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로 돌아가는 길에 이정표에서 처음 듣는 이름의 국립공원을 발견했다. 푸카스콰 국립공원(Pukaskwa National Park)이라 적혀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벗어나 공원으로 들어섰다. 우연히 마주친 국립공원이지만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명색이 캐나다 국립공원인데 나름 그에 걸맞는 품격이 있을 것으로 봤다. 캐나다엔 모두 47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땅덩이가 남한의 100배나 되는데 47개면 그 지정 기준이 무척 까다롭다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보다 많이 쏘다니는 나도 이제 겨우 20곳을 다녀왔을 뿐이다. 푸카스콰 국립공원은 여름 시즌을 마치고 대대적인 시설 보수를 하고 있어 공원 입구를 차단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차단기를 넘어 걷기로 했다. 가을색이 완연한 도로엔 공사 차량만 씽씽 달릴 뿐이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2km를 걸어 방문자 센터에 닿았다.

 

하티 코브(Hattie Cove) 방문자 센터에서 가까운 비치 트레일(Beach Trail)로 들어섰다. 노스 루프(North Loop)에 있는 캠핑장에서 출발해 미들 비치(Middle Beach)를 걸은 후, 홀스슈 베이(Horseshoe Bay)와 보드워크 비치 트레일을 경유해 사우스 루프(South Loop) 캠핑장으로 돌아나오는 1.2km의 짧은 트레일이었다. 오르내림도 없었다. 숲 속을 조금 걸으니 바로 수페리어 호수(Lake Superior)가 나왔다. 이 공원은 수페리어 호수와 135km나 접해 있어 어디서나 거센 파도를 맛볼 수 있었고, 파도에 깍인 매끈한 화강암 바위와 비치로 떠내려온 부목들이 호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흑곰이나 무스, 흰머리독수리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라 했지만 우리가 본 동물은 방금 차에 치어 죽어가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가 전부였다.






차를 가지고 푸카스콰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두 발로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했다.







오대호 가운데 가장 큰 수페리어 호수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바다를 연상시켰다.

부목이 많이 쌓여있는 풍경은 마치 태평양을 보는 듯 했다.


파크 키오스크(Park Kiosk)에서 멀지 않은 하티 코브는 파도가 없이 잔잔했다.


방금 우리를 추월한 차량에 치였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몸을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 상에 있는 어느 전망대에서 또 다른 가을 풍경을 만났다.



선더베이 직전에 있는 테리 팍스(Terry Fox) 기념탑를 방문했다.

여긴 테리 팍스가 세인트 존스를 출발해 5,373km를 뛰고 암이 재발해 희망의 마라톤을 중단한 곳이다.


선더베이에서 서진을 하다가 서경 90도 지점에서 동부 시각대를 지나 중앙 시각대로 들어섰다.


온타리오를 벗어나는 기념으로 주 경계선에 세워진 온타리오 표지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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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13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 저 큰 바다같은 호수를 보고 호수라고 생각할까요? 참 땅덩어리도 호수도 스케일이 어마어마합니다!

    • 보리올 2017.12.13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수페리어 호수는 오대호 중에서 가장 큰 호수지. 그 표면적이 82,000 평방 킬로니까 남한의 80%가 넘는구나. 호수가 아니라 바다지 바다.



아이다호 남쪽에 자리잡은 크레이터스 오브 더 문(Craters of the Moon)은 엄청난 규모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지상으로 흘러나온 지역을 말한다. 뉴질랜드 북섬에도 똑 같은 지명을 가진 화산 지대가 있다. 화산이 폭발한 곳이란 것은 익히 알고 왔지만, 막상 여기 도착하니 규모도 예상보다 컸고 미국 본토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었다. 지형이 어떻기에 이곳 지명을 달의 분화구라 지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공원 안에 있는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방문자 센터부터 들렀다. 방문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양한 화산 지형을 설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산 지형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트레일 몇 군데를 걷기로 했다. 대부분 거리도 짧고 길도 평탄해 산책에 나선 사람마냥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다. 화산 활동의 결과물을 지근거리에서 직접 볼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용암이 식어 검은 색을 띤 화산석이 널려 있는 분위기가 참으로 묘했다.

 

첫 트레일은 노스 크레이터 플로우 트레일(North Crater Flow trail)였다. 용암이 지표로 솟구쳐 땅 위를 흘러간 자국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화산재와 화산탄 등 분출물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그 주변엔 죽은 나무 그루터기도 남아 있었다. 뒤틀린 그 모습이 묘하다 싶었는데 트리플 트위스트 트리(Triple Twist Tree)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다음에 찾아간 곳은 데블스 오처드 트레일(Devil’s Orchard Trail). 무슨 까닭으로 악마의 과수원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여기도 화산석 외에 죽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노란색, 주황색 지의류가 바위 표면에 자라고 있었고, 검은 땅에는 이름모를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삶을 살아가는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위 위에 앉아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도 만났다.



산악 지형에서 사막 지형으로 이어지는 픽스 투 크레이터스 시닉 바이웨이(Peaks to Craters Scenic Byway)

그레이터스 오브 더 문을 관통한다.






크레이터스 오브 더 문 방문자 센터부터 들러 화산 지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화산석 사이에 캠핑장을 마련해 놓아 가까이에서 화산을 느끼며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노스 크레이터 플로우 트레일은 0.5km의 짧은 산책로로 2,200년 전에 폭발한 용암이 흘러간 흔적을 보여준다.







0.8km 길이의 데빌스 오처드 트레일에선 죽은 나무와 꽃을 피우는 풀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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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둘째 날에도 6구간에서 10구간까지 모두 다섯 구간을 걸었다. 하루에 걸은 거리는 17km.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아 하루 거리론 딱 맞았다. 지난 번에 내려선 형제봉 입구에 다시 섰다. 6구간은 평창마을길이라 불렀다. 주택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는 구간이 많아 매력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담벼락을 높이 세운 호화주택들이 많아 더욱 그랬다. 산을 깎아내면서 이렇게 높이 올라올 것까진 없지 않은가. 이런 주택보다는 푸른 숲이나 나무를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최근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죽기 전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여길 배회했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쓸했다.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유쾌하진 않았다. 구기동으로 내려서 대로를 따라 걷다가 구기터널 위에 있는 탕춘대성 암문 위에서 7구간으로 들어섰다.

 

7구간 옛성길에서 다행스럽게도 다시 산길다운 산길을 만났다. 북한산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어 숨통이 좀 트였다.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조망명소란 안내판도 보였다. 참으로 별난 명소도 많다 싶었다. 그 때문인지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구름정원길이라 이름 붙인 8구간은 내 기대완 크게 달랐다. 이름만 들어서는 천국에 있는 산책로 같이 보였는데 숲 사이로 나무 데크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였고, 거기서 보이는 거라곤 회색 아파트밖엔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드느라 돈을 쓰나 싶었다. 이것도 모두 국민의 혈세일텐데. 자연스럽게 돌과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만들었으면 싶은데 말이다.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버린 막대를 열심히 빨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그걸 맛있다 빨아먹는 녀석이 좀 측은했다.

 

마실길이라 불리는 9구간으로 들어섰다. 이웃집에 놀러 간다는 의미를 지닌 마실이란 단어에서 정감이 묻어났다. 은평 뉴타운을 왼쪽에 끼고 걸었다. 이 지역이 은평 뉴타운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새로 조성하고 있는 한옥마을도 지났다. 길 자체는 정취가 있는 편이 아니라 따로 찍은 사진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 구간인 내시묘역길로 둘어섰다. 왕의 그림자로 살았던 내시들이 여기에 많이 묻혔다니 그 연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경천군 송금물천비라는 것만 보았을 뿐 내시의 묘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이름을 땄으면 한 군데라도 내시 묘역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북한산성 입구로 들어서면서 서울시를 벗어나 고양시로 들어섰다. 10구간은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 둘레교를 건넌 뒤 조금 더 걷고 나서야 효자동에서 마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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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을 나서며 옐로스톤 호숫가를 좀 걸었다. 이미 해가 높이 떠 구름에 걸렸다. 호수는 엄청나게 컸다. 그 둘레 길이만 177km이고 면적은 360 평방킬로미터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면적이 600 평방킬로미터이니까 대략 그 절반보다는 조금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수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 호수 주변으로 둘레길 하나 만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옐로스톤의 해발 고도가 2,400m 정도이니 북미 지역에선 이런 높이에 있는 가장 큰 호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트 썸 가이저 베이신(West Thumb Geyser Basin)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앞 숲 속에서 연기가 난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말이다. 처음엔 산불이라 생각했다. 911에 신고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웨스트 썸 간헐천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으로 분출되는 수증기가 더욱 짙어 마치 연기 같았다. 간헐천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이른 새벽에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무가 타는 듯이 수증기를 뿜어 올리는 장관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웨스트 썸 간헐천을 둘러 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예전에 여기 간헐천 중 하나인 빅콘(Big Cone) 바로 옆에서 물고기를 낚시로 잡아올려 간헐천에서 요리해 먹었다는 설명이었다. 그것을 훅 앤드 쿡(Hook & Cook)’이라 불렀단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바로 끓는 물에 삶아 먹는다는 발상이 신기했다. 요즘은 공원 당국에서 허용할 리가 없으리라. 그만큼 낭만이 줄었단 의미겠지. 

  

따로 간헐천을 한 바퀴 돈 집사람은 판자길 위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재롱떠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내게 다가와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미국산이라 더 예쁜가?”였다. 여기 다람쥐가 미국 태생이란 것을 그 때 알았다. 그 미국산이란 말에 옛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월남에 파병되었던 사촌형이 귀국하면서 선물로 건네준 미제 파카 만년필. 그 때는 미제라면 최고로 쳤다.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으니. 지금은 쓸만한 미제가 별로 없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으로 가다가 옐로스톤을 지나는 컨티넨탈 디바이드(Continental Divide)를 만났다. 일반인들에겐 좀 생소한 지리적 개념일 수도 있겠다. 캐나다 로키가 이에 해당되기에 산행하면서 자주 만났던 개념인데, ‘대륙분수령이라면 쉽게 이해하려나? 물줄기를 동해, 서해, 남해로 가르는 우리 나라 백두대간처럼 북미 대륙의 물줄기를 동서로 나누는 산줄기를 말한다. 한쪽은 대서양으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태평양으로 물을 흘려 보낸다. 마침 옐로스톤에 세 군데 컨티넨탈 디바이드 표식이 있어 그 중 한 군데에 내려 일부러 사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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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3.06.12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호호. "미국산이라 더 이쁜가?" 웃고가요~ :) 아빠도 미제 만년필을 받으시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시던 때가 있었군요! 헤헤.

  2. 보리올 2013.06.12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엔 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 많았지. 미군부대를 통해 나온 물건을 구하려 줄을 섰던 사람들도 많고.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네.

 

 

사우스 다코타에서 와이오밍으로 주 경계선을 막 넘어와 보어 버펄로 점프(Vore Buffalo Jump)라는 곳을 방문했다. 예전에 북미 인디언들이 벼랑으로 버펄로를 유인해 떨어뜨려 잡았던 곳이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연례 행사였다. 우리 도착이 늦었던지 문은 열려 있는데 돈 받는 사람은 없었다. 벼랑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집사람은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 과연 버펄로가 죽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뒤따라 떨어지는 버펄로로부터 연속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충분히 압사당할 것으로 보였다. 밑으로 걸어 내려가 버펄로 잔해를 발굴하고 있는 현장도 둘러 보았다.

 

 

 

선댄스(Sundance)에서 90번 하이웨이를 빠져 나와 데블스 타워(Devel’s Tower)로 방향을 잡았다. ‘악마의 탑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 아래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도 사우스 다코타의 마운트 러시모어처럼 블랙 힐스 국유림에 속한다. 높이 386m의 원뿔형으로 생긴 데블스 타워는 미국 내에선 유명한 랜드마크로 통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자연의 마천루라 부르기도 한다. 황야에 거칠 것 없이 홀로 우뚝 서있는 모습이 나에겐 신비롭게 보였다. 어찌 보면 나무를 잘라낸 밑둥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데블스 타워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마그마가 쏟아져 나오다가 땅 속에서 굳은 것이 후에 외곽 지층이 침식되면서 외부로 노출된 것이다. 1906년에 미국 최초의 국가 모뉴멘트(명승지)로 지정을 받았다. 당시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미국 역사를 위해 자연으로부터 빌려 왔다. 정말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 Of The Third Kind)>에서 이곳이 외계인들이 착륙하는 곳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데블스 타워를 누가 처음 올랐을까? 초등은 18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우보이였던 윌리엄 로저스(William Rogers)와 윌라드 리플리(Willard Ripley)가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어려운 구간을 돌파해 초등을 이뤄낸 것이다. 이에 얽힌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1893 7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해 그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데블스 타워 등반을 공언했고, 그 소식을 듣고 1천여 명의 구경꾼이 몰여 들었다. 정상에 서서 성조기를 꺼내 흔드는 이벤트도 준비해 당일 행사를 완전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 두 등반가의 부인들은 관중을 상대로 음료과 식사를 팔아 짭짤한 수익을 챙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엔 1년에 1,000여 명의 등반가들이 정상에 선다고 한다.    

 

해질녘 멀리서 데블스 타워를 처음 접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어두워진 시각임에도 타워 바로 밑까지 올라가 타워를 올려 보았다. 외경심이 절로 일었다. 이런 신성한 땅에는 남다른 기운이 있다지 않는가. 그런 기운을 직접 몸으로 받고 싶었다. 그래서 타워 아래 캠핑장에서 홀로 침낭을 깔고 비박을 시도했다. 침낭 밖으로 얼굴만 내놓고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았다. 곰에게 쫓겨 이 타워 위로 도망친 일곱 소녀가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인디언 전설을 조금 전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일출 시각에 맞춰 데블스 타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곤 다시 타워 아래로 다가가 2km에 이르는 타워 트레일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양한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가 있었다. 타워 아래는 위에서 떨어진 바위들로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었고, 타워는 오각형, 아니면 육각형 모양의 석주들이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도 주상절리(柱狀節理)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암벽을 타기 위해 바위로 향하는 젊은이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다람쥐들이 솔방울을 모아 겨울 식량으로 저장하기 위해 땅에 파묻는 모습도 지켜 보았다. 이 녀석들이 파묻은 곳을 잊어버려야 거기서 싹이 튼다. 엄마 나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다람쥐들의 건망증이다. 참으로 절묘한 자연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북미 인디언들이 여기서 기도를 하고 나무에 오색 천을 걸어놓은 현장도 목격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무속신앙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성지로 숭배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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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니카 2013.07.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또 봐도 신비로운 '데블스타워', 석양빛을 받은 거대한 모습은 외경심마저 들었더랍니다

  2. 보리올 2013.07.10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서 저 데블스 타워를 처음 보았을 때 난 가슴이 무척 뛰었다오. 언젠가 미국을 가면 꼭 보고 싶었던 바위였는데 실제로 그 아래 섰을 때의 가슴 설레임이란...

  3. 2013.07.11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3.07.09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고맙습니다. 박영석 대장은 이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기고 한 걸음에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저에겐 나름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어 그 친구 발자취를 찾아 언젠가 히말라야를 찾을 겁니다. 아들 손 잡고 간다면 더더욱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