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중부 내륙 도시, 코임브라(Coimbra)에 닿았다. 인구 15만 명을 가진 포르투갈 네 번째 도시로, 1131년부터 1255년까지 포르투갈 수도였었다. 수도가 리스본으로 옮겨감에 따라 정치적으론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1290년에 설립된 코임브라 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 덕분에 문화 중심지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사실 코임브라 대학은 리스본에서 왔다가 다시 가기를 반복하다가 1537년 주앙 3(João III)에 의해 코임브라 왕궁으로 이전하면서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포르투갈에선 가장 오래된 대학이고, 세계에서도 역사가 오랜 대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재 코임브라 대학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배 같은 존재다. 대학을 둘러보면 코임브라를 반 정도 구경한 셈이라고 할까. 코임브라가 대학 도시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입장권을 사서 철의 문(Porta Ferrea)를 지나면 구 대학 광장으로 들어선다. 광장 가운데 주앙 3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성 미구엘 예배당(Capela de São Miguel)부터 찾았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마누엘 양식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으로 향했다. 1728년 주앙 5세에 의해 건축된 바로크 풍의 도서관으로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입장하는 시각이 정해져 있어 입구에서 기다려야 했다. 계단을 타고 위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들어서자, 그 화려한 풍경에 절로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무려 3만 권이나 되는 라틴어 고서가 보관되어 있는 현장은 눅눅한 책 냄새가 났다. 아쉽게도 도서관 안에선 사진 촬영을 금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장엄함을 그저 가슴에 담는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건물 지하에 있는 학생 감옥까지 보곤 밖으로 나왔다.

 

다시 광장으로 나와 옛 왕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비아 라티나(Via Latina)로 들어섰다. 왕궁(Paço Real)을 구경하러 가는 참이다. 왕궁이 대학으로 변한 탓인지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다. 몇 개 전시 공간이 있어 차례로 둘러보았다. 천장에 왕가의 문장이 있고 한쪽 벽면에 근위병들의 무기가 진열된 무기의 방(Sala das Armas)과 노란색 실크로 벽을 장식했다고 하는 노란색 방(Sala Amalela), 포르투갈 왕들의 초상화 위로 화려한 천장 장식이 인상적이었던 카펠루 방(Sala dos Capelos), 학장들 초상화에 역시 천장 장식이 미려했던 시험의 방(Sala do Exame Privado) 등을 보고는 전망대에서 코임브라 옛 시가지를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물을 빠져나오며 수업 중인 강의실을 지났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학생들도 만났다. 여긴 법학부라고 했다. 모두가 그렇치는 않았지만 어깨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쓸 때 코임브라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호그와트 학생들도 망토를 걸치고 소설에 등장했다.

 

 

코임브라 대학을 현 위치에 영구적으로 정착시킨 주앙 3세의 동상이 광장 가운데 세워져 있다.

 

 

성 미구엘 예배당은 화려한 장식 외에도 2천 개의 튜브를 써서 만들었다는 오르간을 예배당 중간에 설치해 놓았다.

 

광장에 면해 있는 조아니나 도서관의 중앙 출입구. 관광객은 미네르바 계단 쪽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조아니나 도서관으로 오르기 전에 도서관 분위기를 풍기는 대기실부터 둘러보았다.

 

도서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대기실에 걸려있던 도서관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옛 왕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비아 라티나.

그 정면에 코임브라 대학을 상징하는 기둥과 저울을 든 두 여인의 조각상이 있었다.

 

19세기 재임한 코임브라 대학교 총장들 초상화가 걸려 있는 노란색의 방

 

 

무기의 방에는 근위병들이 쓰던 무기를 왕관 모양으로 진열해 놓았다.

 

 

 

학생들이 학위 취득을 위해 시험을 봤던 곳이라고 해서 시험의 방이라 불리는 공간은 천장 장식이 무척 화려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코임브라 도심은 하얀 벽면에 붉은 지붕을 한 건물이 많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몬데고(Mondego) 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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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르(Tomar)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하다. 성전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는 템플 기사단은 1119년 프랑스에서 9명의 기사가 예루살렘 및 순례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세운 수도회에서 시작한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망토를 입었다고 한다. 1128년 교황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고 십자군으로 하느님을 위해 싸울 것을 서원했다. 그 이름과 활약이 알려지면서 기사단에 입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십자군 원정이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와 회원들의 기부금이나 유산을 활용해 금융업에 손을 대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템플 기사단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고 그들의 부를 탐낸 프랑스 국왕 필리프 4(Philippe IV)1307년 수많은 회원들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당시 아비뇽에 유수된 교황 클레멘트 5(Clement V)에게 요구해 1312년 수도회를 폐쇠하기에 이르렀다.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그랜드 마스터였던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도 결국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템플 기사단의 포르투갈 지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이슬람 세력과 대치하면서 국토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던 중이라 템플 기사단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디니스(Dinis) 왕은 1344년 교황을 설득해 템플 기사단의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곤 계속 활동을 하게 하였다. 대항해시대를 연 항해왕 엔리케 왕자가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였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같은 탐험가도 기사단에 속했다. 탐험에 나선 포르투갈 선박에도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사용하였다. 현재도 포르투갈에선 그리스도 기사단이 건재하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을 맡는 것이 관례다. 토마르에 있는 성은 1160년 템플 기사단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이란 이름을 지녔다. 성과 수도원이 함께 있는 구조로 포르투갈의 템플 기사단과 그 뒤를 이은 그리스도 기사단의 본거지로 쓰였다. 1983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성문을 하나 지나 자갈이 깔린 오르막을 올랐다. 명색이 그리스도 수도원이라 했는데 성벽은 무어 성처럼 아랍 풍으로 지어져 있어 좀 의아했다. 이 성벽을 통과하면 정원이 나오고 그 뒤로 수도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눈에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실내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지만 오랜 세월 개축이 되면서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가미되어 꽤 화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곳곳에 마누엘 양식이 많이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회랑과 정원이 나타났다. 아줄레주 타일을 사용해 우아함이 돋보였다. 몇 개 회랑을 거쳐 성당으로 들어섰다. 템플 기사단에 의해 초기에 지어진 원형 성전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외형은 16각형으로 각을 잡았지만 내부는 원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동안 많은 성당을 방문했지만 이 성전은 어느 것보다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장식도 무척 화려했고 그림도 많았다.

 

 

 

시청사와 광장이 있는 토마르 도심 뒤로 토마르 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이 깔린 길을 5분 정도 걸어 오르면 수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1515년에 만들어졌다는 마누엘 양식의 문은 꽤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랑과 정원이 나타나 방문객을 맞는다.

 

 

 

성물 안치소로 쓰였던 공간은 텅 비어있었지만 천장 장식은 꽤 섬세하고 화려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루살렘의 성전을 본따 지었다는 템플 기사단의 원형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원 안에 있다는 8개 회랑 가운데 하나

 

성당의 서쪽 창문은 마누엘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16세기 초에 건축되었다.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혼천의와 밧줄,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밖으로 나오다 만난 회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던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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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Sintra)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을 찾아갔다. 지난 번에는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어느 졸부의 돈자랑 정도로 치부하고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곳을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백만장자 몬테이루(Monteiro)가 구입해 살았던 궁전은 그리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외관이 생각보다 훤씬 더 미려했다.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궁전으로도 불리는 이 건축물은 당대 건축가들의 도움을 받아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마누엘 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1904년에 공사를 시작해 1910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궁전 외에도 나무가 우거진 정원 안에 온갖 자연적, 인공적 건축물을 만들어 놓아 숨바꼭질하기엔 이 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했다. 이 헤갈레이라 별장은 페냐 궁전과 몬세라트(Monserrat) 성 등 신트라 유적과 더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사실 이 별장에 있는 궁전이나 성당보다 관광객에게 더 유명한 것은 미로처럼 생긴 동굴이나 터널, 폭포, 우물, , 벤치와 같은 독특한 자연 지형이나 인공 건축물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 27m 깊이의 나선형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우물(Poço Iniciatico)은 그 정교한 구조와 엉뚱한 착상에 혀를 내두를만 했다. 우물이라 하지만 실제 물이 찬 적은 없다고 한다. 프리메이슨의 비밀 입단식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서 우물 바닥을 볼 수가 있었고, 바닥에 내려서면 하늘에 둥근 구멍이 하나 있을 뿐이지만 꽤 별난 곳이란 느낌이 온다. 여기서 위로 오르지 않고 터널을 통과해 폭포와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헤갈레이라 별장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일인당 6유로를 주고 입장권을 구입했다.

 

 

정원으로 들어서 숲길을 걸었다. 우물을 찾아가는 길에 이런 인공 건축물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선형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 우물 바닥으로 내려서는 특이한 경험은 오래 잊지 못 할 것 같았다.

 

 

 

우물 바닥에 내려서면 하늘에 구멍 하나만 뻥 뚫려 있는 묘한 상황을 맞는다.

 

우물 바닥을 벗어나 동굴을 따라 폭포와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하늘에 난 또 하나의 구멍을 발견했다.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 조그만 인공 폭포가 있었고 동굴을 나오면 돌다리도 건너야 했다.

 

풍요의 샘이라 불리는 인공 건축물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톨릭 성당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 옆 바위 속에 자리잡은 연못엔 고사리류와 물이끼가 가득했다.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궁전으로 불리는 건축물의 외관과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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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아래에 놓인 지하도를 건너 발견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로 갔다.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자(Dom Henrique)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이 발견기념비는 포르투갈 전성기를 잊지 않으려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몸부림 같았다. 엔리케 왕자는 주앙 1세의 셋째 아들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려는 열망이 강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 여러 차례 탐사선을 보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려 했다. 물론 그의 생전에 인도 항로를 개척하진 못 했지만 모든 것은 엔리케 왕자의 혜안에 의한 투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대항해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항해왕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53m 높이의 발견기념비 앞에 섰다. 현대식 조형물이라 감동은 좀 덜 했지만 대항해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오밀조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엔리케 왕자이고, 발견기념비가 세워진 장소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항해를 떠난 자리였다고 한다.

 

발견기념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벨렝탑으로 걸어갔다. 사람들로 꽤나 붐비는 가운데 도로에서는 무슨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벨렝탑에 도착했더니 여기도 입장권을 사려는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지레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맘 편했다. 벨렝탑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벨렝탑 또한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직사각형 모양의 벨렝탑은 마치 테주 강 위에 떠있는 배 같았다. 한때는 세관으로 쓰이다가 나중엔 정치법 수용소로 쓰였다고도 한다. 벨렝 지구를 빠져나오는 길에 길가에 늘어선 건축물들이 눈에 띄었다. 그 생김새도 독특했지만 벽면을 칠한 색상이 화려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벨렝에 있는 햄버거 전문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높이가 53m에 이르는 발견기념비가 테주 강가에 하늘 높이 세워져 있다.

 

 

 

발견기념비에 새겨진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앞자리가 엔리케 왕자고, 그 다음이 바스코 다 가마라고 한다.

 

발견기념비 옆에는 1922년 리스본에서 남대서양을 횡단해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까지 날아간

수상비행기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벨렝탑으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테주 강가 풍경. 무슨 마라톤 행사가 열려 더 혼잡했다.

 

 

 

 

 

외따로 테주 강가에 자리잡은 벨렝탑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벨렝 지구에서 눈에 들어온 건물의 외관과 색채 역시 인상적이었다.

 

 

벨렝의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 옆에 있는 햄버거 전문점 오노라토(Honorato)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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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희 티켓 2019.05.27 1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담에 한번들려주세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포르투갈의 열망을 직접 실천에 옮긴 사람은 주앙 1세의 셋째 아들 동 엔히크(Dom Henrique) 왕자였다. 그의 개척정신으로 포르투갈, 나아가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문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다섯 번이나 원정대를 꾸려 아프리카 남쪽까지 보내 미지의 땅을 탐사했던 그를 후대 사람들은 항해왕이라 부른다. 항해왕 엔히크의 사후 500년을 기념해 1960년 이곳 벨렘 지구에 53m 높이의 발견 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를 세웠다.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항해를 떠난 자리였다. 대항해시대에 대양을 누볐던 포르투갈의 범선 모양을 딴 이 기념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뱃머리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항해왕 엔히크다. 낮게 깔린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기념비가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좀 늦은 시각에 리스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통하는 벨렘 탑(Torre de Belem)으로 향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벨렘 탑은 1515년부터 7년간에 걸쳐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 특이한 형상이 눈에 띄었다. 직사각형의 4층 탑이 테주 강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는 세관으로 쓰여 통관수속을 진행하기도 했고, 강물이 차올랐다가 빠지곤 하던 1층은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1580년부터 1830년까지 포르투갈의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입장 시각에 조금 늦게 도착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석양의 부드러운 햇살을 배경으로 서있는 벨렘 탑의 우아한 자태를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를 연 항해왕 엔히크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발견 기념비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긍심으로 보여졌다.

 

 

 

 

 

테주 강가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을 맞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렘 탑이 석양을 배경으로 강 위에 서있었다.

 

 

 

 

 호스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일식 부페로 저녁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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