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닝 주립공원(Manning Provincial Park)은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져 있다. 호프(Hope)에서 3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나서도 한 시간을 더 달렸던 것 같다. 밴쿠버에서 세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라 낮이 짧은 겨울철이면 당일로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눈 위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공원 내에서 스노슈잉(Snowshoeing)을 하기로 했다. 매닝 주립공원은 사시사철 각종 아웃도어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그만 스키장도 하나 있다.

 

이 공원 안에 있는 산악 지형은 케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에 속하는 관계로 2,000m가 넘는 고봉도 꽤 있다. 또 하나 매닝 주립공원의 특징이라 하면, 북미의 장거리 트레일 가운데 하나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의 북쪽 기점이 바로 여기라는 점이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있는 남쪽 기점을 출발해 PCT를 종주하는 장거리 하이커들은 이곳 매닝 주립공원에서 종주를 마무리한다. 대부분 하이커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기념비에서 대장정을 마치지만, 이 매닝 주립공원에도 13km 길이의 PCT 구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론덕(Lone Duck)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베이스를 차렸다. 눈을 발로 밟아 충분히 다진 후에 텐트 두 동을 쳐놓으니 훌륭한 잠자리가 준비된 것이다. 라이트닝 호수(Lightning Lake)로 나갔다. 배낭도 메지 않고 간편한 복장으로 스노슈잉에 나선 것이다. 라이트닝 호수를 한 바퀴 돌면 9km를 걸어야 하지만 우리는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겨울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호수 위를 마음껏 걸을 수 있겠는가. 밤에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쉘터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 후에는 난로에 장작을 때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체험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으리라. 아침이 밝자, 시밀카민(Similkameen) 트레일을 경유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었다.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신설 위에 우리 발자국을 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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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스터빅샷 2015.02.09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밤에 곰 안나와요? ㅎㄷㄷ 춥고 무서울것 같아요 ㅠ

    • 보리올 2015.02.09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눈이 오는 겨울엔 곰도 푹 잠을 자야죠. 동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름보다 안전합니다. 추위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도 낭만으로 극복해야겠죠.

 

멕시코 시티 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공항 청사 안에 있는 식당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멕시코 음식을 먹자는 생각에 고른 식당이 리오(Rio). 메뉴판의 사진을 보고 음식을 고를 수 있어 좋았다. 타코스 도라도스(Tacos Dorados)란 음식을 시켰는데 이건 일반 타코와는 좀 다르게 나왔다. 토르티야 안에 잘게 썰은 닭고기와 야채를 넣고 말아 튀긴 것에다 매콤한 콩수프, 카레 볶음밥이 함께 나왔다. 시가같이 생긴 것이 도라도스인데 튀김 음식인데다 딱딱한 편이라 난 별로였다. 우유같이 생긴 달콤한 음료수 한 잔 추가해서 100페소를 받는다.

 

 

 

과나후아토 이달고 시장의 먹자 골목. 음식점이 몇 개 있었지만 그 중에서 사람들로 가장 붐비는 식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붐빈다는 이야기는 거기선 맛집이란 의미 아니겠는가. 빵 사이에 돼지고기를 넣은 토르타와 타코를 각각 하나씩 시켰다. 토르타 15페소, 타코 10페소에 콜라 10페소를 더해 35페소로 아주 훌륭한 성찬을 즐겼다. 토르타는 큰 빵을 반으로 잘라 그 안에 돼지고기를 넣어 나오는데 짭조름한 고기와 빵이 잘 어울렸다. 소스는 자기 입맛에 맞춰 먹으라고 테이블 앞에 몇 가지를 깔아 놓았다.

 

 

 

  

멕시코 시티 북부 터미널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우러 터미널 바깥 도로에 있는 길거리 식당으로 갔다. 여긴 일종의 기사 식당으로 장거리 운행을 앞둔 버스 기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통돼지를 돌려서 고기를 굽는 것도 특이했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명랑 쾌활해서 좋았다. 통돼지를 칼로 도려내 타코나 토르타 소로 쓴다. 맛도 아주 훌륭했다. 타코 두 개에 콜라 한 병 시켰더니 33페소 달란다. 타코는 한 개에 대략 10페소를 받는다.

 

 

 

  

테오티우아칸을 다녀오는 길에 다시 북부 터미널의 길거리 기사 식당을 들렀다. 전날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길이 돌린 것이다. 어제 근무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젊은 친구들이 요리를 한다. 타코는 이미 먹어봤으니 이번엔 토르타를 시켰다. 불판에서 연기를 일으키며 익어가는 음식이 먹음직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가슴이 뛰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인가 싶었다. 맛은 역시 합격점. 기분 좋게 한 끼를 때웠다.

 

 

 

 

멕시코 시티를 떠나기 전날, 배낭 여행에 지친 심신을 한식으로 보상한답시고 호스텔 인터넷을 뒤졌다. 몇 개 한국 식당을 뒤졌으나 딱히 어디를 정하진 못하고 무작정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거기서 발견한 식당이 운암정. <식객>이란 만화에 나오는 음식점 옥호인데 멕시코 시티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우선 멕시코 맥주 네그라 모델로(Negra Modelo)를 한 병 시켰는데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음식은 우거지 해장국을 시켰는데 어리굴젓, 깻잎 등 아홉 가지 반찬이 나오고, 해장국도 먹을만 했다. 맥주 30페소, 해장국 100페소에 팁까지 해서 150페소를 주었다. 멕시코 여행에서 가장 비싼 저녁을 먹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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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으로 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나와 무슨 공원인가를 지나치는데 담장 너머로 한국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슨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한국정을 세운 배경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에는 한글이나 영어는 없었다.  스페인어로만 적으면 난 까막눈이 되는데 말이다. 나중에서야 이 정자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멕시코에 기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고국의 흔적을 찾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 오면 이 인류학 박물관은 꼭 봤으면 한다. 그 규모도 엄청 나지만 박물관 자체도 세계적인 수준이라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스페인 통치 이전 멕시코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 테오티우아칸과 마야 유적을 비롯해 아즈텍 문명까지 엄청난 유적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고, 각 지역별로 출토된 유적을 분리해 전시하기도 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비교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멕시코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볼 수 있는 대단한 박물관임에는 분명했다. 멕시코 문화 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57페소인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 모양의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는 기둥 하나로 넓은 지붕을 받들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조형물은 1985년 일어난 강도 8의 지진에도 끄덕 없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작품으로 그 기둥에는 멕시코 역사가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1976년 새로 지은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축구와 1970, 1986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전을 치뤘던 멕시코 시티의 아즈텍 스타디움도 모두 이 사람 작품이었다.

 

 

 

박물관 1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즈텍 문명까지 멕시코의 각기 다른 문명이 남긴 유물을 12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었고, 2층은 멕시코 민족사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보았던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신전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제 5전시실, 치첸이샤를 비롯한 많은 유적지에서 발굴한 마야 유물을 보여주는 제 10 전시실이 아무래도 내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의해 망한 마지막 문명이 아즈텍이었기에 아즈텍 유물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실 아즈텍 문명은 마야나 잉카 문명에 비해 연대적으로 그리 오래된 문명이 아니다. 아즈텍 문명은 현재 멕시코 시티 일대에 살던 아즈텍 사람들이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꽃피웠던 것인데, 우리는 마치 마야나 잉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대 문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스페인이 1521년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후 아즈텍 중심지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지역에 멕시코 시티를 건설했기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즈텍 유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유물 보존 상태도 좋았다. 아즈텍 유물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 태양의 돌이었다. 이것은 아즈텍 달력인데 그들은 1년을 오늘날처럼 365일로 정확히 계산했다고 전해 진다.

 

 

 

 

 

 

 

 

 

 

  

박물관 순례는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전시 중인 멕시코의 옛 유물이 워낙 많아 꼼꼼히 보려면 하루를 잡아도 충분치 않을 것 같지만, 반나절 보고는 어디 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만 밖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맘대로 쉴 수가 없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박물관을 보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코요아칸(Coyoacan) 역으로 갔다. 이 지하철 3호선은 가장 붐볐고 유독 잡상인들과 걸인들이 많았다. 역마다 한두 명이 승차해서는 엄청 빠른 말로 시끄럽게 떠들다가 다음 역에서 내리면 다른 잡상인들이 교대로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뜨거운 땡볕을 마다 않고 꽤 먼 거리를 걸어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정기 휴일도 아닌데 왜 문을 닫았을까. 내가 멕시코를 찾은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위함인데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러면 어쩐단 말이냐. 좀 허탈했다. 여기를 찾아온 젋은이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 멕시코에 다시 오라는 의미인가?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고 운명과 맞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던 여자다. 슬픔이 가득하고 일면 광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사진으로 본 슬픈 얼굴의 자화상은 너무 처연해 보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어디를 오고갈 때 자주 들리게 된다. 멕시코 시티 대성당이라 불리는 메트로 폴리타나 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을 찾았다. 중남미 최고의 성당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 명동 성당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1520년에 짓기 시작해 근 30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대성당을 들어가니 제단은 온통 금칠을 해놓았다. 유럽에 있는 성당과 외양은 비슷했으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는 것이 좀 달랐다. 이 대성당도 지반 침하로 바닥이 갈라지고 건물이 기우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과달루페 옛 성당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아즈텍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했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대성당을 지은 스페인 정복자에게 보내는 슬픈 영혼들의 소박한 복수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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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점 2013.08.07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멕시코엔 여러문명의 기억이 남아있네요 ^^

  2. 보리올 2013.08.07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를 다녀온 후에야 멕시코를 보는 제 시각이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SONBE님도 시간이 허락하면 꼭 한 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님의블로그도 다양한 내용으로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잘 봤습니다.

 

카톨릭의 나라인 멕시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가 바로 이 과달루페 바실리카(Basilica de Guadalupe).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모 발현지 중 하나다. 지하철 6호선 라 빌라 바실라카( la villa-basilica) 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바실리카 입구에 도착하면 넓은 광장 뒤로 크고 작은 아홉 개의 성당이 모여 있어 하나의 카톨릭 성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전체를 빌라(Vill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안에 들면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저절로 신심이 돋는 것 같았다.

 

과달루페 바실리카를 알려면 여기서 성모가 발현했다는 이야기부터 이해를 해야 한다. 여기 있는 성당이나 유적이 모두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531년 테페약(Tepeyac) 언덕 위를 지나던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성모가 나타나 “내가 성모 마리아니 이 사실을 알리고 이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하라”고 하셨다. 후안은 이 사실을 주교에게 알렸으나 이 스페인 주교는 무슨 미친 소리냐고 그 말을 무시해 버렸다. 이후 성모는 다시 나타나서 테페약 언덕에서 딴 장미꽃 다발을 망토에 싸서 주교에게 가져가라 했다. 때는 한겨울이라 장미가 필 철이 아니었기에 이를 본 주교가 성모 발현을 믿고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성모 발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가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그것은 후안이 장미 다발을 쌌던 망토인데, 그 망토에 성모상이 맺혀 있다고 전해 진다. 용설란에서 뽑은 실로 짠 천연직물은 100년을 넘기기 어려운데 아직까지도 천이 남아 있다는 사실, 칠감이나 붓질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성모 눈동자를 확대해 보니 당시 옆에 있던 후안의 상이 맺혀 있었다는 것 등 수많은 불가사의는 바티칸 당국의 면밀한 조사와 과학적 검증을 거쳐 기적의 증거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후안 디에고는 2002년 카톨릭 성인으로 공표되었다. 인디오로선 처음으로 성인이 탄생한 것이다.

 

1976년 새로 지었다는 성당(New Basilica)부터 먼저 찾았다. 처음 지은 구성당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원형 경기장처럼 생겼다. 마침 안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있어 잠시 자리에 앉아 미사를 지켜 보았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경건한 분위기가 좋았다.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그 규모에 놀랐다. 그 넓은 성당에 기둥이 없어 더 넓어 보였고, 제단 위에 설치된 벌집 모양의 조명등도 특이했다.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지하에 과달루페 성모상이 그려진 천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본은 아니라고 한다. 그 앞에 멈춰 서서 구경할 수는 없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게 되어 있다. 한 번 보기엔 너무 아쉬워 몇 번을 타고 왔다갔다 했다.

 

 

 

 

 

성당을 빠져 나오니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2005타계한 교황은 생전에 과달루페 성지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실제로 재임 중에 여러 번 이 성당을 방문하였고, 마지막 방문길에는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으니 성모상이 맺힌 망토를 만져보고 싶다고 하여 그 실물을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구성당(Antigua Basilica)을 둘러 보았다. 성모가 발현했다는 1531년부터 짓기 시작해 1709년에 완성한 성당이다. 후기 바로크 건축 양식을 따랐는데, 노란색 돔과 양쪽 종탑이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이 구성당은 지반 침하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바닥도 여기저기 갈라지고 움푹 꺼진 곳도 있었다. 호수를 메우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단다.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인디오 문명과 스페인 양식을 섞어 만든 특이한 형상의 시계탑을 보기 위해서다. 뭔가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진 상식으론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나머지 성당을 둘러볼 차례다. 구성당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카푸치나스(Capuchinas) 성당으로 붉은 돔이 인상적이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인디오스(Indios) 성당은 실내를 하얗게 칠해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좀 떨어진 위치에 세운 바로크 양식의 포시토(Pocito) 성당은 아담한 원형으로 다른 성당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이 모든 성당 안에는 성모의 발현 모습과 후안 디에고를 그려 놓거나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성모 발현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면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울 것 같았다.

 

 

 

 

 

 

 

 

 

  

포시토 성당을 나와 계단을 타고 테페약 언덕 위로 올랐다. 언덕이라고 하지만 높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계단을 오를수록 구성당과 카푸치나스 성당 지붕 너머로 멕시코 시티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망이 점점 좋아지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언덕에 올라 성 미카엘(Saint Michael) 성당도 둘러 보았다. 실제로 성모가 발현한 곳도 이 언덕이었고 주교에게 증거로 건네준 장미를 꺽은 곳도 바로 여기다. 오늘날 과달루페 바실리카를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당 앞 공터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서면서 과달루페 바실리카와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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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멋대로~ 2013.08.06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 여행기 접하기 쉽지 않은데
    잘 봤습니다.
    종종 놀러올게요

  2. 보리올 2013.08.06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방문에 댓글까지 남겨주셔서요. 님의 블로그 잠깐 둘러 보았습니만 참으로 깔끔하게 잘 꾸며 놓으셨네요. 부럽습니다.

 

멕시코 시티 하면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퀴즈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어느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는데 관제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단다. 비행기에 폭약을 설치했으니 해발 2,000m 아래로 내려오면 비행기는 자동 폭발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는 영영 착륙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관제탑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종사는 처음엔 무척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기수를 남으로 돌렸단다.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갔을까요?”가 퀴즈의 내용이었다. 답은 당연 멕시코 시티였다. 왜냐 하면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은 해발 2,230m의 높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시티는 인구가 885만 명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2천만 명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엄청 큰 도시인 셈이다. 예전부터 은 생산으로 부유했던 멕시코는 지금은 옛 영화를 많이 잃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 그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분위기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은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데킬라, 코로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거기에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멕시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이만한 여행지가 어디 흔할까 싶다. , 멕시코 치안 문제는 늘 골치거리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멕시코 시티의 소칼로 광장이나 과나후아토, 칸쿤에서는 그리 위험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밖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한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은 단연 소칼로(Zocalo) 광장이다. 소칼로의 정식 명칭은 헌법 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 이 광장을 중심으로 유럽 스타일의 도심이 형성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 때문이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그들은 당시 아즈텍 최고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허물고 그 위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바로 멕시코 시티다. 대통령궁과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과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광장엔 사람들로 넘쳐 흘렀고 여기저기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열리는 시위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가건물을 설치하거나 갖가지 행사를 개최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 때문일까?

 

 

 

     

묘한 기대감에 들떠 소칼로 광장 구경에 나섰다.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진 않았다. 내가 갔을 때가 성탄절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공기 속에서 뭔가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건물에 붙인 크리스마스 장식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광장 가운데에선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어 몇 곡을 들었다. 광장 외곽 길거리에는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카드점을 치는 점쟁이는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손으로 악기를 돌리며 노래를 들려준 댓가로 동전 한 푼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디오 복장을 한 거리 악사들의 신나는 공연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어디 그 뿐인가. 알바카(Albaca)란 허브를 태운 연기로 사람에게서 사악한 영혼을 쫓아낸다는 인디오 주술사,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세 바퀴 달린 앙증맞은 택시, 그리고 옛 사람들을 그린 벽화까지 모두 달력을 장식할만한 멕시코 고유의 풍경이라 할만 했다.

 

 

 

 

 

 

 

 

 

 

       

대성당 옆으로 가니 아즈텍 신전에서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라 부르는 이곳은 입장료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밖에서도 대강의 모습은 볼 수가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전을 부숴 그 돌로 다른 건물을 지었다는데, 지하에 몇 겹으로 세워진 건물 토대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궁 안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벽화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통령궁 공식 행사 때문에 이틀간 일체 사람들 출입을 차단한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탄생지였던 과나후아토의 박물관도 문을 닫아 허탕을 쳤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소칼로 광장을 벗어나 지하철 역사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이나 역사는 좀 낡긴 했지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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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y 2013.09.14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칼로 광장에 가봤다니 부러워요ㅠㅜ 저는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다녀왔는데 멕시코 교육개혁 반대운동 시위때문에 광장이 폐쇠되서 못가봤습니다. 그래도 사진으로나 봐서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럼 좋은하루되세요!!

  2. 보리올 2013.09.15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2주를 멕시코에 계셨는데 시위 때문에 소칼로 광장에 가시지 못했단 말씀입니까? 속 많이 상하셨겠네요. 다음에 멕시코 또 오란 의미로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