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새벽 5시 기상, 6시 출발로 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 오후에 쉬는 시간이 많다. 그 외에도 나에겐 산길에서 일출을 맞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청정무구 그 자체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름다운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아무 댓가도 없이 무한정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해가 떠오른 다음에 출발해서 맞이하는 풍경과는 차이가 있다. 거기에 잠깐씩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우리 일행들은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여기는 인간의 교만과 허풍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오늘은 속도를 내지 않고 힘들어하는 젊은 후배들을 돌보며 후미로 왔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배낭을 대신 메기도 하고 조금만 더 힘내라 격려도 보냈다. 베르 카르카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선두는 식사를 마치고 벌써 출발을 하고 없었다. 다시 탕둥 콜라로 내려서는 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올라왔나 싶었다. 이 유별난 경사 구간 때문에 다른 코스에 비해 더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탕둥 콜라로 내려섰다. 차가운 강물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베르 카르카로 오르던 때에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인데 이젠 상황이 다르다. 일주일만에 때 빼고 광을 냈으니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일주일 동안이나 머리를 감지 않았는데도 그리 가렵거나 불편하지 않으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난 영락없는 네팔 체질인가? 레테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반갑다. 다리를 건너 갈길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레테 정도면 문명으로의 귀환이라 부를만 했다.

 

지난 번 묵었던 레테 게스트하우스 뒤뜰에 텐트를 쳤다. 내일이면 현지 스탭들이 카트만두로 먼저 돌아가기 때문에 한 대장이 스탭들을 위해 오늘 밤 양을 한 마리 잡으라 했다. 이호준은 양을 잡는 모습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음식 취재의 내노라는 베테랑이니 이 기회를 놓치긴 아깝겠지. 캠핑장에 둘러앉아 양고기 두루치기를 안주삼아 술잔이 돌아간다. 고산병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까닭에 저녁 식탁엔 댓병 소주까지 등장을 했다. 이 무거운 소주를 누가 지금까지 보관을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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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해인 2013.01.14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위에서 직접 잡은 신선한 양고기를 안주 삼아 한 잔 원샷하는 느낌은 어떨까요? 비록 저는 양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아주 끝내줄 것 같아요!

  2. 보리올 2013.01.15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넌 술도 못하면서 원샷이니 양고기 안주니 하며 술집 분위기만 내냐? 산위에서 마시는 한 잔 술이 부러우면 너도 따라오렴.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레테에서 4일에 걸쳐 올라온 길을 이틀에 내려가기로 했다. 이젠 고소 적응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걷는 속도를 빨리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베이스 캠프 출발을 서둘렀다. 새벽 5시 기상, 6시 출발로 운행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미리스티 강을 따라 올라온 길을 되밟아 갔다. 날씨가 맑아 운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미리스티 강을 건너기 위해 내려왔던 경사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이 오늘 가장 고된 일이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힘겹게 올라야 했다. 모두들 노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땡볕에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점심으로 지급받은 주먹밥과 삶은 계란, 감자로 요기를 했다. 먼 거리를 운행하거나 이동하는 중간에 부억을 설치하기 어려울 때 이런 방법을 많이 쓴다.

 

오늘은 제법 빨리 걸었다. 이미 지나갔던 길이라 사진 찍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닐기리 베이스 캠프에 마련한 야영장에 도착했다. 얀과 함께 스탭들이 텐트치는 것을 거들었다. 얀은 이런 일을 즐겨한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원정 내내 한국식 식사도 마다 않던 이 프랑스 돌쇠가 원정이 끝날 쯤에 걸린 감기 때문에 양 콧구멍에 휴지를 말아 넣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텐트 옆에 누워 모처럼 여유롭게 해바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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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엄청난 양떼가 다리를 건넌다고 소란을 피웠다. 사카이 다니씨 부부를 좀솜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레테에서 본격적으로 산으로 접어들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와는 딴판으로 길도 좁고 희미하다. 산기슭 옆으로 난 한 줄기 외길을 따라 걷는다. 우리 뒤에선 다울라기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나흘 동안 인적이 끊긴 산길을 걸어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우리 마음대로 해석을 했다.  

 

작은 마을 두세 개를 지났다.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도 보았다. 다울라기리를 배경으로 소를 모는 농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면 좀 과장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산은 부쩍 더 높아지고 협곡은 좁아진다. 베이스 캠프에 이르기까지 강 두 개를 건너는 것이 이 트레킹의 가장 힘든 여정이다. 계곡 아래까지 가파른 경사를 내려섰다가 강을 건넌 후 다시 엄청난 경사를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묵을 베르 카르카(3,760m)까지는 탕둥 콜라(Tangdung Khola)라는 강을 건넌다. 계곡으로 내려서 아침에 지급받은 삶은 계란과 감자로 점심을 해결했다. 강에 놓였던 나무 다리가 유실돼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야 했다. 살이 오그라드는 듯한 그 차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마침 반대편에서 오던 현지인 세 명이 그것을 보곤 물로 들어가 나무를 옮기더니 10여 분만에 뚝딱 다리를 놓는다. 우리 뒤에 오던 사람들은 신발을 벗을 필요가 없어졌다.

 

예상했던대로 엄청난 경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퍽퍽한 다리를 끌고 무려 네 시간을 걸어 안부에 도착했더니 바로 거기가 텐트를 쳐놓은 곳이었다. 베르 카르카는 양치기 목동들이 머무르던 장소라 텐트친 장소 위에 한 무리의 양떼가 주둔해 있었다. 양떼 주둔지였단 이야기는 우리 텐트가 그들 배설물 위에 설치됐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텐트 밖에서 스며 들어오는 냄새와 새끼 양들이 우는 소리를 벗삼아 잠을 청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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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발 1,400m인 다나에서 해발 2,480m인 레테까지 올라간다. 나와는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편이라 얀은 하루 종일 내 옆을 걸었다. 이 친구는 밀레의 신제품 기술자문도 맡고 있지만, 실제 본업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활동하는 산악 가이드였다. 잘 생긴 외모에 빼어난 체력,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정말 괜찮은 청년이었다. 아직 총각인데 여자 친구는 있다고 했다. 늦은 밤이면 모닥불 옆에서 포터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추는 그를 보면 참으로 멋진 산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마에 끈을 연결해 등짐을 한 가득 지고 가는 현지인들 대부분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다.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있는 우리들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네들도 활짝 웃으며 두 손을 합장한 채 나마스떼하고 답한다. 네팔에서 배운 두 마디, 나마스떼와 단네밧 사용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트레일을 걷는 것은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견디기 힘든 것은 따가운 햇볕이었다. 반다나로 챙을 만들어 목은 보호했지만, 햇볕에 노출된 팔은 흡사 살이 익는 것 같았다. 가사(Ghasa)에서 다시 정부군이 관할하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하루 사이에 마오이스트 지역에서 정부군 관할로 들어온 것이다. 가사 검문소에서는 출입자 명부에 본인이 직접 신상을 적은 후에 통과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는 까다롭게 검문을 하고 있었다.

 

레테 콜라를 건너며 아주 반가운 봉우리를 대면하게 되었다. 세계 7위봉으로 불리는 다울라기리((Dhaulagiri, 해발 8,167m)가 나타나 우리를 반기는 것이었다. 올해 초인가, 한 대장을 따라 이 다울라기리 트레킹에 나섰던 한 후배가 엄청 고생했다고 혀를 끌끌 차던 곳이다. 오른쪽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던 닐기리(Nilgiri) 봉과 안나푸르나는 구름에 가려 끝내 나타나질 않는다.

 

얼마 전 입원을 해서 수술까지 받았던 허 화백은 그 후유증 때문에 어제 바로 하산을 했는데, 오늘은 사카이 다니씨 부인인 노리코씨가 무척 힘들어 한다. 앞으로의 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물었더니 레테에서 좀솜으로 이동해 먼저 하산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레테에서 산으로 들어 일주일 후에나 돌아오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헤어지면 카트만두에서나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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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플량에서 레테까지 이틀 구간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에 속해 있기 때문에 길도 넓직하고 숙박시설도 꽤 좋은 편이다. 칼리간다키(Kaligandaki) 강을 따라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천천히 걸어 오른다. 전형적인 네팔 산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이 길은 옛날부터 티벳과 네팔을 오가며 장사하던 상인들이 다니던 길이라 오늘도 여전히 등짐을 진 말떼와 몰이꾼이 지나간다. 말똥을 피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지만 말똥 냄새를 피할 방법은 없다.

 

말떼와 몰이꾼들의 쇳소리에 더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들, ‘나마스떼를 외치며 손을 벌리는 개구쟁이들까지 모두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들이다. 고소 적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모두가 마음 편하게 이 풍경을 즐기진 못한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들이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은 법. 그러나 여기서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은 없다. 일단은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서 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티플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앞에 마오이스트 한 명이 나타났다. 소총 대신 영수증 철을 들고 통행료를 요구한다. 네팔 반군들과 정부군 사이에 수시로 교전이 벌어진다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행료만 제대로 내면 반군들이 외국인 트레커를 노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통행료 수입이 그들 자금줄에 큰 몫을 차지한다는 반증이리라. 한 대장이 겁도 없이 통행료가 비싸다며 협상에 들어가 일인당 10달러 선으로 합의를 보았다.

 

타토파니(Tatopani)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얀은 우리 걱정과는 달리 수제비도 맛있게 먹는다. 타토파니는 뜨거운 물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고소 적응을 걱정할 높이는 아닌지라 일부는 온천욕을 하러 갔다. 실외에 크지 않은 노천탕이 있었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허름한 시설도 있었는데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3시 조금 넘어 다나(Dana)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한 대장이 요리사 치링에게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치링은 작은 키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인데, 한국 음식은 꽤 잘 한다. 치링이 만든 음식치고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먼 고지로 닭을 팔러 가던 닭장수가 졸지에 홍재를 했다. 한 마리에 300루피씩 열 마리를 졸지에 팔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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