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뒤, 카트만두보다는 한적한 전원 숙소를 찾아 하티반(Haatiban) 리조트로 이동했다. 카트만두 외곽으로 한 시간 가량 빠져 나간 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버스가 멈췄다. 여기서부턴 길이 좁아 리조트 차량으로 갈아타야 한단다. 짚 몇 대에 분승해 구불구불 소나무가 많은 언덕길을 올랐다.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리조트 전체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티반 리조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하티반 리조트는 방갈로 형태로 숙소를 만들어 놓아 방이 떨어져 있었다. 허영만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하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짐을 풀고 식당에 모였더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지 전등 대신 촛불을 켜놓았다. 우와,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가 오히려 운치가 있어 좋았다. 그래도 일부 지역은 자가 발전으로 불을 밝혀 놓아 큰 불편은 없었다.

 

카트만두의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씩 마셨다. 정확히 오후 7 30분이 되니까 전기가 들어온다. 일단 헤드램프를 켜고 샤워하는 것은 면했다. 실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통돼지 바베큐를 하기로 했으나 하티반 측에서 반대가 심했단다. 그 대신 박영석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잔뜩 사들고 왔다. 좋은 안주가 도착한 핑계로 럼주를 몇 잔 받아 마셨더니 금방 취기가 오른다.

 

여기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고 해서 일출 시각에 맞춰 테라스로 나갔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 일출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멀리 카트만두 시내와 그 뒤로 설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에베레스트는 어느 봉우리인지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다가가 설산을 보고 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짚을 타고 다시 큰길까지 나와 버스로 갈아 달탔다.

 

 

 

 

 

 

낮에는 카트만두에서 각자 자유 시간을 갖은 후 저녁은 고급 달밧에 네팔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보전 그리허(Bhojan Griha)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식당은 150년 전에 세워진 궁전을 개조해 만든 고급 레스토랑으로, 네팔에서는 전통 무용과 전통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솔직히 난 벌써 몇 번을 다녀간 곳이라 그리 호기심이 많진 않았다.

 

종업원이 곡예를 부리듯 럭시를 따라준다. 팁을 적당히 쥐어주면 럭시는 거의 무한 리필이다. 치킨 커리가 들어간 고급 달밧이 기본으로 나오는데, 네팔 사람들처럼 손으로 주물러 먹어도 되고 숟가락을 달래서 먹어도 된다. 우리 입맛에도 맞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후 7시가 되면 넓은 방으로 악대와 무용수가 들어와 공연을 시작한다. 저녁 식사는 가능하면 그 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남여 무용수들이 짝을 이뤄 네팔에 있는 일곱 개 부족의 전통춤을 보여준다. 음율도 흥겹고 춤사위로 꽤나 현란하다. 어느 정도 흥이 돋우면 손님들을 나오라 해서 함께 춤을 춘다. 네팔 전통춤과 우리의 막춤이 마구 섞여 무척 흥겨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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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즐거워 보이네요~^^
    저도 함 꼭 가보고 싶네요~
    좋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올뺌씨 2013.07.16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커리 손으로 먹는거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저게 인도와 네팔 여행의 로망이었는데.

    화장실 문화 빼구요;;

    • 보리올 2013.07.16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리를 손으로 드시는 게 로망이셨다구요? 저는 잘 안되던데요. 아직도 숟가락을 쓰고 있답니다. 화장실은 그런대로 버틸만 하던데요.

 

허 대장과 협의해 아침 일정을 조율했다. 앞으로 매일 6시 기상, 6 30분 아침 식사, 그리고 7시 출발로 정한 것이다. 아침 식사도 모든 사람이 자리에 좌정하고 난 후, 우리가 예전부터 그랬듯이 대장이 식사 개시를 외치면 감사히 먹겠습니다로 화답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모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에 백두대간 종주 당시의 우리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첫 출발 신호는 박영석 대장이 울렸다. 모두들 배낭을 짊어지고 선두로 나선 박 대장을 따라 나섰다.

 

난 사진을 찍으며 걷다 보니 금방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점심 때까지는 후미에서 후배들을 모델삼아 사진을 찍으며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일행 중에 공식 모델은 윤정원과 이민경, 촬영은 주명진이 맡았다. 하지만 명진이 카메라 못지 않게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선이와 호준이도 촬영에 열심이고 나도 한 몫 거들었다. 산악 사진으로 유명한 이한구 작가도 박 대장을 따라왔다. 모델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상황이었다. 여기 서라, 저기를 봐라 하며 모델을 세워놓고 주문도 많다.

     

몬조(Monjo, 2835m)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했다. 조르살레(Jorsalle)에서 사마르가타(Samargata) 국립공원 경내로 들어섰다. 여기선 에베레스트를 사마르가타라 부른다. 장정모가 직접 우리 인원을 세며 국립공원 입장료를 납부했다. 허 화백은 아들 석균이를, 그리고 봉주 형님도 아들 우중이를 동반해 참가했다. 부자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며 나란히 걷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난 언제 아들 녀석 데리고 히말라야를 걸을 수 있을 것인가?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3440m)에 이를 때까지 두드 코시(Dudh Koshi) 강을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인다. 벌써 다섯 번인가 강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넜다. 남체로 연결되는 마지막 급경사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박 대장이 일행을 세우곤 에베레스트 정상을 가르킨다. 박 대장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느 누구도 여기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우리의 반가운 인사에 화답이나 하듯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걸려있던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에베레스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남체 바자르는 쿰부 히말의 중심지다. 세르파로 대표되는 고산족 마을로 유명하다. 남으론 콩데 봉, 동으론 템세르쿠 봉(6608m)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았다. 마침 남체에 난장이 섰다. 사진에서 보았던 남체의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 가고 실제로 내 눈에 비친 마을 풍경은 그저 그랬다. 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했지만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마을과 난장 모습을 스케치하듯 몇 장 찍었다.

 

히말라야 로지에 투숙했다. 남체에 도착하자 고산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탁 형님 내외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약사이기 때문에 대원들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챙기신다. 저녁을 먹기 전에 호준, 우중이와 함께 마을 구경을 나섰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다. 역시 고산지대임이 분명했다. 마을엔 PC방도 설치되어 있었다. 독일빵집에서 도너츠와 홍차로 시장기를 달랬다. 맛은 독일빵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팔에서 독일빵을 찾은 우리가 잘못이지.   

 

오후 6시에 저녁을 먹고 소화시킨다는 핑계로 세 시간이나 식당에서 수다를 떨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라 아무나 붙들고 이야기를 하면 몇 십분은 금방이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박 대장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부른다. 이미 3,000m가 넘었으니 모두들 고산병 걱정에 술을 마다하는 판이니 박 대장같은 사람은 무료할 수밖에.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을 함께 했던 이한구 작가가 그나마 옆에서 말동무를 해준다. 맥주 한 잔 마셨더니 머리가 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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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gi 2013.06.28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초대장을
    좀 보내주세요 darklight1406@gmail.com .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3.06.28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티스토리 초대장을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어 어떻게 보내는지 알아봐야겠네요. 이메일로 간단히 보낼 수 있다면 곧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알차고 멋진 블로그 만드시기 바랍니다.

    • 보리올 2013.06.28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초대장을 보내드리려 했으나 이미 초대를 받은 이메일 주소라고 발송이 되지를 않네요. 즐겁고 재미있는 블로그 만드시기 바랍니다.

  2. 무념이 2013.06.28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멋진 풍경이네요~ 꼭 가보고 싶습니다~ ^-^

    • 보리올 2013.06.28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댓글까지 남겨주셨네요. 무념이님 블로그를 들렀더니 엄청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앞으로 참조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3. 설록차 2013.07.1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모자 노란 상의와 줄무늬 모자 연두색 상의가 모델입니까...ㅎㅎ 이름만 독일빵집이라니~ 부산에 '부산서울뉴욕제과' 라는 빵집도 있었어요...구름다리에 색색깔 천을 메달아 놓은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요?

  4. 보리올 2013.07.19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델은 일곱 번째 사진에 있는 두 아가씨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들러리고요. 다리에 매달린 천조각은 '룽다'라 해서 다섯 가지 색깔의 천에 불경을 찍어 만들지요. 다리나 고개같은 곳에 매달아 평화를 기원하는 일종의 티벳 불교의 종교 의식입니다.

  5. 봄사랑 2013.07.2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모아저씨, 핀죠아저씨...모습도 보이네요^^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

  6. 보리올 2013.07.21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이렇게 정모와 핀조 아는 분을 온라인에서 만나네요. 그렇다면 히말라야를 다녀오셨단 의미겠죠? 봄사랑님, 반갑습니다.

 

카트만두 야크 앤 예티(Yak & Yetti) 호텔이 새벽부터 부산스러워졌다. 우리 일행이 루크라(Lukra)로 가는 오전 6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부터 설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침낭과 막걸리>라는 모임 아래 뭉친 산꾼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을 대장으로 40여 명의 산사람들이 매달 비박을 하며 우의를 다지다가 이렇게 EBC 트레킹까지 나선 것이다. 2002년에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모태가 되었다.

 

이번 트레킹에는 우리 나라 산악계를 대표하는 박영석 대장이 참가해서 의미를 더했다. 솔직히 꽤나 신경 쓰이는 거물이긴 하지만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어 서로 흉허물이 없는 사이였다. 박 대장은 이번 트레킹에 좀 무거운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지난 5월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겠다고 도전했다가 산화한 두 명의 후배, 오희준과 이현조를 기리는 추모탑을 세우기 위해 동판을 만들어 우리 EBC 트레킹에 동참한 것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는 네팔에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랑탕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코스에 속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에베레스트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는 여정이니 얼마나 가슴이 설렐까. 트레킹은 경비행기를 이용해 루크라에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조그만 비행기로 단번에 해발 2,840m 되는 지점에 내리기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루크라에 도착하니 카트만두완 달리 날씨가 쌀쌀해 옷깃을 여미게 된다.  

 

루크라 공항 옆에 있는 로지에서 밀크티 한 잔씩 하면서 울렁이는 속을 다스렸다. 기념 사진 한 장 찍자고 30명이 넘는 대식구가 줄을 서니 엄청 길다. 현지인들이 몰려 들어 우리 모습을 구경한다.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다. 히말라야를 경험했던 선험자들이 고산병에 대해 얼마나 겁을 주었던지 일행들 걷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것이 무슨 대수랴. 여기까지 와서 빨리 서두를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고산병 걱정 때문에 속도를 늦추었다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일행들이 몇 발짝 걷고는 그 자리에 멈춰서는 끊임없이 수다를 떠느라 속도가 나질 않는다. 20여 분 걷고 20여 분을 떠드니 걷는 시간보다 수다떠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히말라야를 트레킹한다는 흥분에다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게 되니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얼마나 많았을까. 난 멀리 캐나다에서 이 모임에 참가를 했으니 근황을 묻는 사람도 많았다.

 

길은 대체로 내리막길이라 부담이 없어 좋았다. 김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 행사를 맡은 네팔 현지 대행사 장정모 사장의 부인이 밤새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30명이 먹을 김밥을 홀로 쌌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정성이 대단하다. 2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는 팍딩(Phakding, 2610m)을 우리는 5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팍딩 스타 로지에 들었다. 방 배정을 받고 오후 대부분 시간은 휴식을 취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와 해바라기로 시간을 보냈다. 해가 서산으로 저물자, 이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수다를 이어간다. 다들 대단한 정력이다.

 

트레킹 첫날의 저녁 메뉴는 닭도리탕. 잘 먹고 열심히 걸으라는 의미에서 영양식을 준비했으리라. <클린 마칼루 캠페인>에 요리사로 참여했던 펨바를 다시 만났다. 이 친구는 카트만두의 소문난 주먹이라 하는데, 네팔에 있는 한식당 주방에서 한식을 배워 이제는 요리사로 원정대를 따라 다닌다. 식사를 마치곤 각자 방으로 흩어질 줄 알았는데, 젊은 친구들은 달밤에 맥주 한 잔 더 하겠다고 밖으로 나선다. 과감하게 젊은 피를 따라 나서질 못했다. 젊은 축에 속하기엔 내가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난로 주변에서 수다를 떨며 두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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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18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있을 때 벌써 5$ 지폐에 새겨진 Sir Edmund Hillary...에베레스트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입니다...뉴질랜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고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에 2008년 국장을 치를 때 정말 온 나라가 들썩했지요...20여년 동안 이만큼 화제가 되었던건 *The Lord of the Rings*시사회와 Sir Ed장례식 두번 뿐이었던것 같아요...다큐 채널에서 '세계에서 위험한 공항 10곳'을 보여줬는데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어느 비행장이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내리는 곳이 있었어요...보기에도 아찔하던데 혹시 가보신적이 있나요? EBC는 읽기시작하는 느낌이 다른 편과 좀 다릅니다...^*^

  2. 보리올 2013.07.18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힐러리 경이야 뉴질랜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산악인이죠. 생전에 지폐에 새겨졌다니 그에 대한 뉴질랜드 사람들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힐러리 경 모두 제가 존경하는 산악인입니다. 힐러리 경은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고, 메스너 또한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올랐으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최초로 등정한 사람입니다. 참, 위험한 공항 이야기를 하셨는데 에베레스트 가는 길목에 있는 루크라 공항이 바로 그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항 이름이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텐징과 힐러리의 이름을 따서 텐징-힐러리 공항이라 부릅니다. 2008년에 이어 2010년에도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