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일몰 시각에 맞춰 상 조르지(Sao Jorge) 에 오르기로 했다. 28번 트램이 다니는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쁠 것이 전혀 없었다. 리스본의 퇴락한 도심 풍경이 정겹게 다가왔다. 오른쪽으로 산타 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가 나왔다. 알파마 지역와 그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테주 강이 눈에 들어왔다. 꽤 큰 규모의 크루즈 한 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상 조르지 성으로 오르며 리스본 성벽(Muralhas de Lisboa)도 만났다. 현란한 색채를 자랑하는 벽화가 골목을 따라 그려져 있다. 리스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상 조르지 성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 한다. 로마시대부터 요새로 사용하던 것을 11세기 무어인들이 성채로 건립했고, 중세에는 왕궁으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 성벽을 따라 성채를 한 바퀴 둘러보면 왕궁이라기보다는 요새란 측면이 더 많아 보였다. 해가 저무는 모습을 구경한 후, 돌로 쌓은 성벽에 올라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는 리스본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대성당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빛나는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28번 트램이 다니는 산타 루치아 전망대에선 알파마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리스본 성벽의 벽화는 현란한 그래피티에 가까웠다.

 

 

 

 

상 조르지 성에 올랐다. 성벽 너머로 리스본 시가지와 테주 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언덕 너머로 해가 내려앉는 모습을 경건하게 바라보았다.

 

 

 

 

 

돌로 쌓은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어둠이 깔리는 시각이라 리스본 시가지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이 어둠을 뚫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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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 2019.05.15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색 창연한 성이 세월을 말해주 듯 도시의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네요..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넓은 물줄기도 마음의 여유를 한껏 잡아줍니다

    • 보리올 2019.05.16 0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런 고색창연한 성이 있기에 리스본의 격이 유지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리스본 앞을 흐르는 테주 강은 대서양을 만나기 직전이라 일견 바다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네바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져 있는 니옹(Nyon)을 찾았다. 제네바 호수에 면해 있어 호수 건너편으로 프랑스와 접하고 있는 소읍이다. 프랑스 이브와(Yvoire)로 가는 페리가 다녀 이브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나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고 이브와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자연스레 들른 도시다. 처음엔 꽤 작은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도시를 돌아보니 규모가 제법 컸다. 인구도 2만 명 가까이 되었다. 55개 회원국이 가입한 유럽축구연맹(UEFA) 본부가 이 작은 도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니옹은 제네바에서 기차로 20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기차를 타면 금방 도착하기에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니옹 성(Nyon Castle)을 찾아갔다. 현재는 도자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다섯 개의 타워를 가지고 있는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꽤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다. 성이 자리잡은 위치가 제네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있어 아랫마을과 제네바 호수, 그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프랑스 땅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무척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즐거웠다. 성 뒤로 난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아랫마을로 내려섰다. 예쁜 건물과 상점, 골목길이 어우러져 골목길 풍경도 좋았다. 호숫가를 따라 여유롭게 거닐었다. 사람이 붐비지 않아 참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부 데 리브(Bourg de Rive) 공원을 지나 윗마을로 올랐다. 로마 시대의 유적이라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 세 개만 남아 세월을 낚고 있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로마 박물관도 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하얀 색을 칠해 정갈한 이미지를 주는 니옹 성에 들러 제네바 호수와 아랫마을을 바라보았다.

 

니옹 성 뒤로 난 계단을 타고 아랫마을로 내려섰다.

 

 

 

아랫마을의 골목길을 거닐며 아름다운 도심 풍경에 푹 빠졌다.

 

 

제네바 호수를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제네바 호수에서 바라본 니옹 도심 전경

 

 

구름이 많은 하늘 아래 제네바 호수가 펼쳐져 있고, 그 호수 건너편으로 프랑스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에 속한 이브와로 가는 페리가 이 선착장에서 떠난다.

 

 

 

호숫가에 있는 아랫마을에서 윗마을 풍경을 감상할 기회도 있었다.

 

부 데 리브 공원을 알리는 표식조차도 낭만이 묻어난다.

 

 

 

AD 50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로마 시대의 기둥 세 개가 1958년 니옹에서 발견되어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윗마을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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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군 가운데 몽블랑 둘레를 도는 뚜르 드 몽블랑은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날카롭게 하늘로 치솟은 봉우리와 깊게 패인 계곡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고, 산자락에 펼쳐진 푸른 초원 사이로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 산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산장도 이 몽블랑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식사 등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산자락에 너무 많은 케이블카와 곤돌라, 산악철도를 부설해 놓았다. 산속 깊은 곳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이 있고, 푸른 초원엔 소와 양이 배설한 오물이 지천이었다. 캐나다 로키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의외로 많았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지 않은 배경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자연 파괴 현장을 많이 보게 되어 입맛이 좀 씁쓸했다. 그럼에도 뚜르 드 몽블랑은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고 절로 벌어지는 입을 도무지 닫을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콩타민(Contamines)으로 이동해 노틀담 성당(Norte Dame de la Gorge)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몽블랑의 남서부를 도는 일정인데 아쉽게도 하루 종일 몽블랑을 볼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다. 이 구간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로만 로드(Roman Road)라고 했다. 발므(Balme) 산장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떼가 나타나 전형적인 알프스 풍경을 보여줬다. 본옴므 고개(Col du Bonhomme, 2,329m)까진 꽤 길게 올라야 했다. 출발점이 해발 1,210m였으니 벌써 고도를 1,000m 이상 올린 것이다. 하지만 우린 거기서 다시 고도를 올려 본옴므 십자가 고개(Col de la Croix du Bonhomme, 2479m)까지 내처 올랐다. 십자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돌로 쌓은 탑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다. 그것도 조만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해발 2,443m에 위치한 본옴므 산장은 바로 그 너머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위치가 아름다운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라 진짜 산장에서 묵는 기분이 들었다.

 

콩타민에 자리잡은 노틀담 성당을 둘러보고 산행에 나섰다.

 

 

 

초원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알프스 산악 풍경을 만끽하곤 발므 산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본옴므 고개로 오르기 시작했다.

 

 

초원의 푸르름 외에도 여기저기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드디어 본옴므 고개에 올랐다.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었다.

 

 

 

본옴므 고개에서 본옴므 십자가 고개까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줄곧 바위 구간을 걷는 탓에

고산에 오른 느낌을 주었다.

 

본옴므 십자가 고개엔 쓰러질 듯 보이는 돌탑 하나와 시원한 파노라마 조망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기슭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본옴므 산장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섰다.

 

 

 

 

본옴므 산장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본 풍경에 넋을 잃을 뻔했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러 나온 아이벡스 무리를 만났다.

 

 

 

산장에서 저녁으로 소고기 스튜와 조로 만든 죽이 나왔다. 양이 좀 적어 아쉬웠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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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치앤치즈 2016.10.28 0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볼 땐 완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도 인간이 남긴 좋지못한 흔적들이 있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국가에서 관리하면 훨씬 더 나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잇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안한다니 그것도 좀 안타깝고요.
    그나저나 저 산장에선 고기를 먹지 않는 저같은 사람은 죽만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네요.^^

    • 보리올 2016.10.28 0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프스 도처에 사람의 흔적이 너무 많습니다.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등반, 휴양, 관광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탓이지요 거꾸로 되돌리긴 어렵지만 앞으로라도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더군요.

  2. justin 2016.11.05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외네요~ 유럽이라 자연 보호가 뛰어날 줄 알았는데 관광 명소여서 영락없이 인간의 손때가 탔네요. 그래도 본옴므 산장 경관은 장관이네요!

 

제네바 올드타운의 중심이라 불리는 성 피에르 대성당(St. Pierre Cathedral)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좁은 골목을 따라 세월을 머금은 듯한 건물과 상점들이 나타났다. 마치 중세 시대의 유럽을 걷는 듯한 묘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시청사가 있는 골목은 고풍스런 석조 건물이 많았다. 골목에 스위스 국기와 제네바 주기가 펄럭여 중세의 느낌이 더 했다. 그래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리라.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선술집도 보여 맥주 한 잔이 생각났지만 대낮에 혼자라서 자제키로 했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던 시청사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옛 무기고라는 랑시엥 아스날(L’ancien Arsenal)이 기다린다. 여기엔 나폴레옹 전쟁 때 사용했던 대포를 전시하고 있었고, 그 뒤 벽면엔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로마시대에 시저가 제네바로 입성하는 장면,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모습을 그린 벽화라 하는데 내 수준으론 그 내용이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성 피에르 대성당의 첨탑은 제네바 호수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 서니 그리 웅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제네바 스카이라인에선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라 할 수 있었다. 12세기에 시작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적절히 섞어 만든 성 피에르 대성당은 원래 카톨릭 성당이었으나, 16세기 종교개혁의 생생한 현장이었던 까닭에 그 후론 개신교의 교회로 쓰이고 있다. 내부 장식이 유럽 여느 대도시 대성당에 비해선 검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칼뱅이 앉았던 의자와 성가대석 조각이 눈에 띄었다. 장 칼뱅은 30년 가까이 이곳을 본거지로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첨탑 위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현지화가 없어 올라가진 않았다. 대신 구시가를 떠나며 그랑 거리(Grand Rue)에 있는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생가를 잠시 들렀다.

 

 

 

 

중세풍의 거리엔 창의적인 디자인을 사용한 장식들도 눈에 띄어 거리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있었다.

 

 

 

스위스 국기와 제네바 주기가 펄럭이는 시청사도 들어가 보았으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포와 벽화를 전시하고 있었던 랑시엥 아스날.

 

 

 

 

 

성 피에르 대성당은 제네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특히 대성당의 첨탑은 제네바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다.

 

성 피에르 대성당의 성가대석을 장식한 성직자 조각상은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과거 칼뱅이 앉아 종교개혁을 역설했던 의자가 성 피에르 대성당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사회계약론을 주창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자리잡은 장 자끄 루소가1712년 제네바 이곳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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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트 2016.10.15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사진과 좋은 여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네요 :D
    항상 건강하고 안전한 여행길 되시길바랍니다!!

  2. justin 2016.10.23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 역사는 다 서로 얽혀있는 것 같아요 ~ 나폴레옹, 장 자끄 루소 등 시대적 배경으로 기본 상식을 늘려야겠습니다!

    • 보리올 2016.10.24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 협소한 지역에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살았지만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역사지. 종교 자체도 정치적인 계산으로 선택한 경우도 많고. 여행을 통한 역사 공부를 추천한다.

 

어제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를 삶아 감자국과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누룽지가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도 그치질 않았다. 우의를 걸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무리 가랑비라 해도 빗속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일에는 늘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곧 아스팔트 위로 올라섰다. 개울을 따라 심은 포플러 나무가 도열해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에도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길게 줄지어 있었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침 풍경이 고마웠다. 산 안톤(San Anton)엔 무너진 성당이 남아 있었다. 잔재의 규모만 보아도 예전엔 꽤 컸을 것으로 보였다. 성당 아치 문을 지나 순례길은 이어졌다. 미국에서 온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장석민씨와 둘이 앞으로 나섰다.

 

산 안톤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원 위에 봉긋하게 솟은 나지막한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 위엔 성채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성해 보이진 않았다. 그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Castrojeriz)도 눈에 들어왔다. 마을이 위치한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어 로마시대엔 금 운송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이 마을을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서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Santa Maria del Manzano) 성당을 만났다. 이 아름다운 성당은 성 야고보가 사과나무에서 성모 마리아 상을 본 곳으로 유명하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스트로헤리쓰는 성당이 몇 개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다.

 

마을을 빠져 나와 평지를 좀 걷다가 오르막 길로 접어 들어 모스테라레스(Mostelares) 고개로 올랐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고개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가끔 뒤를 돌아보면 언제 저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고갯마루엔 웬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쉩터가 있었다. 지붕만 있고 양쪽으론 뻥 뚫려 있어 바람은 피하기 어려웠다. 쉘터에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고개 건너편으로 내려서는 길도 무척 아름다웠다. 누런 평원을 하얀 줄 하나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 위를 걸어가는 순례자도 조그맣게 보였다.

 

오스피탈 데 산 니콜라스(Hospital de San Nicolas)는 이탈리아 봉사단체가 알베르게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거기서 하룻밤을 묵을까도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테로 다리를 건너자 팔렌시아(Palencia)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왔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넘어온 것이다. 이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제, 오늘 함께 걸었던 젊은 친구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카페에 들러 간단하게 점심을 샀다. 난 평소 먹던 샌드위치 대신 참치 샐러드를 시켰더니 맛은 괜찮은데 양이 너무 적었다.

 

다시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이테로 데 라 베가를 벗어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져 우의를 입었음에도 금세 옷이 젖었다. 제주도 오름처럼 너른 평원 위에 여기저기 구릉이 솟아있는 풍경이 나타났지만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빨리 해서 다음 마을에서 비를 피하고 싶었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 도착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옷은 이미 젖었고 빗줄기는 가늘어졌으니 내친 김에 조금 더 가기로 했다. 보스턴에서 왔다는 여자 둘이 물병 하나씩 들고 걷는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8일을 걷고는 돌아간다고 했다.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노랗게 물든 나뭇잎 덕분에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오후 5시가 가까워 프로미스타(Fromista)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진 산 마틴 성당은 한때 베네딕트 수도원이었지만 수도원은 이미 사라졌고 성당도 1904년에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성당은 단순하고 검소해 보여 인상은 좋았다. 그런데 성당 안에 솔직히 볼 것도 없는데 왜 입장료로 1유로를 받는지 모르겠다. 성당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카페에서 토르티야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고 왔더니 미국 자매가 35km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장석민씨는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두 자매와 만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자매가 침대에서 빈대를 발견했다고 잠시 소동이 벌어졌다. 알베르게 직원이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분개한다. 약을 사다가 침대에 뿌렸다. 이 알베르게는 시설도 별로인데 직원들까지 불친절하다.

 

 

가랑비를 맞으며 빗길을 걸어 온타나스를 벗어났다.

 

 

콘벤토 데 산 안톤(Convento de San Anton) 성당은 오랜 세월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카스트로헤리쓰의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 성당.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나지막한 산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의 마을 정경. 마을 뒤로 다 무너진 성채가 보인다.

 

모스테라레스 고개에 올라 방금 지나온 카스트로헤리쓰를 뒤돌아 보았다.

 

 

메세타 지역을 지나는 순례길이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도 보였다.

 

 

 

이테로 다리를 건너면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들어선다.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 하얀 색을 칠한 건물이 많아 깨끗해 보였다.

 

이테로 데 라 베가에 있는 카페에서 참치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져 옷이 젖은 채로 길을 걸어야 했다.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 보아디야 델 카미노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 비가 그쳐 편한 마음으로 보아디야 마을을 둘러보았다.

 

 

 

카스티야 운하를 따라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로수 길을 걸었다.

 

곡창지대 한 가운데 자리잡은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졌다는 산 마틴 성당은 20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데

왜 프로미스타에 그 표식이 세워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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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eya 2015.12.02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대 조심 +_+

  2. Justin 2016.01.14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성당이나 성채의 잔재라하더라도 부서지면 부서진대로 그대로 두는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고 정감이 갑니다.

    • 보리올 2016.01.14 2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 역사적 건축물이 무너졌다고 다 치워버리면 그와 연결된 이야기도 사라지는 것 같더구나. 그냥 두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