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로 아침을 때우곤 평소보다 빨리 알베르게를 나섰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로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고개에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선 것인데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멀리 팜플로나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동이 틀 기미를 보였다. 트레일러를 뒤에 단 차 한대가 고개로 오르더니 트레일러를 열고 물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순례자를 위한 매점이 세워진 것이다. 내가 첫 손님이라 그냥 지나치긴 좀 그랬다. 속으로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2유로에 샀다. 철판을 잘라 만든 순례자 조형물과 능선 위를 독차지한 풍력발전기, 붉어오는 하늘과 무지개 등 페르돈 고개의 아침 풍경을 여유롭게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아시오나 제품이었다. 캐나다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 아시오나가 우리 거래처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르테가(Urtega)로 내려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무지개가 뜬 것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결국 비를 뿌린다. 성당 처마 밑에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르테가를 벗어났더니 금방 비가 그쳤다. 날씨가 청개구리 심보를 닮았나? 무루싸발(Muruzabal)을 지나는데 성당에서 10번 종을 친 후에 잠시 간격을 두더니 다시 10번을 친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루싸발에서 에우나테(Eunate)를 다녀왔다. 왕복 4km를 더 걸은 것이다. 에우나테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그 모양이 팔각형으로 특이할 뿐만 아니라 내부는 검소 그 자체였다. 가운데 성모 마리아 상이 제단 장식의 전부였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창문도 얇은 대리석을 유리 대신 사용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서려있는 오바노스(Obanos) 성당을 찾았지만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어 기에르모의 해골은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기에르모의 전설을 들어보자. 기에르모 공작의 여동생 펠리시아(Felicia)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곤 프랑스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나바라 지방에서 은둔하고 싶어했다. 설득에 실패하자 기에르모는 동생을 죽인다. 회한에 찬 기에르모도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고 여생을 여기서 동생을 애도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중에 두 남매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시복이 되었다. 기에르모의 해골은 아직도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성목요일에는 해골에 와인을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오바노스에서 멀지 않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들어섰다. 긴 도로를 따라 형성된 도시는 규모가 제법 컸다. 거기엔 큰 성당이 두 개나 있고 11세기에 지었다는 중세 다리도 있었다. 첫 번째 크루시피호(Crucifijo) 성당은 장식이 소박했으나, 두 번째 산티아고 성당은 제단 장식이 꽤나 화려했다. 특이하게도 왼쪽 제단에는 흑인 산티아고의 상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비가 쏟아져 다리 밑에서 비를 피했다. 우중에도 다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가게에서 산 바게트에 훈제 돼지고기를 넣어 점심으로 먹는데 다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내 행색을 살펴본다. 그들이 행여 내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배낭도 없이 물 한 병 달랑 들고 이 길을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로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아닌가 싶었다. 가끔 산티아고에서 역으로 걸어오는 젊은이도 만나곤 했다. 오늘도 혼자서 걸어오는 젊은이가 있어 내가 먼저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이 친구 정색을 하면서 자기에게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도중에 도둑이라도 맞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귀찮은 표정까지 비친 친구에게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마녜루(Maneru)를 지나면서는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포도주 하면 리오하(Rioja) 지방이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나바라 지방도 포도주 생산에 열을 올린다 들었다. 멀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마을이 하나 보였다. 시라우키(Cirauqui)란 마을이었는데 내 생각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름답기로 손꼽을만 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늘 걸은 거리가 너무 짧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애초엔 에스테야(Estella)까지 가려고 했지만 3km를 남겨놓고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비야투에르타에 하나밖에 없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다. 숙박비로 12유로, 저녁 식사비로 13유로를 받아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테이블에 앉아 직접 음식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비싼만큼 격식도 있었고 맛도 괜찮았다. 애피타이저도 훌륭했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는 정말 훌륭했다. 자전거로 순례 중인 시카고 출신의 마가렛, 둘다 몬태나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레인저인 트레이시, 제프 부부, 호주 아줌마 등 모두 여섯이 와인을 기울이며 멋진 만찬을 즐겼다.

 

 

 

 

 

일출 시각에 맞춰 페르돈 고개로 올랐다. 여기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은 꽤나 유명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전거로 순례에 나선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순례는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로 하는 경우만 인정을 한다.

 

 

 

 

순례길에서 벗어나 에우나테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다녀왔다.

팔각형 모양을 한 성당에 성모상만 모셔져 있는 검소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어려있는 오바노스

 

 

 

푸엔테 라 레이나 초입에서 만난 크루시피호 성당은 규모는 컸지만 장식은 단출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산티아고 성당. 얼굴이 검은 산티아고가 모셔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 놓여진 다리는 아직도 건재해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다리 이름이 도시명이 되었다.

 

 

 

멀리서 보고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시라우키 마을. 포도밭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유적인 이 아치형 다리는 세월이 흘러 조만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로마 시대에 놓았다는 도로도 볼 수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걷는 사람들이 순례자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씨앗을 뿌릴 준비를 마친 들판이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알베르게에서 석식으로 나온 순례자 메뉴. 애피타이저도 괜찮았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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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2015.11.21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일차에 많이도 가셨네요
    3년전에 걸었던 길을 다시 한번 걷는듯 합니다. 빠에야 생각도 나고요
    다음 여정도 기대 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일정을 좀 짧게 잡는 바람에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빠에야는 스페인 현지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이 있더군요.

  2. justin 2015.12.15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는 타파스가 저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빠에야 차례네요. 진정한 빠에야의 맛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 보리올 2015.12.15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스페인에 한번 같이 가야겠구나. 아니면 내가 독학으로 배워서 해줄까? 파에야도 스페인 현지가 훨씬 맛있더구나. 해물 파에야도 좋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 파에야도 그런대로 괜찮았지.

  3. 제시카 2016.01.03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골으로 술을 따르다니.. 조금 섬뜩하네요.. 저는 못받아마실거같아요 ㅎㅎㅎ 빠에야가 참 심플해보이는데 훌륭했다니 비밀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 보리올 2016.01.04 0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골이라도 성배라 생각하면 무서울 이유가 없지. 빠에야는 스페인에서 그들 방식으로 만들어서 더 맛있다고 느꼈을 것 같구나.

 

오전 6 30분이 되어서야 알베르게에 불이 들어왔다. 늦어도 8시까지는 퇴실을 하라고 하는데 아침 취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쁠 수밖에 없겠다. 배낭 안에 고히 모셔둔 곰탕 라면 세 개를 끓여 세 명이 나눠 먹었다. 비록 라면 한 봉지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알베르게를 나서 도로옆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어두컴컴했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가 790km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라 사람이 걷는 거리완 좀 차이가 나는 듯 했다.

 

하늘이 밝아 오는 시각에 부르게테(Burguete)에 도착했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머무를 당시 송어 낚시를 하러 자주 오던 마을이라 했다. 그가 체류했던 호텔은 길가에 제법 번듯한 건물로 남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헤밍웨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플로리다에 살았던 그의 집도, 아이다호에 있는 그의 무덤도 보았으니 말이다. 어제부터 함께 걷는 학생이 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갔더니 새벽부터 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현금지급기가 없어 다른 은행으로 가야 했다. 마을 밖에선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 해가 솟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도 산악 지형에 속하는지 제법 오르내림이 심했다. 숲길도 많아 나무 터널을 지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예쁜 마을을 지났다. 붉은 지붕에 흰 벽을 지닌 집들은 나름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식 성당이 있는 에스피날(Espinal)을 지나 알토 데 에로(Alto de Erro)를 넘으니 쑤비리(Zubiri)가 그리 멀지 않았다. 21km 거리를 6시간에 걸어 오후 2시에 쑤비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님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점심 식사를 했다. 웨이트리스가 아침에 한국어를 배웠다며 우리에게 ‘안녕’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써먹는다.

 

신부님은 쑤비리에서 묵겠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난 일정이 빠듯해 남들보다는 조금씩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쑤비리를 빠져나오는 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줄리와 사이먼 부부를 만났다. 순례길에서 또 만나자 했지만 그들이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홀로 유유자적 걷는 길에 햇볕이 작렬한다. 가을이 한창인 10월에도 이럴진데 한여름에는 얼마나 뜨거울까 싶었다. 조그만 마을을 두 갠가 지나 오후 4시에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다.

 

거기엔 지자체, 즉 무니시팔(Municipal)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알베르게가 있었다. 그 많던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맥주 한잔으로 먼저 목을 축인 후 장을 보러 수퍼마켓으로 갔다. 알베르게에 조그만 부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 있는 수퍼마켓은 벨을 누르면 이층에서 주인이 내려와 물건을 판다. 물건도 종류가 많진 않았다. 쌀과 파스타 면, 그리고 과일을 좀 샀다. 계산을 하니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계산기 앞에도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글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 순례길에 많기는 정말 많은 모양이다.

 

알베르게에서 혼자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해서 곰탕 라면에 넣고 죽처럼 만들었다. 양이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난 사실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다. 한달 내내 스페인 음식만 먹으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돈이 크게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는지 알베르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나만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침실로 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론세스바예스를 빠져 나와 순례길로 접어 들었다.

 

 

안개가 마을을 덮고 있는 부르게테.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 발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행은 문을 열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와 묵었다는 부르게테 호스탈.

 

 

 

부르게테 마을을 벗어나니 안개 사이로 해가 솟았다. 소를 방목하는 목장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쑤비리 마을로 향하는 순례길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에스피날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나뭇줄기 사이로 빛내림이 펼쳐졌고, 안개또한 마을을 동화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지나는 마을마다 예쁜 집들로 가득했다. 석조 건물을 하얗게 칠해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양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 했다.

 

 

나무 사이로 뚫린 길은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시원한 청량감도 선사했다.

 

 

쑤비리로 드는 지점에 고딕 양식의 라비아 다리(Puente de la Rabia)가 있다.

거기서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온 줄리, 사이먼을 다시 만났다.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먹은 쑤비리의 오기 베리(Ogi Berri) 식당. 메인으론 빠에야가 나왔다.

 

에스퀴로츠(Esquirotz)란 조그만 마을에서 화려한 꽃장식을 한 집을 발견했다.

 

 

 

 

그리 크지 않은 라라소아냐 마을의 시골 모습.

 

저녁으로 준비한 곰탕라면죽. 산에서 캠핑하면서 즐겨먹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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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0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해서 구독하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저도 가고
    싶은 곳! 함께 걸어가는 기분입니다

    • 보리올 2015.11.21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응원에 정말로 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시는 꿈을 꾸시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겁니다. 저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 농돌이 2015.11.21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봉급쟁이 터는 날 바로?
      오늘은 김장합니다 새벽에 씻어서
      놓고보니 산 입니다 ㅋ 종손의 무게거니 합니다
      멋진 글과 사진 소망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종갓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시는군요. 예전에 시골집에서 김장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justin 2015.12.08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길 사진이 산과 같은 풍경의 사진과 틀립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 보리올 2015.12.08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사람사는 마을을 연결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산 속을 걷는 산행과는 풍경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지. 순례길 전구간에 산행같은 곳은 세 구간뿐이었다.

  3. 해인 2015.12.27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쁘게 꽃장식이 된 집들 사진을 보니,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저는 역시 천상여자인가봐요 ;) 갑자기 옛날에 살던 하우스가 그립기도 하고요. 그런데 끼니를 저렇게 때우시니... 살이 쭉쭉 빠지겄어요. 하루에 20-30km를 걸으면서 소비되는 열량은 엄청나겠죠?

    • 보리올 2015.12.27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통 성인의 하루 대사량을 2,500 칼로리로 본다면 30km를 걸으면 아마 에너지로 5,000칼로리는 쓰지 않을까 본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다이어트엔 정말 최고라 생각한다.

  4. 제시카 2015.12.31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아빠 사진 완전 짱이네용... 빛이내리는사진하구, 안개속에서 홀로 서있는 나무사진이 넘 이뻐요.. 저렇게 간단히 끼니 때우셨으니 그렇게 살이 빠지시죠!! 앞으로 하루에 하나씩 읽어야겠네염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