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룬 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3.21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3>
  2. 2013.03.07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6>
  3. 2013.03.02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

 

텐트에서 나와 모처럼 아침 산책을 즐겼다. 강가에는 소나무와 랄리구라스가 보인다. 이는 우리가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섰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바룬 강물에 고양이 세수도 했다. 열흘만에 세수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난 영락없는 히말라야 체질인 모양이다. 국립공원 직원이 우리가 묵은 야영장을 찾았다. 트레킹 기간 중 불편했던 일은 없었는지 묻는다. 이제 네팔 국립공원도 서비스가 대폭 나아지려나 싶었다.

 

바룬 강을 따라 또 다시 너덜지대를 걷는다. 설산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주변엔 하늘로 우뚝 솟은 암봉이 나타났다. 클라이머들이 좋아할만한 암봉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 나라라면 멋진 이름이 하나씩 붙었을 봉우리들이지만 여기선 그저 무명봉이다. 바룬 강을 벗어나 급경사 오르막을 타기 시작했다. 다시 십튼 패스로 오르기 위해 땀깨나 흘려야 하는 구간이 시작된 것이다.

 

뭄북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토막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뭄북엔 염소와 양을 치는 부부가 들어와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다. 봄에 들어와 가을에 나간다 하니 사람사는 세상으로 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인적없는 산 속에서 단둘이 외롭게 생활하다가 우리가 나타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한 대장이 그들에게서 염소 한 마리를 사라고 했다.

 

도바테에 다시 텐트를 쳤다. 땅도 고르지 않고 공간도 좁아 텐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쳐야 했다. 뭄북에서 산 염소가 오늘 저녁 우리의 제물이 되었다. 우리 대원들뿐만 아니라 포터들까지 포식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도마가 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었다.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다. 이 정도로 억척스러워야 큰 돈을 벌겠지. 옹추와 스탭들을 데려가 럭시 한 잔씩을 대접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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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간에 낙석 위험 지대가 있어 얼음이 녹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해 출발을 서둘렀다. 이번에는 바룬(Barun) 강으로 내려간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또 다시 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 후 강을 옆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된다. 내려서는 도중에 뭄북(Mumbuk) 야영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잠깐 동안이나마 쓰레기 치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설사면이 꽤 가파르다. 창피스럽게도 이 설사면에서 7번이나 넘어졌다. 엉덩방아야 바로 일어나면 되지만 한 번은 설사면 10 m를 미끄러져 내려와 여러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눈 속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넘어졌는데, 그 때문인지 오른발이 약간 뒤틀리면서 무릎에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바룬 강으로 내려섰다. 이제부턴 물줄기를 거슬러 원류까지 줄곧 오르기만 하면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 오른쪽으론 소나무가 빼곡하고 왼쪽엔 랄리구라스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원시림으로 보였다. 푸른 이끼도 많았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산사면 아래에는 너덜지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개의 카르카를 지났다. 카르카란 초지가 있어 야크나 양을 방목해 키우는 곳을 일컫는데, 타시가온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으로 들어와 소와 양을 키우고 가을이 되면 마을로 돌아간다.

      

강을 따라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순했다.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강을 건너면 양리 카르카(Yangle Kharka)에 닿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려 놓고 쉬는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식물학자를 만났다. 3개월간 체류하며 히말라야의 식물종을 연구하고 있단다. 혼자서 가이드와 포터 6명을 데리고 다닌다. 당말 베이스 캠프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자도 만났다. 다와와 그의 아들 치링이었는데, 7살짜리 치링이 등짐을 지고도 제법 잘 쫓아간다.

 

조금 욕심을 내서 해발 4,100m의 자크 카르카(Jark Kharka)까지 하루에 끊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룬 강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펄쩍 뛰면 건널 수 있는 개천 수준으로 변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이 내는 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원용덕 선배의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며칠 간의 고된 일정 때문인지 몸에 이상 징후를 보이며 너무 괴로워한다. 일단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 카트만두로 후송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늘 밤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고산병에 대한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의 진단법은 좀 다르다. 고산 원정 경험이 많은 한 대장은  일단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면 고산병으로 본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김덕환 선배는 이와는 달리 의학적으로 접근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평소 약했던 부위가 탈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진짜 위험한 고소 증세는 오줌을 제대로 누지 못하는 증상이란다. 이게 발전하면 폐수종이 되기 때문에 고소에서 이뇨제 처방은 보편적이다. 난 아직 매끼 밥도 잘 먹고 오줌도 잘 누는 편이니 걱정은 좀 덜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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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마칼루(Makalu, 해발 8,463m)하이 베이스 캠프를 청소하기 위해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 다시 참여를 했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에베레스트나 로체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다. 다른 8,000m급 고봉에 비해 베이스 캠프의 고도도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인원 14명의 평균 연령은 엄청 높았다. 한 대장으로선 좀 걱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아 오신 분들이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현명하게 잘 판단하리라 믿었다.

 

마칼루는 에베레스트 동쪽으로 불과 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있는 쿰부 지역을 지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접근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툼링타르(Tumlingtar)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 멀리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가는 길처럼 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트만두를 떠나면서부터 매일 텐트를 쳐야 했고, 속에서 빗방울과 싸락눈을 피해야 했다. 그래도 그것은 낭만이 있어 좋았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적잖은 다리품을 요구한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뚝 떨어뜨려 두 개나 되는 강을 건너야 하고, 중간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Shipton La)를 넘어야 한다. 초반부터 고산병 증세로 힘이 드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룬(Barun) 강을 따라 베이스 캠프로 다가갈수록 양옆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석도 겁났지만, 지겹게 걸어 올라야 하는 빙하 위 너덜지대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은 안나푸르나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갔다. 오전 11시발 툼링타르행15인승 고르카(Gorkha)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다. 출발시각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12시 반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늦어진다고 이야길 한다. 누가 매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나누어 준다. 얼마에 샀냐고 물었더니 캔당 150루피. 하지만 그 뒤에 간 한 대장은 100루피에 샀다. 그 다음 사람은 다시 150루피. 마지막 사람은 135루피. 도대체 맥주 가격이 왜 널 뛰듯 하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엿장수 맘대로가 정답 아닌가 싶었다. 산에 들기도 전에 취기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청사라 보기엔 너무 허술한 툼링타르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비포장 활주로 빼고는 잡초만 무성한 풀밭이었다. 온통 연기에 그을은 식당에서 감자를 삶아 점심을 대신했다. 우리의 출현에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베이스 캠프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마네반장(Mane Bhanjyang)까지는 지프를 이용했다. 4월 하순의 뜨거운 햇살과 무더위에 땀은 비 오듯 하고 고물차에서 풍기는 역한 휘발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빨리 시원한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나마스테"하면서 두 손을 모으는 아이들 덕분에 그나마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네반장의 축구장 한 켠에 텐트 7동과 식당 텐트 한 동을 쳤다.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일부 빼앗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네들도 공을 차면서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 보곤 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길 양쪽에 상가가 자리잡은 꽤 큰 마을이었다. 무슨 물건을 파는지 가게를 둘러보다가 야영지에서 신을 슬리퍼를 하나 샀다. 이 사람들은 이런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 캠프도 간다. 우리는 튼튼한 등산화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게 삶과 레저의 차이인가?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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