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노이 지리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것인지 어디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노이 역을 지나 문묘(文廟)로 향했다. 입장료로 3만동을 지불했다. 문묘는 1070년에 지어진 사당으로 공자를 모시는 곳이었다. 과거에 유생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대학, 국자감(國子監)도 문묘 안에 있었다. 공자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쳤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얼마나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는 오래된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중국풍 건물에 여기저기 한자로 적어 놓은 문구가 있어 마치 중국의 어느 곳을 걷는 것 같았다. 한자어를 통해 대충이나마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의 상이 가운데 있었고, 그 좌우엔 안자와 자사, 증자와 맹자의 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국자감 건물에는 베트남의 대유학자 주문안(周文安; Chu Van An)의 상이, 그리고 2층엔 세 명의 왕 조각상이 있었다.

 

문묘를 빠져나오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비를 피해 엉겁결에 들어간 길거리 카페가 콩 카페(Cong Caphe)였다. 카페란 단어를 베트남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베트남에선 체인점이 많은 유명한 카페라 그런지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다. 베트콩을 컨셉으로 잡아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비슷한 장식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으로 이름난 나라인만큼 베트남 특유의 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에 연유를 넣은 커피였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커피를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잘 모르겠다. 입맛만 버린 셈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 건널목을 지났다. 기찻길을 따라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있었고 사람들도 철로를 따라 지나다니고 있었다. 기찻길 풍경이 군산에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철길을 따라 걸었다.


 



문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더니 오래된 나무가 있는 정원과 과거급제자들의 명단을 적은 비석이 나타났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 안을 둘러보았다.





 

대성전 뒤로는 예전에 유생들을 가르치던 국자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1층엔 주문안의 상이 있었다.





콩 카페에서 베트남이 자랑하는 커피를 한 잔 주문했으나 연유를 넣은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도시 빈민촌을 지나는 기찻길 풍경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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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8.22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시아에서 공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네요~ 그나저나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의 쓴맛을 싫어하는걸까요? 어떻게 연유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요? 맛이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 보리올 2018.08.22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양 사상에서 공자의 위상이야 막강 아니냐. 우리 나라와 베트남은 더 하고. 커피에 연유를 넣어 마시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난 모르겠더라.

 

남도에 근무하는 후배들 얼굴을 본다고 가는 길에 하룻밤을 전주에서 묵었다. 호젓하게 홀로 나선 길이기에 여유를 부리기가 좋았다. KTX는 비싸기도 했지만 차창 밖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일부러 무궁화호를 끊었다. 내 어릴 적에 탔던 완행열차가 그리웠지만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무궁화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옥 스타일로 번듯하게 지어 놓은 전주역을 빠져 나와 한옥마을로 향했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번에는 지도 상에 표시된 사적이나 한옥을 위주로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동행이 없으니 발걸음에 자유가 넘쳤다. 하지만 한옥마을의 전체적인 느낌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한옥 형태를 취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지만 상업 시설이 대부분이라 전통 한옥이 지닌 품격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경기전이나 풍남문 같은 사적도 있지만 사람들 관심은 문어꼬치 같은 먹자판이나 기념품 가게에 쏠려 있는 듯 했다. 전통 체험이라는 것도 너무 형식적이고 일회성으로 그쳤다. 유흥지로 변모한 한옥마을에선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밖에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이 유명하다고 찾아오는 푸른 눈의 이방인들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내심 궁금했다.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전주역사가 외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옥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서 만난 오목대(梧木臺).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기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여기서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했다고 전해진다.

 

소리문화관의 전시실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놀이마당에선 아이들이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명인명장으로부터 전통공예를 배우고 체험하는 전주공예명인관은

인적이 없어 적막이 감돌았다.

 

 

한옥민박집이 들어선 뒷골목이 오히려 내겐 정겹게 보였다.

  

 

 

 

장현식 고택과 풍락헌이라 불렸던 동헌이 한옥의 전통미를 뽐내고 있었다. 새로 지은 한옥에 비해선 품격이 남달랐다.

 

 

 

오랜 시간 유학을 가르쳤던 전주향교에는 공자 초상을 모신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걸맞게 남천교 위에 청연루(晴煙樓)라는 누각을 새로 지었다.

 

보물 308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한옥마을 옆에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풍남문 광장에는 <발목 잡지마!>라는 특이한 제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는 전동 성당은 그 우아한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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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푸(曲阜)는 인구 65만 명을 가진 조그만 도시지만 도시 전체가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노나라의 수도였고 중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도 여기라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공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취푸에는 소위 삼공(三孔)이라 불리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모여 있는데, 이 삼공 또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다. 삼공 모두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한 사람에 150위안을 받았다. 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시 한번 중국의 비싼 문화재 입장료에 놀랬다. 15,000자로 이루어진 논어를 모두 외우면 공짜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에 대해 황제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곳이 바로 공묘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니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만인궁장(萬仞宮墻)이라 적힌 둥근 성벽 아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연이어 나타났다. 공묘의 압권은 아무래도 대성전(大成殿)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했다고 하는데, 처마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쓴 푸른 편액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이 대성전은 베이징의 태화전, 타이안 다이먀오(岱廟)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묘 구경을 마치고 공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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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처음에 공묘가 공자의 묘인줄 알았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유교 사상이 이 세상 많은 나라에 퍼진걸 아실까 궁금합니다.

 

타이산(泰山)은 중국 오악(五岳)에서도 으뜸으로 여기는 산으로 역대 황제들이 여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던 곳이다. 중국사람들이 평생 한 번 오르기를 염원한다는 곳이라 호기심도 일었지만, 이곳을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속설도 내심 믿고 싶었다. 출발은 다이먀오()에서 했다. 다이먀오는 타이산의 정상인 옥황봉과 남천문의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는데,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르기 전에 이곳 다이먀오에서 먼저 제례를 올린 곳이다. 황제라고 아무나 봉선의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시황 이후 오직 72명의 황제만이 여기서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단다. 다이먀오는 황제들이 살던 황궁에 못지 않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천황전은 자금성의 태화전, 공자묘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이라 했다.

 

다이먀오를 나와 타이산으로 향했다. 처음엔 차량들이 오고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게들도 일찍 문을 열었다. 홍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타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이산 입장료가 그리 싸지 않았다. 한 사람에 127위안을 받아 산을 오르는데도 2 5천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하는 셈이다. 돈을 내고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 많았다. 그나마 외국인과 내국인을 차별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일천문에서 중천문에 이르는 구간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았다. 길은 전구간에 걸쳐 돌로 놓여 있었다. 계단길이 좀 지루하긴 했지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중천문에 이르렀다. 산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르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서 곤돌라를 갈아타고 남천문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튼튼한 두 발을 믿기로 했다.

 

 

 

 

 

 

 

 

 

 

 

(사진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뤘다는 다이먀오를 먼저 둘러 보았다.

 

 

 

 

 

 

 

 

(사진홍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타이산 산행은 돌길과 계단을 타고 올라야했다.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 어려운 몇 군데 문을 지나 중천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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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30 0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만큼 아니지만 참 많은 문을 지나쳤습니다. 문득 모든 문들이 각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 보리올 2015.04.30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문이 참 많았었지. 각각의 문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지만 그 모두를 모르고 지나쳤구나.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