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쉬었다고 몸 상태가 금방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된 듯 했다. 하루를 쉬었으니 힘을 내 오르자고 일행들을 격려했다. 마낭을 출발해 야크 카르카(Yak Kharka)로 향한다. 카르카란 목동들이 머물며 가축을 치던 방목지로 보면 된다. 예전에는 여름철에만 목동들이 머물던 곳이었는데, 트레커들이 밀려들면서 여기에 로지들이 들어선 것이다. 그렇지만 숙박시설이 그리 많진 않은 듯 했다. 그래서 껄빌이 새벽 5시 반에 카고백 하나를 들처메고 먼저 출발하였다. 그곳은 하루 세 끼를 로지에서 먹어야만 방을 준다고 한다. 방값을 흥정하기는 커녕 로지 주인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거 완전히 배짱 장사다.

 

마낭을 벗어나자,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간다. 마음속 걱정을 한 순간에 잊게 만든 평온한 마을 풍경이었다. 어디에서 이 많은 트레커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사람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 일행의 속도가 너무 느려 모두들 우리를 추월해 갔다. 그들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땅에선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뒤에서 그 먼지를 들이켜야 하는 신세에 짜증이 난다. 더구나 앞에서 먼지가 일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다가 머리가 띵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이 구간을 벗어나는 길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오늘 운행거리는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5시간이나 걸렸다. 야크 카르카가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해발고도 4,000m를 통과했다. 손가락 네 개를 펼쳐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정숙 회장과 나를 제외하곤 다들 처음 접해보는 고도라 하이파이브로 서로를 축하해줬다.

  

정오를 넘어 야크 카르카에 도착했다. 껄빌이 잡아놓은 로지에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딱히 할일이 없었다. 모두들 낮잠을 자려는 눈치라 난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뒷산에 올랐다. 야크 카르카란 지명에 걸맞게 야크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계곡 건너편에도 야크 몇 마리가 위험스런 곡예를 벌이며 벼랑을 타고 있었다. 어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도 있었다.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조용히 버티고 선 안나푸르나 연봉과 강가푸르나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마을로 내려왔다. 시간이 왜 이리 더디 흐르는지 모르겠다. 마음껏 여유를 부리는데도 시간은 오히려 더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책은 역시 훌륭한 수면제였다.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스님 두 분이 저녁 식사를 마다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지금까지는 식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거 큰 일이다. 해발 4,000m를 넘기면서 고소 증세가 더 악화된 모양이다. 얼마 남지 않은 누룽지라도 끓여 드시라고 방으로 넣어 드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지만 저녁 7시 반이 되자 모두들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긴긴 밤을 또 어찌 보내야 한단 말인가.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이진우 선배로부터 중국 근대사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 양반은 언제 중국에 대해 이리 깊게 공부를 했는지 손문과 장개석, 송미령에 얽힌 이야기를 한없이 이어간다. 덕분에 밤이 무척 짧아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소 적응을 위한 예비일이다. 모처럼 늦잠을 잤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로 하던 일정을 두 시간 늦추었더니 엄청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두 분 스님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웬만하면 숙소에서 쉬라고 했더니 고소 적응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한다. 포터 중에 가장 어린 리다가 오늘따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친구는 올해 15살이다. 우리로 치면 중학생인 셈인데 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늘 웃는 얼굴이라 일행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트레킹 초기부터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더니 어제는 열이  끓었다. 스님들이 아침, 저녁으로 감기약을 먹이며 이 친구 상태를 체크한다.  

 

강가푸르나 호수를 지나 전망대까지 오르는 코스와 그 반대편에 있는 프라켄(Praken) 곰파까지 오르는 코스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라켄 곰파를 택했다. 안나푸르나 산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엔 곰파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왕복 4시간 걸린다니 소요시간도 적당했다. 포터들은 숙소에서 쉬도록 하고 우리만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급경사 오르막을 어느 정도 치고 올랐더니 조망이 좋아진다. 왼쪽부터 안나푸르나 2, 4, 3봉이 차례로 보이고 그 오른편에는 강가푸르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가푸르나에서 생성된 빙하가 길게 아래로 뻗어 있었고, 그 아래에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에메랄드빛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호수가 많지 않은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큰 호수를 보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라 할만했다.

  

강가푸르나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틸리초(Tilicho) 호수에 닿는다. 그쪽으로 가도 결국은 좀솜에 닿지만 그 코스엔 로지가 없어 텐트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그 코스를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프라켄 곰파로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해발 3,900m에 있는 곰파까지 가려면 400m 높이를 단숨에 치고 올라야 한다. 그리 쉽지는 않았다. 풍경도 처음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곰파 아래에 세워진 불탑 근처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미리 씻어온 잡곡을 코펠에 넣고 버너에 불을 붙였는데 고도가 높은 탓인지 잘 익지를 않는다. 네팔 요리사들이 압력밥솥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 설익긴 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밥이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팀을 수행했던 네팔인들이 절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갔다. 나이 지긋한 라마승 한 분이 방문객을 맞아 축복을 내려준다. 사진 몇 장 찍으려다 공짜로 차 한 잔 얻어 마신 죄로 스님 앞에 앉게 되었다. 불에 구운 곡식 몇 알과 노란색 물을 손바닥에 따라주며 먹으란다. 그리곤 내 머리에 경전을 대고 염불을 외우며 축원을 해준다. 불자도 아닌 사람에게 이런 황송할 데가 있나. 하지만 그 축원 의식은 공짜가 아니었다. 노승은 옆에 있는 비닐 봉지에서 가는 실로 만든 목걸이를 꺼내 내게 걸어주더니 손을 벌린다. 성의껏 100루피를 시주했다. 한데 이번에는 다른 봉지에서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걸이를 꺼내더니 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정중히 사양하곤 밖으로 나왔다.

 

마낭으로 돌아와 이메일 확인한다고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차메에 비해 여기는 고도가 좀더 높다고 1분에 20루피를 받는다. 한 시간을 사용하면 2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제부터 인터넷 사용은 삼가야겠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일행들을 데리고 나선 길이었다.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으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7시면 달리 할 일이 없어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오늘은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로지로 돌아왔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벌써부터 입맛을 잃고 누룽지만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일행들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고소 적응을 위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소에 몸이 점점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천천히 걸어라 다시 한번 주문을 했다. 토롱 라(Thorong La)까진 며칠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 다들 아무 일 없이 버텨주어야 할텐데……. 피상을 벗어나자 길가에 추모탑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엔 우리 나라 영남대 산악부의 추모 동판이 있었다. 1989년 안나푸르나 2봉 원정시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훔데(Humde)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날망에 섰다. 마을을 따라 곧게 뻗은 하얀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저것이 공항 활주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훔데에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해서야 그것이 공항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그만 관제탑도 세워져 있었다. 1주일에 두 편의 비행기가 포카라로 연결된다 했다. 우리 일행 중에 어느 누가 도저히 토롱 라를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행기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또 한 군데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티벳과 접경을 이루는만큼 티벳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길을 걸으며 티벳 불교의 유적 또한 많이 만난다. 그들의 삶이 결코 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스님 두 분이 고소 증세도 무척 힘들어 한다. 두통에다 속까지 메슥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몸이 힘들면 자주 쉬는 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던가. 예정보다 일찍 점심 식사를 하자고 일행들을 불러 세웠다. 안나푸르나 3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을 거쳐 3봉까지 왔으니 그래도 많이 온 셈이다. 식당 한 켠엔 빛바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네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길가에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자락 폭포에도 하얀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는가. 앞으론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뭉지(Mungji)란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2봉과 3, 4봉이 모두 한 눈에 보인다. 그 동안 2봉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4봉까지 뚜렷히 보였다. 브라카(Braka)에 있는 곰파는 규모가 대단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절이라 했지만 경내까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길가에 세워진 천상천하유아독존상을 돌아나왔다.

 

해발 3,540m에 자리잡은 마낭(Manang)에 도착했다. 토롱 라를 넘기 전에 있는 마을 중에선 가장 큰 동네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를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체(Namche)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깊은 산골에 있으면서도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추고 있었다. 병원도 있고 빵집과 카페도 있었다. 산악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것으로 일차 구경을 마쳤다. 우리는 여기서 하루를 쉬며 고소 적응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로지에서 마냥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팩타민 2014.01.13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트래킹 다녀왔을대가 새록새록 하네요.. ^^
    힘들어도 보는 풍경이 좋아서 가끔 사진을 봐도 두고두고 좋은 곳이 되었어요 ^^

    • 보리올 2014.01.13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 추억을 모두 가지고 계시겠죠. 벌써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좋은 추억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