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 있는 민둥산은 억새로 유명한 산이라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마음 먹었던 곳이다. 영월을 지나 태백으로 가는 국도를 열심히 달렸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산행 기점인 증산초교 근처엔 마침 민둥산 억새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로 민둥산이 들어간다니 테마 찾기에 혈안인 지자체에서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매년 9~10월에 억새꽃 축제를 열어 여러 가지 행사를 선보이는 모양인데, 난 어느 축제나 별다른 특징이 없이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차별화를 하지 않는 한 이런 축제는 혈세만 낭비하는 이벤트 같았다.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바로 자리를 떴다. 예상대로 지역 특산물을 파는 장터와 향토음식을 빙자한 어줍잖은 식당이 전부였다.

 

421번 지방도를 타고 정선으로 향했다. 시간이 꽤 걸렸다. 중간에 몰운대가 나와 잠시 차를 멈췄다. 대단한 풍경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도로 양쪽으로 나무 우거진 계곡이 나왔고 그 사이로 여기저기 바위덩어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산사태로 굴러 떨어진 바위더미 위에는 누군가의 염원을 담았을 조그만 돌탑들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화암면에 있는 정선 향토박물관부터 들렀다. 기분 좋게도 무료 입장이었다. 이 박물관은 정선 지역의 농사나 의식주에 필요한 기구들을 모아 놓았다. 맷돌, 풍구, 떡살, 호롱불 등 우리 농촌에서 사용하던 집기들이 꽤 많이 보였다. 어릴 적 생각을 하며 품목 하나하나를 유심히, 그리고 정겹게 보았다. 똥장군도 눈에 띄었다. 그래도 나무로 만든 스키와 나무를 둥글게 구부려 줄로 엮은 설피가 가장 시선을 끌었다.

 

 

 

 

 

 

 

 

 

 

 

 

 

 

 

 

 

 

'여행을 떠나다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선③ : 정선장터  (0) 2015.01.05
정선② : 화암동굴  (0) 2015.01.01
정선① : 민둥산 억새꽃 축제 & 정선 향토 박물관  (0) 2014.12.29
예천 회룡포 비박  (0) 2014.12.25
태안 몽산포 비박  (2) 2014.12.22
원주 서곡리 비박  (2) 2014.12.17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린 계곡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메디신(Medicine) 호수에서의 스노슈잉이 우리가 두 번째로 선택한 아웃도어 체험. 눈이 많은 지형에서 맨 몸으로 눈 위를 걷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예전부터 산악 지역이나 눈이 많은 지역에서는 스노슈즈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우리 말로는 설피(雪皮)라 부른다. 연간 강설량이 10m에 이르면 적어도 4~5m의 적설량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환경에서 눈 위를 걷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요즘에는 그 스노슈잉이 겨울철 아웃도어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전날도 하늘이 흐리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춥지는 않았다. 이날은 수온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졌다. 재스퍼 어드벤처의 가이드가 우리를 메디신 호수로 안내했다. 미니밴 안에서 면책각서에 서명을 받는다. 사고가 나도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커플이 합류해 모두 여섯 명이 가이드가 제공한 스노슈즈를 신고 호수로 들어섰다. 메디신 호수는 신설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설국(雪國)이라 하겠지. 순백의 눈은 너무나 깨끗해서 그냥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호수 뒤편에 버티고선 봉우리들이 모두 구름 속에 숨어 버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노슈즈를 신었음에도 20~30cm씩 푹푹 빠지는 것은 예사다. 꽤 힘들긴 했지만 그에 반해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호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것도 겨울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호수 가운데 집채만한 바위 하나가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를 그 바위로 이끈다. 바위에는 고대 해양 동물의 화석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예전에 바닷속에 묻혔던 바위가 지각의 융기에 의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의미 아닌가. 어제 말린 캐니언에서 보았던 조개 화석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었다. 다시 드넓은 설원으로 뛰어 들었다.     

 

스노슈잉 목적지가 딱히 어디라고 정해진 곳은 없었다. 그저 시간되는대로 한참을 걷다가 심심하면 지그재그로 변화를 주고 코스가 너무 평탄하다 싶으면 호수 가장자리로 올라서곤 했다. 눈 위를 걷는 것이 보기보다 쉽지는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얼굴에선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너무 덥다고 눈 위에 누워 땀을 식히는 청춘도 있었다. 두세 시간 눈 위를 열심히 걸은 후에야 차량으로 되돌아 왔다. 모두들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스노슈잉은 나에게 그다지 낯설진 않지만 고국에서 온 친구들에겐 무척 신기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