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콩을 얹은 파스타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베르게가 소란스러워졌다. 옆방에 묵었던 아가씨 한 명이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뛰어나왔고 알베르게 오스피탈레로도 이곳저곳 분주히 움직였다. 간밤에 옆방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한 것이었다. 60대 후반의 노인네 한 명이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용변을 본다는 것이 그만 방 안에 있는 그 아가씨 배낭에다 두 차례나 쉬를 한 것이다. 경찰을 불러라, 둘이 합의를 해라 하며 알베르게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어수선한 가운데 먼저 알베르게를 떠났기 때문이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도 한 눈에 보기에 예쁜 마을 같아 보였지만 비가 내리는 탓에 좀 스산해 보였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ias)를 지나면서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사실 별로다.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비구름이 그 풍경을 가리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오늘이 딱 그랬다. 마지막 산을 오르는데 비가 내리다니 이게 뭔 조화냐 싶었다. 좁은 오솔길엔 밤송이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해 열심히 영양분을 만들어 밤송이를 만들었건만 차에, 소에 그리고 사람에 밟혀 씨앗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밤나무의 심정을 생각하니 공연히 내 속이 탄다. 알이 실한 밤을 몇 십 개 골라 배낭에 넣었다. 어디 목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를 대신해 씨를 뿌려줄 생각이었다. 길엔 소똥 역시 무척 많았다. 소들의 왕래가 잦은 것을 보면 이 마을은 목축이 주요 생계 수단인 모양이다.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해발 1,300m까지만 오르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앞으로 이런 산악 지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레온 주의 마지막 마을 라 라구나(La Laguna)를 지났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시야가 탁 트이기 시작했다. 촉촉하게 비에 젖은 가을 정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능선을 따라 비구름이 춤을 추고 산기슭은 군데군데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날이 맑았더라면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을텐데 좀 아쉽다. 능선 위로 올라서 갈리시아(Galicia) 자치주의 루고(Lugo) 주로 들어섰다. 갈리시아 문장을 새겨넣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갈리시아 자치주에 있으니 이제 목적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세운 첫 표지석에도 산티아고까지 151.5km가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산 꼭대기 부근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닿았다. 안개가 짙고 여름에도 눈이 온다는 곳인데 다행스럽게도 잠시 비가 그쳤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깔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성배가 여기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의 진위는 나도 잘 모른다. 돌로 지은 집 외에도 둥근 초가 지붕을 얹은 파요싸(Palloza)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켈틱 전통의 파요싸에는 사람과 가축이 함께 기거하기도 했고 소시지나 햄을 훈제하기도 했단다. 순례길은 바로 하산하지 않고 비슷한 고도를 유지하며 오르내림을 계속해야 했다. 해발 1,270m의 산 로케 고개(Alto do San Roque)를 지나고 오스피탈(Hospital)이란 볼 것 하나 없는 마을도 지났다. 해발 1,335m의 포이오 고개(Alto do Poio)도 가볍게 넘었다. 그 후론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까지 긴 내리막 길이 시작됐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구릉이 넘실대고 그 경사면에 조성한 푸른 초지와 목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롭게 그 위를 거니는 소들도 보였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꼭 알프스의 초원 같다며 갈리시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난 자연을 훼손한 현장을 보는 것 같아 속이 편하지 않았다. 생계가 최우선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오후의 지루함이 덮쳐올 즈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며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비를 맞기 시작해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 오후 4시경에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느라 시간을 좀 허비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취사 시설은 없었지만 방은 4인실로 꾸며 아늑하고 깨끗했다. 이태리 친구와 한 방을 썼다.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빵과 사과, 삶은 계란에 와인으로 알베르게에서 대충 해결을 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은 차분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라스 에레리아스를 지나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라 파바(La Faba)란 마을에서 만난 어느 시골집의 벽면 모습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비에 젖은 가운데도 가을 정취를 풍기는 산악 지형이 나타났다.

 

라 라구나 마을에서 초가 지붕을 얹은 건물 한 채를 발견했는데 그 용도는 잘모르겠다.

 

 

다시 산으로 오르는 중에 계곡 아래 자리잡은 마을 하나가 보였다.

 

 

능선 위에 올라 바라본 풍경. 풍경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더 넓은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갈리시아 지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표지석은 500m 간격으로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바람의 마을이란 별명을 가진 오 세브레이로에 올랐다. 파요사란 특이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오 세브레이로를 내려서면서 잔잔한 풍경과 마주쳤다.

 

 

비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

 

산 로케 고개엔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는 순례자 형상을 묘사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포이오 고개를 넘어 만난 조그만 성당 하나가 순례자에게 비를 피할 휴식처를 제공했다.

 

하산길에 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을 만났다.

 

트리아카스텔라로 들기 직전에 만난 어느 마을의 성당 입구에 두 송이의 꽃이 꽂혀 있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의 모습. 산티아고 성당과 순례자상이 눈길을 끌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농돌이 2015.12.16 2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을 단풍 멋져요 ㅎ
    젖소도 한가롭고 산악지형 넘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엄지발가락 주물르세요

    • 보리올 2015.12.17 0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을 단풍과 농촌 풍경을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소재에 정감을 많이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농돌이님도 저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군요. 저도 자연이나 시골 풍경에서 마음이 푸근해짐을 많이 느낍니다.

    • 농돌이 2015.12.17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지금 시골 소읍에서 생활하는데도 휴일이면 산으로 들로
      나갑니다 어렸을 적에 몰랐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행복해합니다 조그만 들풀꽃에서도 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늦게 알았습니다 ㅎㅎ

    • 보리올 2015.12.17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삶의 경륜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원숙해졌다는 의미겠죠. 조용히 관조할줄 아는 지혜도 터득하신 것 같고요. 부럽습니다.

    • 농돌이 2015.12.17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하신 말씀이구요, 정신없이 잡으려고 뛰다가 잠시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니까, 삶이 짧고 아까운 거죠?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산에 가면서도 책 한권 가지고 가서 점심 먹고 읽고, 졸리면 자고,,,
      삶에 순도를 높여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좀 완성된 모습으로
      지구별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좀 큰가요?

    • 보리올 2015.12.18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크지 않습니다. 그리 소망하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산에 책을 들고 가신다는 말씀은 저에게 각성제 같은 이야기네요.

  2. Justin 2016.03.15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요사라는 건물이 꼭 사람의 더벅머리 형상 같습니다 ~
    (참고로 사진 설명글 밑에 갈리시아 자치주가 아니라 지치주라고 적혀있습니다.)

    • 보리올 2016.03.15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저 특이한 건축양식이 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그 내막을 알아보진 못했다. 더벅머리 형상이란 표현이 재미있구나.

 

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살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출은 물 건너갔고 이제는 비나 어서 그치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비가 오는 줄 알았더라면 어제 만하린(Manjarin)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인데 그랬다.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우의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꾸준히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점차 날은 밝아오지만 운무가 세상을 집어 삼켜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크루쓰 데 페로(Cruz de Ferro)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무덤 위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켈트족에 이어 로마인도 봉우리나 고개에 돌을 쌓는 전통이 있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레온에 닿기 전에 준비한 돌을 올리고 나도 기도를 했다. 비 내리는 날씨라지만 사람과 십자가를 함께 찍기 위해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십자가 아래서 기도를 하거나 돌을 올려놓는 사람들의 경건한 태도에서 종교의 힘이 느껴졌다.

 

만하린으로 내려섰다. 토마스란 오스피탈레로(Hospitalero)가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해 알베르게를 만들었다. 형편없는 시설에 치장도 유치찬란했지만 그래도 중세의 분위기를 풍겨 정감이 갔다. 여기 오스피탈레로는 아침에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떠날 때마다 종을 울린다고 한다. 순례자가 다시 길 위로 나섰음을 산티아고에게 알리는 의식이라 했다. 오스피탈레로에게 말 한 마디 건네려 했지만 다른 순례자들과 수다를 떠느라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순둥이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몇 분 후에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1,517m 지점을 찍고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기슭 일부에 단풍이 들어 산색에 변화를 주고 있었지만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다.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비가 잦아 들면서 발걸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엘 아세보(El Acebo)의 가옥 구조가 산 건너편 마을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집집마다 2층에 테라스를 만들어 놓았고 그 대부분이 집 밖으로 튀어나온 구조였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밖에 있었다. 검은 석판을 지붕에 얹은 것도 특이했다. 이런 것이 엘 비에르쏘(El Bierzo) 지역의 특징인 모양이다. 언덕에서 깃발이 여러 개 휘날리는 집을 보고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새로 지은 알베르게였다. 한적한 산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산 아래 첫 마을이라 바에는 비에 젖은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에도 벽이나 창가에 화분을 걸어놓은 집이 많았는데, 산골 벽지에 살아도 주민들 마음은 여유로워 보였다. 어느 집에는 티벳불교의 불경을 적은 룽다를 걸어 놓기도 했다. 리에고의 성당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경사는 급하진 않았지만 내리막 길은 계속됐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사람사는 마을을 한꺼번에 굽어보며 산길을 걷는 묘미를 어디다 견줄까 싶었다. 몰리나세카(Molinaseca)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기도 검정색 석판으로 지붕을 해서 마을이 좀 어둡게 보였다. 마루엘로(Maruelo) 강을 건너는 페레그리노(Peregrino)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카페와 바, 그리고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도 들렀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몰리나세카를 벗어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대신 캄포(Campo)로 향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다. 포도밭이 많이 나타났는데, 포도나무가 단풍이 드니 의외로 아름다웠다. 햇빛이 나기에 우의를 벗었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폰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비에르쏘(Bierzo) 지역의 경제 중심지라 규모도 꽤 컸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시내구경에 나섰다. 폰페라다 외곽은 아파트와 콘도 등 현대식 건물이 많은 반면 도심은 중세풍의 건물이 많았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엔시나(Encina)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바실리카부터 들렀다. 정문 입구에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던 성채는 그 웅장한 모습에 시선이 끌렸으나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둘러보고 수퍼마켓에서 부식을 구입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이영호 선생이 스파게티에 돼지목살을 구웠다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방금 산 와인에 계란을 삶아 테이블에 내놓았다. 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폰세바돈을 출발해 운무에 가린 산길을 걸어 올랐다.

 

 

 

십자가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돌무덤에 올라 기도를 하거나 가져온 돌을 올려놓곤 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엔 조그만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앞 공터엔 누군가 돌로 원을 그려 놓았다.

 

 

 

그리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산기슭에 단풍이 들어 가을 분위기를 풍겼다.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여기저기 걸려 있던 만하린 알베르게. 산티아고까지 22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운 하산길에 비가 잦아들면서 덩달아 풍경도 살아났다.

 

산 아래 첫 마을인 엘 아세보 마을

 

 

리에고 마을도 엘 아세보 마을과 비슷하게 2층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루엘로 강을 끼고 자리잡은 몰리나세카 마을도 아름다웠다.

 

몰리나세카에서 캄포로 내려서다 만난 포도밭에 가을이 찾아왔다.

 

폰페라다에 있는 알베르게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중세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폰페라다의 도심을 둘러보았다.

 

 

바실리카(Basilica de Santa Maria)는 폰페라다를 대표하는 성당이었다.

 

성채 입구에 위치한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

 

 

13세기 템플 기사단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카스티오 데 로스 템를라리오스(Castillo de los Templarios)

 

저녁은 스파게티에 돼지 목살, 삶은 계란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농돌이 2015.12.16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걸으셨습니다
    20일이 넘었으니ㅡㅡ
    포도밭 가을이 예뻐요
    여긴 폭설입니다
    홧팅!

    • 보리올 2015.12.17 0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제 막판으로 접어듭니다. 가을철 포도밭이 예쁘단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드넓은 들판이 노랗고 붉은 색으로 물드는데 웬만한 단풍 저리 가라더군요. 봄에는 밀밭도 괜찮다고 하고요.

    • 농돌이 2015.12.17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럽쪽이 단풍나무는 못봤는데,,, 중간중간 포도밭, 플라타너스
      등이 단풍들으니까 그런대로 멋지던데요!

    • 보리올 2015.12.17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 동부 지역은 가을 단풍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산하의 단풍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언제 캐나다 단풍보러 한번 오시죠.

    • 농돌이 2015.12.17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싶습니다
      전 농사도 짓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 대장손이라서
      내 인생에 내가 희미합니다
      ㅠㅠㅠ

    • 보리올 2015.12.18 0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는 일도 많고 집안에서의 위치를 감안하면 자유롭게 사시기가 쉽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시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건승을 빌겠습니다.

  2. Justin 2016.02.2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 날인것 같아요 ~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애독자로서 걱정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너무 이쁩니다!

 

레온(Leon)으로 입성하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준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성의 없이 차려진 아침상이라 그런지 대부분 커피 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만 주어진 양을 충실히 먹어 치웠다. 어젯밤 코를 심하게 골았던 아가씨가 자기 때문에 잠을 설쳤으면 미안하다고 일행들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버릇 때문에 잠을 자면서도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카우에하를 빠져 나오는데 여명이 시작되었고 레온 외곽의 공장지대를 지날 즈음 해가 떠올랐다. 일출은 그리 거창하진 않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레온으로 들어섰다. 상업 지역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도심에 닿을 수 있었다. 레온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대도시답게 중세풍의 건물들이 아름다웠고 대성당을 비롯해 볼거리도 많았다.

 

실제 레온은 1세기 로마 시대에 서쪽 지역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에 의해 세워졌다.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가 왕국의 수도를 오비에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레온 왕국의 한 영지였던 카스티야가 11세기 독자적인 왕국으로 발전하고 1230년에는 카스티야 왕이었던 페르난도(Fernando) 3세가 레온의 왕위도 이어받으면서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통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 왕국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자, 레온 사람들은 레온 신 카스티야(Leon sin Castilla) 또는 레온 솔로(Leon Solo), 카스티야 없는 레온 또는 레온 혼자와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바스크나 갈리시아 지방보다 독립 열기는 훨씬 약하지만 말이다.

 

도심으로 들어가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부터 들렀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으로 쓰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대성당으로 향했다. 입장료로 5유로를 받는데 여긴 순례자 할인제가 없었다. 1205년 착공해 400년을 거쳐 완공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화려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은 그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하나같이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성가대석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레온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오르도뇨 2세의 무덤도 보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화려한 성당을 보고 나면 솔직히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종교적 위엄을 보이기 위해 사람들 고혈을 짜낸 건물이 후대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도 둘러보았다. 첫눈에도 그 크기가 대성당에 못지 않았다. 이 건물에는 성당 외에도 박물관과 로얄 판테온, 즉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Panteon de las Reyes)가 있었다.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양은 우아했으나 내부는 의외로 소박했다. 굳게 닫혀있는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도 보았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가 병이 나서 더 이상 순례를 할 수 없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를 마친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는 유료라 들어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와 페르난도와 그 후대 왕족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데도 말이다.

 

카페와 바가 많은 레온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오래 전에 스페인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튀김이었는데 이번엔 처음이었다. 먼저 감자 토르티야가 나오고 오징어 튀김은 그 뒤를 따랐다. 둘 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 오스피탈 데 산 마르코스(Hospital de San Marcos)에 도착했다. 길고 거대한 건축물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1168년 순례자 병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는 정치범 수용소로도 쓰였다가 지금은 한쪽은 호텔이, 그 반대편엔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성당을 먼저 구경하고 박물관으로 갔더니 무료 입장이란다. 전시물로는 주교들 초상화와 조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길게 뻗은 회랑과 천장 장식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박물관을 나와 산 마르코스 다리를 건너 도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레온 외곽 지대는 의외로 복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씽씽 달려 정신이 없었다. 시골로 들어서니 좀 살만했다. 16세기에 성모가 발현했다는 비르헨 델 카미노(Virgen del Camino)까진 쉽게 걸었다. 거기서 레온 대성당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야곱을 다시 만나 비야단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까지 함께 걸었다. 전에도 몇 번 만나 눈인사는 나눴지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인상이 선한 것이 꼭 예수님을 닮았다. 이 친구는 독일 바바리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다. 학교에서 은세공을 배웠는데 아직 아버지를 도와 일하고 있다고 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해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잔 샀다. 원래 이 친구는 알베르게에 묵기보다는 야영이나 헛간 등에서 묵는데 오늘은 나를 따라 알베르게로 들어와 둘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알베르게 비용을 대주려 했더니 자기도 돈 있다고 먼저 계산을 한다. 각자 저녁을 먹고는 와인을 한병 사서 야곱과 함께 마셨다.

 

 

알베르게를 나와 레온을 향해 걷는 도중에 해가 떠올랐다.

 

나지막한 고개를 오르자 멀리 레온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큰 도시에 속하는 레온으로 들어서면서 시야에 들어온 도심 풍경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카사 데 보티네스가 레온에 있었다.

동화속 궁전같은 건물이었다.

 

 

 

 

 

 

 

고딕 양식을 지닌 레온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아주 큰 성당이었다.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라는 성당과 박물관, 로얄 판테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용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커다란 건물 안에는 산 마르코스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붙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레온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감자 토르티야와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르(Calamar)를 시켰다.

 

레온을 벗어나며 언덕배기에 땅을 파서 만든 와인 저장고를 여러 개 발견했다.

 

여러 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던 독일 청년 야곱을 레온에서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독일 바바리아에서 80일을 걸어온 25살 청년이었다.

 

산 미구엘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의 어느 집 앞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과일과 비스켓이 놓여 있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했더니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식이 우릴 반긴다. 이런 속도면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비야단고스에서 맞이한 일몰.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올라 마치 거대한 화재가 난 듯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2.09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레온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유적지 같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하네요. 지금까지 봐왔던 성당들과 비교해봐도 양식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하느님께서 국민의 혈세로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은 성당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보리올 2016.02.09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온이야 한때 레온 왕국의 수도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려한 성당은 경외스럽긴 하지만 동시에 민초들의 애환도 느껴지지. 하지만 거기에 너무 민감해 하진 말거라.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가 발전을 해왔으니 말이야.

 

오전 630분에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한국인 모녀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빵과 비스켓, 주스,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이것으로 배를 채우긴 힘들지만 여기선 대부분 이렇게 아침을 때운다. 출발 준비를 끝내고 715분 알베르게를 나섰다. 밖은 깜깜했다. 어느 정도 날이 밝기를 기다릴까 했지만 한국 모녀가 먼저 출발하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 나섰다. 헤드랜턴을 밝히고 30분쯤 함께 걷다가 작별 인사를 하곤 앞으로 나섰다. 여명도, 일출도 그저 그랬다. 해가 솟은 직후에 엘 부르고 라네노(El Burgo Ranero)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햇살이 산 페드로 성당 종탑을 비춘다. 종탑엔 새들이 지은 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성당 주변으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설마 비둘기들이 저 집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라네로에서 레리에고스(Reliegos)로 향하는 순례길은 아스팔트 도로와 나란히 놓여 있어 화살표도 필요 없었다. 순례길 왼쪽으로 가로수를 심어 놓았지만 너무 앙상해 제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려 보였다. 사방으로 누런 벌판이 펼쳐진 풍경도 단조로워 심심하던 차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친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폴란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온 잭이란 친구였다.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지나쳤고 계속해 루르드와 예루살렘을 향해 걷고 있다고 했다. 파티마에서 여기까진 한 달이 걸렸단다. 예루살렘에 닿으면 총 거리가 9,000km는 될 것이라며 수첩을 꺼내 지나온 도시에서 받은 스탬프를 보여줬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이 친구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멍했지만 주머니에 있던 1유로 동전 세 개를 건네주었다.

 

11 30분 레리에고스에 도착했다. 오전에 벌써 20km를 걸은 것이다. 좀 이르긴했지만 바에서 토르티야 두 개에 와인 한 잔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냉장 보관된 토르티야를 그냥 주기에 데워달라고 했더니 몇 분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듯 했는데 그래도 차갑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부탁하기도 그래서 그냥 먹었다. 다음 마을인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는 중세시대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비르헨 데 가르시아(Virgen de Gracia) 성당은 붉은색 바탕에 하얀색을 칠해 다른 성당과는 대조적이었고, 마을로 드는 성문은 허물어져 성벽만 조금 남아 있었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은 크진 않지만 깔끔했다. 에슬라 강(Rio Esla)을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성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긴 그래도 성곽이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었다.

 

만시야에서 6km 거리에 있는 푸엔테 비야렌테(Puente Villarente)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또 다시 오후의 권태와 피로가 몰려오는구나 싶었다. 푸엔테 비야렌테로 알고 도착한 마을은 비야모로스(Villamoros)였고, 푸엔테 비야렌테는 거기서 2km를 더 걸어야 했다. 푸엔테란 이름이 들어간 마을답게 꽤나 긴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베르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마을에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알베르게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을 벗어날 지점에 이르러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30km를 넘게 걸었는데 다시 알베르게를 찾으러 되돌아갈까, 아니면 레온까지 내처 달릴까를 저울질하다가 좀더 걷기로 했다. 5km를 걸어 아르카우에하(Arcahueja)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레온 9km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곤 힘이 빠져 발걸음을 멈췄다.

 

조그만 방 두 개를 가진 알베르게에 들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석식과 조식을 포함해 18유로를 받는다. 석식으로 제공된 순례자 메뉴는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3코스의 격식은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온 안나와 둘이 식사를 했다. 행색이나 체형을 보고 처음엔 남자인줄 알았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이번엔 아주 여유롭게 걷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에 여자 네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크리스티나와 미국에서 온 여성 셋이었는데, 푸엔테 비야렌테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가 너무 지저분하고 빈대도 있어 다시 짐을 싸서 여기까지 왔단다. 그 알베르게를 찾지 못한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았다. 여자 다섯 명을 호위해 자는 공간에서 의외의 난적을 만났다. 히스패닉 계통으로 보이는 미국 여자 한 명이 어찌나 코를 크게 골던지 웬만한 남자는 저리 가라였다. 진짜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길을 걷는 도중에 일출을 맞는다. 오늘은 일출이 좀 어설펐다.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에서 만난 산 페드로 성당.

 

 

메세타 지역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좀 휑해 보였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잭이란 친구는 파티마에서 예루살렘까지 장거리 순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레리에고스 마을. 차가운 토르티야를 그냥 먹었던 기억만 남은 곳이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마을 만시야는 고풍스러움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의외로 정감이 갔다.

 

레온과 카스티야 두 지방이 연합해 자치주를 이루고 있으나 그 사이에도 알력이 많은 모양이었다.

카스티야를 빼고 레온만으로 자치주를 만들자는 정치적 격문이 만시야 어느 벽면에 적혀 있었다.

 

 

 

다른 성당과는 모양새가 달라 기억에 남은 비르헨 데 가르시아 성당

 

 

 

만시야의 산타 마리아 성당은 특이점은 없었으나 깔끔하고 소박했다.

 

중세 성곽의 도시답게 만시야엔 성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만시야에서 푸엔테 비야렌테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발견한 가을 정취

 

비야모로스는 별다른 느낌없이 그냥 지나쳤다. 도로를 따르던 길이 마을로 들어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푸엔테 비야렌테 초입에 20개의 아치를 가진 꽤 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순례자는 그 옆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르카우에하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에 들어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2.0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에서 마주친 폴란드 사람과 막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돈을 달라고해서 놀라셨겠어요. 무전여행인걸까요?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어보는걸까요?

    • 보리올 2016.02.04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말거는 것을 반긴 상황을 봐선 무전여행으로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예상밖으로 돈을 달라 손을 벌리니 그 때는 좀 당황스럽긴 하더구나.

 

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