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으로 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나와 무슨 공원인가를 지나치는데 담장 너머로 한국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슨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한국정을 세운 배경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에는 한글이나 영어는 없었다.  스페인어로만 적으면 난 까막눈이 되는데 말이다. 나중에서야 이 정자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멕시코에 기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고국의 흔적을 찾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 오면 이 인류학 박물관은 꼭 봤으면 한다. 그 규모도 엄청 나지만 박물관 자체도 세계적인 수준이라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스페인 통치 이전 멕시코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 테오티우아칸과 마야 유적을 비롯해 아즈텍 문명까지 엄청난 유적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고, 각 지역별로 출토된 유적을 분리해 전시하기도 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비교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멕시코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볼 수 있는 대단한 박물관임에는 분명했다. 멕시코 문화 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57페소인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 모양의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는 기둥 하나로 넓은 지붕을 받들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조형물은 1985년 일어난 강도 8의 지진에도 끄덕 없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작품으로 그 기둥에는 멕시코 역사가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1976년 새로 지은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축구와 1970, 1986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전을 치뤘던 멕시코 시티의 아즈텍 스타디움도 모두 이 사람 작품이었다.

 

 

 

박물관 1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즈텍 문명까지 멕시코의 각기 다른 문명이 남긴 유물을 12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었고, 2층은 멕시코 민족사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보았던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신전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제 5전시실, 치첸이샤를 비롯한 많은 유적지에서 발굴한 마야 유물을 보여주는 제 10 전시실이 아무래도 내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의해 망한 마지막 문명이 아즈텍이었기에 아즈텍 유물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실 아즈텍 문명은 마야나 잉카 문명에 비해 연대적으로 그리 오래된 문명이 아니다. 아즈텍 문명은 현재 멕시코 시티 일대에 살던 아즈텍 사람들이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꽃피웠던 것인데, 우리는 마치 마야나 잉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대 문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스페인이 1521년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후 아즈텍 중심지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지역에 멕시코 시티를 건설했기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즈텍 유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유물 보존 상태도 좋았다. 아즈텍 유물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 태양의 돌이었다. 이것은 아즈텍 달력인데 그들은 1년을 오늘날처럼 365일로 정확히 계산했다고 전해 진다.

 

 

 

 

 

 

 

 

 

 

  

박물관 순례는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전시 중인 멕시코의 옛 유물이 워낙 많아 꼼꼼히 보려면 하루를 잡아도 충분치 않을 것 같지만, 반나절 보고는 어디 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만 밖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맘대로 쉴 수가 없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박물관을 보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코요아칸(Coyoacan) 역으로 갔다. 이 지하철 3호선은 가장 붐볐고 유독 잡상인들과 걸인들이 많았다. 역마다 한두 명이 승차해서는 엄청 빠른 말로 시끄럽게 떠들다가 다음 역에서 내리면 다른 잡상인들이 교대로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뜨거운 땡볕을 마다 않고 꽤 먼 거리를 걸어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정기 휴일도 아닌데 왜 문을 닫았을까. 내가 멕시코를 찾은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위함인데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러면 어쩐단 말이냐. 좀 허탈했다. 여기를 찾아온 젋은이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 멕시코에 다시 오라는 의미인가?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고 운명과 맞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던 여자다. 슬픔이 가득하고 일면 광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사진으로 본 슬픈 얼굴의 자화상은 너무 처연해 보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어디를 오고갈 때 자주 들리게 된다. 멕시코 시티 대성당이라 불리는 메트로 폴리타나 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을 찾았다. 중남미 최고의 성당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 명동 성당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1520년에 짓기 시작해 근 30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대성당을 들어가니 제단은 온통 금칠을 해놓았다. 유럽에 있는 성당과 외양은 비슷했으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는 것이 좀 달랐다. 이 대성당도 지반 침하로 바닥이 갈라지고 건물이 기우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과달루페 옛 성당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아즈텍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했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대성당을 지은 스페인 정복자에게 보내는 슬픈 영혼들의 소박한 복수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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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점 2013.08.07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멕시코엔 여러문명의 기억이 남아있네요 ^^

  2. 보리올 2013.08.07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를 다녀온 후에야 멕시코를 보는 제 시각이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SONBE님도 시간이 허락하면 꼭 한 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님의블로그도 다양한 내용으로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잘 봤습니다.

 

멕시코 시티 하면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퀴즈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어느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는데 관제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단다. 비행기에 폭약을 설치했으니 해발 2,000m 아래로 내려오면 비행기는 자동 폭발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는 영영 착륙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관제탑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종사는 처음엔 무척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기수를 남으로 돌렸단다.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갔을까요?”가 퀴즈의 내용이었다. 답은 당연 멕시코 시티였다. 왜냐 하면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은 해발 2,230m의 높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시티는 인구가 885만 명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2천만 명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엄청 큰 도시인 셈이다. 예전부터 은 생산으로 부유했던 멕시코는 지금은 옛 영화를 많이 잃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 그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분위기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은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데킬라, 코로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거기에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멕시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이만한 여행지가 어디 흔할까 싶다. , 멕시코 치안 문제는 늘 골치거리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멕시코 시티의 소칼로 광장이나 과나후아토, 칸쿤에서는 그리 위험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밖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한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은 단연 소칼로(Zocalo) 광장이다. 소칼로의 정식 명칭은 헌법 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 이 광장을 중심으로 유럽 스타일의 도심이 형성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 때문이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그들은 당시 아즈텍 최고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허물고 그 위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바로 멕시코 시티다. 대통령궁과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과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광장엔 사람들로 넘쳐 흘렀고 여기저기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열리는 시위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가건물을 설치하거나 갖가지 행사를 개최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 때문일까?

 

 

 

     

묘한 기대감에 들떠 소칼로 광장 구경에 나섰다.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진 않았다. 내가 갔을 때가 성탄절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공기 속에서 뭔가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건물에 붙인 크리스마스 장식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광장 가운데에선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어 몇 곡을 들었다. 광장 외곽 길거리에는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카드점을 치는 점쟁이는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손으로 악기를 돌리며 노래를 들려준 댓가로 동전 한 푼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디오 복장을 한 거리 악사들의 신나는 공연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어디 그 뿐인가. 알바카(Albaca)란 허브를 태운 연기로 사람에게서 사악한 영혼을 쫓아낸다는 인디오 주술사,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세 바퀴 달린 앙증맞은 택시, 그리고 옛 사람들을 그린 벽화까지 모두 달력을 장식할만한 멕시코 고유의 풍경이라 할만 했다.

 

 

 

 

 

 

 

 

 

 

       

대성당 옆으로 가니 아즈텍 신전에서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라 부르는 이곳은 입장료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밖에서도 대강의 모습은 볼 수가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전을 부숴 그 돌로 다른 건물을 지었다는데, 지하에 몇 겹으로 세워진 건물 토대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궁 안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벽화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통령궁 공식 행사 때문에 이틀간 일체 사람들 출입을 차단한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탄생지였던 과나후아토의 박물관도 문을 닫아 허탕을 쳤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소칼로 광장을 벗어나 지하철 역사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이나 역사는 좀 낡긴 했지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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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y 2013.09.14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칼로 광장에 가봤다니 부러워요ㅠㅜ 저는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다녀왔는데 멕시코 교육개혁 반대운동 시위때문에 광장이 폐쇠되서 못가봤습니다. 그래도 사진으로나 봐서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럼 좋은하루되세요!!

  2. 보리올 2013.09.15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2주를 멕시코에 계셨는데 시위 때문에 소칼로 광장에 가시지 못했단 말씀입니까? 속 많이 상하셨겠네요. 다음에 멕시코 또 오란 의미로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골목길 탐방이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부실한 아침에 배도 고프고 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달고(Hidalgo) 시장부터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안에 있는 먹자 골목에 대해선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 흘렀다.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들은 예외없이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오늘이 무슨 축제일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갑갑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을 구해 본격적으로 과나후아토 구경에 나섰다. 우선 눈에 보이는 성당이란 성당은 모두 들어가 보았다. 카톨릭 국가답게 성당의 문턱이 높지 않아 좋았다. 유럽에서 보았던 성당보다 화려하다 말하긴 어려웠지만 멕시코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노랗게 칠을 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그래도 볼만 했다. 여기에 안치된 성모상은 155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은을 생산해 공급해준 보답으로 과나후아토에 선물한 것이란다.

 

 

 

 

지도에 적힌 번호를 따라 관광지를 두루 돌아 보았다. 많은 길거리 동상과 조각품, 광장을 지나쳤다. 돈키호테 동상 외에는 딱히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났다는 박물관(Casa Diego Rivera)은 꼭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발길 닿는대로 후아레스 극장(Thatro Juarez)과 우니온 정원(Jardin de la Union)도 지났다. 시민과 관광객이 엉켜 한가롭게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라 파스 광장(Plaza de la Paz)은 시내 중심에 있다 보니 몇 번을 지나친다.

 

 

 

 

 

 

 

과나후아토 대학(Universidad de Guanajuato) 앞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침에 길을 잘못 들어 이미 지나갔던 곳이 아닌가. 아침에 본 것은 새벽 시장이 아니라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길가에 상인들이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곳도 많았다.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는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에는 신에게 바칠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계란을 넣어 오기도 했다. 성당 안으로 향하는 인파를 따라 갔다. 줄이 너무 길고 사람이 많아 한 발짝 앞으로 가는데 몇 분이 걸렸다. 순례에 동참해 성당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과나후아토에서 키스의 골목은 꼭 보라 했건만 난 그리 흥미가 없었다. 가난한 젊은 광부와 딸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연인들은 빨간 칠을 한 세 번째 계단에서 키스를 하지 않으면 불행한 일을 당한다고 한다. 오후 3시가 넘자 시내 구경을 서둘러 마감했다. 멕시코 시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터미널 가는 낡은 버스를 탔다. 요금은 5페소. 여기선 보안 검색을 하지 않는다. 5시간을 달려 멕시코 시티에 닿았다. 소칼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미고(Amigo)란 호스텔에 묵었다. 3인실을 이용했는데 하룻밤에 1인당 210페소를 주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이 가격에 아침, 저녁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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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3.08.03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베니스의 부라노섬이 연상되는 마을이에요! 형형색색 칼라풀한 집들이 시선을 확 끄는군요!!!!!! 오늘 밤 베니스에서의 여정을 추억하며 잠들어야 할 듯 해요..

  2. 보리올 2013.08.03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니스는 몇 번 다녀왔지만 부라노 섬은 갔던 기억이 없구나. 예전에 베니스 앞바다의 무슨 유리 공예품 만드는 섬에 갔었는데 거기가 부라노 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