루르드를 방문한 날이 107일이라 뜻하지 않게 로사리오 축일 행사를 보게 된 것이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성당 앞 그 넓은 광장을 사람들이 거의 다 차지했다. 행사장을 헤집고 다니며 행사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이 고유 의상을 입고 바나나, 사과, 파인애플 등 공물을 들고는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프랑스 각 도시의 깃발을 들고 단상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행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행사가 진행 중일 때 먼저 자리를 떴다. 성지를 빠져 나와 베르나데트 기념관을 찾았다. 베르나데트의 어린 시절과 성모 발현 장면 등을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고, 수녀원에 입회한 이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르데나트가 태어나고 어릴 적에 살았던 방앗간도 둘러 보았다. 2층 건물로 그리 크진 않았으나 그 안에 방앗간과 부엌, 침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 앞 광장에서 벌어진 로사리오 축일 행사

 

 

 

베르나네트 기념관에는 그녀가 겪었던 성모 발현 장면이나 수녀원에서 살았던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자료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르나데트가 태어나고 자랐던 볼리 방앗간도 잘 보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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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3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6.01.23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방에 앉아 눈 내리는 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신선놀음처럼 보입니다. 전 현재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있답니다. 사실은 그 사이에 오로라를 보러 북위 60도까지 차를 몰고 올라 갔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더군요.

 

루르드가 성모 발현지로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는 이번에 루르드를 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라는 어린 소녀가 살았다. 글을 모르던 그녀가 14살 때인 1858211일부터 716일까지 마사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에서 18차례에 걸쳐 성모가 그녀에게 나타난 것이다. 바티칸에서 이 기적을 인정하여 루르드는 하루 아침에 카톨릭 성지로 변신하게 되었다. 전세계에서 성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매년 600만 명에 이른다니 그 위세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방앗간집 딸이었던 베르나데트는 수녀원에 들어가 서른 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쳤고, 그녀가 죽은 후인 1933년에 성녀로 시성되었다.

 

호텔을 나서 다시 성지로 향했다. 날이 밝아지면서 빗방울도 점점 가늘어졌다. 우산 없이도 걸어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성 비오 10세 성당부터 들렀다. 성 비오 10세는 1903년부터 1914년까지 교황으로 있었고, 1954년에 성인으로 선포가 되었다. 성 비오 10세 성당은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1958년에 봉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성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겉으로는 아무 흔적도 없이 잔디밭만 펼쳐진 것이다. 성당이 바로 지하에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건축가들이 공동 설계한 이 성당은 콘크리트로 물고기를 형상화하였는데 중앙엔 기둥이 없었다. 길이 210m, 81m의 크기에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세련된 현대 감각에 조형미도 뛰어났고 전반적으로 단순함이 돋보였다. 수많은 성인들 그림이 성당을 돌아가며 걸려 있었다. 성녀 베르다네트와 성녀 테레사의 그림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마사비엘 동굴 위에 있는 세 개의 성당을 찾았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당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화려함에 있어서는 가장 아래에 있는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이 단연 앞섰다. 1889년에 지어진 것으로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아 성당 입구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성당 외부 벽화엔 1531년 멕시코 테페약(Tepeyac) 언덕 위에서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발현한 성모의 모습도 그려 놓았다. 내부 또한 여러 개의 채색 모자이크 종교화와 섬세한 장미 문양의 돔 지붕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그리 크지 않은 동굴 성당은 1866년 동굴 바로 위에 세워졌는데 세 성당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졌다. 마사비엘 동굴과 함께 루르드의 심장이라 불린다. 무염시태 성당은 1872년에 완공된 신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높이 70m의 탑이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이 대단했다. 이 역시 동굴 성당에 비해선 화려한 편이었다.

 

성당 밖으로 나왔더니 비가 그쳤다. 루르드 성지 뒷동산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섰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표현한 십자가의 길이 오르막을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1.5km의 구간에 조성된 이 길은 모두 14개의 장면과 예수 부활을 의미하는 빈 무덤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는 과정까지를 14개의 장면으로 나눠 야외에 조각을 해놓았다. 인물 조각상 115개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쇠로 조각한 실물 크기의 조각상은 1898년부터 1911년 사이에 제작해 설치했다고 한다. 이 길을 걷기 전에 성 비오 10세 성당 안에서 이미 추상화처럼 그림으로 그려진 십자가의 길을 본 적이 있고, 다른 지역을 여행을 하면서 이처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놓은 곳을 몇 군데 들른 적도 있어 그리 새로워 보이진 않았다.

 

 

 

 

 

 

 

지하에 지어진 성 비오 10세 성당은 간결함과 검소함이 돋보였다.

성인들을 그린 걸개그림이 끝없이 걸려 있었고, 독특한 모양의 파이프 오르간도 인상적이었다.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의 외관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외부 벽화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서의 성모 발현을 묘사한 벽화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70m의 첨탑을 자랑하는 무염시태 성당에선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14 장면으로 묘사한 루르드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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