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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싸리키에기~비야투에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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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로 아침을 때우곤 평소보다 빨리 알베르게를 나섰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로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고개에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선 것인데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멀리 팜플로나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동이 틀 기미를 보였다. 트레일러를 뒤에 단 차 한대가 고개로 오르더니 트레일러를 열고 물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순례자를 위한 매점이 세워진 것이다. 내가 첫 손님이라 그냥 지나치긴 좀 그랬다. 속으로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2유로에 샀다. 철판을 잘라 만든 순례자 조형물과 능선 위를 독차지한 풍력발전기, 붉어오는 하늘과 무지개 등 페르돈 고개의 아침 풍경을 여유롭게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아시오나 제품이었다. 캐나다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 아시오나가 우리 거래처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르테가(Urtega)로 내려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무지개가 뜬 것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결국 비를 뿌린다. 성당 처마 밑에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르테가를 벗어났더니 금방 비가 그쳤다. 날씨가 청개구리 심보를 닮았나? 무루싸발(Muruzabal)을 지나는데 성당에서 10번 종을 친 후에 잠시 간격을 두더니 다시 10번을 친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루싸발에서 에우나테(Eunate)를 다녀왔다. 왕복 4km를 더 걸은 것이다. 에우나테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그 모양이 팔각형으로 특이할 뿐만 아니라 내부는 검소 그 자체였다. 가운데 성모 마리아 상이 제단 장식의 전부였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창문도 얇은 대리석을 유리 대신 사용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서려있는 오바노스(Obanos) 성당을 찾았지만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어 기에르모의 해골은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기에르모의 전설을 들어보자. 기에르모 공작의 여동생 펠리시아(Felicia)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곤 프랑스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나바라 지방에서 은둔하고 싶어했다. 설득에 실패하자 기에르모는 동생을 죽인다. 회한에 찬 기에르모도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고 여생을 여기서 동생을 애도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중에 두 남매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시복이 되었다. 기에르모의 해골은 아직도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성목요일에는 해골에 와인을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오바노스에서 멀지 않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들어섰다. 긴 도로를 따라 형성된 도시는 규모가 제법 컸다. 거기엔 큰 성당이 두 개나 있고 11세기에 지었다는 중세 다리도 있었다. 첫 번째 크루시피호(Crucifijo) 성당은 장식이 소박했으나, 두 번째 산티아고 성당은 제단 장식이 꽤나 화려했다. 특이하게도 왼쪽 제단에는 흑인 산티아고의 상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비가 쏟아져 다리 밑에서 비를 피했다. 우중에도 다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가게에서 산 바게트에 훈제 돼지고기를 넣어 점심으로 먹는데 다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내 행색을 살펴본다. 그들이 행여 내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배낭도 없이 물 한 병 달랑 들고 이 길을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로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아닌가 싶었다. 가끔 산티아고에서 역으로 걸어오는 젊은이도 만나곤 했다. 오늘도 혼자서 걸어오는 젊은이가 있어 내가 먼저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이 친구 정색을 하면서 자기에게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도중에 도둑이라도 맞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귀찮은 표정까지 비친 친구에게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마녜루(Maneru)를 지나면서는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포도주 하면 리오하(Rioja) 지방이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나바라 지방도 포도주 생산에 열을 올린다 들었다. 멀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마을이 하나 보였다. 시라우키(Cirauqui)란 마을이었는데 내 생각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름답기로 손꼽을만 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늘 걸은 거리가 너무 짧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애초엔 에스테야(Estella)까지 가려고 했지만 3km를 남겨놓고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비야투에르타에 하나밖에 없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다. 숙박비로 12유로, 저녁 식사비로 13유로를 받아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테이블에 앉아 직접 음식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비싼만큼 격식도 있었고 맛도 괜찮았다. 애피타이저도 훌륭했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는 정말 훌륭했다. 자전거로 순례 중인 시카고 출신의 마가렛, 둘다 몬태나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레인저인 트레이시, 제프 부부, 호주 아줌마 등 모두 여섯이 와인을 기울이며 멋진 만찬을 즐겼다.

 

 

 

 

 

일출 시각에 맞춰 페르돈 고개로 올랐다. 여기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은 꽤나 유명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전거로 순례에 나선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순례는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로 하는 경우만 인정을 한다.

 

 

 

 

순례길에서 벗어나 에우나테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다녀왔다.

팔각형 모양을 한 성당에 성모상만 모셔져 있는 검소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어려있는 오바노스

 

 

 

푸엔테 라 레이나 초입에서 만난 크루시피호 성당은 규모는 컸지만 장식은 단출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산티아고 성당. 얼굴이 검은 산티아고가 모셔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 놓여진 다리는 아직도 건재해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다리 이름이 도시명이 되었다.

 

 

 

멀리서 보고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시라우키 마을. 포도밭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유적인 이 아치형 다리는 세월이 흘러 조만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로마 시대에 놓았다는 도로도 볼 수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걷는 사람들이 순례자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씨앗을 뿌릴 준비를 마친 들판이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알베르게에서 석식으로 나온 순례자 메뉴. 애피타이저도 괜찮았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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