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간다키 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1.22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11>
  2. 2012.11.18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7>
  3. 2012.11.08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2> (2)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라르케 패스를 얼마나 쉽게 넘느냐에 있었다. 해발 5,200m를 처음 오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고개 오르기가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눈이 녹기 전에 패스를 통과할 요량으로 한 대장이 4시 기상, 5시 출발로 시각을 조정했다. 어둠 속을 랜턴 행렬이 길게 이어간다. 처음부터 우리와 줄곧 함께 했던 부디 간다키 강이 이 지점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걸었다. 너무나 지루했다. 도대체 라르케 패스가 어디에 있는 것이냐는 불평도 쏟아져 나왔다. 눈에 반사된 강렬한 햇볕은 우리 얼굴을 금방이라도 익힐 것 같았다. 열 걸음 내딛고 호흡을 가다듬기를 얼마나 했던가. 우리 눈 앞에 오색 룽다가 휘날리는 라르케 패스가 나타났다. 3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란 예상이 결국 4시간 30분 걸려 그 지긋지긋한 라르케 패스에 도착한 것이다. 라르케라는 네팔 말이 원래 길다는 의미라니 어쩌겠는가.

 

라르케 패스의 고도에 대해선 다들 엇갈리는 자료를 내놓는다. 누구는 5,100m라 하고 누군 그 보다 높은 5,200m라 이야길 한다. 손목 시계에 찬 고도계로는 5,070m가 표시되었다. 지도마다 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좀 지루하긴 했지만 모두들 탈없이 라르케 패스를 넘었다. 큰 고통 없이 전구간 중 가장 높은 지점을 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 이야긴 하행 구간에선 그 동안 자제해 왔던 음주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빔탕(Bimtang)으로 내려서는 길은 미끄럼과의 한판 승부였다. 표면이 녹으며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미끄러져 골짜기로 떨어지면 죽지야 않겠지만 부상은 면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 빔탕에 도착하니 누군가 위스키를 꺼내 한 잔씩 돌린다.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단숨에 들이켰다. 뱃속에서 짜르르 취기가 올라온다. 텐트에서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저녁 먹으라 부르는데 영 식욕이 나질 않는다.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밥 한 술 뜨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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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부터 티벳 냄새가 물씬 풍겼다. 티벳 절인 곰파와 스투파, 마니석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과는 얼굴 생김이나 의상, 주거 형태도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부 산악지대에는 티벳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많이 살기에 티벳 불교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다. 이제 슬슬 고산병을 걱정해야 할 높이가 된 것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술을 삼가라, 잠잘 때도 모자를 써라 등등 주문이 점점 많아졌다.

 

(Lho)를 지나면서 해발 3,000m를 올라섰다. 부디 간다키 강도 폭이 좁아져 계류 정도로 격이 낮아졌지만 격류가 만드는 굉음은 여전했다. 쉬얄라(Shyala)에서 오늘의 목적지, 사마 가운(Sama Gaun)까진 한 시간 거리라 적혀 있었다. 우리 출현에 동네 꼬마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그들에겐 좋은 구경감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을 불러모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오후 3시가 넘어 해발 3,390m에 위치한 사마 가운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가 함박눈으로 변해 온세상을 눈천지로 만들었다. 사마 가운은 인구 1,000명이 모여사는 꽤 큰 마을이었다. 이 산중에 드넓은 초원이 나타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높이에서 야크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전원 풍경을 만날 줄이야. 내일이면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 올라야 하는데 계속 퍼붓는 눈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온 트레킹 팀이 이미 마을을 점령하고 있었다. 텐트치기 좋은 장소는 그들이 이미 차지한 터라 우리는 로지안 대청마루같은 곳에 텐트를 쳤다. 눈을 직접 맞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부엌에 모여 화롯불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 원정대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계속 눈이 내리면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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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새벽, 키친보이의 굿모닝, 밀크티!란 외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오로지 자기 두 다리를 믿고 열심히 걸어야 한다. 안개가 자욱한 마을을 지나쳤다. 꼭 우리나라 50년대의 빛바랜 흑백 풍경 사진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 속에 습기가 많아 아침부터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찐득찐득한 것이 꼭 열대지역에 온 듯 했다.  

 

아르가트 바자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게들이 즐비한 시장 마을이었다. 산 속 깊이 사는 사람들은 며칠을 걸어 내려와 여기서 일용품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간다. 먼 지역이라면 왕복 1주일은 족히 소요되리라. 문명의 혜택을 모르고 사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한 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살아있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 우리는 여길 찾는데, 이네들은 그런 우리를 어떻게 볼까? 우리의 방문이 과연 그네들 삶을 윤택하게 해줄까?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무서운 굉음을 내며 흘러가는 부디 간다키(Budhi Gandaki) 강을 따라 며칠을 걸어야 한다. 여긴 해발 1,000m도 안 되는 저지대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손목시계에 붙은 온도계는 한낮에 섭씨 35도를 가르킨다. 히말라야엔 하얀 설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무더위에 모두들 녹아나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설산을 보기도 전에 일사병으로 쓰러질 판이다. 가끔 계곡 물에 세수를 하며 열을 식힌다.

 

추수가 멀지 않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그나마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무거운 나무 등짐을 이마에 두른 띠에 의존해 운반하는 이네들 방식이 처음엔 신기하더니 나중엔 보기에 힘이 들었다. 어깨에 메어도 무거울텐데 목뼈로 저 무거운 짐을 지탱해야 한다니 솔직히 끔찍했다. 왜 이런 식으로 짐을 운반하는지 궁금해졌다. 소티 콜라(Soti Khola)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마감했다. 더위에 지친 육신을 맥주 한 잔으로 달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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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니카 2012.11.22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앗간, 재봉틀의 모습이 한복에 구두 신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그들의 힘든 삶을 벗어나는 것이 좋긴한데.. 너무 어울림을 강조하는 것도 이기적인 생각이겠죠.

  2. 보리올 2012.11.22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들이 살아가는 형편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아마 그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우리보다 결코 낮지 않을 겁니다. 물질 문명을 경험하지 않았고 서로 비교를 하지 않으니 말이요.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유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그들이 느낄 행복도를 우리 가치 판단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 되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