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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3 [남도여행] 전주 한옥마을 ①
  2. 2013.12.20 논산에서 자장면과 절밥을 먹다 (8)

 

남도에 근무하는 후배들 얼굴을 본다고 가는 길에 하룻밤을 전주에서 묵었다. 호젓하게 홀로 나선 길이기에 여유를 부리기가 좋았다. KTX는 비싸기도 했지만 차창 밖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일부러 무궁화호를 끊었다. 내 어릴 적에 탔던 완행열차가 그리웠지만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무궁화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옥 스타일로 번듯하게 지어 놓은 전주역을 빠져 나와 한옥마을로 향했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번에는 지도 상에 표시된 사적이나 한옥을 위주로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동행이 없으니 발걸음에 자유가 넘쳤다. 하지만 한옥마을의 전체적인 느낌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한옥 형태를 취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지만 상업 시설이 대부분이라 전통 한옥이 지닌 품격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경기전이나 풍남문 같은 사적도 있지만 사람들 관심은 문어꼬치 같은 먹자판이나 기념품 가게에 쏠려 있는 듯 했다. 전통 체험이라는 것도 너무 형식적이고 일회성으로 그쳤다. 유흥지로 변모한 한옥마을에선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밖에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이 유명하다고 찾아오는 푸른 눈의 이방인들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내심 궁금했다.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전주역사가 외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옥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서 만난 오목대(梧木臺).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기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여기서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했다고 전해진다.

 

소리문화관의 전시실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놀이마당에선 아이들이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명인명장으로부터 전통공예를 배우고 체험하는 전주공예명인관은

인적이 없어 적막이 감돌았다.

 

 

한옥민박집이 들어선 뒷골목이 오히려 내겐 정겹게 보였다.

  

 

 

 

장현식 고택과 풍락헌이라 불렸던 동헌이 한옥의 전통미를 뽐내고 있었다. 새로 지은 한옥에 비해선 품격이 남달랐다.

 

 

 

오랜 시간 유학을 가르쳤던 전주향교에는 공자 초상을 모신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걸맞게 남천교 위에 청연루(晴煙樓)라는 누각을 새로 지었다.

 

보물 308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한옥마을 옆에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풍남문 광장에는 <발목 잡지마!>라는 특이한 제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는 전동 성당은 그 우아한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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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다녀온 분들과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실상은 논산에 계시는 지현 스님께서 우리를 모두 논산으로 초대한 것이다. 저녁은 사찰 음식으로 준비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겠다 했다. 하루를 함께 보낼 프로그램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시내버스를 이용해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가서는 논산행 기차를 탔다. 명색이 무궁화호였지만 예전의 완행 열차처럼 정차하는 역이 많았다. 비둘기호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세상은 점점 살기 편해지는데 반해 낭만과 감동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골 풍경은 여전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누런 벌판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여긴 내가 그리던 고국의 산하가 아닌가.

 

 

트레킹을 함께 했던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를 타고 상월면에 있는 자장면 집으로 향했다. 이라곤 서너 채가 전부인 조그만 동네에 있는 동금성이란 중국 음식점이었다. 이렇게 허름한 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나서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누군가가 이 식당을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해물 볶음 자장을 시켰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해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소화를 시킬 겸해서 인근에 있는 명재 고택에 먼저 들렀다가 노성산에 오르기로 했다. 명재는 조선 숙종 때 학자였던 윤증 선생의 호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은 충청도 양반 가옥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겐 장독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발 348m의 노성산을 오르기 위해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길 위에 황금색 솔잎이 떨어져 있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일행들은 무슨 화제가 그리 많은지 재잘재잘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노성산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어 땀 식히기엔 제격이었다. 동쪽으로 계룡산 봉우리들이 보였다.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통제되는 천황봉도 희미하게 보였다. 저녁은 절밥으로 공양을 들었다. 야채와 나물 반찬으로 가득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우리 손님상에는 싱싱한 굴 한 접시가 따로 올라왔다. 깔끔한 절밥으로 모처럼 입맛을 돋우었다. 특별한 대접을 받은 소중한 하루였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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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2013.12.20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짜장은 순수한 볶음짜장인데 저건 물짜장이네요

  2. 보리올 2013.12.20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물자장이라니요? 솔직히 물자장이란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런 메뉴도 있나요? 전 저것이 볶음자장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3. 아우라마스터 2013.12.21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있는 짜장면이!!ㅋㅋㅋㅋ

  4. 보리올 2013.12.22 0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 짦은 댓글이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자장면 잘 하는 집이야 많지 않습니까. 얼른 한 그릇 드시고 오시지요.

  5. 설록차 2013.12.22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나푸르나에 비하면 동네 마실 수준이지만 힘든 일을 함께 한 동료를 만나는 기쁨은 더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글과 사진을 읽는 저도 몸에 힘들어 갔는데요...ㅎㅎ 이야기 거리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6. 보리올 2013.12.22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려운 일을 함께 하고 나면 그 뒷담화가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여자분들이 많으면 이야기가 훤씬 많아지지요. 기분좋은 수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