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묵은 마을엔 가게가 없었고 알베르게에도 취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비상식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타 마리냐(Santa Marina)까지 가서 아침을 먹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국인과 얼마를 함께 걸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친구는 엄청 큰 배낭을 지고 우리를 앞질러 간다. 텐트도 있길래 캠핑을 하면서 왔냐고 물었더니 실제 텐트는 세 번인가 치고 매일 알베르게에 묵었단다. 그럴 것이면 텐트는 무엇하러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산타 마리냐 성당 앞에 있는 바에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토스트가 아니라 이건 일종의 샌드위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당을 둘러 보았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성당은 공동묘지를 수호하고 있는 듯 했다.

 

몬테 아로(Monte Aro)란 야트마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을 몇 개 지났다. 건너편 아래쪽으론 푸른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가끔 빗방울이 흩날린다. 신기하게도 우의만 걸치면 비가 그치길 몇 차례 거듭했다. 사람들이 갈리시아 지방의 변덕스런 날씨를 자주 이야기하더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길을 걸어 코르쏜(Corzon)으로 내려서는데 멀리 큰 호수가 나타났다.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니라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였다. 코르쏜의 산 크리스토보(San Cristovo) 성당과 그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무슨 전시장처럼 보였다. 공동묘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은 솔직히 처음 보았다. 성당 입구에는 십자가가 서있었고 종탑은 성당 건물과 동떨어져 따로 세워져 있었다. 종탑이 본당 건물과 떨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베이로아(Olveiroa)로 들어섰다. 어느 건물 벽면에 큰 글씨로 마을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렇게 마을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는 난해한 벽화도 만났다. 피카소의 그림을 흉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열심히 돌고 있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꽤 높은 고원지대로 올랐다. 저 아래 계곡엔 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하류엔 제법 폭이 넓은 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로고소(OLogoso)에서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를 겸하는 식당인지라 주인이 자꾸 여기서 자고 가라고 권한다. (Cee)까진 너무 멀다고 슬며시 겁도 주었다. 도대체 거리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15km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충분히 가고도 남지.

 

오스피탈(Hospital)에 있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벽면에 붙은 지도와 거리표를 대충 훝어 보았다. 카바이드를 생산하는 커다란 공장이 나왔고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무시아로, 왼쪽은 피스테라로 간다. 왼쪽으로 들어섰다. 머지 않아 평원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운치 있는 길이 나왔다. 마치 선자령 어디쯤을 걷는 것 같았다. 산 속에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이름이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이라 했다. 근처에 인가나 마을도 없는데 이곳에 성당을 세우면 도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까닭을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을 계속 하다가 이번엔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걷게 되었다. 불도저가 도로 표면을 막 밀어 놓은 곳은 방금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되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야트마한 언덕에서 공사 구간이 끝났다. 그런데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잘못 들었겠지 했다. 곧장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앞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날씨 탓에 시야가 밝진 않았지만 분명 바다였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쪽으로 내려서면서 점차 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점으로 보이던 배들도 점점 크게 다가왔다. 세에 도착해 알베르게부터 잡았다. 여긴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숙박비로 12유로를 받는다.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파스타로 저녁을 마치자 피로가 몰려온다. 내일 일찍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위해 오늘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탓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땅끝에서 망망대해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산타 마리냐 마을로 가면서 마주친 시골 풍경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는 산타 마리냐의 고풍스런 성당

 

 

마로냐스(Maronas) 마을을 지났다. 축사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택시 회사의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코르쏜에는 아름다운 공동 묘지와 성당이 있었다.

 

올베이로아 마을의 벽화를 보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했다.

 

 

올베이로아를 지나 고원으로 오르니 댐과 그 건너편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로고소 마을의 카페에서 점심으로 햄이 들어간 보카딜료스에 맥주를 시켰다.

 

오스피탈 마을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가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오스피탈에서 피스테라와 무시아 가는 길이 갈렸다. 피스테라를 먼저 가기로 했다.

 

 

고원을 굽이쳐 흐르는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져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길을 걸으며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을 지나쳤다. 무슨 수도원 건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숲속에 홀로 세워진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

 

순레길이 지나는 비포장도로가 공사를 하고 있어 진흙탕을 지나야 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세 마을도 눈앞에 나타났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는 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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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14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동묘지에 신경을 많이 쓴거같아요 ~ 이쁩니다!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순례길을 쭉 걸으시다가 끝내 보시게 되었을때 감회가 어떠셨어요?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걷다가 마지막 봉우리를 찍고 하산하는데 찻길이 보이는 느낌일거같아요~

    • 보리올 2016.04.14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네 표현대로 백두대간 끝내고 진부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알베르게의 아침 풍경이 무척 여유로웠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치는 사람이 없었다. 먼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안도감, 아니 성취감에서 나오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난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 발로 걸을 예정이라 남들처럼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는데 나만 홀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어느 한국인 여자분이 밥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 그릇을 그냥 준다. 밥을 태워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양파 볶은 것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전 8 30분에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평소보단 좀 늦은 출발이었다.

 

알베르게 건너편으로 아침 햇살을 받은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빤히 보였다. 붉은색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어 고도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엔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성당 뾰족탑으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들어왔다. 호텔 앞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카미노 데 피스테라(Camino de Fisterra)가 시작된 것이다. 외곽으로 빠지는 지점에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엔 무시아(Muxia)까지 86.337km란 거리 표시만 있었고 피스테라까지의 거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로 소수점 세 단위까지 표시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페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확한 나라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산티아고를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섰다.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벤토사(Ventosa)와 트라스몬테(Trasmonte) 등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마을은 없었다. 시골에 있는 집치고는 규모가 꽤 컸고 붉은 지붕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순례길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피스테라나 무시아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니 숫자가 줄긴 많이 줄었다. 그 덕분에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푸엔테 마세이라(Puente Maceira)에서 탐브레(Tambre) 강을 건넜다. 근사한 다리에다 보를 넘은 강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 관광객들도 꽤 보였다. 네그레이라(Negreira)로 들어서기 전에 저택이 하나 나타났는데 담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쉐퍼드 두 마리가 담 위에 점잖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았다. 네그레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카페에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크기가 상당해서 두 손으로 들고 먹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맛이 없는 햄버거는 처음 보았다. 억지로 먹느라 정말 힘들었다. 이 마을에 혹시 수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 있었는데 문을 닫았단다. 도대체 이렇게 큰 마을에서 빵이나 과일을 사기도 어려우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만난 산 마우로(San Mauro) 성당과 코톤 대저택(Pazo de Coton)이 인상적이었다. 대저택 아래에 있는 아치형 문을 지나야 했다.

 

오전에 이미 20km를 걸었고 빌라세리오(Vilaserio)까진 다시 13km를 걸어야 했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걸었다. 눈앞에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무척 여유로웠다. 빌라세리오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더니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졌다. 알베르게 시설은 형편없었다. 침대가 없는 방에는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이런 알베르게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특이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하루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도네이션이라 하지만 밤 늦은 시각에 관리인이 수금하러 와서 5유로씩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도 받았다. 이 마을에 유일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구운 햄과 계란 프라이, 감자 튀김이 나왔는데 성의도 없었지만 맛도 별로였다. 돈이 좀 아까웠다.

 

대서양 연안에 있는 피스테라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산티아고가 잠에서 깨어나 밝게 웃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시청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무시아까지 거리만 적어 놓았다.

 

산티아고를 벗어나 어느 언덕 위에서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보았다.

 

벤토스 마을에서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가 눈에 띄었다.

 

트라스몬테 마을에선 주민들이 겨울을 날 장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푸엔테 마세이라는 다리도 예뻤지만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도 볼만했다.

 

길가에 네그레이라의 어느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예쁜 그림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네그레이라 직전에 있던 어느 저택 담장 위에 쉐퍼드 두 마리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페인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으나 이 햄버거는 솔직히 먹기가 좀 힘들었다.

 

네그레이라 도심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진 순례자 상

 

 

네그레이라의 코톤 대저택 아래를 통과하는 아치문. 산 마우로 성당은 코톤 대저택과 붙어 있었다.

 

 

네그레이라 성당은 시내에서 좀 벗어난 언덕 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적한 시골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길에서 만난 표지석 위에 등산화 한쪽이 놓여 있었다.

 

페냐(Pena) 마을의 산 마메데(San Mamede) 성당

 

 

빌라세리오에선 학교로 쓰이던 건물을 공립 알베르게로 개조한 곳에 하루 머물렀는데,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에서 하룻밤을 자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빌라세리오에서 일몰을 맞았다. 그런대로 석양이 아름다웠다.

 

 

빌라세리오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여직원은 불친절했고 가격에 비해 음식도 성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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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05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공식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자마자 여러 방면에서 저리 비교가 될까요? 연장선일뿐인데 말이죠~ 새로운 여행을 떠나시는 기분이셨겠어요.

    • 보리올 2016.04.07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길의 이름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시설도 그렇고 사람들 숫자도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더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이 이 코스를 생략하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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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