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산지로서 남아공은 신세계로 분류하지만 남아공 와인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케이프타운(Cape Town)에 도시를 건설한 얀 반 리벡(Jan van Riebeeck)1659년에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파 신도들에 의해 기술이 전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근엔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아 해외 수출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케이프타운 주변에 13개의 와인 산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스텔런보시(Stellenbosch)와 팔(Paarl), 프랑슈후크(Franschhoek), 서머셋 웨스트(Somerset West), 웰링턴(Wellington)을 통틀어 와인랜즈(Winelands)라 부른다.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여기저기 포도밭이 들어서 있고, 그 안에 하얀 벽과 간결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케이프 더치(Cape Dutch) 방식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어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웰링턴에 있는 게스트 팜(Guest Farm)에서 하루 묵었기 때문에 거기서 멀지 않은 팔의 KWV, 즉 와인 생산자 협동조합부터 찾았다. 와인 농가들이 참여한 조합으로 1918년에 설립되었다. 투어에 참가해 1시간 넘게 와인 생산 시설을 살펴보고 와인 네 종에 브랜디까지 시음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와인 저장고도 보았고,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 배럴이 멋진 조각품으로 변신한 캐시드럴 셀러(Cathedral Cellar)도 들렀다. 3m 지름에 제각각 다른 조각을 뽐내는 오크통이 32개나 도열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폰 분실과 함께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역시 팔에 있는 니더버그(Nederburg)를 다음 행선지로 택했다. 남아공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꽤 인지도가 있는 곳으로 1791년부터 와인을 생산했다. 케이프 더치 양식의 건물이 인상적이었지만, 시음 와인 네 종은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시간이 늦어져 팔에서 점심까지 해결했다. 언더 오크스(Under Oaks) 와이너리에 있는 피자 레스토랑에서 피자 한 판을 시켜 와인과 함께 먹었다. 숙소 여주인이 추천한 곳인데, 야외 테이블에 호수가 보이는 전경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와인랜즈의 중심은 스텔런보시라 할 수 있다. 남아공에서 케이프타운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다. 스텔런보시에만 130개 와이너리가 있다고 하지만, 러스트 엔 브레데(Rust en Vrede)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1694년부터 와인을 생산해 역사도 오래 되었고, 다른 곳에 비해 시설도 고급스러우며 와인평도 좋았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 만찬에서 이곳 와인이 서빙되었다고 한다. 포도밭에는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쉬라(Syrah) 등 세 종의 포도가 자라는데, 그것으로 바디감이 높은 레드 와인만 생산한다. 와인 시음은 싱글 빈야드 테이스팅(Single Vineyard Tasting)으로 했다. 1인당 120랜드로 다른 곳보단 좀 비쌌다. 시음으로 나온 레드 와인 네 종 모두 괜찮았는데, 까베르네 소비뇽과 쉬라를 섞은 1694 클래시피케이션(1694 Classification)이 그 중 더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판매가가 한 병에 200불 가까이 되었다. 이 와이너리 지하 저장고에는 와인 선진국에서 만든 고급 와인을 직접 테이스팅하고 빈 병을 벽면에 쭉 진열해 놓은 것도 내겐 퍽 인상적이었다.

 

 

 

 

 

팔에 있는 KWV 협동조합. 와인 종류가 엄청 많지만 브랜디나 세리도 생산한다.

여기서 여행 중에 마실 와인을 몇 병 구입했다.

 

 

 

 

해외 수출도 많이 하는 니더버그 와이너리는 케이프 더치 양식의 건물들이 무척 낭만적이었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으러 갔던 언더 오크스 피자 식당. 와이너리 안에 있는 호숫가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숙소 여주인의 추천으로 웰링턴에 있는 디머스폰테인(Diemersfontein)을 찾았지만 와인은 별 특징이 없어 보였다.

 

 

 

 

 

남아공 와이너리의 품격과 와인 테이스팅의 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스텔런보시의 러스트 엔 브레데.

귀국시 선물용 와인은 여기서 구입했다.

 

 

 

 

 

로버트슨(Robertson)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어 숙소 주인의 추천으로 봉 꾸라즈(Bon Courage) 와이너리를 찾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글쓰는아빠 2021.01.09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아공의 와인도 그럼 식민의 역사, 이주의 문화 중 하나로 오늘까지 온 것인가 보군요.
    볼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것과 만나는 기분입니다ㅎ
    와인의 산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오랜 세월이었네요.

    • 보리올 2021.01.10 1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인이란 술이 유럽에서 왔으니 남아공 와인 역시 유럽인의 이주와 궤를 같이 했다고 봐야죠. 역사가 꽤 됩니다. 와이너리 운영도 대부분 백인들이 하더군요.

 

슬로베니아 와인에 대해 들은 적은 없지만 의외로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야 와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소 와인에 관심은 많이 쏟는 편이라 피란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비파바 밸리(Vipava Valley)를 찾았다. 유명하진 않지만 슬로베니아 와인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피란에서 멀지 않은 이유도 한몫했다. 이 지역엔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가 17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와이너리는 낮시간이면 예약없이도 방문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오너가 대부분 와이너리에 기거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레파 비다(Lepa Vida)란 와이너리를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날따라 문을 닫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틸리아(Tilia) 와이너리로 변경을 했다. 1996년에 오픈한 와이너리로 이 또한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예약도 않고 찾아갔더니 사무실이나 시음장엔 아무도 없었다.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곤 포도밭에서 일하던 인부가 전화로 주인장을 불러주었다. 마티야스(Matjaž Lemut)란 주인장이 달려와 인사를 건넨다. 먼저 포도밭으로 이동했다. 피노 그리(Pinot Gris)와 피노 누아(Pinot Noir), 메를로 순으로 포도를 재배한다고 했다. 와인 제조 설비와 저장고를 둘러보고 오크통이 쌓여있는 시음장으로 이동해 더 많은 설명을 들었다. 스위스뿐만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와인 공부를 했다고 한다. 와인을 만드는 것이 행복하다는 소리에 약간은 부럽단 생각도 들었다. 틸리아 와이너리의 상징인 린덴나무가 그려진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이 있으니 찾아보라고도 했다. 시음장에서 레드 두 종류와 화이트 세 종류를 시음했다. 그 중에서 와이프 입맛에 맞는 와인 두 병을 샀다. 시음으로 금세 얼굴이 붉어져 한참을 쉰 다음에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틸리아 와이너리 초입에 도착하니 린덴 나무를 그린 입간판이 우릴 맞았다.

 

현대 장식과는 거리가 먼 시음장 입구가 마음에 들었다.

 

 

 

 

세 종류의 포도를 주로 재배하는 포도밭은 수확이 끝나 한가롭게 보였다.

 

 

 

 

포도를 수확해 파쇄하고 압착하는 과정을 통해 포도주스를 얻는 설비를 살펴보았다.

 

 

 

와인은 보통 오크통에 담겨 저장고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상징하는 린덴나무가 틸리아 와이너리의 심볼로 자리잡았다.

린덴나무 그림 속에는 주인장 얼굴이 숨어있다.

 

 

 

 

 

화려하거나 현대적이 아닌 시음장이 오히려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모두 다섯 종의 와인을 시음하며 모처럼 와인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세싹세싹 2019.12.24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런데서 마시는 와인은 어떤 맛일지 참 궁금하네요~! 시중에 파는 와인이랑 비교불가겠죠 ㅋㅋ

    • 보리올 2019.12.24 1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직접 생산한 와인을 와이너리 시음장에서 마시면 기분이 업되는 것은 사실이죠. 여러 가지 와인을 비교하며 맛보는 시간이 좋답니다. 맛은 더 특별나지는 않지만요.

  2. 건축창고 2019.12.24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
    와인을 이렇게 보는건 처음인데 신기하네요!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 보리올 2019.12.24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이라 오늘 처음으로 성탄 인사를 받네요. 건축창고님도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 여행하시면서 와인 테이스팅할 기회가 있으면 꼭 다녀오세요. 후기도 부탁드리고요.

  3. ☆찐 여행자☆ 2019.12.24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지만 고즈넉한 와이너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