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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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

 

하룻밤이 지나도 발목엔 차도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이후에 기상하라는 알베르게 규정 때문에 일찍 깨어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8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리에타가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 시간을 걸어 벨로라도(Belorado)로 들어섰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엔 일열로 각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는데 우리 태극기는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탑 위에 새들이 집을 몇 채 지어 놓았다. 종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당 뒤로 다 허물어진 성채가 보였다. 한때 위세를 떨쳤을 건물도 세월을 이기진 못한다.

 

반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는 순례자가 한 명 있었다. 왜 거꾸로 걷느냐 물었더니 한숨부터 쉰다. 자기는 체코에서 온 피터라 했다. 산티아고로 가던 중에 이탈리아 젊은이들과 어울려 야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카메라, 지갑, 여권이 모두 사라졌단다. 경찰 도움으로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물건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확인됐으나 그 친구를 잡을 수는 없었다고. 팜플로나 영사관에서 여권을 만들어 체코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올 예정이라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30년 전에 자기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직접 만든 것이라고 은근 자랑을 한다. 행색을 보니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아 10유로를 건네며 식사를 하라고 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고난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에스피노사(Espinosa)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운 맛 소시지를 넣은 오믈렛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믈렛이 아니라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 안에 계란 스크램블과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메뉴를 잘못 읽은 모양이었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진 12km의 산길로 이어졌다. 오르막을 타고 해발 1,200m 높이의 몬테스 데 오카(Montes de Oca)까지 줄곧 올라야 했다. 멀리 산 로렌쏘(해발 2,268m)도 보였다. 그리곤 한 동안 평지를 걷다가 지루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발목 통증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더 심했다. 그래도 참을만해서 다행이었다. 하긴 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숲길 공터에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었고 사람도 몇 명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매점에서 한 여자가 쫓아와 음료수를 권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잔을 건네기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마셨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잔을 건네니 그제서야 도네이션 하라고 손을 벌린다. 그러면 미리 도네이션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인상이 너무 험악해 바나나 하나를 들고 1유로를 주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삿꾼에게 보기좋게 낚인 것이다.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하나밖에 없는 알베르게라 그런지 시설이 형편없었다. 산 후안은 산토 도밍고의 제자였다. 순례자를 위해 길을 닦고 성당과 숙소를 지었다. 여기에 있는 성당도 산 후안이 12세기에 직접 지은 것이다. 산 후안은 다산의 성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무덤을 파니 하얀 벌떼가 쏟아져 나왔는데 벌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사벨 여왕이 여길 찾아와 두 차례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나고 산 후안의 무덤 앞으로 참석자 모두를 불러내더니 신부님이 대주교 십자가를 본따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목에 걸어주었다.

 

저녁 식사는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해결했다. 식당도, 음식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다. 이 순례자 메뉴는 7.50유로를 받아 다른 곳보단 저렴했으나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아니었다. 맛도 그저그랬다. 존이 함께 식사하자고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대학교수였다. 지난 해 부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자신은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고 부인만 홀로 완주를 했단다. 올해 다시 와서 나머지를 걷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로 주변에 몇 명이 둘러앉았다. 워싱턴 DC에서 온 조지 부부, 아일랜드에서 온 에드 부부, 그리고 존과 나 모두 여섯 명이 나눈 화제는 의외로 축구 이야기였다.

 

여주인 오리에타의 배웅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가 떠오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이른 새벽부터 전투기들이 창공에 하얀 띠를 남겨 놓았다.

 

비야마요르(Villamayor)를 지났다. 허름한 농가 주택들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했다.

 

 

 

 

벨로라도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였다. 예전엔 성당이 여덟 개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두 개만 남았다.

 

체코에서 왔다는 피터.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해 팜플로나로 여권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사용했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에스피노사 마을.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을 오믈렛이라 불러 주문에 약간 혼선을 빚었다.

 

 

수확을 하지 않은 해바라기 밭이 자주 나타났다.

 

 

누런 들판 사이로 난 순례길을 표지석 하나가 지키고 있다.

 

9세기에 세워졌다는 산 펠리세스(San Felices) 수도원 건물은 모두 무너져 버리고 이것만 남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희생자 추모비가 산길 한 켠에 세워져 있었다.

 

 

몬테스 데 오카를 넘는 지루한 산길이 계속되었다. 넓은 산길 위에 누군가가 돌로 부엔 까미노를 적어 놓았다.

 

산길에 매점을 차려놓고 도네이션 하라며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장삿꾼들이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인구라야 겨우 25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한글 안내문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에 있는 산 후안의 무덤도 둘러 보았다.

 

 

마을엔 식당도 없고 알베르게엔 부엌도 없었다. 알베르게의 순례자 메뉴가 유일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순례자들과 난로 주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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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랑방귀 2015.11.2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순례 관련 책을 봤는데 올리브 나무가 참 많더라고요.이곳은 해라바기 밭이 인상적이네요.

    • 보리올 2015.11.2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올리브 나무도 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진 않더군요. 봄, 여름에는 밀밭이 장관이라 하던데 제가 걸었던 10월에는 모두 수확한 후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을 많이 보았지요.

  2. 스페니 2015.11.29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그 때의 발목은 회복되셨는지요~=_=

  3. justin 2016.01.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에 사진 찍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확실히 느끼는 것은 예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일출때와 일몰때 햇살이 가장 부드럽고 따스하고 사진찍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 맞은 사진들이 색감이 틀리네요.

    • 보리올 2016.01.08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 찍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사진에 입문한다만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려면 그것도 꽤나 고행이 따르지.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선 사진의 세계를 두루 경험해 보려무나.

 

오늘도 아침으로 인스턴트 해장국에 면을 넣어 수프를 끓였다. 대전에서 온 의사 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너무 허접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접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찜찜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겠다 해서 나만 먼저 출발했다. 어둡던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산티아고를 향해 정서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늘 뒤에서 해가 돋는다. 긴 그림자 하나를 내 앞에 만들어 놓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여줬고, 길가에 자라는 풀잎이나 꽃망울엔 밤새 서리가 내려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손이 너무 시려 처음으로 장갑을 껴야만 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판초 우의를 걸친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왔다고 하는 그는 목례만 하곤 뚜벅뚜벅 길을 재촉한다.

 

두 시간을 걸어 시루에냐(Ciruena)에 도착했다. 현대식 건물로 조성된 마을엔 골프장도 있어 마치 리조트 같았다. 쉬지 않고 그냥 걸었다. 마을을 막 벗어나려는데 뭔가가 갑자기 내 발뒤꿈치를 무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 보았더니 포인터 한 마리가 등산화를 문 것이었다.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것을 봐서는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는 20여 미터 떨어져 나에게 손 한번 들어 보이곤 가만히 있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곤 강아지를 주인에게 보냈다. 저 멀리 산세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은 마치 파스텔을 칠해놓은 듯 했다. 추수가 끝난 벌판은 황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낮게 깔린 햇살을 받아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멀리 보였다. 순례길은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연결되었다. 빌로리아 출신의 목동였던 산토 도밍고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순례자를 돕고 순례길을 닦는데 여생을 바쳤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잠시 일을 멈추면 천사가 내려와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기르는 닭 두 마리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녀의 계략에 빠져 금잔을 훔친 도둑으로 누명을 쓴 독일 청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 함께 순례를 떠났던 청년의 부모는 슬픔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 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식이 교수대에 산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장에게 말했지만 시장은 식탁 위에 올려진 구운 닭이 어찌 살아날 수 있냐며 믿지를 않았다. 그 순간 식탁에 있던 닭 두 마리가 살아나 울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청년도 살아났다고 한다.

 

4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라고 할인을 받았다. 전시물이 많았으나 아무래도 내 관심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산토 도밍고 무덤과 성당 안에서 키운다는 닭 두 마리에 쏠렸다. 아무리 전설이라 해도 성당 안에서 닭을 키운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성당을 나와 그 옆에 있는 70m 높이의 종탑도 올랐다. 조망은 기대보다 못 했지만 사방으로 걸려 있는 종들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왼쪽 발목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종탑을 오르내리는데 통증이 심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목 앞부분이 아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시 여기서 쉬고 가자고 길가 벤치에 앉았다. 사과와 바나나를 꺼내 점심으로 먹었다.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도 모두 비웠다.

 

한국인들이 많이 머문다는 그라뇬(Granon)을 그냥 지나쳤다. 성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라뇬에서 2km쯤 걸었을까. 라 리오하 주를 벗어나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 자치주로 들어섰다. 이 자치주는 떵덩이가 엄청 커서 다시 수많은 작은 주로 나뉜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부르고스(Burgos) 주였다. 안내판 두 개가 길가에 세워져 순례자들을 맞았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로 들어섰더니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를 심은 밭이 나타났다. 다 익어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더 영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먹이가 풍부해 참새들은 신이 났다.

 

레데시야(Redecilla), 카스틸델카도(Castildelcado)를 지나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에 닿았다. 산토 도밍고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다. 알베르게가 두 개 있는데 모두 도네이션 제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카시오 오리에타(Acacio Orietta)란 이름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아카시오는 브라질 남편, 오리에타는 이태리 부인의 이름이었다. <연금술사>를 쓴 코엘료(Paulo Coelho)가 여기서 묵었다고 그와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코옐료의 책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숙박비로 6유로를 받고 식사비는 도네이션이라 해서 따로 10유로를 주었다. 저녁 식사는 여섯 명이 모여 함께 했다. 수프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쌀밥 위에 렌틸콩을 얹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맛도 괜찮았고 가정집 분위기가 풍겨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8일 동안 쉬지 않고 걸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양말을 벗으니 왼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며칠 쉬라는 의미인지, 천천히 걸으란 의미인지 저 윗분의 뜻을 도통 모르겠다. 사실 조그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첫날 길을 걷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티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쉬지 않고 걸으니 거기서도 통증이 생겼다. 명색이 순례라 하면서 이 정도 통증도 없이 어찌 순례를 마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참기로 했다. 하지만 발목 부상은 티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며칠 쉬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이 모두 꼬이기 때문이다.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자고 나서 다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쏘프라를 빠져 나오면서 일출을 맞았다.

 

 

풀잎과 꽃망울에 서리가 내려 앉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한 자전거 순례자가 아침 일찍 페달을 밟으며 앞질러 갔다. 처음엔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인 줄 알았다.

 

 

 

 

 

 

멀리 산세가 보이는 가운데 드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붉고 푸른 색조가 어우러져 나름 아름다웠다.

 

벌판 뒤로 저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가 보인다.

 

 

 

 

 

산토 도밍고 성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 성당 안에 닭 두 마리가 사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성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세워져 있는 종탑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라뇬에서 집집마다 물병을 문 앞에 내놓은 모습을 목격했다. 처음엔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식수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물병을 문앞에 놓으면 고양이가 거기엔 오줌을 싸지 않는단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

 

주 경계선을 넘으면서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주로 들어와 처음 만난 마을인 레데시야를 지났다.

 

웬 물동량이 그리 많은지 이 시골 도로에도 화물차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다는 알베르게. 알베르게 앞에서 코엘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베르게 여주인 오리에타가 준비한 저녁. 수프와 렌틸콩을 얹은 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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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페니 2015.11.27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량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들판이 떠오릅니다
    다음 포스팅 고맙게 기다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풍경은 기대보단 못했습니다. 이 황량한 들판의 아름다움마저 없었더라면 꽤나 실망할뻔 했지요. 누군가가 제 포스팅을 기다린다는 것이 제겐 큰 힘이 되네요.

  2. 2015.12.05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산행이나 아웃도어를 즐기신다면 겨울이라 하더라도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재고를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메세타 지역의 겨울이 혹독하다 해도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닙니다. 1~2월 낮기온이 섭씨 7~10도, 밤기온이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입니다. 물론 아주 추울 때는 영하 14~1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더군요. 추운 것은 장비가 좋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겁니다. 알베르게는 겨울철에 닫는 곳도 많지만 어느 도시나 한두 개는 연중 상시 오픈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긴 거리를 잘 조정하면 알베르게는 충분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겨울철에 가보질 않아서 100% 자신은 못하고요. 더 많은 정보는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를 조회하셔서 확인해 보시고 필요하시면 직접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06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부터 발목이 많이 안 좋아지셨군요. 산토 도밍고는 유명한 사람이었나요? 검색해도 썩 만족할만한 답이 안 나옵니다.

    • 보리올 2016.01.07 0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날부터 딱 3일간은 발목이 꽤 아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토 도밍고는 순례길에서나 유명하지. 순례자들은 그 이름을 듣고 그가 한 일을 되새기곤 한단다. 카톨릭 성인 반열에 들어간 분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