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팩스(Halifax)에서 야머스(Yarmouth)까지 노바 스코샤의 남해안을 따라 굽이치는 585km 시닉 드라이브 코스를 등대 루트(Lighthouse Route)라 부른다. 여러 개의 도로를 연결했지만 가장 주된 도로는 3번 도로(Trunk 3)라 보면 된다. 등대 루트 끝자락에 있는 배링턴(Barrington)에 닿았다. 꽤 넓은 지역에 어촌 마을 몇 개가 들어서 있는 도시로 인구는 7,000명이나 되어 규모가 제법 컸다. 해안선이 복잡해 바다가 무시로 육지를 드나든다. 이 지역에서 랍스터가 많이 잡히는지 그들 스스로 배링턴을 캐나다 랍스터 수도(Lobster Capital of Canada)라 부른다.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랍스터가 정말 많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마을을 벗어난 바닷가에 하얀 몸통과 빨간 지붕을 한 등대 하나가 홀로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야머스(Yarmouth)를 들르지 않고 케이프 포추 등대(Cape Forchu Lightstation)로 바로 갔다. 304번 도로를 타고 끝까지 가면 된다. 노바 스코샤에선 페기스 코브 등대(Peggy’s Cove Lighthouse)와 더불어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특히 등대 사진 촬영지로 알려져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다. 바닷가 바위 위에 가늘고 길게 솟은 등대는 다른 지역의 등대와는 그 형태가 사뭇 다르다. 케이프 포추 등대는 1840년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지만, 원래 등대는 1961년 허물고 1962년에 이 등대를 새로 세웠다고 한다. 야머스로 돌아오면서 작은 어촌 마을인 야머스 바(Yarmouth Bar)를 잠시 들렀다. 크지 않은 어항엔 어선 몇 척과 랍스터 통발이 쌓여 있었다.

 

야머스는 1604년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다녀간 역사적 도시다. 샹플렝은 캐나다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캐나다를 초기에 탐사한 사람으로 유럽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이프 포추도 그가 지은 이름이다. 야머스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엔 프랑스계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1759년 매사추세츠의 야머스에서 로얄리스트(Loyalist)들이 건너와 1761년에 도시를 설립했다. 2011년에 도시 설립 250주년을 맞이했으니 캐나다에선 역사가 꽤 긴 편이다. 야머스란 이름도 그들이 살던 매사추세츠에서 가져왔다. 아카디아인과 로얄리스트가 섞여 살게 된 것이다. 인구는 6,700명으로 노바 스코샤에선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니다. 한때는 미국 메인 주로 연결되는 페리가 있었으나 이용객이 적어 운항이 중지되었다. 도심으로 들어가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오래된 건물들을 구경하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겼다.

 

 

노바 스코샤 등대 루트를 달리다 보면 아직도 바닷가엔 많은 등대가 남아 바다를 지키고 있다.

 

 

 

 

 

랍스터가 많이 잡히는 배링턴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인구는 꽤 많은 편이었다.

 

 

 

 

특이한 형상을 지닌 등대로 유명한 케이프 포추는 페기스 코브와 더불어 노바 스코샤 등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야머스와 케이프 포추 사이에 있는 야머스 바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야머스는 프랑스계 아카디아인과 미국에서 건너온 로얄리스트가 공존하며 살아온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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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29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노바 스코샤를 여행하다 보면 아카디아(Acadia)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캐나다 역사에서도 꽤 의미 있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울프빌(Wolfeville)엔 아카디아 대학교도 있다. 북미로 진출한 프랑스는 세인트 로렌스 강 유역의 퀘벡과 뉴 브런스윅, 노바 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뉴 펀들랜드 등에 프랑스 정착촌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 때문에 북미 북동부의 옛 프랑스 식민지를 흔히 뉴 프랑스(New France)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카디아란 용어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 노바 스코샤 본토뿐만 아니라 당시 로얄 섬이라 불리던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에도 아카디아인들이 제법 많았다. 아카디아에 거주하던 프랑스계가 75,000명이었다니 당시 인구론 그리 작은 숫자가 아니다. 북미 동부 지역을 차지했던 영국은 점차 프랑스와 세력다툼이 격화되면서 7년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여기서 승리한 영국은 북미에서 프랑스를 압도하며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게 된 것이다.

 

노바 스코샤 바닷가에 정착해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잇던 아카디아인은 7년 전쟁의 와중에 영국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다. 영국은 1755년 아카디아인에게 영국에 충성할 것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아카디아인 16,000명을 강제 추방(Great Expulsion) 시킨 것이다. 미국 루이지애나로 옮겨간 대부분의 사람들 외에도 아카디아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프랑스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7년 전쟁이 끝난 1763년 이후 추방지에서 다시 아카디아로 꽤 많은 사람이 돌아왔다. 아직도 영국계 이웃과 친하지 않은 까닭이다. 아카디아인은 주로 대구를 잡아 가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늪지를 개간하고 수로, 즉 다이크(Dyke)를 만들어 안정적인 농지를 확보해 삶을 영위했다. 노바 스코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의 정착촌을 둘러보고, 그들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아카디아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순례에 나섰다.

 

먼저 노바 스코샤 북서부 아나폴리스 카운티(Annapolis County)에 있는 포트 로얄(Port Royal)부터 찾았다. 포트 로얄은 예전에 프랑스식 농장 형태로 지었던 정착촌을 고증에 의해 복원한 캐나다 역사 유적지다. 프랑스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정착촌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진 않는다. 역사가 길지 않은 캐나다에서 16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정착촌이라면 상당한 역사를 지닌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로 건너온 초기 인물로는 프랑스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와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유명하다. 카르티에는 1534년 처음으로 캐나다에 도착했고, 샹플렝은 1603년에 도착했다. 이 포트 로얄은 샹플렝이 1605년에 모피 교역을 위한 정착촌으로 세운 곳이다. 플로리다 이북의 북미 지역에 최초로 생긴 유럽 정착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착은 순조롭지 못 했다. 그 뒤 샹플렝은 퀘벡에 정착촌을 세우고 그것이 뉴 프랑스란 식민지로 발전해 가면서 그는 1612년 뉴 프랑스의 수반이 되었다.

 

1613년 버지니아의 영국인들에 의해 포트 로얄이 파괴된 후, 거기서 8km 떨어진 곳에 다시 정착촌을 세웠지만 이 역시 1710년 영국군에 점령당하면서 아나폴리스 로얄(Annapolis Royal)이란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 역시 한때는 노바 스코샤의 주도 역할을 했지만, 1749년 그 역할이 핼리팩스(Halifax)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여기에 사는 주민은 5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로 화가나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이제는 어엿한 문화도시로 탈바꿈을 하였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도시 다섯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골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저기 세월을 머금은 건축물이나 가옥이 눈에 띄고 예술촌답게 마을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꾸며 놓아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통나무를 사용해 옛 농장 형태로 지어 놓은 포트 로얄 정착촌은 한 눈에도 고풍스럽게 보였다.

 

마당 한 가운데에선 해설사가 목재를 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생활상을 설명한다.

 

 

 

정착 초기에 사용하던 집기 비품이나 그 당시 식탁을 세팅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벽면에 걸어 보관 중인 말린 풀과 동물 모피

 

 

 

 

 

아나폴리스 로얄은 예술촌답게 고풍스러운 건물을 지니고 있었고 마을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여름철이면 주민을 위한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린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에 세워진 정착촌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포트 앤(Fort Anne)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0년 캐나다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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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휘게라이프 Gwho 2020.07.09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가요오! :-)
    오랜만에 출첵할겸 글 잘보고가요~ ㅎㅎ
    날씨가 급 덥덥인 오늘이네요 T T ..
    에어컨 선풍기 빵빵! 시원한 하루되세요~



올드 몬트리올(Old Montreal)에 도착했지만 여기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을 찾는다고 헤매다가 좀 늦게 노틀담 바실리카 대성당에 닿았더니 엄청난 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레이져 쇼를 하는데 최소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여기저기 구시가지를 걷기로 했다. 일행들에게 대성당의 화려한 내부 장식을 보여주지 못 해 좀 아쉽긴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도심 풍경도 칙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몬트리올에 오면 맛보라는 푸틴(Poutine)을 먹어보기로 했다. 감자튀김 위에 그레이비 소스와 치즈가 얹혀져 나왔다. 다른 곳에서 먹었던 푸틴에 비해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비싸기만 했던 것 같다. 차를 몰아 퀘벡시티로 향했다.

 

프랑스 탐험가였던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 1608년에 건설한 도시가 바로 퀘벡시티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답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중세 유럽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들지만, 난 이곳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어 호기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깨비>란 드라마가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한국이나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도깨비에 나왔던 장소는 예외없이 젊은 남녀들로 붐볐다. 딸아이 역시 스마트폰으로 촬영지를 검색해선 나보고 그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샤토 프롱트낙(Chateau Frontenac) 호텔 안에 있는 우체통과 시타델로 오르는 언덕, 프티 샹플렝 거리, 그리고 크리스마스 용품 가게까지 돌아보았다. 졸지에 도깨비 촬영지 가이드가 된 셈이다.

 

올드 퀘벡(Old Quebec)의 어퍼 타운을 먼저 보기로 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 샹플렝의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다가섰다. 저 아래론 크루즈가 정박한 부두가 눈에 들어왔다. 퀘벡시티의 랜드마크라 할만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도 들어가 보았다. 꽃과 호박, 인형으로 할로윈 장식을 한 시청사와 대주교좌 성당인 노틀담 대성당을 보곤 성벽 아래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자라잡은 프티 샹플렝 거리로 내려섰다. 공예품을 파는 선물가게와 부티크에 레스토랑까지 외관을 아름답게 꾸며놓아 진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이런 문화적 컨텐츠가 있기에 도깨비 제작진이 여길 촬영지로 골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편의 드라마로 인해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보니 드라마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와 나까지도 그 영향으로 여길 왔으니 더 말하면 뭐하랴.



퀘벡의 음식으로 알려진 몬트리올 푸틴은 유명세나 가격에 비해선 맛은 별로였다.




어퍼 타운은 고풍스런 건물로 가득차 있어 마치 중세 유럽을 걷는 듯 했다.

샹플렝 동상이 있는 광장에선 부두가 내려다 보였다.




퀘벡시티의 아이콘인 페어몬트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깨비에서 비석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많이 나왔던 언덕배기에도 올랐다.



할로윈이 멀지 않은 시점이라 시청사 앞에는 꽃과 호박, 인형으로 할로윈 장식을 해놓았다.



1647년에 지어져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통하는 노틀담 대성당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심지어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거리의 화가들이 미술품을 전시하며 판매를 하고 있었다.


 

성벽 아래에 있는 로워 타운으로 내려가는 길


5층짜리 건물 외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안에는 수백 년에 걸친 퀘벡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공예품점이나 부티크, 레스토랑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프티 샹플렝 거리에도 도깨비에 나온 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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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1.17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도깨비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내가 순간순간 장면을 보여줘서 보긴 봤어요! 캐나다 관광청도 대한민국의 드라마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것 같아요~!

    • 보리올 2017.11.19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퀘벡시티에서 도깨비를 촬영하는데 캐나다 관광청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그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보았을 것으로 본다.

 

차를 몰고 토론토(Toronto)로 가는 동료가 이른 새벽 나를 낯선 도시에 떨구어 주었다. 노바 스코샤에서 밤새 운전을 해서 퀘벡 시티에 도착한 것이다. 맥도널드가 문을 열면 추위는 피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퀘벡 지역은 노바 스코샤보다 한 시간이 느린 것을 나중에 안 것이다. 추위에 떨면서 스스로가 한심하다며 연신 구시렁거리다가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발길 닿는대로 걷기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 추위에 떨기보다는 그나마 걷는 것이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캐나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 강이 바다와 만나 세인트 로렌스 만이 되는 지점에 퀘벡 시티가 자리잡고 있다. 16세기 자크 까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발견되고 1608년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건설한 이 퀘벡 시티는 북미에선 아주 역사가 깊은 도시로 통한다. 둘다 프랑스 탐험가였기에 오래 전부터 프랑스 식민지로 지냈다. 1759년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는 마지막 전투가 여기서 벌어졌고, 영국군이 아브라함 평원(Plains of Abraham) 전투에서 이겨 결국 뉴 프랑스를 영국 식민지로 복속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퀘벡 시티는 캐나다 다른 도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오래 전부터 뉴 프랑스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프랑스계 후손들이 그들 나름대로 문화와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까닭이다. 도시 전체에서 프랑스 문화의 화려함이 단연 돋보인다.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치 프랑스 파리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어 안내문도 도통 찾을 수 없다. 캐나다 내 프랑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발길 닿는대로 열심히 걸었다.

 

(사진) 아브라함 평원에서 일출을 기다리다 이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정작 해뜨는 사진은 찍지를 못했다.

 

 

 

 

(사진) 캡 디아멍(Cap Diamant)이라 불리는 얕은 절벽을 요새로 삼아 수비를 하던 프랑스 군을 제임스 울프(Lajes Wolfe)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은 그 옆으로 우회해 아브라함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고 결국은 프랑스 군을 패퇴시켰다.

이 전투는 캐나다 역사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전이었다.

사진은 아브라함 평원과 세인트 로렌스 강, 캡 디아멍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프띠 샹플렝(Petit Champlain) 거리.

옛집들이 공예점이나 부티크, 레스토랑으로 거듭나 무척 아름다운 거리로 통한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로 퀘벡 시티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만,

겨울철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반 보이지 않았다.

 

 

(사진) 르와얄 광장(Place Royale)은 샹플렝이 정원을 세웠던 곳으로 한 때 마켓으로 바뀌었다가 종국엔 광장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광장이라고 한다.

 

 

(사진) 캐나다 건축가 모시 사프디(Moshe Safdie)가 지은 박물관으로 퀘벡의 역사와 문화,

원주민들에 대한 전시물이 많았다

 

 

 

(사진) 퀘벡역을 지나 올드 퀘벡 시티의 어퍼 타운(Upper Town)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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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헬로우드림뚜와무와 2015.03.18 0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위에 엄청 떨으셨을테니,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시려지지만, 덕분에 좋은 사진을 얻으셨네요... 퀘벡을 올려놓은 사진들에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깔끔한 사진을 얻기란 쉽지 않은듯하니 말이죠...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5.03.18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퀘벡을 잘 아시는 분 같습니다. 힘이 나는 댓글을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때는 새벽부터 정처없이 떠도느라 고생 많았죠. 연신 구시렁거리며 퀘벡 시티를 헤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퀘벡(Quebec)은 제2의 프랑스라 불릴 정도로 프랑스 색채가 강한 곳이다. 교통 표지판이나 간판에서 영어는 아예 구경할 수도 없어 우리같은 사람은 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불어를 모르는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 땅에 들어왔으니 불어를 모르면 어떤 불이익이라도 감수하란 이야기로 들렸다. 영국과 영어에 대한 반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퀘벡을 여행지에서 과감하게 빼야 하는데, 나처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콧대를 세우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퀘벡에 가면 자존심이 좀 상한다.

 

퀘벡에 가기 전에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 강을 따라 이루어진 캐나다 개척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면 좋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과 각축은 오늘날 퀘벡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16세기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발견되었고, 1608년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건설한 이 퀘벡 시티는 북미에선 역사가 깊은 도시로 통한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 탐험가였기에 오래 전부터 프랑스 식민지로 지냈다. 1759년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는 마지막 전투가 여기 아브라함 평원(Plains of Abraham)에서 벌어졌고, 영국군이 전투에서 이겨 결국 뉴프랑스를 영국 식민지로 복속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퀘벡 시티에서 올드 퀘벡(Old Quebec)이라 불리는 구시가지는 꼭 들러야 한다. 언덕 위에 위치해 어퍼타운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나절이면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성벽 안에 볼거리가 제법 많고 아름답고 고풍스런 건물들도 눈길을 끈다. 꼭 중세 유럽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올드 퀘벡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은 당연 샤토 프롱트낙(Chateau Frontenac)이다. 퀘벡 시티의 아이콘이자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방향에서나 눈에 띄는데 그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그 건물 꼭대기에 있는 녹색 구리 지붕으로 자기 위치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샤토 프롱트낙을 가운데 두고 발길 닿는대로 구시가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아브라함 평원. 시타델을 왼쪽에 끼고 세인트 로렌스강을 내려다 보며 잠시 걸었다. 강가에 커다란 배들이 정박되어 있어 무슨 바닷가 항구에 온 느낌이 들었다. 여기도 단풍이 곱게 들었다. 샤토 프롱트낙 뒤로 돌아 다름 광장(Place d’Armes)에 섰다. 사무엘 드 샹플렝의 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노틀담 대성당과 시청사를 지나 좁은 골목을 여럿 지났다. 눈길이 닿는 골목 어디든 아름답게 치장한 건물들이 나타난다. 참으로 고풍스럽고 예쁜 동네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 올드 퀘벡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은 것이리라

 

 

 

 

 

퀘벡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아브라함 평원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759년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여기서 격돌해 영국군이 이겼고, 그 결과 영국의 캐나다 지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 평온하기만 하다.

높은 지대에 있는 만큼 세인트 로렌스 강을 내려다보기도 좋다

 

 

 

테라스 뒤프렝(Terrasse Dufferin)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 로렌스 강가 풍경.

이 물줄기가 없었다면 오늘날 퀘벡이란 도시도 없었을 것이다. 

 

 

 

 

페어몬트 샤토 프롱티낙의 아름다운 자태는 퀘벡 시티의 랜드마크다. 600개를 가진 고급 호텔이다.

녹색 구리도 된 지붕이 퀘벡 시티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장식한다.

 

 

사무엘 드 샹플렝의 동상이 서있는 다름 광장. 퀘벡 관광의 시발점으로 보아도 좋다.

1804년에 석조로 지어진 우아한 요새 박물관(Musee du Fort)이 이 광장에 면해 있다.

 

관광안내소 옆에 있는 트레조르 거리(Rue du Tresor)에서는 좁은 골목 양쪽으로 화가들이 그림을 걸어놓고

관광객을 상대로 팔기도 한다.

 

퀘벡의 카톨릭 역사를 대변하는 노틀담 대성당(Basilique Notre-Dame-de-Quebec).

퀘벡 대주교가 있는 대주교좌 성당이다. 1647년에 지어진 옛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 건물은 1922년에 다시 지어졌다. 하지만 종탑과 벽면은 옛 성당의 유물이라고 한다.

 

 

 

1833년에 지어진 시청사(Hotel de Ville) 건물 앞은 여러가지 행사로 늘 붐비는 곳이다.

할로윈 축제가 멀지 않은 시점이라 시청사 건물 앞을 호박과 꽃, 인형으로 장식해 놓았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퀘벡 시티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눈을 어디에 두어도 볼거리가 많다.

어느 곳에서든 샤토 프롱트낙의 구리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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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12.18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시가 고풍스럽고 아름다워요...중세에 사는듯한 착각이 들지 않을까요...강이 얼마나 크면 대형 유람선이 다니는지 상상력 부족입니다...

  2. 보리올 2013.12.19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퀘벡은 무척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꼭 중세 유럽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언제 시간 나시면 한 번 들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