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4.21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 (2)
  2. 2015.04.20 중국 산둥성 취푸 (2)
  3. 2014.08.29 중국 쯔보(湽博) ② (4)

 

취푸(曲阜)는 인구 65만 명을 가진 조그만 도시지만 도시 전체가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노나라의 수도였고 중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도 여기라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공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취푸에는 소위 삼공(三孔)이라 불리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모여 있는데, 이 삼공 또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다. 삼공 모두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한 사람에 150위안을 받았다. 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시 한번 중국의 비싼 문화재 입장료에 놀랬다. 15,000자로 이루어진 논어를 모두 외우면 공짜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에 대해 황제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곳이 바로 공묘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니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만인궁장(萬仞宮墻)이라 적힌 둥근 성벽 아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연이어 나타났다. 공묘의 압권은 아무래도 대성전(大成殿)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했다고 하는데, 처마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쓴 푸른 편액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이 대성전은 베이징의 태화전, 타이안 다이먀오(岱廟)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묘 구경을 마치고 공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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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처음에 공묘가 공자의 묘인줄 알았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유교 사상이 이 세상 많은 나라에 퍼진걸 아실까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공자(孔子)가 누구인가? 공자의 사상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를 방문한 것도 공자의 발자취를 되집어보기 위함이다. 저녁 7시가 지나 취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취푸 시내를 먼저 일견할 수 있었다. 짐을 부리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취푸가 한때 노()나라의 수도여서 그런지 우리 남대문과 비슷한 성문과 성곽이 보였다. 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장 골목을 발견했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 음식을 파는 식당을 골랐다. 회교권 음식임에도 맛은 대체적으로 훌륭했으나 술은 일체 팔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도 하지 않고 공묘(孔廟) 입구로 향했다. 아직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모처럼 조용한 아침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공묘 입구에선 매일 아침 8시면 공연이 펼쳐진다고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걸어오더니 관원 차림의 남자가 공연 시작을 알린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한 바탕 춤을 추고 난 후에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깃발을 휘두르며 힘을 과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출연해 공연을 펼치는데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향했다. 어떤 식당은 공자의 76대 손이 운영한다는 것을 광고하듯 버젓이 적어놓았다.

 

 

 

 

 

 

(사진취푸에 도착해 시장 골목에서 란저우식 요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시안(西安) 서쪽에 자리잡은 란저우는 오래 전부터 실크로드 상의 교역 도시로 발전했다.

 

 

 

 

 

 

 

(사진숙소에서 공묘 입구로 걸어가면서 마주친 취푸의 아침 풍경

 

 

 

 

 

 

 (사진공묘 입구에서 매일 아침 8시면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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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6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 동작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중국은 우리 나라에 비해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꼭 이름있는 명승지나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 속 공원에만 가도 볼거리가 지천이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가족들이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야 우리랑 비슷했지만 한쪽 구석에서 수십 명씩 무리를 이뤄 춤을 추거나 마작, 장기를 두는 모습은 내 눈엔 좀 생소해 보였다.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대범하고 낙관적인 이유가 도대체 뭘까 궁금했다. 혹 타인과 쉽게 친해지는 유별난 DNA를 타고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이렇게 쉽게 어울려 왁자지껄 떠들고 놀면서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것 같아 좀 부럽기도 했다.

 

 

 

 

쯔보에서 만난 거리 풍경. 매연 한 가운데서 교통정리를 하는 여경, 엄청 큰 커피샵, 복권을 파는 가게도 눈길을 끌었지만 내 관심을 산 것은 차량 번호판이었다. 산동성은 과거 노()나라 땅이었기에 번호판에 노자를 처음에 놓는다. 그 뒤에 나오는 A,B,C,…는 큰 도시순이라 한다. A는 산동성의 주도인 지난(濟南), B는 두 번째 도시인 칭다오, C는 세 번째 도시인 쯔보 하는 식이었다.

 

 

 

 

 

 

 

 

 

길을 걷다가 인민공원이란 간판이 보여 그리로 향했다. 인구대국답게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공산당 선전 표어였다. 딱 보기에 중국이 이렇게 강한 나라가 된 연유는 바로 공산당 덕분이다라는 정치성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 한자 실력으로 그렇게 해석했다는 이야기다. 안으로 들어가 가족들이 공원으로 나와 함께 즐기는 현장을 둘러 보았다. 어린이 놀이터와 호숫가 산책로를 지나고 석조로 만든 벽화도 구경을 했다.

 

 

 

한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수십 명이 모여 춤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함께 춤을 추는 남녀가 부부 사이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지만 그것을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좁은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마작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직접 게임을 하는 사람들보다 그 주변에서 관전하는 훈수꾼들의 진지한 표정이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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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9.17 0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짧은 소견으로 중국인들이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 않아 보이거든요..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아님 좀 뻔뻔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소년과 멍이'는 욕심나는데요...ㅎㅎ

    • 보리올 2014.09.17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당과 뻔뻔 다 맞는 말일 겁니다. 대국이란 자부심도 강하고 뭘 모르기도 하고. 저 아이와 강아지 동상은 재미있는 착상이더군요.

  2. Justin 2014.09.29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장기판과 장기알이 참 탐납니다. 예전부터 느낀거지만 훈수둘 때가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