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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2 플로리다 ⑤ : 키웨스트

 

플로리다 반도 남서쪽으로 길게 줄지어 형성된 작은 섬들을 통틀어 플로리다 키(Florida Keys)라 부른다. 뾰족한 열쇠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 32개의 섬을 42개 다리로 연결해 총 240km에 이르는 긴 도로를 만들었다. 미국다운 발상이라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요즘 섬을 다리로 연결하는 시도가 많지 않은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트루 라이즈(True Lies)> 촬영지로 내게 각인된 곳이라, 이번 플로리다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았었다.  

 

마이애미에서 1번 국도를 타고 키웨스트(Key West)를 찍으러 출발을 했다. 끝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리 위에선 차를 세울 수 없어 바다를 제대로 구경하기 쉽지 않았고, 섬에선 바다를 조망하는 위치가 낮아 역시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유명한 쪽빛 바다와 산호초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저 양옆에 바다를 끼고 끝없이 이어진 다리를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미국 최남단을 찾아가는 길이 좀 지루해졌다.

 

  

 

중간에 있는 7마일 브리지에 잠시 들렀다. 1912년에 준공된 옛 다리는 몇 차례에 걸친 허리케인의 공격에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1982년 새로 다리를 놓았다. 새로 지은 다리에서 수평으로 달리는 옛 다리를 볼 수가 있다. 영화 <트루 라이즈>에서 테러리스트를 추격하던 슈왈제네거가 비행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다리를 폭파했던 곳도 바로 여기다. 매년 4월에 이 다리에서 마라톤을 연다니 그 시합에 참가해 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다리 위를 달리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옛 다리는 낚시꾼들의 놀이터였다. 다리에서 바다로 길게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많이 잡았냐는 질문에 겸언쩍게 웃는 것을 봐서는 수확이 별로인 모양이다. 한 무리 낚시꾼들이 배를 타고 낚시에서 돌아온다.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면 아무래도 조황이 다를 것 같아 배를 대는 곳으로 내려갔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많이 잡았냐고 물었더니 아이스박스를 열어 자기가 잡은 고기를 보여준다. 60cm가 넘는 물고기를 자랑스럽게 우리에게 내민다. 이 정도면 여기서도 월척으로 치겠지

 

 

 

 

키웨스트는 미국의 최남단이란 지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땅끝이라 하면 흔히 육지의 끝을 이야기하는데 이들은 섬을 다리로 연결해 새로운 개념의 땅끝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키웨스트 바닷가에 있는, 미국 최남단을 표시하는 표지석에는 쿠바가 90마일 떨어져 있다고 적혀 있다. 미국인들은 공식적으로 갈 수 없는 땅, 쿠바가 저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묘해진다.

 

 

과거 스페인령이었던 키웨스트는 스페인 색채가 꽤 강한 도시다. 도시는 그리 크지 않아 걸어다니면서 구경해도 충분하다. 전기차나 자전거를 렌트해 돌아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키웨스트 최고의 볼거리는 멜로리 광장에서의 일몰이 아닐까 싶다. 배를 타고 나가 석양을 보는 선셋 크루즈도 유명하다. 멜로리 광장 주변에 인파가 엄청나 주차장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도착도 좀 늦었고 구름 속에 가린 석양도 별로였다. 선셋 크루즈에 나선 범선들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에겐 오히려 1번 국도(US Route 1)의 남쪽 종점이란 이정표 하나가 더 의미있었다. 1번 국도는 미국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다. 메인 주의 포트 켄트(Fort Kent)를 출발해 여기까지 3,825km를 달린다. 오래 전부터 아틀랜틱 하이웨이(Atlantic Highway)라 불리던 이 도로는 대부분의 교통량을 I-95 주간 고속도로에 내주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키에선 옛 영화를 재현하고 있는 듯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웬만한 도로 하나가 수 천 km를 달리니 미국이란 나라 정말 크긴 크다.

 

  

 

헤밍웨이도 여기를 유명하게 만든 관광상품 중 하나다. 실제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노인과 바다>같은 작품을 썼지만 1920년대, 1930년대에 여기서 살았던 것은 맞다. 그래도 너무 우려먹는 기분이 들었다. 헤밍웨이가 두 번째 부인 폴린(Pauline)과 몇 년 살았던 헤밍웨이 하우스는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했고. 헤밍웨이가 술 한 잔 하러 즐겨 찾았다는 슬루피 조스 바(Sloopy Joe’s Bar)는 사람들로 넘쳐나 도저히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여기서의 헤밍웨이 삶보다는 난 솔직히 쿠바에서의 그의 행적이 더 궁금했다.

 

마이애미 호텔로 돌아가는 4시간 밤길 운전에 나섰다. 키웨스트는 유명 관광지라 호텔료가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마이애미에서 당일치기로 키웨스트를 다녀가기엔 운전으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운전하고 와서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명소 몇 군데 보는 것이라면 투자에 비해 효과가 별로란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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