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야곱에게 한국 라면을 끓여 줄까 물었더니 사양을 한다. 라면을 끓여 혼자 먹어야 했다. 야곱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나중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때문인지 날은 밝았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일출도 없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져 배낭 커버를 씌웠더니 바로 그친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를 지났다. 도로 폭이 꽤 넓었고 우주선 같이 생긴 저수조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줄곧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터널같이 생긴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 닿기 전에도 무슨 탑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엔 오르비고 강을 건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길다는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13세기에 지어졌는데, 이 다리에 돈 수에로(Don Suero)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랑을 얻기 위해 수에로는 이 다리에서 유럽의 내노라하는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겠다고 맹세를 했다. 수에로는 1434년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룬 후 순례를 떠나 자기 목걸이를 산티아고 상에 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에도 영감을 주었다. 요즘도 매년 6월이면 다리 옆에서 창으로 하는 시합이 열린다. 마을은 다리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다리 건너편이 중심인 것 같았다. 산 후안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밖에서만 올려다 보았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를 벗어나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Villares de Orbigo)로 향하는데, 1km를 더 돌아가지만 풍광이 좋다고 해서 택한 것이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농부의 자전거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가운데 있는 성당에 들렀다가 벤치에 앉아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묻는다. 내 추측으론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몰라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메세타가 끝을 보이는지 마을을 벗어나 구릉으로 올랐다. 산티바녜쓰(Santibanez) 마을은 농사 준비로 바빠 보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새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어떤 트랙터는 씨앗을 가득 싣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늦가을에 심으면 아마 보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산티바녜쓰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진 11km 거린데 의외로 오래 결렸다. 오늘 걷는 거리는 28km로 다른 날보단 짧은데 피로도는 더 했다. 오른쪽 발가락의 티눈은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오후가 되면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딛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꾸준히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도네이션제 매점도 나타났지만 그냥 통과했다. 돌로 만든 성 토르비오 십자가(Cruceiro de Santo Toribio)가 세워진 고개에 섰다. 산 후스토(San Justo)와 아스토르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뒤에 버티고 선 칸타브리카(Cantabrica) 산맥도 보였다. 눈에 들어오면 다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 후스토에서 아스토르가까지 3km 거리가 꽤 멀었다. 아스토르가는 세비야(Sevilla)에서 올라오는 순례길, 즉 은의 길(via de la plata)을 만나는 곳이었다. 여기서 메세타 지역과 작별을 했다.

 

아스토르가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도 몇 명 보였다. 침대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서 무슨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어 설명만 있어 뭔지는 모르겠다. 시청 앞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은 규모가 꽤 컸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에피스코팔 궁전(Palacio Episcopal)도 문이 닫혔다. 이 궁전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것으로 가우디가 카탈로니아 밖에 지은 건축물 세 개 중의 하나라 했다. 1889년에 착공해 1913년에 완공했다. 원래는 주교의 거처로 지어졌으나 한때는 팔랑헤라는 프랑코 시대의 정당 사무실로 쓰였고 지금은 순례 박물관(Museo de los Caminos)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성당이나 궁전 모두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퍼마켓에 들러 시장을 봤다. 엄청 다양한 물품들이 있어 무엇을 해먹을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빵과 과일에 캔으로 된 생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샀다. 캔맥주는 하나에 35센트, 와인은 한 병에 2유로도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사재기를 하고 싶었지만 배낭에 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음에 도착하는 마을에도 대형 수퍼마켓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 냄비에 밥을 해서 배불리 먹었다. 서울에서 온 이두열 선생, 이영호 선생을 식당에서 만나 와인을 같이 나누어 마셨다.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났던 권영익 선생도 합류를 했다. 이 양반은 이번이 여섯 번째 산티아고 순례라 했다. 순례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전역을 하고 순례에 나선 젊은이 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입대일자와 제대일자가 같은 동기생을 여기서 만났다고 신기해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일출도 대충 넘어가고 말았다.

 

이른 시각에 산 마틴 델 카미노를 지나쳤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는 중세 시대에 놓여진 멋진 다리 양쪽에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도착해 마을에 있는 성당에도 들렀다.

 

 

들판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분주했던 산티바녜쓰 마을

 

허물어진 흙담 옆에 도네이션제 매점을 차려 놓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 위에선 산 후스토와 아스트로가가 내려다 보였다.

 

산 후스토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으나 초입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대성당 첨탑을 따라 아스토르가로 들어섰다. 여기도 순례자 상이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아스토르가 시청사는 세 개의 타워를 가지고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에피스코팔 궁전. 가우디는 이 건물 신축에 이견이 많았던것으로 보인다.

 

 

 

 

아스토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걸작품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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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5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역사, 미술시간에 배웠던 고딕, 바로크 양식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때는 시험 잘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웠는데 정말 그때 그 순간인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6.02.16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찌 배웠다고 그 모든 것을 다 알겠냐. 그런 것을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살아가면서 그게 궁금한 경우가 생겨 다시 책을 보면 그땐 확실히 기억을 하게 될 거다.

 

레온(Leon)으로 입성하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준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성의 없이 차려진 아침상이라 그런지 대부분 커피 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만 주어진 양을 충실히 먹어 치웠다. 어젯밤 코를 심하게 골았던 아가씨가 자기 때문에 잠을 설쳤으면 미안하다고 일행들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버릇 때문에 잠을 자면서도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카우에하를 빠져 나오는데 여명이 시작되었고 레온 외곽의 공장지대를 지날 즈음 해가 떠올랐다. 일출은 그리 거창하진 않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레온으로 들어섰다. 상업 지역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도심에 닿을 수 있었다. 레온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대도시답게 중세풍의 건물들이 아름다웠고 대성당을 비롯해 볼거리도 많았다.

 

실제 레온은 1세기 로마 시대에 서쪽 지역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에 의해 세워졌다.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가 왕국의 수도를 오비에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레온 왕국의 한 영지였던 카스티야가 11세기 독자적인 왕국으로 발전하고 1230년에는 카스티야 왕이었던 페르난도(Fernando) 3세가 레온의 왕위도 이어받으면서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통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 왕국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자, 레온 사람들은 레온 신 카스티야(Leon sin Castilla) 또는 레온 솔로(Leon Solo), 카스티야 없는 레온 또는 레온 혼자와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바스크나 갈리시아 지방보다 독립 열기는 훨씬 약하지만 말이다.

 

도심으로 들어가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부터 들렀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으로 쓰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대성당으로 향했다. 입장료로 5유로를 받는데 여긴 순례자 할인제가 없었다. 1205년 착공해 400년을 거쳐 완공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화려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은 그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하나같이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성가대석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레온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오르도뇨 2세의 무덤도 보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화려한 성당을 보고 나면 솔직히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종교적 위엄을 보이기 위해 사람들 고혈을 짜낸 건물이 후대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도 둘러보았다. 첫눈에도 그 크기가 대성당에 못지 않았다. 이 건물에는 성당 외에도 박물관과 로얄 판테온, 즉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Panteon de las Reyes)가 있었다.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양은 우아했으나 내부는 의외로 소박했다. 굳게 닫혀있는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도 보았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가 병이 나서 더 이상 순례를 할 수 없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를 마친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는 유료라 들어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와 페르난도와 그 후대 왕족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데도 말이다.

 

카페와 바가 많은 레온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오래 전에 스페인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튀김이었는데 이번엔 처음이었다. 먼저 감자 토르티야가 나오고 오징어 튀김은 그 뒤를 따랐다. 둘 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 오스피탈 데 산 마르코스(Hospital de San Marcos)에 도착했다. 길고 거대한 건축물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1168년 순례자 병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는 정치범 수용소로도 쓰였다가 지금은 한쪽은 호텔이, 그 반대편엔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성당을 먼저 구경하고 박물관으로 갔더니 무료 입장이란다. 전시물로는 주교들 초상화와 조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길게 뻗은 회랑과 천장 장식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박물관을 나와 산 마르코스 다리를 건너 도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레온 외곽 지대는 의외로 복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씽씽 달려 정신이 없었다. 시골로 들어서니 좀 살만했다. 16세기에 성모가 발현했다는 비르헨 델 카미노(Virgen del Camino)까진 쉽게 걸었다. 거기서 레온 대성당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야곱을 다시 만나 비야단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까지 함께 걸었다. 전에도 몇 번 만나 눈인사는 나눴지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인상이 선한 것이 꼭 예수님을 닮았다. 이 친구는 독일 바바리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다. 학교에서 은세공을 배웠는데 아직 아버지를 도와 일하고 있다고 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해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잔 샀다. 원래 이 친구는 알베르게에 묵기보다는 야영이나 헛간 등에서 묵는데 오늘은 나를 따라 알베르게로 들어와 둘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알베르게 비용을 대주려 했더니 자기도 돈 있다고 먼저 계산을 한다. 각자 저녁을 먹고는 와인을 한병 사서 야곱과 함께 마셨다.

 

 

알베르게를 나와 레온을 향해 걷는 도중에 해가 떠올랐다.

 

나지막한 고개를 오르자 멀리 레온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큰 도시에 속하는 레온으로 들어서면서 시야에 들어온 도심 풍경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카사 데 보티네스가 레온에 있었다.

동화속 궁전같은 건물이었다.

 

 

 

 

 

 

 

고딕 양식을 지닌 레온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아주 큰 성당이었다.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라는 성당과 박물관, 로얄 판테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용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커다란 건물 안에는 산 마르코스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붙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레온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감자 토르티야와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르(Calamar)를 시켰다.

 

레온을 벗어나며 언덕배기에 땅을 파서 만든 와인 저장고를 여러 개 발견했다.

 

여러 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던 독일 청년 야곱을 레온에서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독일 바바리아에서 80일을 걸어온 25살 청년이었다.

 

산 미구엘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의 어느 집 앞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과일과 비스켓이 놓여 있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했더니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식이 우릴 반긴다. 이런 속도면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비야단고스에서 맞이한 일몰.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올라 마치 거대한 화재가 난 듯 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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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9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레온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유적지 같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하네요. 지금까지 봐왔던 성당들과 비교해봐도 양식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하느님께서 국민의 혈세로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은 성당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보리올 2016.02.09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온이야 한때 레온 왕국의 수도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려한 성당은 경외스럽긴 하지만 동시에 민초들의 애환도 느껴지지. 하지만 거기에 너무 민감해 하진 말거라.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가 발전을 해왔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