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에베레스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5.13 [네팔] 카트만두 ① (2)
  2. 2014.12.17 원주 서곡리 비박 (2)
  3. 2012.11.26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15> (3)

 

어느 후배의 부탁으로 급히 네팔을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 425일 발생한 대규모 지진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 카트만두야 그 동안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기에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은 없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침통한 마음으로 비행기 트랩을 내려섰다. 하지만 차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카트만두 도심은 예전과 같이 활력이 넘쳤다. 사람과 차량이 도로에 넘쳤고 매연, 클랙션 소리도 여전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카트만두에선 무너진 건물이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무너져내린 집이 한두 채 보였다. 카트만두는 실제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들 얼굴도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카트만두를 걸으며 카트만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왕궁의 담장이 길게 무너져내렸고 넓은 공터나 운동장에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집이 무너질지도 모를 걱정에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 전역에서 8,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상황에서 카트만두가 이만 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 도심의 건물이나 가옥이 피해를 입었더라면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카트만두 아래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반이 지진 피해를 줄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게 신이 많다는 네팔에서 이 무슨 참변이냐고 한 마디 했더니 네팔인 친구가 답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신이 많았으니까 피해가 이 정도로 그쳤던 것이 아니냐는 반문에 할말을 잃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날이 네팔 휴일이었던 토요일이었다. 시각도 정오 직전인 오전 1155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집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만약 이 지진이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엄청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을 것이란다. 이런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짜 네팔 신들이 많은 덕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 카트만두 트라뷰반 공항에 내렸다. 공항 앞에 늘어선 인파의 환영을 받았다.

 

 

(사진) 담장 아래 쌓인 붉은벽돌이 내 눈에 비친 첫 지진 피해였다.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인 파이어 앤드 아이스(Fire and Ice)에서 리소토로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 그리 크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들었던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는 지붕에서 기와 두 장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벽면 사진 속에선 박영석 대장이 웃는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사진) 왕궁 담장이 꽤 많이 무너져 있었다. 통째로 넘어진 어느 담장은 보도로 변했다.

잔디밭에 세워진 천막도 볼 수 있었다.

 

 

(사진) 빨래터를 지나면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사진) 저녁을 해결한 카트만두의 한식당 서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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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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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5.05.24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팔에 다녀오셨어요...
    카트만두 같은 대도시에 피해가 적은 것은 천만다행이네요...
    낙천적인 사람들이라 잘 이겨낼거다 하셨지만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이나 필리핀 지진 때 보다 언론에서도 덜 다루는 것 같아요..더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클텐데 빠른 복구를 빌겠습니다...

    • 보리올 2015.05.2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네팔 다녀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네팔의 현실을 참 잘 보셨습니다. 관광 수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란데 요즘은 그나마 트레커들도 발길을 끊고 있어 걱정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동생 내외의 초청으로 우리 <침낭과 막걸리> 회원들이 원주에 모였다. 한 달에 한 차례씩 하는 비박 모임을 동생네 농가주택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동생은 판부면 서곡저수지 옆에 있는 농가주택을 한 채 구입해 별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것을 비박 장소로 선뜻 제공한 덕분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이 넓어 텐트를 몇 동 칠 수 있었고, 야외 데크엔 대여섯 명 비박도 할 수 있었다. 우리 멤버 외에 네팔에서 온 앙 도르지의 아들 다와도 참석을 했다. 앙 도르지는 우리나라 산악계 인사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로 현재는 카트만두에서 빌라 에베레스트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다와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부산과 서울에서 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끼리 전어회를 안주 삼아 원주 막걸리가 한 순배 돌았다. 원주에서 살아있는 전어를 살 수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전어는 회로도 먹었지만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먹기도 했다. 삼겹살도 뒤를 이었다. 일행들이 속속 도착을 하자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취기가 오르기 전에 저수지나 좀 돌자고 했더니 몇 명만 따라 나선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수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이 모임의 좌장인 허영만 화백이 늦게 도착을 했다. 여수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본격적인 저녁이 시작되고 막걸리 타임도 다시 불이 붙었다. 주량이 서로 다르듯 취침 시간도 제각각 달랐다. 동생이 미리 준비한 원주 막걸리가 동이 나고 멤버들이 들고 온 술도 떨어져 밤늦게 막걸리를 추가로 사와야 했다.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폭격기 소리에 일찍 잠을 깬 허 화백과 둘이서 저수지 산책을 나섰다. 모두들 잠든 시각에 새벽 산책을 나가니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어스름한 저수지에 비친 산자락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용수골로 올라 백운산 숲길을 좀 걷기로 했다. 정상까지 가는 산행이 아니라 두세 시간 숲을 걷는 산책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은 너무 평화로웠다. 시원한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물이 불어난 계류를 건널 때는 우리의 돌쇠 성선이가 물로 들어가 돌을 옮겨 다리를 만들고 손을 잡아줘 모두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임도를 따라 얼마를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노닥거린 후에 하산에 나섰다. 다시 계류를 건너려다 뒤에 처진 사람들 기다리는 틈에 왈가닥 여성 대원 셋이 물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친다. 어딜 가나 끼가 너무 많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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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샤7 2014.12.17 2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가 맛있어보이네요 ㅎ

 

원래는 베시사하르(Besisahar)에서 만나기로 했던 버스를 쿠디까지 오라 했던 모양이다. 쿠디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를 않는다. 의사 전달이 잘못된 걸까? 결국은 베시사하르까지 걸어 나가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걸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배낭을 메고 한 시간을 걸어 나가려니 입이 나온다. 2주간이나 열심히 걸어 놓고는 한 시간 더 걷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베시사하르에서 버스를 만나 짐을 싣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잠에 떨어졌지만, 난 지나치는 풍경을 눈에 담으려 잠과 싸우고 있었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설산이 나타나 문명으로 나가는 우리를 배웅한다. 둠레(Dumre)까지 나가는 동안 내 눈을 스쳐간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옥이나 건물 벽면에 붙은 대우의 오리발 로고와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LG전자, 조양상선의 광고판이 내 눈을 즐겁게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곡예하듯 6시간이나 달려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다샤인 축제 때문인지 도심에는 엄청난 인파와 교통 체증이 우릴 반긴다. 지나가는 차마다 경쟁하듯 경적을 울리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하다 싶었다. 고요한 산 속에서 수양을 쌓고 돌아온 몸과 마음을 한 순간에 허무는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 호텔에 짐을 풀고, 앙 도르지가 운영하는 빌라 에베레스트 식당에서 통돼지 바비큐로 거창하게 만찬을 즐겼다. 소주에 양주까지 곁들여. 

 

 

 

 

 

 

 

 

 

 

<트레킹 요약>

 

2004 10 6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을 마치고 1025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산악인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에 참가해 펼친 이 활동에 대하여는 <월간 山> 2004. 12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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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인 2012.11.26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진짜 돼지를 통으로다가 구웠네요........... 맛이 무지 궁금하네요 ㅎㅎㅎ 에메랄드색의 문도 이뻐요! 캐나다에선 도통 볼 수 없는 데..ㅎㅎ

  2. 설록차 2013.07.15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나슬루편을 모두 읽고~~ 때묻지 않은 순박한 현지사람과 트레킹팀의 얼굴이 비슷하네요...복잡한 문명세계의 먼지를 다 벗겨낸듯 맑아보입니다...손바닥만한 논이 계단처럼 다닥다닥 붙어있고 무거운 짐을 이마에 달고 옮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모여서 카메라를 드려다보는 모습은 정겹기도 하구요...우리 5,60년대가 저러지 않았을까요... 다른 삶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뭐 그리 불행하겠습니까...외부 사람이 점점 늘어가면 달라지겠지만요...2004년에 가셨으니 이 때 모습은 좀 변했을것 같습니다... 히말라야에 대한 다큐는 많이 보았지만 보리올님 같은 블로그는 처음이에요...트레킹하는 분이 쓰는 글과 사진이 흔하지 않거든요...자연과 사람이 따뜻하게 표현되어 있어요...마음에 드는 사진이 너~~~무 많아요...^*^

  3. 보리올 2013.07.15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나슬루는 저에게도 애착이 많이 가는 산입니다. 히말라야 다른 지역에 비해서 더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지요. 다시 한 번 마나슬루 다녀온 기록을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