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펙테이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8.25 [뉴질랜드] 케플러 트랙 ② (2)
  2. 2016.04.11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4 (2)



테아나우 인근에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밀포드 트랙과 루트번 트랙이 있다. 1908년 런던 스펙테이터(London Spectator)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소개된 밀포드 트랙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표현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난 그 표현에 동조하고픈 마음이 없다. 세계 여행을 하기 힘들었던 시절에 쓰여진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문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매년 성수기엔 하루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3 4일의 일정에 따라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여야 한다. 그에 비해 장쾌한 산악 풍경을 자랑하는 루트번 트랙은 일정이 자유로운 편이고 양방향 통행도 가능하다. 케플러 트랙은 밀포드 트랙과 루트번 트랙을 섞어 놓은 듯한 풍경이라 보면 된다. 일정 자체도 루트번처럼 통제가 그리 심하지 않아 좋았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강풍에 비가 내린다고 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떠올라 내심 예보가 틀리기를 바랬다. 오늘이 케플러 트랙에서 산악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 구간이기 때문이다. 8시 조금 넘어 럭스모어 산장을 출발했다. 산길이 넓고 뚜렷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한 시간 가량은 바람이 좀 셌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산 아래로 테아나우 호수가 눈에 들어왔고 그 건너편으론 멀치슨 산맥(Murchison Mountains)이 버티고 있었다. 럭스모어 산(Mount Luxmore)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닿을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이 시속 80km가 넘는 바람에 실려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능선을 걸을 때는 바람에 밀려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배낭 무게까지 합하면 100kg이 넘을 텐데도 속수무책으로 밀린다. 가끔 돌풍이 몸을 때려 바닥에 주저앉거나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럭스모어 정상에 가려던 계획도 포기해야만 했다. 배낭 커버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말았다.

 

산에서 강풍을 처음 맞는 것도 아닌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잠시라도 바람과 비를 피하려 포레스트 번(Forest Burn) 쉘터와 행잉 밸리(Hanging Valley) 쉘터를 기웃거렸지만 이미 만원이라 그냥 지나쳐야 했다. 쉬지 않고 걸은 후에야 비치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 비는 내렸지만 바람과는 작별할 수 있었다. 5시간 산행을 하고 나서야 아이리스 번 산장(Iris Burn Hut)에 도착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4.6km. 침상부터 잡고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산장이 소란해졌다. 오후 들어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들면서 숲과 초원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아이리스 번 폭포로 나들이를 갔다. 규모가 큰 폭포는 아니었지만 오고 가는 길이 예뻤다. 저녁 무렵엔 케아(Kea) 몇 마리가 산장을 찾았다. 뉴질랜드 산악 지역에 서식하는 앵무새로 배낭 지퍼를 열 정도로 영리한 녀석들이다. 관리가 허술한 배낭을 찾아 저녁 식사를 나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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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모어 산장 근처에서 스토우트(Stoat)를 잡기 위한 덫을 발견했다.



아침 날씨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산행을 시작하니 강풍과 비가 몰려왔다.



누런 터석으로 뒤덮인 산길이 약간은 황량해 보였다.


산길 아래로 테아나우 호수와 멀치슨 산맥이 보였다.


해발 1,472m의 럭스모어 산 정상





초원 지대와 능선을 지나 럭스모어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바람이 너무 거세 30분이면 왕복한다는 럭스모어 정상을 포기했다.


포레스트 번 쉘터엔 이미 대피 중인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두 개 쉘터를 지나고 빗방울이 가늘어지자 시선에 여유가 생겼다. 무지개도 나타나 눈을 즐겁게 했다.



아이리스 번 산장에 짐을 풀고 폭포를 다녀왔다.


아이리스 번 산장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는 레인저의 헛톡


알파인 앵무새인 케아는 영리하기 짝이 없어 방치된 배낭을 열기도 한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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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9.18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씨가 야속하게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짖궂게 굴었네요~ 비가 얼마나 세차게 내렸으면 럭스모어 산 정상을 코 앞에 두고 가셨을까 생각해봤습니다!

    • 보리올 2017.09.24 04: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정상이라면 어느 정도 욕심을 부리는 편인데 이 날은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더구나. 지금도 럭스모어 정상에 가지 못 한 게 좀 아쉽구나.

 

밀포드 트랙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가이드 트램핑이나 자유 트램핑 모두 숙소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밀포드 트랙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샌드플라이 포인트(Sandfly Point)에서 보트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를 건너야 하는 시각도 정해져 있어 아침부터 출발을 서둘렀다. 길이 평탄하긴 하지만 하루 걷는 거리론 다른 날보다 긴 18km6시간 안에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서 강(Arther River)을 따라 내려가며 보트쉐드(Boatshed) 쉘터를 지났다. 멕케이 폭포(MacKay Falls)도 큰 감흥 없이 둘러보았다. 아다 호수(Lake Ada)와 자이언츠 게이트 폭포(Giants Gate Falls)를 지나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닿았다. 예상보단 좀 빨리 도착한 것이다. 이렇게 3 4일의 밀포드 트랙을 모두 마쳤다. 밀포드 사운드를 건너는 조그만 보트에 몸을 실었다.

 

테아나우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밀포드 트랙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뭔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이 정도 트레킹 코스는 이 세상에 널려 있다고 본다. 물론 밀포드 트랙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세계 10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실제보다 부풀려 알려진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마케팅 효과였을까? 아니면 1908년에 <런던 스펙테이터>란 잡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랙으로 소개된 글의 영향이었을까? 아마 그 글을 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이곳만 걸은 모양이다 싶었다. 그저 걷기 편하고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라 그래도 방문할 가치는 있다는 정도가 내 평가였다. 그럼에도 예약이 밀릴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하루 입장 인원을 가이드 트램핑 50, 자유 트램핑 40명으로 제한하는 정책이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내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도 컸던 모양이다.

 

 

아서 강을 따라 놓인 산길을 걸어 밀포드 트랙의 종점으로 향했다.

 

별다른 특징이 없어 감흥도 없었던 멕케이 폭포

 

 

 

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엔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낙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수량은 제법 많았던 자이언츠 게이트 폭포

 

자이언츠 게이트 폭포 아래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강물 속을 유영하는 뱀장어가 보였다.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 드는 구름이 서서히 하늘을 덮고 있다.

 

 

밀포드 트랙의 종점인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도착했다.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마치 호수 같았던 밀포드 사운드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늘로 치솟은 산자락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보트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를 건널 때 시야에 들어온 이름 모를 폭포

 

 

밀포드 사운드를 건너 마리나에 도착함으로써 모든 일정을 마쳤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

 

테아나우로 가는 도중에 호머 터널을 통과했다. 1.2km가 넘는 터널은 상당한 경사를 지니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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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29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포드 트랙은 저에게 한국에서 잔뜩 기대하고 맛 본, 하지만 아주 깨끗하고 특유의 베트남 쌀국수의 진한 향과 맛이 없는 비싸기만한
    pho 였습니다.

    • 보리올 2016.04.29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근에 댓글을 많이 달더니 네 댓글의 표현력이 일취월장이로구나. 좋은 현상이다. 밀포드 트랙은 나에게도 아쉬움이 많이 남은 곳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