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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12일차(온타나스~프로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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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를 삶아 감자국과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누룽지가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도 그치질 않았다. 우의를 걸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무리 가랑비라 해도 빗속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일에는 늘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곧 아스팔트 위로 올라섰다. 개울을 따라 심은 포플러 나무가 도열해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에도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길게 줄지어 있었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침 풍경이 고마웠다. 산 안톤(San Anton)엔 무너진 성당이 남아 있었다. 잔재의 규모만 보아도 예전엔 꽤 컸을 것으로 보였다. 성당 아치 문을 지나 순례길은 이어졌다. 미국에서 온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장석민씨와 둘이 앞으로 나섰다.

 

산 안톤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원 위에 봉긋하게 솟은 나지막한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 위엔 성채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성해 보이진 않았다. 그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Castrojeriz)도 눈에 들어왔다. 마을이 위치한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어 로마시대엔 금 운송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이 마을을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서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Santa Maria del Manzano) 성당을 만났다. 이 아름다운 성당은 성 야고보가 사과나무에서 성모 마리아 상을 본 곳으로 유명하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스트로헤리쓰는 성당이 몇 개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다.

 

마을을 빠져 나와 평지를 좀 걷다가 오르막 길로 접어 들어 모스테라레스(Mostelares) 고개로 올랐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고개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가끔 뒤를 돌아보면 언제 저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고갯마루엔 웬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쉩터가 있었다. 지붕만 있고 양쪽으론 뻥 뚫려 있어 바람은 피하기 어려웠다. 쉘터에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고개 건너편으로 내려서는 길도 무척 아름다웠다. 누런 평원을 하얀 줄 하나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 위를 걸어가는 순례자도 조그맣게 보였다.

 

오스피탈 데 산 니콜라스(Hospital de San Nicolas)는 이탈리아 봉사단체가 알베르게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거기서 하룻밤을 묵을까도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테로 다리를 건너자 팔렌시아(Palencia)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왔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넘어온 것이다. 이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제, 오늘 함께 걸었던 젊은 친구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카페에 들러 간단하게 점심을 샀다. 난 평소 먹던 샌드위치 대신 참치 샐러드를 시켰더니 맛은 괜찮은데 양이 너무 적었다.

 

다시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이테로 데 라 베가를 벗어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져 우의를 입었음에도 금세 옷이 젖었다. 제주도 오름처럼 너른 평원 위에 여기저기 구릉이 솟아있는 풍경이 나타났지만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빨리 해서 다음 마을에서 비를 피하고 싶었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 도착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옷은 이미 젖었고 빗줄기는 가늘어졌으니 내친 김에 조금 더 가기로 했다. 보스턴에서 왔다는 여자 둘이 물병 하나씩 들고 걷는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8일을 걷고는 돌아간다고 했다.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노랗게 물든 나뭇잎 덕분에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오후 5시가 가까워 프로미스타(Fromista)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진 산 마틴 성당은 한때 베네딕트 수도원이었지만 수도원은 이미 사라졌고 성당도 1904년에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성당은 단순하고 검소해 보여 인상은 좋았다. 그런데 성당 안에 솔직히 볼 것도 없는데 왜 입장료로 1유로를 받는지 모르겠다. 성당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카페에서 토르티야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고 왔더니 미국 자매가 35km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장석민씨는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두 자매와 만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자매가 침대에서 빈대를 발견했다고 잠시 소동이 벌어졌다. 알베르게 직원이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분개한다. 약을 사다가 침대에 뿌렸다. 이 알베르게는 시설도 별로인데 직원들까지 불친절하다.

 

 

가랑비를 맞으며 빗길을 걸어 온타나스를 벗어났다.

 

 

콘벤토 데 산 안톤(Convento de San Anton) 성당은 오랜 세월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카스트로헤리쓰의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 성당.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나지막한 산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의 마을 정경. 마을 뒤로 다 무너진 성채가 보인다.

 

모스테라레스 고개에 올라 방금 지나온 카스트로헤리쓰를 뒤돌아 보았다.

 

 

메세타 지역을 지나는 순례길이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도 보였다.

 

 

 

이테로 다리를 건너면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들어선다.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 하얀 색을 칠한 건물이 많아 깨끗해 보였다.

 

이테로 데 라 베가에 있는 카페에서 참치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져 옷이 젖은 채로 길을 걸어야 했다.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 보아디야 델 카미노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 비가 그쳐 편한 마음으로 보아디야 마을을 둘러보았다.

 

 

 

카스티야 운하를 따라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로수 길을 걸었다.

 

곡창지대 한 가운데 자리잡은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졌다는 산 마틴 성당은 20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데

왜 프로미스타에 그 표식이 세워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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