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도에 있는 향일암을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돌산대교를 건넜다. 예전에 일출 사진 찍는다고 다녀간 곳인데 내 눈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2009년에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과 종각이 소실돼 새로 건물을 지은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예전에 느꼈던 정감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위 사이로 낸 석문마저 사라졌더라면 입장료 낸 것이 무척 아까울 뻔 했다. 하긴 새로 지은 대웅전에다 유명 관광지로 변해 버린 향일암에서 옛 정취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 싶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길 찾은 것이 좀 후회가 되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여수로 나왔다. 이순신 광장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현지인이 추천한 식당에서 서대회를 시켰는데 1인분은 팔지를 않는다고 해서 1인분 11,000원짜리를 15,000원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서대회의 새콤한 맛이 입맛을 자극했다.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내려놓고는 야경을 보러 오동도로 향했다. 이곳 야경 또한 멋지다고 들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너무나 밋밋했다. 방파제를 걸어 오동도로 들어가 음악에 맞춰 물줄기를 내뿜는 음악 분수를 보는 것으로 여수 여행을 모두 마쳤다.

 

여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돌산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향일암에 닿았다.

 

 

 

 

 

임포 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향일암으로 오르며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들을 두루 둘러 보았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 일주문을 지나 향일암에 닿았다. 새로 지은 대웅전은 화려한 단청을 뽐냈다.

 

 

 

바위 사이로 난 석문과 전각을 서로 연결하는 통로가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지인의 추천으로 찾아간 길손식당. 서대회 1인분은 팔지를 않아 돈을 더 내고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맛은 괜찮았다

 

 

 

 

밤에 산책을 나서 자산공원의 일출정과 오동도를 다녀왔다. 오동도엔 음악 분수가 설치돼 있었다.

 

'여행을 떠나다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근대골목  (2) 2018.01.11
부산 금정산 범어사  (2) 2018.01.09
[남도여행] 여수  (0) 2016.07.04
[남도여행] 여수 밤바다  (0) 2016.07.01
[남도여행] 목포  (0) 2016.06.28
[남도여행] 빛고을 광주  (0) 2016.06.27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속버스로 전주에서 광주로 이동했다. 광주는 몇 번 다녀간 도시지만 이 정도라도 여유를 가지고 도시 구경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운천저수지부터 찾았다. 도심이라 해도 좋을 위치에 저수지가 있는 것이 신기했지만,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둔 도심 속 저수지 위로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산책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발상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다리를 이용해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끊임없이 머리 위를 선회하는 전투기 소음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떴다. 국립5.18민주묘지를 가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린 곳은 뜻밖에 5.18 기념공원이었다.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5.18현황조각을 먼저 만났다. 3명의 인물상 뒤로 하늘로 솟은 관과 스테인리스 조형물이 가슴 아픈 역사를 추모하고 있었다. 각종 행사가 열리는 5.18문화센터에선 마침 <지슬>이란 제목으로 제주 4.3사건을 그린 만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수묵화로 그린 만화라 슬픔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다. 5.18부터 4.3사건까지 슬픈 역사만 접해 마음이 좀 무거웠다. 그래서 지산동 법조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 친구가 잡아 끌어 광주맛집이라는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짭조름한 보리굴비가 일품이었고 찰밥을 김에 싸 그 안에 멸치를 넣고 간장에 찍어먹는 방식도 입맛을 돋웠다. 인공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는 식당이라서 그런지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고속버스를 이용해 광주에 도착했다. 유 스퀘어(U square)라 불리는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은 꽤 크고 깨끗했다.

 

 

 

 

악취로 인한 매립 위기에서 벗어나 현재는 자연생태공원으로 변모한 운천저수지,

인공 시설물이 많아 자연스럽진 않았지만 도심에 이렇게 산책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5.18 기념공원엔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5.18현황조각 등 5.18 관련한 시설이 있었고 시민들을 위한 휴게공간과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5.18기념문화센터에선 마침 <지슬>이란 만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양쪽으로 기아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기아로는 공장 지대란 선입관과는 달리 의외로 녹음이 짙었다.

 

 

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지산동은 법조타운답게 건물마다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많았다.

 

 

 

한정식집으로 유명한 동명동 채미원, 화학조미료와 냉동식품을 쓰지 않고도 정갈한 맛을 낸다고 소문이 나있다.

 

'여행을 떠나다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도여행] 여수 밤바다  (0) 2016.07.01
[남도여행] 목포  (0) 2016.06.28
[남도여행] 빛고을 광주  (0) 2016.06.27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②  (0) 2016.06.24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①  (0) 2016.06.23
정선③ : 정선장터  (0) 2015.01.05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모처럼 다시 찾은 전주 한옥마을. 가는 날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태조로는 여전히 먹거리를 파는 집이 많았고 가게 앞에 죽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인파로 붐볐다. 그래도 특이한 점 하나는 예쁜 한복을 차려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복을 빌려주는 비즈니스가 여기선 성업 중이었다.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봐서는 이곳의 유행으로 자리잡은 것 아닌가 싶었다. 반가운 현상이었다. 전주까지 왔으니 먹거리가 빠질 수 없지 않는가. 늦은 점심은 한옥마을에 새로 생긴 삼백집에서 콩나물국밥으로 했다. 시설을 너무 깨끗하게 꾸며놓아 고사동 본점의 정취는 거의 없었다. 저녁은 한국관에서 비빔밥으로 했다. 11,000원을 받아 비싸단 느낌이 들었지만 음식은 훌륭했다. 아들이 잡아준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다. 조그만 크기의1인실였는데 방 이름도 머슴방이라 불렀다. 길이는 6m 정도 되었지만 폭이 1.5m로 엄청 좁았다. 졸지에 머슴이 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아 내 눈을 즐겁게 했다.

한옥마을에서 이렇게 한복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한복을 소재로 한 공예품도 길거리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골목 풍경이 정겨웠다.

빛 바랜 한옥도 그랬지만 퇴락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가게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한옥마을의 먹거리로 유명한 문어꼬치집이 태조로에 몇 개가 들어서 있었다.

 

 

 

한옥마을에 새로 생겼다는 삼백집 분점에 들러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식객>이란 만화에 나온 에피소드를 광고로 쓰고 있었다.

 

 

 전주 토박이의 안내로 몇 번 갔었던 한국관의 비빔밥은 맛이 크게 변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행을 떠나다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도여행] 목포  (0) 2016.06.28
[남도여행] 빛고을 광주  (0) 2016.06.27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②  (0) 2016.06.24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①  (0) 2016.06.23
정선③ : 정선장터  (0) 2015.01.05
정선② : 화암동굴  (0) 2015.01.01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남도에 근무하는 후배들 얼굴을 본다고 가는 길에 하룻밤을 전주에서 묵었다. 호젓하게 홀로 나선 길이기에 여유를 부리기가 좋았다. KTX는 비싸기도 했지만 차창 밖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일부러 무궁화호를 끊었다. 내 어릴 적에 탔던 완행열차가 그리웠지만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무궁화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옥 스타일로 번듯하게 지어 놓은 전주역을 빠져 나와 한옥마을로 향했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번에는 지도 상에 표시된 사적이나 한옥을 위주로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동행이 없으니 발걸음에 자유가 넘쳤다. 하지만 한옥마을의 전체적인 느낌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한옥 형태를 취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지만 상업 시설이 대부분이라 전통 한옥이 지닌 품격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경기전이나 풍남문 같은 사적도 있지만 사람들 관심은 문어꼬치 같은 먹자판이나 기념품 가게에 쏠려 있는 듯 했다. 전통 체험이라는 것도 너무 형식적이고 일회성으로 그쳤다. 유흥지로 변모한 한옥마을에선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밖에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이 유명하다고 찾아오는 푸른 눈의 이방인들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내심 궁금했다.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전주역사가 외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옥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서 만난 오목대(梧木臺).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기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여기서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했다고 전해진다.

 

소리문화관의 전시실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놀이마당에선 아이들이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명인명장으로부터 전통공예를 배우고 체험하는 전주공예명인관은

인적이 없어 적막이 감돌았다.

 

 

한옥민박집이 들어선 뒷골목이 오히려 내겐 정겹게 보였다.

  

 

 

 

장현식 고택과 풍락헌이라 불렸던 동헌이 한옥의 전통미를 뽐내고 있었다. 새로 지은 한옥에 비해선 품격이 남달랐다.

 

 

 

오랜 시간 유학을 가르쳤던 전주향교에는 공자 초상을 모신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걸맞게 남천교 위에 청연루(晴煙樓)라는 누각을 새로 지었다.

 

보물 308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한옥마을 옆에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풍남문 광장에는 <발목 잡지마!>라는 특이한 제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는 전동 성당은 그 우아한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운주사가 우리 남도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순천 송광사의 말사라 하지만 운주사는 석불과 석탑이 많은 사찰로 유명하다. 절 이름 또한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니 꽤나 낭만적이었다. 개인적으론 선암사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입장료를 내고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들어섰다. 일주문에 걸린 현판의 글씨가 독특해 내 눈길을 끌었다. 담장도 치지 않은 운주사의 소박함에 벌써부터 운주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석탑과 석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지인에 대한 낯가림도 없이 바로 진면목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마치 한 가족이 해바라기를 하듯 돌부처들이 바위에 기대고 서서 우리를 맞았다. 석불의 얼굴이 제대로인 것이 거의 없었다. 좀 못생겼다고 하면 예의에 어긋난 것일까?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희미한 얼굴에서 부처님의 온화한 기품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친숙함, 정겨움까지 느꼈다면 내가 오버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석불은 수십 cm의 작은 것부터 높이가 12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했다. 운주사에는 현재 석탑 12기와 석불 70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내 딴에는 석탑, 석불이 많다 생각했는데 옛날에는 산등성이를 돌아가며 1,000개의 석탑과 1,000개의 석불이 세워져 있었다니 나머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대웅전을 둘러 보았다. 우선 크거나 휘황찬란하지 않아 좋았다. 분위기도 그리 엄숙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 보았다. 여기저기 세워진 불탑과 석불을 지나 공사바위까지 올랐다. 공사바위는 운주사 뒷산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오르면 운주사가 자리잡은 작은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색으로 갈아입은 산자락과 고즈넉한 산사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절로 눈이 즐거워졌다. 날씨도 맑게 개어 기분을 돋우었다. 단풍이 든 나뭇잎에 살포시 내려앉는 한 줌의 빛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마지막으로 운주사를 유명하게 만든 와불을 보러 갔다. 천불천탑의 마지막 불상이라고 부르는 돌부처가 땅 위에 누워 있었다. 길이 12m에 폭이 10m라니 규모도 꽤 컸다. 그런데 머리 쪽이 더 낮아 제대로 균형이 잡히진 않았다. 사람들은 이 와불을 부부 와불이라 부른다. 두 기의 불상이 나란히 누워있기 때문이다. 실제는 이 불상들은 와불이 아니라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부처들이라고 한다. 이 불상이 세워졌더라면 운주사의 중심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세간에는 이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 내 생전에 이 불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 세상을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5.01.10 0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석불이 있었을적 절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저는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가 아닌 아주 오랜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을 간혹 합니다.

    • 보리올 2015.01.10 06: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주사, 정말 정감이 가더구나. 꼭 다녀 오렴. 난 천불천탑이 존재했을 것이란 이야기는 믿지 않지만 우리에게 과거는 중요하지. 그래도 과거는 미래를 바라볼 때 더욱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냐?

  2. 설록차 2015.04.12 0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많은 석공의 땀과 정성,불심이 담겨 있으니 체온이 느껴지는듯 하겠어요..
    깊은 산 속에 자리해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푸근해 보여요..

    기억에 남아 있는 가을 풍경은 이런 모습인데...그립습니다...

    • 보리올 2015.04.12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주사는 느낌이 퍽이나 좋았습니다. 불사에만 몰두하는 다른 절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절이 있나 싶었습니다. 언제 한번 다녀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